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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31화 (431/850)

431화

정성국은 그렇게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과 관련된 문제를 끝내고 남태평양 탐사대가 탐사한 지역들을 확인하려다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호오. 흑진주가 나오는 섬을 타히티라고 이름 붙인 건가?”

작년에 발견한 타히티 섬은 정성국이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전생과 같은 이름이 붙어 정성국이 신기하다는 듯 지도에서 타히티 섬을 바라보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곳의 원주민들이 따로 섬을 지칭하는 명칭은 없는데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흑진주가 나는 섬을 타히티라고 부른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머나먼 섬이라는 뜻이라던데...어감이 괜찮아서 흑진주 섬으로 붙이려다 타히티 섬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잘 했네. 흑진주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간 해적과 상인들이 이 섬을 방문하겠다고 남태평양을 헤집을 게 뻔하니.”

작년에 이 타히티 섬에서 교역을 통해 얻은 흑진주는 무척 비싼 가격에 유럽에 팔렸다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해군 탐사대장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저도 그 점이 조금 우려되어 타히티 섬이라고 붙인 거지요.”

“그보다 흑접패의 양식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고 있나?”

작년 남태평양 탐사대가 흑진주를 생산하는 흑접패를 하와이의 어업 연구소에 가져다 주었고 어업 연구소는 이미 진주 양식에 성공한 만큼 정성국이 기대하며 묻자 해군 탐사대장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가 새한성에 오기 전 진주 양식장에 들렀을 때 확인해보니 마지막 흑접패가 결국 죽었다더군요.”

“그래?”

“예. 제가 흑접패 일부를 다시 가져다주긴 했습니다만...어업 연구소에서도 차라리 타히티 섬에 어업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흑진주가 유럽에서 무척 비싸게 팔리는 만큼 흑진주의 양식을 위해서 타히티 섬에 제대로 된 거점을 세우기로.

“그럼 타히티 섬에 거점을 세우긴 해야겠군.”

“예. 그리고 타히티 섬 주변에는 꽤 많은 섬이 있는 만큼 타히티 섬에 제대로 거점을 세운다면 주변 원주민들이 타히티 섬으로 찾아와 교역할 테고 그러다 보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연맹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 남태평양 탐사대는 뉴질랜드를 새로 발견한 것과는 별개로 타히티 주변의 수많은 섬을 새로 발견했기에 해군 탐사대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그 연맹과 동맹을 맺고? 그거 괜찮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남태평양이 그려진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남태평양 탐사대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남태평양 탐사가 빠르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정성국은 다른 탐사대와는 달리 남태평양 탐사대는 꾸준히 지원하며 탐사선을 늘렸고 그 때문인지 남태평양 탐사대를 창설한 지 6년 만에 호주부터 핏케언 제도까지 발견했으니 이제 정성국이 기억할 정도의 섬은 핏케언 제도 동쪽의 이스터 섬과 갈라파고스 제도 정도였다.

다만 두 섬 모두 엄청나게 중요해 꼭 발견해야 하는 섬은 아니었다.

해서 정성국은 슬슬 남태평양 탐사보다는 이미 발견한 섬들의 원주민들을 적당히 가르쳐 연맹이나 국가를 구성하고 동맹을 맺음으로써 이들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고.

하지만 그런 정성국의 생각을 모르는 해군 탐사대장은 내년에는 모든 탐사선을 동원해 발견한 섬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핏케언 제도에서 남미 서해안 지역까지의 바다를 살필 계획이라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아직 탐사하지 못한 지역을 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발견한 원주민들과 꾸준히 접촉해 이들과 동맹을 맺는 걸세. 그래야 유럽인들이 섣불리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건드리지 않겠지.”

“으음...그래도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 아직 탐사하지 못한 이 지역을 탐사해 섬을 발견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특히 저 노바 제일란디아처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거대한 섬이 있을 수도 있고요.”

해군 탐사대장이 정성국의 말에 조심스럽게 반박했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지도를 보게. 지금껏 남태평양 탐사대가 열심히 탐험했고 수많은 섬을 발견하긴 했지만...호주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조그마한 섬들이 대부분이지. 그것을 보면 저 지역에 거대한 섬이나 대륙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네.”

정성국의 이야기에 해군 탐사대장은 아쉬운 기색을 떨쳐내며 정성국의 명령에 따랐다.

“흐음...알겠습니다. 허면 탐사선 한 척만 동쪽으로 보내 남태평양의 동쪽 지역을 탐사하고 그 외의 탐사선들은 그동안 발견한 섬들을 돌아다니며 우호적인 교류를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이미 남태평양 탐사대의 경우 탐사선만 15척 규모였기에 한 척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게.”

“헌데 이 섬은 어쩔까요.”

해군 탐사대장이 가리킨 섬은 바로 피지 섬이었다.

정성국이 노바 제일란디아의 원주민들에게 식인 풍습이 있다는 이유로 당분간 이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만큼 피지 섬의 원주민들도 식인 풍습이 존재하기에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에 같은 문화권으로 생각되어 피지 섬과 주변 섬을 발견하고도 접촉하지 않았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식인 풍습을 목격한 것은 피지 섬의 원주민 뿐이니...일단 피지 섬을 제외한 주변 섬의 원주민과 조심스럽게 접촉해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화포나 소총을 사용해 저들을 겁을 주어도 좋네.”

물론 정성국은 누차 탐사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원주민들이 공격한다면 화약 무기를 사용하라고 이야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정성국이 말한 것은 상황을 봐서 적극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라는 뜻으로 보였기에 해군 탐사대장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도...되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무엇보다 탐사대원들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그리고 이들도 화약 무기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쉽지요.”

해군 탐사대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피지 섬 인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사모아 왕국과 통가 왕국이 계속해서 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만...어쩔까요?”

이에 정성국은 표정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이들에게 무기를 쥐여주면 결국 주변을 정복하겠다고 설치겠지?”

“그렇겠죠. 아마 두 왕국 다 피지 섬을 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물론 피지 섬의 원주민들이 식인 풍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 왕국에 무기를 제공해 피지 섬의 원주민들을 죽이고 노예로 만드는 것을 돕고 싶지는 않네.”

애초에 정성국이 남태평양의 섬들에 개입하는 것은 그냥 방치했다가는 유럽인들이 손쉽게 남태평양의 섬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만들 것이 뻔했기에 그 꼴을 보기 싫어 개입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에게 섣불리 무기를 넘겨줘 원주민들끼리 싸우며 다른 섬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을 부추길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에게 유럽인들의 위험성을 알리고 최소한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럽인들이 섣불리 남태평양의 섬을 침공할 수 없도록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 대신 이들이 다른 섬을 침공하지 못하게 어느 정도 제약을 걸 생각이었고.

물론 몇몇 원주민 부족들은 자신들의 확장을 가로막는다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전생의 남태평양 원주민들 대다수가 학살당하고 살아남은 후손들도 이주민들에게 밀려 하층민으로 사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을 보면 차라리 이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이었다.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던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시간을 끌며 주변 부족들을 잘 설득해 동맹을 맺고 차후에 두 왕국과 협상을 해야겠군요.”

“그러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남태평양 섬들의 문제를 논의한 해군 탐사대장은 호주의 상황을 묻는 정성국의 질문에 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정성국에게 건넸다.

“어? 이건 웬 사진인가?”

“호주의 미안진 풍경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 오? 허허벌판일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건물이 많네? 이건...묘하게 옛 새김포가 생각나는데?”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특유의 북미왕국식 목제 건물이 많아 묘하게 처음 북미 대륙으로 이주했을 당시 새김포의 풍경과 비슷했기에 정성국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리자 해군 탐사대장이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요? 여기 보시면 알겠지만, 원주민들은 이런 움막집에 사는데 저희가 사는 집이 좋아 보였는지 하나둘 저희에게 집을 짓는 방법을 배워 나무로 집을 건설하는 터라 풍경이 묘하게 새김포와 비슷하지요.”

이에 정성국은 처음 보는 호주 원주민들의 움막집을 보고 나중을 생각해 더 많은 사진을 찍어두라는 명령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진을 살펴보다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건...조선소인건가?”

“그렇습니다. 원주민들에게 판매할 배를 건조할 목적으로 조선소를 건설했지요.”

“어선을 판매하려고?”

분명 여러 작물과 함께 농업 연구소 직원들이 파견되어 원주민들에게 농사를 가르쳤기에 식량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긴 했다.

호주의 다른 지역은 몰라도 동부는 꽤 비옥한 편이기도 했고.

다만 북미왕국에선 단순히 배를 채우기보단 각종 영양소의 공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가르치고 있었고 호주의 경우 아직 돼지나 소, 닭 등을 길러 안정적으로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묻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어선도 있지만 미안진의 존재가 호주에 널리 알려지면서 호주 동해안에 있는 원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미안진으로 몰려드는데...생각보다 먼 지역에서 오는 원주민들도 있어서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안진에 오기 위해 교역할 물품을 들고 두 달 넘게 걸어서 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곳곳마다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라 걷다 사냥해서 먹고 다시 걷다 밤이 되면 자고 이런 식으로 이동해서 오는 거죠.”

이에 정성국은 혀를 차며 물었다.

“허이구. 말은?”

호주도 넓은 만큼 내륙 탐사를 위해 말을 일부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를 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말의 수가 아직 많지는 않아 이 친구들에게 넘겨줄 상황은 아니라서요. 해서 차선으로 자그마한 범선을 건조해 이런 친구들에게 저렴한 값에 넘길 생각입니다. 약간의 항해술도 가르치고. 이들 태반은 해안가에 사는 부족들이라서요.”

“좋은 생각이네. 다만 그런 상황이라면 거점을 추가로 건설하고 수송선을 투입해 호주 동해안을 정기적으로 운항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정성국의 이야기에 해군 탐사대장이 조금 고민스럽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음...남태평양이 워낙 넓어 다른 지역에도 거점을 만들어야 하는지라 호주에는 미안진 외에는 거점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만...”

워낙 인력이 부족한 만큼 해군 탐사대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호주는 워낙 넓은 만큼 곳곳에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호주는 워낙 땅덩이가 크잖나. 그리고 미안진을 제외한 다른 거점은 원주민들을 고용해 선착장을 비롯한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까지 이들에게 맡기게.”

그렇다면 큰 부담은 없었기에 해군 탐사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이에 정성국은 티테이블에 지도를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어디보자...미안진이 호주 동해안 중간에 위치했으니 동해안에 가까운 남쪽과 북쪽에 거점을 하나씩 건설하면 될 것 같은데? 혹시 생각해둔 곳이라도 있나?”

“아. 그럼 남쪽은 이곳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손으로 가리킨 위치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어? 여긴...”

전생의 멜버른 위치였기에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호주 해안가를 돌며 거점으로 삼을 곳을 미리 파악해둔 것인가 생각했을 때 해군 탐사대장이 입을 열었다.

“미안진을 방문하는 부족 중 퉁거룽 족이라고 있습니다.”

“퉁거룽?”

처음 듣는 부족 이름이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예. 미안진을 방문하기 위해 2달 넘게 걸어오는 부족이지요. 헌데 최근 듣자니 이들은 쿨린의 일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쿨린?”

“이로쿼이 연맹같은 다섯 부족의 연맹체입니다. 워룬제리 족, 분어룽 족, 와더룽 족, 퉁거룽 족, 자자워룽 족이 동맹을 맺고 연맹체를 구성해 이 남쪽 지역에서 산다고 하더군요.”

“호오...그래?”

호주의 원주민 부족들은 무척 다양했다.

그 이야기는 부족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의미였고.

그래서인지 북미 대륙의 원주민처럼 규모가 큰 부족도 없었기에 아쉬워하며 터발 족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터발 족도 규모가 큰 편은 아니라 항상 고민이었다.

해서 정성국은 쿨린 연맹에 무척 관심을 보였다.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해군 탐사대장이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는 듯 급히 입을 열었다.

“예. 물론 이들은 수렵 생활을 하는 터라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그건 조금 아쉽긴 하군.”

“그렇지요. 아무튼, 퉁거룽 족 사람들은 미안진에 방문해서 항상 선착장의 커다란 배를 무척 부럽게 바라보면서 저 배가 자신들의 영역에도 들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범선에도 무척 관심을 보인 만큼 이들과 협상하는 것이 괜찮아 보입니다.”

어차피 쿨린 연맹이 아니어도 멜버른은 천혜의 항구였고 위치도 좋았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위치도 괜찮아 보이네. 그렇게 하게. 그리고 북쪽은?”

“북쪽은 이곳이 괜찮아 보입니다.”

“흐음...”

해군 탐사대장이 가리킨 곳은 미안진에서 북서쪽으로 약 1100km 떨어진 곳의 조그마한 만이자 전생에 타운스빌이 들어서는 위치였다.

위치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여겨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살필 때 해군 탐사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치도 괜찮고 이곳은 만바라 족의 영역인데 이들은 북미왕국에 무척 우호적인 편이거든요. 이전 호주 북부 지역을 탐험할 때도 도움을 주기도 했고. 비록 약소 부족이긴 합니다만...그래서 이들에게 거점 관리를 맡기면 최선을 다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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