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정성국은 보고를 위해 방문한 해군 탐사대장을 환영하며 커피와 여러 간식을 내어주었고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이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가져온 지도를 정성국에게 건네주며 먼저 북태평양 탐사대의 보고를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북태평양 탐사대는 러시아 차르국과의 분쟁을 대비해 알래스카 해 서쪽 바다를 탐사했는데...이곳은 북쪽 지역이라 한여름에나 바다를 원활히 탐사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탐사 영역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지도에는 봉길 해협에서부터 시베리아 북쪽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2400km 떨어져 있는 레나 강의 하구까지 탐사되어 있었기에 정성국은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군 탐사대장의 말마따나 알래스카 해 북서쪽에 위치한 시베리아 북쪽의 바다는 알래스카 북쪽의 바다처럼 여름에는 유빙이 떠내려오는 터라 항해가 위험한 편이었기에 얼마 탐사하지 못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많은 지역을 탐사한 것 같은데?”
이에 해군 탐사대장이 쓴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건 탐사할 시간이 적어 제대로 수심을 파악하며 탐사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쓰고 빠르게 탐사한 결과입니다. 이 때문에 100톤급 기선 두 척을 준비해 선행시켰고...1척은 암초에 의해 구멍이 뚫려 결국 배를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과격한 북태평양 탐사대장의 탐사 방법에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뭐? 그럼 기선을 몰던 탐사대원들은?”
“암초와의 충돌로 조금 다치긴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답니다. 다행이지요.”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이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탐사선이 침몰한 것은 아니고 북태평양 탐사대도 나름의 준비를 한 것 같기는 한데 방법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여름 바다라 한들 시베리아 북쪽 바다의 수온은 차가운 편이라 잘못하면 저체온증으로 탐사대원들이 사망할 수도 있었고.
“끙...분명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위험을 감수하지는 말라고 북태평양 탐사대장에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은 무엇보다 탐사대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성국의 반응에 슬쩍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성국은 북태평양 탐사대가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한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나마 레나 강의 하구를 찾았으니 소득이 없지는 않군.’
정성국은 이왕 시베리아 지역에 개입한 김에 레나 강을 경계로 러시아 차르국의 세력을 레나 강 서쪽으로 몰아낼 생각이었기에 만약의 경우 배를 이용해 신속하게 물자와 병력을 수송할 경로를 찾은 셈이라 내심 만족하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내륙으로 뻗은 강들이 생각보다 좀 있군?”
“그렇습니다. 특히 이 2개의 강은 생각보다 하구의 폭이 넓어 탐사선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베리아 내륙을 탐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다만 전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러시아 차르국과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강에 진입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해군 탐사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강은 시베리아에서 발원해 북쪽의 바다로 흘러가는 레나 강과 콜리마 강이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콜리마 강은 몰라도 레나 강의 경우 러시아 차르국이 레나 강 중류 부근에 야쿠츠크 요새를 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다른 강은 몰라도 이 강은 국영 상단이 진출한 곳보다도 훨씬 서쪽에 위치해서 만약 직접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북태평양 탐사대장이 복귀 후 시베리아 지역을 다녀온 국영 상단의 보고서를 확인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서쪽에 있다는 에벤 족이 이야기하기를 러시아인들은 서쪽의 있는 커다란 강 근처에 요새를 세워놓았다고 했는데...북태평양 탐사대장은 러시아 차르국의 요새가 존재하는 서쪽의 커다란 강이 바로 이 강이 아닐까 싶답니다.”
해군 탐사대장도 정성국의 추측에 동의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그러니 이 강은 제외하고 다른 강들을 탐사하는 것은 괜찮아 보이는데...아. 어차피 시베리아 북쪽의 바다는 내년 여름은 되어야 탐사할 수 있을 테니 상관없으려나?”
정성국이 잠시 시기를 계산하며 이야기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슬쩍 미소지으며 되물었다.
“내년이면 국영 상단이 머스킷을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보급할 테니까요?”
“그렇지.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머스킷을 건네주고 아이누 탐사대 일부가 이들을 도울 테니 이들의 독립은 큰 문제 없을 거야. 그러니 일단은...국영 상단 소속으로 시베리아 내륙을 탐사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국영 상단 소속으로 탐사하는 것이니만큼 물자를 최대한 많이 싣고 가서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거래하라고 하고.”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 외에도 정성국은 북태평양 탐사대에 전해줄 당부를 해군 탐사대장에게 이야기했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를 유심히 기억하던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다른 지도를 꺼내서 정성국에게 건넸다.
“원래라면 제가 이끄는 남태평양 탐사대의 보고부터 해야겠습니다만...보고할 것이 워낙 많아서요. 그러니 일단 보고할 것이 적은 다른 탐사대의 보고부터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아. 미시시피 탐사대의 경우 외무청을 통해 중간보고를 받고 있으니 굳이 보고할 필요 없네.”
미시시피 탐사대는 미시시피 동쪽 지류를 모두 탐사한 후 타마로아 인근의 서쪽 지류, 전생의 미주리 강을 탐사했다는 사실은 통역하기 위해 탐사대에 탑승해 함께 움직였던 외무청 관리들의 보고를 받았기에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건네준 북미 대륙의 지도를 대충 확인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북대서양 탐사대의 보고인데...솔직히 북대서양 탐사대도 딱히 보고할만한 사항은 없습니다.”
“그래?”
“예. 모피 때문에 허드슨 만을 들러 원주민과 거래해 모피를 왕창 가져온 것 정도가 다입니다. 그 후 뉴펀들랜드 섬에서 재보급을 받고 다시 허드슨 만 북쪽을 탐사하려 했지만, 날이 좋지 않아 새로 탐사한 지형은 많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전생의 캐나다 북극 제도를 탐사하려 했지만, 날씨 문제로 실패했다는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다.
이 지역은 유빙 때문에 무척 위험했고 특히 지금은 소빙하기라 더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흐음...어차피 북태평양 탐사대도 알래스카 북쪽 해안은 여름에도 유빙이 내려와 탐사를 잠정 포기했으니...북대서양 탐사대도 허드슨 만 북서쪽 탐사는 잠정 포기하라고 하게.”
북대서양 탐사대장이었다면 반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군 탐사대장은 해군 탐사대를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위치였기에 안전이 최우선이라 곧바로 수긍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안전을 생각하면 그게 낫겠지요. 허면 북대서양 탐사대는 해체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지금처럼 허드슨 만의 원주민들과 교역해야지. 그리고 이 배핀 섬 정도만 탐사하도록 하고. 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으니.”
“흐음...알겠습니다.”
“그리고 북대서양 탐사대가 아쉬워할 수 있으니 잘 달래고.”
일단 해군 탐사대의 경우 모험심이 강한 친구들이 주로 지원하는 편이라 탐험을 막아버리면 실망할 것이 확실했고 이것이 걱정스러워 당부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렇게 북대서양 탐사대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해군 탐사대장은 다른 지도를 한 장 꺼내서 정성국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이번에 남태평양 탐사대가 탐사한 영역입니다.”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건네준 남태평양 지역의 지도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이곳은...”
정성국의 시선이 이번에 발견한 커다란 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해군 탐사대장은 의외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꽤 거대한 섬이지요?”
“그렇군. 헌데 표정이 왜 그런가?”
“이번 발견은 탐사대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음?”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해군 탐사대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작년에 새한성에 들렀을 때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예. 어쩌다가 군사대학에서 해군 사관을 교육하는 선생과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선생은 해군 사관을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무청에서 구한 유럽의 해도를 번역하는 일도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네덜란드에서 구한 해도에 호주가 뉴 홀란트로 표기되어 있었고 그 동쪽에 노바 제일란디아라는 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미왕국에서는 남태평양 탐사대가 발견한 거대한 남방대륙을 공식적으로 호주라고 명명했다.
원래는 호주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대륙 전체를 칭하는 이름을 붙일 생각이었지만, 호주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이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대륙 전체를 부르는 단어는 없었고 이곳의 원주민들은 생각보다 자잘한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도 미묘하게 달라서 섣불리 한 부족의 이름이나 언어로 대륙의 이름을 정하긴 어려웠던 탓이다.
해서 남태평양 탐사대가 최소한 대륙의 이름만큼은 정성국이 지어달라고 요청했고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익숙한 호주를 택했다.
하지만 호주는 이미 1606년에 네덜란드 탐험가가 호주의 북쪽, 서쪽, 태즈메이니아를 발견해 뭉뚱그려 뉴 홀란트라고 이름 붙였고, 1642년에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뉴질랜드를 발견해 보고하자 네덜란드는 이 섬을 네덜란드의 제일란트 주의 이름을 따서 노바 제일란디아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훗날 영국 탐험가인 쿡이 노바 제일란디아를 영어식으로 표기하면서 뉴질랜드라고 부르게 되고.
이러한 흐름을 기억한 정성국은 남태평양에서 3번째로 커다란 섬인 뉴질랜드를 발견하고도 해군 탐사대장이 아쉬워한 이유를 깨닫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탐사선을 보내 정말 존재하나 확인한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이곳의 원주민과 접촉했나?”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 계통인 마오리 족이었고 이들도 식인을 했다.
마오리 족은 엄격한 신분 제도를 유지했는데 이 신분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마나였다.
마오리 족은 모든 이들에게 각자 다른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족장은 격이 높은 마나를, 노예는 격이 낮은 마나가 존재하기에 마나에 따라 계급 체계를 유지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마나는 물려받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즉 족장의 자식은 격이 높은 마나를, 노예의 자식은 격이 낮은 마나를 타고난다고 생각했기에 신분 제도가 유지되었고.
하지만 이 마나의 격을 높이는 방법도 존재하는데 부족에 공을 세우거나 적의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적의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이란 것이 결국 적의 살을 먹는 것, 즉 식인이었고.
그렇기에 마오리 족은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자신들의 땅에 상륙했을 때 네덜란드인의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공격해 네덜란드인을 죽이고 이들의 살을 먹었고.
이를 본 네덜란드인들은 기가 질려 그 이후로는 방문하지 않았고.
이를 기억한 정성국이 급히 묻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이곳의 원주민들은 무척 호전적인지 저희 탐사선을 확인하고 적대적으로 반응해서 안전을 생각해 상륙하지는 않았습니다.”
“휴우. 잘 판단했네.”
마오리 족은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호전적인 자들이라 괜히 붙어봐야 골치만 아프다고 생각해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안도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다 입을 열었다.
“다만 이 노바 제일란디아는 호주와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터라 이 섬에 보급 거점을 마련해야 주변 해역을 원활히 탐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상황을 봐서 다시 원주민과 접촉할 생각이기는 합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다.
마오리족의 의식적인 식인 풍습과 호전성이 조금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괜히 마오리 족과 접촉했다가 마오리 족이 북미왕국인들의 마나를 높이 평가해 덤벼들면 골치 아프기도 했고 설사 그렇지 않고 우호적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뒷일이 걱정스러웠다.
교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의 철제 제품들이 이들에게 흘러 들어갈 텐데 그렇게 되면 과연 이 호전적인 마오리 족이 가만히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전생에도 이들은 잉글랜드 상인에게 머스킷을 산 후 주변 부족을 정복하겠답시고 정복 전쟁을 벌였고 이때 죽어나간 마오리 족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프로에 가까웠다.
또한, 채텀 제도에 풍부한 사냥감과 평화로운 원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잉글랜드 상인에게 듣고 채텀 제도로 원정을 떠나 채텀 제도를 정복하고 채텀 제도의 원주민들은 모조리 잡아먹어 멸족시켰을 정도였으니.
해서 정성국은 문득 기억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해군 탐사대장의 의아한 듯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노바 제일란디아라는 이름이 묘하게 낯이 익었거든. 헌데 이제야 기억났네. 식인 부족이 사는 지역일 걸세. 아마도.”
“예? 식인이요?”
남태평양의 부족들 가운데 식인을 하는 부족이 간혹 존재했기에 해군 탐사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바 제일란디아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들도 이들과 접촉하려 하다가 탐험대 일부가 잡아먹혔다고 들었네.”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탄식하며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허...그렇다면...이 노바 제일란디아 주변에 작은 섬들이 있고 몇몇 섬은 무인도이니 이곳에 거점을 마련해야겠군요. 물론 무인도라 보급 거점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가겠지만...”
“피를 볼 바에야 그편이 낫겠지.”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