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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29화 (429/850)

429화

정성국은 부쩍 추워진 날씨 때문에 꺼낸 화로에 다가가 잠시 불을 쬐다 문득 입이 심심한 것을 느끼고 하얀 들꽃이 가져다준 간식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가래떡을 집어 화로 옆에 올려두고 가래떡이 구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정성국이 고개를 들어 누가 왔나 살펴보니 조용한 곰이었기에 조용한 곰에게 손짓하며 바구니에서 가래떡 하나를 더 꺼내 화로 옆에 올려두었고.

“오. 웬 가래떡입니까?”

“하얀 들꽃이 출출할 때 먹으라며 간식을 왕창 가져와서 말이지. 밤이나 고구마도 있네만...”

그러면서 정성국이 바구니를 가리키자 조용한 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오랜만에 가래떡을 먹겠습니다. 군고구마나 군밤은 노점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흠. 노점상이 많나?”

어차피 북미왕국의 노점상은 행정청에 허가를 받고 열어야 했고 그런 만큼 노점상들도 일반 상인처럼 임대료 대신 자릿세를, 그리고 수익 일부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터라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굳이 노점상을 할 바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상점을 차리는 것이 나았기에 노점상을 하려는 사람이 많을까 싶어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은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특히 날씨가 쌀쌀할수록 군고구마나 군밤, 붕어빵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소일거리가 필요한 노인들이 주로 노점을 열곤 합니다.”

“노인들이? 힘들 텐데?”

정성국은 노인들이 노점상을 한다는 이야기에 내심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해서 추운 겨울에도 노점을 연다고 생각해 안색이 조금 굳어졌지만 조용한 곰은 그런 정성국의 생각을 짐작하지 못했기에 정성국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돈을 벌기 위해 부업을 뛰는 노점상들과는 다르게 노인들은 돈이 목적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소일거리가 필요해 노점을 여는지라 힘든 일은 사람을 써서 해결하는 거죠. 그런 노점상을 겨냥해 각종 자제와 장작을 배달해주는 상인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용한 곰의 설명에 자신이 지레짐작했음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허. 그런 거였나?”

“예?”

“아닐세.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집무실을 찾아온 건가?”

정성국이 집게로 가래떡을 굴리면서 묻자 조용한 곰은 굳은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보고했다.

“아. 쇼니 족과 체로키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허. 그래?”

정성국은 집게를 내려놓고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리노이 지역 동남쪽에 자리 잡은 쇼니 족이야 범 일리노이 족이고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만큼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체로키 족은 상황이 조금 달랐기에 이렇게 빠르게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조용한 곰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체로키 족에 우두를 접종하지 않았습니까.”

“뭐? 설마...”

정성국이 안색을 굳히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체로키 족 영역의 외곽에 있는 마을에서 다시 천연두가 돌았는데 이 마을 사람 중 일부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고 멀쩡했기에 알아보니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생필품의 거래를 위해 다른 마을에 들렀다가 운이 좋게 우두를 접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알려지자...체로키 족은 우두 접종이 정말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체로키 족 마을에 천연두가 돌았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곧바로 북미왕국에 합류한 건가?”

“예. 아직 체로키 족의 절반 가까이는 우두 접종을 받지 않은 상태라 체로키 족의 대추장은 더 많은 우두를 원했지만, 아시다시피 이번에 저희가 접촉하는 모든 부족에 우두를 접종하다 보니 당장은 우두의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서요. 해서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상황을 오해한 모양입니다.”

“오해? 아.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부터 우두를 챙겨줄 거다?”

“그렇습니다. 해서 대추장이 추장들을 소집해 논의한 끝에 북미왕국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신들도 북미왕국의 백성이 될 테니 차별하지 말고 우두를 접종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고 하는군요.”

정성국은 체로키 족의 대추장이 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체로키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천연두 때문에 북미왕국에 합류한 셈이니 마냥 좋아할 수는 없군.”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체로키 족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지요. 거기에 피해도 꽤 큰 모양입니다.”

“그래?”

“예. 외곽 마을의 주민들이 대부분 죽어 나갔다니까요. 못해도 100명가량은 천연두로 사망한 것 같습니다.”

다른 병이라면 몰라도 천연두라면 미리 우두를 접종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었기에, 그리고 한창 우두를 접종하고 있어 내년 정도면 천연두가 돌아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을 테니 이번에 죽은 체로키 족의 처지가 참으로 안타까웠던 정성국은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명령을 내렸다.

“...일단 체로키 족에 아직 천연두가 돈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일단 체로키 족을 우선해서 접종하도록 하게.”

조용한 곰도 체로키 족의 영역에 다시 천연두가 돌았다는 보고에 일단 체로키 족에 우두를 집중할 것을 잘못했다고 자책하며 여러 조치를 취했었기에 정성국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미 요청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접종 전에 천연두가 유행하면 골치 아프니 탐사대를 동원해 천연두가 돌았던 외곽 부족 마을을 격리하고 뒷정리를 하도록 하고.”

“예. 그것도 체로키 족에 파견된 외무청 관리가 이미 탐사대에 요청해 지금쯤이면 탐사대가 외곽 부족 마을을 격리하고 있을 겁니다.”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급감한 만큼 북미왕국에서는 전염병이 돌 것을 대비해 여러 계획을 미리 세워두었기에 체로키 족에 파견된 외무청 관리가 이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는 대답에 정성국이 안도했다.

“휴. 그나마 다행이군. 아. 그리고 외곽 부족 마을의 상황이 체로키 족에 알려졌다면 체로키 족이 꽤 불안해할걸세. 그리고 체로키 족도 이젠 북미왕국의 백성이니 곧바로 지원 물자를 보내도록 하게.”

“지원 물자라...알겠습니다. 식량과 모포를 비롯해 각종 물품을 챙겨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존자들을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한...”

그렇게 정성국은 조용한 곰과 한참 동안 체로키 족의 지원 문제를 논의한 후 문득 화로 옆에 놓인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가래떡을 보고 더 타기 전에 집게를 들어 꼬치에 끼워 조용한 곰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뜨거운 가래떡을 식히기 위해 후후 부는 동안 정성국은 남은 가래떡을 꼬치에 끼워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흠. 잘 구워졌네.”

“예. 맛있군요.”

정성국은 오랜만에 먹은 가래떡이 생각외로 맛있어서 빠르게 해치우고 슬쩍 바구니에서 몇 개의 가래떡을 꺼내 화로에 올리며 화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중얼거렸다.

“그보다 이전에 마이애미 족도 북미왕국에 합류했었잖아? 여기에 쇼니 족과 체로키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했으니...”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가래떡을 바라보던 조용한 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북미 대륙 동남쪽은 온전히 북미왕국이 통치하는 영역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허...”

조용한 곰이 말한 북미 대륙 동남쪽은 미시시피 강의 동쪽과 오대호 연안과 세인트로렌스 강 남쪽에 해당하는 거대한 지역을 의미했다.

전생으로 치면 미국의 24개 주와 캐나다의 3개 주에 해당하는 광활한 지역이었고 미시시피 탐사대를 창설한 지 4년 만에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게 되었으니 예상보다 내륙으로의 확장이 빨라 정성국은 감탄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히죽거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정확한 것은 훗날 행정청에서 이번에 합류한 쇼니 족과 체로키 족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해봐야겠지만 이번 두 부족의 합류로 북미왕국 백성의 수가 500만 명이 확실히 넘을 것 같습니다. 쇼니 족의 인구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서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다시 한번 탄성을 터트렸다.

“허. 드디어 500만 명을 넘는다고?”

“그렇지요.”

정성국은 처음 북미왕국을 세웠을 때 채 10만도 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국의 표정은 곧바로 암담하게 변했는데 현재 북미왕국이 실질적으로 장악한 영역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500만이라는 인구는 적어도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생의 미국은 1800년에 인구가 500만이 넘었는데 이때의 영토가 프랑스에서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기 전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인구가 더욱 부족하게 느껴졌고.

해서 정성국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북미왕국의 인구가 500만 명을 넘긴 것은 기뻐할 만하지만...북미 대륙의 크기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네. 이래서야 현재 통치하고 있는 영역들을 개발하기도 영 쉽지 않겠어.”

그런 정성국의 투덜거림에 조용한 곰이 피식 웃으며 집게로 가래떡을 뒤집으며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 북미 대륙에 인구가 적은 것을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요.”

“그렇긴 하지.”

조용한 곰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해소될 문제였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만 바라볼 수는 없었기에 정성국이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지금까지 프랑스인들은 얼마나 이주한 거지?”

“지금까지 북미왕국에 이주해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총 15만 명가량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감탄했다.

“허. 고작 2년 만에?”

“예. 북미왕국에서 남는 범선을 투입한 뒤로 이주민들의 수가 늘었지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주 허가증으로 알려진 주머니의 회수율이 생각보다 낮다는 겁니다.”

“응? 15만 명이나 이주했는데 주머니가 아직도 남았다고?”

유럽에 이주 허가증으로 알려진 삼태극 문양이 새겨진 주머니는 총 3만 개였고 이미 15만 명가량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했기에 얼추 회수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정성국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회수된 주머니는 2만 개 정도라 아직 1만 개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아. 위그노들이 주머니를 사들이면서 주머니 하나당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서 그런가 보네? 흠. 그 정도면...5만 명 정도가 더 이주하려나?”

주머니 2만 개로 15만 명가량이 이주했고 주머니 전부가 회수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 정성국이 그렇게 예측하면서, 포로들에게 나눠주어 고작 2, 3만 명의 프랑스인을 받아들이려고 나눠준 주머니 덕분에 총 20만 명의 프랑스인이 이주하게 되었으니 주머니를 만든 외무청 관리를 다시 한번 포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외무청에서는 못해도 20만 명은 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엥?”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성국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이전에는 어선 하나당 3, 4개씩의 주머니 회수되었다면 최근에는 어선 하나당 1개의 주머니만 회수되고 있습니다. 어선에 탄 프랑스인들은 다 가족, 지인이라고 이야기하고요.”

“그거 어째...”

정성국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뉴펀들랜드의 외무청 관리도 그게 이상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무리 중 한 명만 주머니를 가지고 있어도 북미왕국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항구에서 어선을 기다리던 프랑스인들은 가족끼리 뭉쳐 더 큰 무리를 짓고 남은 주머니는 팔아 기다리는 동안 생활비로 사용한답니다. 이를 중개해주는 상인까지 있다는 모양입니다.”

“허. 그것 참...”

“다만 북미왕국의 입장에선 이주민이 늘어나는 것이 나쁠 것 없기에 모른 척하는 중이긴 합니다만...”

그러면서 조용한 곰이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뜩이나 인구가 부족한 상황이니 모른 척하게. 다만 그렇게 되면 생각외로 프랑스인들의 수가 많아질 테니 이들을 적당히 분산해 정착시켜야겠어. 상황을 봐선 일리노이 지역에도 정착시켜야겠군.”

프랑스인들을 한 지역에 집중 정착시켜 원주민들보다 인구가 많아지면 훗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에 분산해서 정착시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프랑스인이 이주할 수 있다고 하니 일리노이 지역에도 일부 정착시켜야겠다고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번에 새진주에서 건조된 여객선의 시범 운항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이 여객선을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한다면 더 빠르게 인구가 증가할 겁니다.”

정성국은 그 말에 반색했다.

“아. 드디어 시범 운항이 끝났나?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시범 운항을 마친 여객선은 현재 새진주에 정박해 출항하기 전 각종 물자를 보급받는 중이고요. 그리고 이번에 잉글랜드로 파견되는 외무청 관리들을 태운 지급 전선이 유럽으로 떠날 예정이라 여객선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이미 에스파냐에는 외무청 관리가 파견된 상태였고 이번에 잉글랜드에도 외무청 관리가 파견될 예정이라 이들과 함께 움직일 거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만약을 대비해서 함께 움직이겠다? 괜찮네. 다만 여객선이 투입되면...지금보다 더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 테니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의 행정청, 개발청 관리들은 정말 고생하겠군.”

“하하하. 그렇지요.”

정성국은 행정청, 개발청 관리들을 애도하며 집게로 가래떡을 뒤적이다 조용한 곰에게 넘겨주며 혹시나 해 당부했다.

“아. 그리고 더 많은 이주민이 몰려드는 만큼 이들이 도착해 휴식을 취하는 뉴펀들랜드 섬에 전염병이 돌 수도 있어. 그러니 이곳의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래. 그럼 식기 전에 먹자고. 그리고 말이야...”

그렇게 정성국과 조용한 곰은 가래떡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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