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한양에 도착한 후 먼저 조선의 임금인 이연에게 간략히 보고한 사절단의 정사였던 호조참판은 궁에서 나온 후 정태화의 집으로 향했다.
다른 때였다면 호조참판이 가져온 북미신문이라던가 북미왕국의 사정에 관심을 보였을 조정 대신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뒤늦게 여러 문제를 결정하고 원상을 통해 호조참판에게 연락한 만큼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궁금했던 조정 대신들은 호조참판이 사랑방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질문을 퍼부었고 호조참판은 진땀을 흘리며 조정 대신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신식 소총의 수입 문제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신식 소총 5천 자루라...”
호조참판의 이야기를 듣고 병조판서가 애매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이조참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확실히 신식 소총이 비싸긴 비싸군요. 조총 3만 자루를 거의 2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았으니 실제로는 조총 6만 자루에 해당하는데 겨우 신식 소총 5천 자루라니...”
이에 조정 대신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신식 소총이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식 소총의 성능이 조총보다 좋다 한들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5천의 병력보다야 조총으로 무장한 6만의 병력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했고.
해서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자 호조참판은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처음에 북미왕국은 조총 가격으로 신식 소총 1만 자루를 이야기했습니다.”
“예? 헌데 왜 5천 자루를...”
병조판서가 의아한 듯 호조참판을 바라보자 호조참판이 말했다.
“문제는 총알입니다. 조총과는 달리 신식 소총은 후장식 소총이라 발사속도가 빠른 만큼 조총보다 탄약 소모량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해서 북미왕국에 물어보았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총알을 얼마나 비축해야 하느냐고.”
“뭐라던가요?”
“북미왕국에서 이야기하길 신식 소총 1만 자루라면 못해도 1천만 발은 비축해야 만약을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예? 그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100만 발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이조참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대다수의 조정 대신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호조참판은 쓴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북미왕국에서 그러더군요. 100만 발 정도는 전투 두세 번이면 금방 동날 거라고.”
“으음...”
다른 조정 대신들은 그런가 하는 눈치였지만 병조판서나 병조참판은 신식 소총의 경우 북미왕국에서 만드는 총알이 없으면 신식 소총을 써먹지 못하는 만큼 총알이 많아서 나쁠 것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병조 참판은 만약을 대비해 더 많은 총알을 비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질문을 던졌다.
“그럼 1천만 발에 얼마랍니까?”
“40만 석이라더군요.”
“헉!”
“맙소사...”
호조참판의 대답에 병조참판뿐만 아니라 다른 조정 대신들도 기겁했다.
그나마 조선 재정이 이전보단 조금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40만 석을 감당할 여력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가격도 민간에서 판매하는 가격에 비하면 극히 저렴하다는 이야기에 조정 대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장 전쟁을 치를 것은 아닌 만큼 시간을 들여 총알을 비축하면 된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그래도 재정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해서 신식 소총의 수를 줄이고 그 돈으로 총알을 확보한 겁니다.”
“잘하셨습니다. 10년간 총알을 비축한다 하더라도 추가로 4만 석이 필요하니...”
병조판서는 호조참판이 왜 북미왕국과 협상해 신식 소총의 수를 줄였는지 확실히 깨닫고 그의 결정이 옳았다고 이야기하자 호조참판은 살짝 미소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예. 해서 북미왕국에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논의한 끝에 신식 소총 5천 자루와 탄환 300만 발을 받는 것으로 협상을 마쳤지요.”
“음? 계산이 조금 안 맞는 것 같습니다만...”
유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지자 호조참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격만 따져보면 신식 소총 5천 자루와 탄환 250만 발이 맞습니다. 다만 북미왕국에서 덤으로 50만 발을 더 얹어주더군요.”
“예? 덤으로 50만 발이나 더 주었다는 말입니까?”
계산해보면 2만 석에 해당하는 데 이걸 그냥 덤으로 주었다는 소리에 유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호조참판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병사들의 사격 실력은 많이 쏴본 만큼 는다면서 훈련용으로 사용하라며 내어주더군요.”
“훈련용으로요?”
“아시다시피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단순히 징집되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소에서 몇 달간 교육을 받은 후 병사가 되지 않습니까. 이때 훈련소에서 소모하는 탄환이 개인당 100발이라더군요. 그래서 덤으로 50만 발을 더 내어준 겁니다. 강병을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라는 의미로요.”
“허.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개인당 100발이나 사용한단 말입니까?”
생각외로 총알의 가격이 비싼 편인데 이 값비싼 총알을 개인당 100발이나 사용하며 병사들을 훈련시킨다는 이야기에 병조판서가 놀란 표정을 짓자 호조 참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훈련소에서의 일일 뿐이고...실제 부대에 배치되면 사격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실탄 훈련을 지속해서 진행한다더군요. 그러니 북미왕국 병사들이 실제 훈련하면서 사용하는 탄환은 더 많다고 봐야겠지요.”
이에 상석에 앉아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정태화가 질문을 던졌다.
“육군이 그렇다면 수군. 아. 북미왕국은 해군이라고 하지요? 그들도 사정은 비슷하겠구려?”
“그렇습니다. 그들도 한 해 훈련으로 소모해야 할 포탄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군요.”
호조참판의 대답에 정태화뿐만 아니라 다른 조정 대신들도 그동안 북미왕국이 유럽의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단순히 무기와 배가 좋아서 이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무기가 좋다 한들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때 호조판서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강병을 육성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훈련에 사용할 총알 값으로만 1년에 2만 석이 추가로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군요.”
이에 병조판서가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호조참판이 먼저 나섰다.
“아. 신식 소총을 발사하고 남은 부분인 탄피는 구리로 만들어져있고 이를 회수한다면 조금이나마 돈이 될 겁니다. 북미왕국에서도 이를 가져오면 총알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했고요.”
워낙 구리가 부족한 탓에 북미왕국에서도 사격한 후 나오는 탄피를 회수하고 있었다.
물론 전생의 한국처럼 회수된 탄피의 숫자를 세고 부족하면 사격장을 뒤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북미왕국은 조선에도 이를 알리며 탄피를 가져오면 총알 가격을 깎아줄 수 있다고 제의했다는 것을 설명하자 다른 관리들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의를 제기한 호조판서도 조금이나마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반색했을 때 병조판서가 끼어들었다.
“거기에 신식 소총은 결국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사용할 테니 그들이 기존에 사용하는 화약의 가격까지 고려하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분명 아닐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뭐...”
호조판서가 수긍하자 병조판서가 표정이 밝아졌을 때 유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의 말처럼 만약을 대비해 탄약 비축량을 500만 발까지 늘려야 할 테니 추가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긴 하겠군요.”
“하지만 호조에는 여유 자금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출이 많이 늘었기에 20만 석을 구하려면 결국 이런저런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더 거두는 방법 외엔 없는데...”
최근에만 하더라도 의원들에게 북미왕국 의학을 가르치고 북미왕국처럼 체계적으로 의원을 길러내기 위해 호조의 여유 자금을 다 소모한 상황이었기에 호조판서가 어두운 얼굴로 이를 지적하자 다른 조정 관리들도 얼굴을 흐렸다.
“끙...”
“이전에 훈련도감을 정비하는 데도 재원이 부족해 추가로 잡세를 신설해 세수를 거둔 상황에서 또 그러기는 좀...”
“그래도 국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조정 대신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을 때 호조참판이 입을 열었다.
“아. 그 부분 말인데...굳이 세수를 걷지 않아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사랑방은 일시 조용해졌고 호조판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호조참판을 바라보았다.
“예? 어떻게 말입니까?”
“북미왕국에서 철도 건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거든요. 해서...”
“헉!”
“그게 정말입니까?”
“자세히 이야기해보세요!”
북미왕국을 방문했었기에, 그리고 방문하지는 않았더라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기에 철도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잘 아는 조정 대신들은 득달같이 호조참판에게 질문을 던졌고 호조참판은 진땀을 빼며 북미왕국과 협상한 내용을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호조참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던 유철이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철도의 소유권을 온전히 북미왕국에서 가져가겠다고요?”
자신들이 논의했을 때는 절반씩 소유권을 갖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호조참판에게 서찰을 보냈는데 혹시 호조참판이 이를 보지 못한 건가 싶어 당황해 묻자 호조참판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철도를 운영해 나오는 수익으로 철도를 부설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모두 회수한 후 철도의 소유권을 온전히 조선에 넘겨주겠다고 하더군요.”
처음 철도의 소유권을 온전히 북미왕국이 가져가겠다는 이야기에 철도의 소유권이 없더라도 철도가 조선에 깔리는 것만으로 여러 이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조정 대신들이었다.
더불어 철도를 부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나 기술을 북미왕국에서 모두 대는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철도에서 나오는 직접적인 이득이 꽤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조정 대신들이었고.
하지만 북미왕국이 소유권을 계속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철도를 부설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회수한 후 조선에 돌려준다면 조선으로서는 오히려 환영이었기에 사랑방에 있던 조정 대신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정말입니까?”
“오히려 북미왕국에 불리한 조건 아닙니까? 헌데 왜?”
장기적으로 보면 소유권을 절반씩 나누어 철도로 인한 이익을 계속 북미왕국과 나누는 것보다야 나은 조건이기는 했다.
다만 조정 대신들이 보기에 이런 방식이라면 북미왕국은 딱히 이익이 없었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직접 조용한 곰과 협상하며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호조참판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조선과는 특별한 관계이고 우리 조선에서 유민들의 이주를 허용해 북미왕국의 발전에 도움을 준 만큼 북미왕국도 조선의 발전을 돕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오오...”
이 또한 북미왕국의 배려라는 이야기에 조정 대신들은 북미왕국이 조선의 우호적이라 참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더불어 양민들도 유민이 되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다는 장계가 간혹 올라오는지라 유민의 북미왕국 이주를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오는데 당분간은 모른 척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리고 당장은 철도의 소유권을 온전히 북미왕국이 가지고 있어야 청나라가 기차를 탐내지 못할 거라고 하고요.”
청나라를 거론하자 사랑방에 있던 조정 대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긴 하지요.”
“하지만...북미왕국이 철도의 소유권을 돌려주면 청나라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에 예조판서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협상 내용을 떠들지만 않는다면 청나라에서 어찌 알겠습니까. 그리고 소유권을 돌려받고 여기서 나오는 재원으로 조선을 개혁하고 군을 정비한다면...청나라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겠지요.”
“허허허. 듣기만 해도 흐뭇한 말이로군요.”
그렇게 사랑방의 분위기가 훈훈해졌을 때 유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철도를 부설하는 것만으로도 꽤 시간이 걸릴 텐데 북미왕국에서 소유권을 넘겨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나 철도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 당장 총알을 비축하기 위해 재원을 마련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유철의 지적에 조정 대신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찰나 호조참판이 입을 열었다.
“아. 철도가 부설되면 이익이 나는 것은 확실하지요. 그런 만큼 북미왕국에선 철도 부설 계약을 맺은 후라면 조선에 자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예?”
“그게 참입니까?”
호조참판의 이야기에 놀란 조정 대신들이 질문을 던지자 호조참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1푼의 이자만 받고 말입니다.”
“허...”
그 정도면 그냥 거저 빌려주겠다는 뜻이었기에 유철은 북미왕국의 배려에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면 이 문제를 조정에서 정식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겠군요.”
이에 사랑방에 있던 조정 대신들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