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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22화 (422/850)

422화

“그래? 에스파냐와 협상을 마쳤다고?”

“그렇습니다.”

정성국이 집무실을 찾아와 보고하는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묻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다.

정성국은 이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고 실소하며 중얼거렸다.

“결국, 대사관은 마드리드에 세우게 되는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원활한 연락을 위해 세비야에 공사관마저 설치해야 하는지라 조금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대신 에스파냐 본국의 현지 사정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다만 우리의 사정도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는 만큼 보안 문제를 더 신경 써야겠군.”

정성국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은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지요. 정보기관에서 단단히 준비하는 듯하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보고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게으른 곰이라면 분명 잘 할 테지.”

게으른 곰은 조용한 곰의 아들이었기에 정성국이 짓궂게 웃으며 자신의 앞에서 게으른 곰을 칭찬하자 조용한 곰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황급히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크흠. 그리고 에스파냐에 파견할 인물들의 선발도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정성국에게 또 다른 보고서를 건네자 정성국은 이 보고서를 확인하고 의아한 듯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외무청 소속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물론 유럽의 외교 공관에 배치되면 외무청 소속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5할 정도의 인원이 군사청 소속이고 4할 정도는 정보기관 소속이라 실제로 외무청 소속은 1할에 불과했으니 정성국이 너무 적지 않은가 우려할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조용한 곰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솔직히 외무청에서 할 일이 많지는 않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리고 유럽에 외교 공관을 세우는 주목적이 유럽 내 정보 수집인 만큼 정보기관 소속으로 채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 협상해 외교 공관을 세우더라도 이처럼 비슷한 비율로 파견할 생각이고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실제로 외무청의 관리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사정상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 뻔했고.

그런데도 정성국이 유럽에 외교 공관을 세우려는 까닭은 결국 자신과 북미왕국의 존재로 역사의 흐름이 전생과는 달라졌기에 유럽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조용한 곰의 말처럼 당분간은 정보 수집에 주력하고 상황에 따라 인원을 교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성국은 수긍했다.

“흠. 알겠네.”

“아. 그리고 웅크린 늑대가 아일랜드 지역의 주민들을 북미왕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아일랜드인을?”

정성국도 상황을 봐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 유럽에서 이주민을 받을 생각이었고 그 대상 가운데는 아일랜드인도 있었기에 정성국은 웅크린 늑대가 아일랜드인의 이주를 먼저 제의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가 에스파냐 외교관과 대화 도중 북미왕국에는 아직도 일꾼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아일랜드 지역을 설명하며 그러한 조언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에스파냐 외교관이 전해 준 아일랜드 지역의 상황을 정성국에게 보고했고 이를 듣던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쯧. 생각보다 아일랜드 지역의 상황이 처참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1542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아일랜드를 완전히 정복하고 아일랜드 왕국을 세워 아일랜드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잉글랜드 왕실은 개신교 성공회를 앞세워 종교적인 목적으로 탄압을 하곤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잉글랜드 내전이 터지고 아일랜드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아일랜드인들이 독립의 기회라고 생각해 봉기해 아일랜드에 있던 잉글랜드인들을 죽이거나 내쫓았고 신교도 교회들도 모조리 불태우자 독실한 신자였던 올리버 크롬웰은 1649년 찰스 1세의 목을 잘라 잉글랜드 내전을 마무리한 후 곧바로 아일랜드를 토벌하기 위해 친정에 나섰다.

크롬웰은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초토화하고 살인과 방화, 약탈하면서 철저하게 아일랜드를 진압했고 이때 죽어 나간 아일랜드인이 전체 인구의 2할에 가깝다고 하니 아일랜드인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헌데 크롬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일랜드인들이 더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토지를 몰수하고 재분배해 아일랜드인에게는 쓸모없는 늪지대가 가득한 척박한 서부의 코노트 지방의 땅을, 쓸만한 땅은 전부 자신을 따라온 부하들에게 분배했고.

결국, 아일랜드인들은 살기 위해 잉글랜드 지주 밑에서 소작농으로 일해야만 했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식량 창고가 되었으며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밀과 보리는 태반이 잉글랜드로 수출되었기에 아일랜드의 빈곤이 시작되게 되는데 그게 이즈음이었다.

그리고 조용한 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예상보다 아일랜드인들의 처지가 좋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무척 안타깝긴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문제에 북미왕국이 섣불리 개입할 수도 없었고 당장 아일랜드인들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성국이 표정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일랜드인들의 처지가 안타깝긴 한데 당장은 어렵지 않나? 지금도 몰려드는 위그노들 덕분에 개발청은 누벨 프랑스와 이로쿼이 지역을 개발하느라 정신없잖나. 그리고 상황을 보면 아일랜드인들이 알아서 배를 구해 북미왕국으로 올 수도 없어 보이니 천상 우리가 직접 배를 보내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고.”

“뭐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웅크린 늑대는 일단 협상부터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협상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흐음...”

생각해 보면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생각하는 만큼 아일랜드인을 이주시키기 위한 협상이 쉬울 것 같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협상이 길어질 테니 미리 협상하는 것이 낫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수긍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그리고 전하. 조만간 새진주의 조선소에서 5천 톤급 여객선의 건조가 완료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이 여객선을 건조한 목적이 북미왕국 백성들을 위함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만...”

“새로 건조하는 여객선을 유럽에 투입해 이주민을 데려오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파나마 지역에도 각종 건설 장비가 들어가 있는 상태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잖습니까. 그리고 유럽 각국은 이미 우리 북미왕국의 해군을 두려워하는 터라 섣불리 여객선을 건드리지도 않을 겁니다.”

프랑스와의 해전 이후 유럽에선 북미왕국 선박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기에 정성국은 위그노들을 데려올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선은 투입하지 않고 범선만을 투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곰은 이번에 건조되는 여객선의 제원을 파악한 후 이 여객선을 투입하면 더 많은 이주민을 데려올 수 있고 이를 통해 북미왕국의 고질적인 단점인 인구 부족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테니 새로 건조되는 여객선을 북미 동해안 연안이 아닌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그런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라...글쎄? 지금도 파나마 지역에는 우리 북미왕국의 건설 장비가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겠다는 에스파냐 학자와 신기한 것을 구경하겠다고 몰려든 누에바 에스파냐의 귀족들이 꽤 되지 않나? 솔직히 병사를 보내지 않았다면 분명 문제가 터지긴 했을걸?”

정성국의 말처럼 파나마 지역의 사전 공사 현장에는 에스파냐인들이 바글바글했다.

건설 장비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 건설 장비를 잘 관찰해 북미왕국의 기술의 편린을 조금이나마 얻어볼 생각에 에스파냐 학자들이 먼저 몰려들었고, 그동안 북미왕국의 기차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었던 누에바 에스파냐의 귀족들은 이 건설 장비가 기차와 비슷한 원리로 움직인다는 소문에 이를 구경하기 위해 파나마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그 때문에 공사현장으로 접근하는 에스파냐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병사가 전부 동원되었을뿐더러 파나마 운하 공사가 시작된 후에나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었던 병사들까지 급히 파나마 지역으로 보내야 했을 정도였고 개발청이나 군사청에선 추가로 병사를 더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토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파견한 병사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문제가 터졌으리라고 확신하는 정성국이 이를 지적하자 조용한 곰은 슬쩍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크흠...하지만 여객선은 좀 다르다고 봅니다. 물론 여객선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멀리서나마 구경하겠다고 유럽인들이 몰려들 수야 있습니다만...이주민을 제외하고 태우지 않으면 그만이잖습니까.”

“뭐 그건 그렇긴 한데...”

“그리고 저들도 우리 북미왕국의 배가 증기기관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석탄 보급도 어렵지 않을 테지요.”

“흐음...”

이에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북미 대륙은 워낙 넓었기에 원주민만으로 개발하기에는 아무래도 버거웠다.

그렇기에 조만간 유럽에서 이주민을 받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나 행정청장에게 최근 이주한 프랑스인들로 인해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의 개발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보고를 받은 후 프랑스 포로들에게 넘긴 이주 허가증이라고 불리는 주머니가 어느 정도 회수되면 에스파냐, 잉글랜드와 협상해 이주민을 모집할 생각이었다.

그런 만큼 잉글랜드와 미리 이주 문제를 협상하는 것은 나쁠 것 없다 싶었고 고민스러운 것은 여객선의 대서양 투입인데 조금은 우려스럽긴 했지만, 언제까지 기선을 북미 동해안 지역에만 묶어둘 수 없기는 했다.

그리고 여객선을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하면 더 많은 유럽인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북미왕국의 발전에 이바지할 거라는 생각에 정성국이 결정을 내렸다.

“알겠네. 일단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인 이주 문제에 관해 협상하게. 그리고 자네 말대로 새진주에서 여객선을 건조하면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하도록 하지.”

정성국이 결정을 내리자 조용한 곰은 환하게 웃었다.

지금 건조되는 여객선은 승객을 1000명이나 태울 수 있었고 기선이라 대권항로를 따라 최단거리로 이동할 수 있었고 속도도 빠른 탓에 실제로 수송할 수 있는 승객의 수가 범선과는 차원이 다른 탓이었다.

“오! 허면 잉글랜드와의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바스크 지역에 투입하겠습니다.”

괜히 북미 동해안 지역에 투입하다 나중에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아 보였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게. 쯧. 이거 여객선에 관한 기사를 싣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군.”

“하하하. 그렇지요. 그랬으면 여객선을 기대한 북미왕국 백성들이 무척 실망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객선을 대서양 횡단 항로에 투입하기로 한 만큼 다른 배들도 투입하지 않을 까닭이 없겠지.”

“어? 그러시면...”

이에 조용한 곰이 놀란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는 유럽에 세울 외교 공관과의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범선을 투입하기로 했었지? 이것도 기선으로 교체하게.”

“오오!”

원래는 유럽과의 연락망을 유지하기 위해 범선을 투입할 생각이었지만 범선은 느리고 항로에 제약이 있었기에 여러 척을 투입해야 하는 터라 비효율적이긴 했었다.

하지만 기선을 투입한다면 이 문제도 해결이 되는 만큼 조용한 곰이 기뻐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고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흠. 신규 건조되는 5천 톤급 수송선을 투입하는 것은 조금 낭비인 것 같고...지급이나 천급 함선 정도면 괜찮을 듯싶군.”

“예? 지급 전선만 하더라도 공간이 꽤 남을 것 같습니다만...”

쾌속선이나 인급 전선 정도를 생각했던 조용한 곰은 이에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남는 공간엔 적당히 교역품을 싣게. 직접 유럽에서 판매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겠지. 그리고 교역품을 빌미로 유럽 상인들과 연을 맺는 것도 괜찮고.”

그 말에 조용한 곰은 어차피 외무청 관리가 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이런 업무라도 맡기는 것이 나아 보여 수긍했다.

“아. 하긴. 상인들은 정보에 밝으니 그편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유럽에 파견되는 외무청 관리에게 이 일을 맡기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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