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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21화 (421/850)

421화

언제나 개화파 관리들로 북적이는 정태화의 사랑방에서 상석에 앉아있던 정태화가 유철의 이야기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제 지방에도 우두가 부족할 정도로 백성들이 우두를 접종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허허. 참으로 다행입니다. 한양과는 달리 지방은 해괴한 소문이 퍼져 접종을 꺼리는 백성이 많아 참으로 안타까웠는데 말입니다.”

정태화의 말에 다른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세계신문 덕분이지요.”

“예. 신문의 영향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북미왕국의 의학 서적에 나온 것처럼 우두를 접종한 자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조선에서는 이 우두를 조선 백성들에게 접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한양의 백성들은 이 해괴해 보이는 치료법이 북미왕국에서 개발했다는 사실과 북미왕국은 번개마저 다룰 정도로 기술 수준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꺼이 우두 접종을 받았지만, 지방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이건 어떻게 보면 조정의 실수였는데 북미왕국의 우두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에 고무되어 더 많은 백성이 두창의 위협에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이를 세세하게 알린 것이다.

조정 관리들은 이를 알리면 우두에 감염된 소를 관아에 보고하거나 혹은 알린 것처럼 소의 고름을 말려 흡입해 스스로 두창을 예방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알렸지만, 조정 관리들의 의도대로 행동한 한양의 백성들과는 달리 지방의 백성들은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지방 사람들은 두창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침에 소의 고름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자 침을 맡는 것을 꺼렸고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무당들이었다.

무당들은 가장 강력한 역신인 마마가 고작 소의 고름을 묻힌 침을 맡는다고 물러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설사 이것이 효과가 있다면 그건 더 곤란했다.

더는 마을 사람들이 마마를 물러나게 해달라며 재물을 싸 들고 무당을 찾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해서 한양과는 달리 지방의 우두 접종은 무척 지지부진했는데 이 상황을 타개한 것이 바로 세계신문이었다.

세계신문은 한글로 쓰여 있었고 북미왕국과 원상이 밑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지방의 양반뿐 아니라 양민들도 가끔 사서 읽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었던 덕분에 세계신문이 발행된 이후 양민들도 간혹 사서 돌려 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신문에 우두에 관한 기사와 광고를 계속해서 싣자 지방의 백성들은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이미 우두를 접종받아 두창에 걸리지 않고 있고, 이미 왕실과 한양의 양반들은 우두를 접종받은 지 오래고 한양의 백성들은 우두가 부족해 없어서 며칠을 기다려가며 우두를 접종받는다는 기사 내용에는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왕실조차 우두를 접종받았다면 안전이 검증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해서 지방에서도 하나둘 우두를 접종받고 있으며 이렇게 접종률이 올라간다면 마마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두려워하던 두창에서 완벽하게 해방된다는 뜻이었기에 정태화를 비롯한 사랑방 안에 있던 관리들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에 새삼 감탄했다.

그때 예조판서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새한성 대학교에서 북미왕국의 의학을 배우던 어의가 이번에 돌아왔습니다.”

“예? 아. 4년 전 처음으로 보낸 내의원 소속 어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막 도착한 모양이더군요.”

예전 북미왕국에 처음으로 사절단을 보내고 교류를 시작했을 때 북미왕국에서는 조선의 의원을 유학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했고 당시에만 하더라도 조선은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예의상 어의를 한 명 보냈었다.

그리고 이 어의가 새한성 대학교에서 북미왕국의 의학을 모두 배우고 복귀했다는 이야기에 정태화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허. 벌써 4년이나 흐른 겁니까? 시간이 참 빠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유철이 정태화의 말에 맞장구치자 옆에서 이를 듣던 병조판서가 끼어들었다.

“헌데 왜 이리 늦게 돌아왔답니까? 시기를 보면 북방항로가 열리기 전에 새한성 대학교를 졸업했을 텐데요.”

이에 예조판서가 답했다.

“아. 올 초 새한성 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후 북방항로가 열리면 바로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북미왕국 의원들과 학질의 치료법을 연구하느라 귀환이 좀 늦었다고 하더군요.”

“학질이요?”

학질은 말라리아의 한자식 명칭이었는데 조선에도 이 학질 환자가 없지는 않았기에 사랑방의 관리들이 예조판서를 바라보자 예조판서가 입을 열었다.

“예. 최근 북미왕국은 에스파냐의 땅에 운하를 건설 중이랍니다. 헌데 이 지역에 학질이 만연해 북미왕국의 의원들은 이 학질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하더군요.”

“운하요?”

“아니. 남의 땅에 운하를 건설한다고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관리들이 의문을 보내자 예조판서는 자신도 처음 이 이야기를 어의에게 들었을 때는 놀랐었기에 웃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미 대륙은 상하로 길게 뻗어있어 서쪽의 태평양에서 동쪽의 대서양으로 배를 타고 움직이려면 대륙 절반을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그것 때문에 북미왕국은 불편함을 겪었고 물자 수송의 경우 철도를 이용하면 그만이지만 만약의 사태에 전선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그래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할 운하 건설의 논의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병조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그런 목적의 운하라면 자국의 땅에 건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 운하 건설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텐데요.”

“그게 북미왕국의 땅이 워낙 넓다 보니 그게 불가능하다더군요. 특히 북미왕국의 배들은 워낙 크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운하의 폭도 넓어져야 하는데...그 넓은 운하를 수천 리에 걸쳐 건설하는 것은 아무리 대단한 북미왕국이라도 무리이지요.”

이러한 예조판서의 설명에 관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고 보면 미 대륙 중간에 무척 좁은 지형이 있긴 했지요.”

“아. 기억납니다.”

이 사랑방에 있는 사람들은 세계지도를 통해 세계의 지형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미 대륙 중간의 파나마 지역을 떠올리자 예조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좁은 지형이 파나마 지역인데 북미왕국은 그 파나마 지역이 운하를 건설하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해 주목했다고 하더군요. 200리도 안 되는 운하만 건설하면 태평양과 대서양이 연결되니까요. 그래서 에스파냐와 협상을 해 운하를 건설하는 모양입니다.”

그때 공조참판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허. 에스파냐는 타국이 자국의 땅을 개발한다는데 그걸 허락한 겁니까?”

“에스파냐도 운하를 건설하고 싶었지만, 공사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는데 북미왕국에서 대신 건설해주고 이 운하의 소유권 절반을 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낙한 거랍니다.”

“그것 참...”

예조판서의 대답에 공조참판은 혀를 찼고 일부 관리는 이러한 공조참판의 반응에 동조했지만, 공조판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파나마 지역의 운하 공사는 북미왕국도, 에스파냐도 이득을 볼 수 있기에 진행될 수 있는 것 같군요. 운하의 소유권 절반이 북미왕국의 것이라면 운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절반은 북미왕국의 것이라는 뜻이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그럼 우리도 북미왕국에 이러한 이득을 보장해 준다면...북미왕국이 조선에 철도를 깔 수 있지 않을까요?”

“예?”

공조판서의 말에 다른 관리들이 당황했지만, 공조판서는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운하나 철도나 똑같은 기반시설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도 에스파냐처럼 철도를 건설하고 싶지만, 철도를 건설할 돈과 기술이 없지요. 그러니 북미왕국과 협상해 철도의 소유권 절반을 넘긴다면 북미왕국에서도 조선에 철도를 설치하는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조선의 관리들은 이 철도에 무척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은 물자를 수송하면서 드는 비용 때문에 물자를 활발히 수송하기보다는 지역 단위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지만, 철도만 깔려있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었고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물자를 수송할 수 있었으니.

다만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기차를 개발하는 것은 요원했고 기차를 개발하더라도 철도를 까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 차라리 북미왕국에 이권을 제시해 끌어들이자는 공조판서의 말에 다른 관리들이 관심을 보였다.

“흐음...”

“조정에서 한번 논의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예. 철도가 건설되면 물자 수송이 더욱 원활해질 테니까요.”

“그럼 북방에 흉년이 든다 하더라도 삼남 지방에서 신속히 식량을 보내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상업이 더욱 발전하겠지요.”

“그럼 내일 등청해서 이를 논의해 보도록 하지요.”

정태화가 나서서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다른 관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도 건설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 유철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학질의 연구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이에 사랑방은 일시 조용해졌고 예조판서는 유철을 보고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성공적으로 끝났답니다.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키니네의 원료인 킨코나 나무껍질을 복용하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었지만, 정성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퀴닌 성분을 추출해 치료제를 만들길 원했고 연구 끝에 정성국이 원하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었다.

“오! 그래요?”

예조판서의 대답에 유철을 비롯한 관리들은 반색했다.

“그럼 이제 학질이 걸려도 안심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답니다.”

이에 다른 관리들이 감탄했다.

“허허. 북미왕국의 의학은 참 대단해요.”

“그렇지요.”

“그래도 어의가 이 연구에 참여한 것을 보면 어의도 북미왕국의 의학을 제대로 배운 모양입니다?”

그 말에 다시 관리들의 시선은 예조판서에게 집중되었고 예조판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답니다. 배울 것은 다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렇기에 이번 학질 연구에도 한 손 보탠 모양이고요.”

“오오.”

사랑방 안에 있던 관리들은 신묘한 북미왕국 의학을 어의가 다 배웠다는 이야기에 감탄을 토해내자 예조판서가 입을 열었다.

“다만 어의가 직접 북미왕국의 의학을 배워본 결과 북미왕국 의학이라고 모두 뛰어나고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음? 그렇습니까?”

두창의 예방법도 그렇고 학질의 치료제를 개발한 것을 보면 북미왕국의 의학은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직접 북미왕국에서 의학을 배운 어의의 생각은 다른 듯했기에 관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예조판서가 말했다.

“예. 공중 보건이나 외과적 처치, 일부 질병에 한해선 북미왕국의 의학이 확실히 앞서있지만, 그 외에는 조선의 의학과 큰 차이는 없다더군요.”

그 말에 관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건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조선 출신 의원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북미왕국의 의학을 발전시켜나갔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지도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은 아니고 북미왕국의 의원들은 연구에 집중하기보단 당장 다른 의원들을 키워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분야와는 달리 발전이 더디지 않은가 한다더군요.”

예조판서의 말이 끝나자 공조참판은 새삼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허. 발전이 더딘데도 두창의 예방법을 발견한 겁니까? 그것 참...”

그러면서 공조참판은 북미 대륙을 밟는 순간 대오각성이라도 하는 거냐고 투덜거리자 정태화가 허허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은 전염병에 의해 많은 백성이 죽은 만큼 이 부분에 집중한 것일 테지요.”

정태화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기에 다른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예조판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어의가 그러더군요. 북미왕국에서 체계적으로 의원을 양성하는 것은 본받을만하다고. 그리고 지금이야 워낙 의원이 부족한 편이라 북미왕국의 실력 있는 의원들이 의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의원을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의학의 발전이 더디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분야처럼 빠르게 발전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으음...언제까지 북미왕국에 받을 수만은 없으니 조선에서도 북미왕국처럼 체계적으로 의원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군요.”

정태화가 중얼거리자 예조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서 가르치는 의학 중 상당수는 조선의 실력 있는 의원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니만큼, 이들을 모아 가르친다면 북미왕국처럼 4년씩이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정태화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의원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건설하는 것도 내일 조당에서 정식으로 논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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