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15화 (415/850)

415화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이상돈을 보고 살짝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 마침 잘 왔다.”

“예?”

이상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허리를 젖혀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오후에 너를 부를 생각이었거든.”

그 말에 이상돈은 정성국이 왜 자신을 부르려 한 것인지 짐작하고 피식 웃었다.

“아. 전화기 생산 문제 때문에요?”

“그렇지.”

정성국이 긍정하자 이상돈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준비 중입니다.”

“벌써?”

정성국이 이상돈의 대답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이상돈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아침 연구청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어제 회의실에서 전화기를 직접 시연하셨다면서요? 그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더라고요. 해서 지금까지 전화기 제조 공방을 어디다 건설할지 논의하다 왔거든요.”

이에 정성국은 상황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래? 어디다 세울지 결정했어?”

“새나주에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새나주에? 흐음...이거 생각보다 새나주에 공방이 집중되는 느낌인데?”

이미 새나주에는 원유 정제 공방이 들어서 있었고 새한성에다만 공방을 짓지 말고 다른 곳에도 공방을 건설하라는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냉방 장치 제조 공방이 새나주에 자리했었기에 정성국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상돈이 정성국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적당히 분산시키는 것이 맞긴 합니다만...그렇다고 도시마다 공방을 하나씩만 허용하는 것은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건 그랬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이상돈은 곧바로 덧붙여 말했다.

“해서 도시 입지나 공방의 규모, 그리고 공방에 필요한 원자재에 따라 적당히 배치하기로 했고 그 때문에 전화기 제조 공방도 새나주에 들어서기로 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상돈은 이번에 국영 상단에서 정한 기준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이 듣기에도 나름 합리적이기도 했기에 수긍했다.

“흠...그 정도면 뭐 적당한 것 같네. 알겠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이상돈은 안도하며 자신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한 목적을 떠올리고 말했다.

“아. 그리고 냉장고 제조 공방의 확장 공사가 완료되어 곧 가정용 냉장고의 생산도 시작될 겁니다.”

이에 정성국이 반색했다.

“오! 그래?! 드디어 가정에서도 전등뿐만 아니라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기가 들어오는 가정은 모두 냉장고를 구입하려 들 테니 판매를 시작하는 순간 아수라장이 벌어지겠지요.”

이상돈이 덧붙이자 정성국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겠네. 그리고 공방을 확장했다 해도 생산량엔 한계가 있을 테니...상점에는 전시품만 가져다 놓고 그냥 예약 주문을 받아. 그리고 생산하는 대로 집까지 배송해 주고.”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을 회상하며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상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확실히 그편이 낫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헌데 가정용 냉장고는 얼마로 책정했어?”

“논의 끝에 5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흐음...너무 비싼 것 아닌가? 50원이면 북미왕국 백성들이 조금 부담스러워할 것 같은데...”

가장 흔한 건설 노동자들이 월급으로 20원을 받는 것을 고려해보면 산술적으로는 2달 반을 일해야 가정용 냉장고를 살 수 있고 실제 생활비로 사용하는 돈까지 고려하면 반년 정도는 돈을 모아야 냉장고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성국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자 이상돈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북미왕국 백성들은 생각보다 부유한 터라 냉장고를 구매하는데 들어가는 50원을 부담스러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냉장고가 얼마나 편리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기가 들어오는 가정에서는 비싸더라도 업소용 냉장고를 구매하겠다고, 팔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요.”

“어? 정말?”

정성국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업소용 냉장고의 가격은 가정용 냉장고보다 훨씬 비싼 300원이었으니까.

“예. 물론 당장 업소에 팔 물량이 부족한 터라, 그리고 업소용 냉장고는 크기가 큰 탓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에 비효율적이고 곧 가정용 냉장고를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며 돌려보내기는 했습니다마는 슬슬 날이 더워지면서 업소용 냉장고를 구매하고 싶다고,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서요.”

“흐음...”

“거기에 냉장고의 가격에는 수력 발전소 운영 비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고 냉장고를 직접 배송해 설치까지 해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50원이 딱 적정 가격입니다.”

냉장고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생활에 꼭 필요한 가전제품이다 보니 북미왕국 백성들이 손쉽게 살 수 있도록 최대한 가격을 낮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상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결국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특히나 아직은 계량기가 없는 터라, 그리고 전기 사용료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전기를 사용하는 가전제품에 이를 일부 포함해 받고 이를 발전소의 운영 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한 만큼.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이상돈은 안도하며 덧붙였다.

“아. 그리고 동력 자전거를 생산하는 공방도 건설이 끝났습니다. 그러니 거리의 말똥 냄새에서 해방될 수 있겠죠.”

북미왕국의 인력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생을 우려해 정성국이 환경 미화 공무원을 대거 고용해 말똥을 치우도록 했기에 이상돈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반색했다.

“오! 그래?”

“예. 아. 그리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새한성 곳곳에 주유소를 건설했으니 동력 자전거의 운용도 여러모로 편리할 겁니다.”

동력 자전거는 경유로 움직이는 만큼 동력 자전거를 생산할 공방을 건설하라고 지시하면서 추가로 새한성 곳곳에 주유소를 함께 건설하라고 지시했었다.

이 주유소가 건설되었고 지금은 경유를 주유소로 옮기고 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다만 훗날을 생각하면 새한성뿐만 아니라 곳곳에 주유소를 건설해두긴 해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 동력 자전거의 운용이 편하겠죠.”

“흠. 개발청장에게 따로 이야기해둬야겠군.”

* * *

카무이 반도 북쪽의 해안가 인근에 살던 코랴크 부족의 족장은 황급히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청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뛰어오냐?”

“족장님! 예전에 남쪽에서 나타난 그 거대한 배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작년에 족장은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배가 해안가를 따라 움직이며 자신들의 마을 근처까지 접근했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기겁하며 되물었다.

“뭐?! 또 나타났다고?”

“예! 거기에 작년에 나타났던 배가 새끼를 쳤는지 하나가 아니라 셋입니다! 셋!”

“헉!”

코랴크 부족의 족장은 청년의 말에 기겁하며 해안가로 달려나갔고 청년의 말처럼 해안가에 거대한 배 3척이 보인다는 것과 작년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마을 근처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이미 거대한 배가 여러 척 나타났다는 것이 마을 전체에 알려졌는지 일부는 이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는 갑자기 나타난 저 거대한 배들을 경계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해안가에 몰려들었고 족장이 이들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다시 부족원들이 바다를 가리키며 소란스러워지자 족장은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안가 인근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커다란 배에서 작은 배가 내려오고 그 작은 배에 처음 보는 복식을 한 사람들이 타고 노를 저어 자신들에게 접근하자 족장은 유심히 이들을 관찰하고 내심 긴장했다.

저들도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처럼 머스킷으로 보이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족장뿐만 아니라 다른 부족원들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이방인이 머스킷을 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즉시 여자와 아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작은 배가 해안가에 도착하고 이방인들이 배에서 내려 이쪽으로 다가오자 족장이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표시로 손을 뻗고 소리쳤다.

“정지!”

그러자 이방인들은 접근을 멈췄고 족장이 속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 한 이방인이 두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더 옮긴 후 입을 열었다.

“아. 우리들은 상인이고 당신들과 교역하기 위해 왔을 뿐이니 그렇게 적대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유창하게 자신들의 말을 하는 이방인을 보고 족장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어...어떻게 우리 말을 하는 거지?”

그런 족장을 보고 앞에 나선 이방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제 어머니가 코랴크 부족 출신이었으니까요.”

“뭐?”

예상외의 대답에 족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 이방인이 바다 쪽을 가리켰다.

“이 마을에서 작은 배를 타고 해안가를 따라 저 남쪽으로 열흘 정도 이동하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이에 족장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음...혹시 그 조그마한 강 주변에 있는 타질 마을 말인가?”

족장이 젊었을 때 남쪽에 있는 타질 마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기에 묻자 이방인이 반색했다.

“예. 전 그곳 출신이거든요.”

최근에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예전에는 간혹 짝이 없는 부족원들이 서로의 마을에서 짝을 구하기도 했었기에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이방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네는 타질 마을 출신이라고 보기엔 복식이...좀 이질적인데?”

“아. 저희 타질 마을도 그렇고 그 남쪽의 마을들도 그렇고 이제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었기에 그들의 복식을 따르는 거죠.”

“북미왕국? 아. 이 땅 남쪽에 있는 그 아이누인들의 세력 말인가?”

이방인의 말에 족장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물었고 이방인은 반색하며 대답했다.

“오. 아시는군요. 그럼 이야기가 쉽지요. 맞습니다. 저희 마을들도 그렇고 주변 마을들도 모두 북미왕국에 합류했지요.”

“흐음...타질 마을도 아이누인들 밑으로 들어갔단 말인가?

족장도 러시아 차르국과 접촉한 이후 나라에 대한 개념을 모르지는 않았고 족장이 알기로 몇 년 전부터 저 멀리 남쪽의 아이누인들이 뭉쳐 자신들을 북미왕국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을 들었기에 이렇게 묻자 이방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북미왕국의 본토는 무척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 남쪽에 있는 아이누인들은 북미왕국과 교역하면서 저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그리고 북미왕국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는지를 깨닫고 북미왕국에 합류해 백성이 되길 원했고 북미왕국에서는 이를 받아준 거죠.”

이방인의 답변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기에 족장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북미왕국이 아이누인들의 세력이 아니란 건가?”

“예. 아닙니다. 그리고 남쪽의 아이누인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면서 시장이 생기고 북미왕국의 여러 생필품이 들어왔지요. 저희 마을도 그렇고 주변 마을들도 그 생필품을 거래하기 위해 카무이 항에 드나들었다가 아이누인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면서 생활 수준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결국 북미왕국에 합류한 거고요.”

“흐음...”

이방인의 설명에 족장은 속으로 이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인 듯한데 너무 과장이 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서쪽에서 등장한 러시아 차르국에 공물을 바치고 생필품을 얻듯 이들도 북미왕국에 공물을 바치고 생필품을 얻는다고 이해한 것이다.

해서 족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교역이라고?”

“그렇습니다. 아마 족장님께서는 그동안 별로 좋지도 않은 물품을 구하기 위해 주변 부족에게 비싼 값을 치러야 했겠지만, 저희와 교역을 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식량부터 생필품까지. 저 배에 가득 실려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와 교역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일 겁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은 바다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배를 가리키자 족장은 이를 따라 커다란 배를 잠시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교역이라...원하는 것은 모피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역을 허락해 주신다면 따로 자릿세를 내도록 하지요.”

“으음...”

족장이 이를 허용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방인이 외투 안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고 그런 이방인의 행동에 족장이 움찔했을 때 이방인이 천천히 단검을 족장에게 건넸다.

“이건?”

“뽑아 보시지요.”

족장은 이방인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손안에 들린 단검을 가죽으로 된 검집에서 뽑았다.

그리고 햇빛을 반사하는 단검의 날을 매만지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허. 품질이 무척 좋군.”

“그렇습니다. 주변에서 과연 그런 단검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동안 보았던 단검들이 마치 불량품처럼 보일 정도의 단검이었기에 족장은 단검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계속 단검을 만지작거리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족장의 반응에 이방인은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단검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생필품도 그 단검처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그러니 저희와 교역한다면 분명 당신들에게도 이득일 겁니다. 그러니 저희와 교역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에 족장은 자신의 손안에서 빛을 발하는 예리한 단검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교역을 허락하고 안전을 보장하겠네.”

“하하하.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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