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정성국은 연구청에서 궁으로 복귀하면서 전화기를 가져와 회의실과 집무실에 설치한 후 청장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청장들은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부르는 정성국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퇴근을 미루고 회의실을 찾았고.
그리고 회의실에 못 보던 물건이 있었기에 연구청에서 또 무언가 대단한 물건을 발명했구나 싶어 호기심을 보였다.
연구청에서 개발한 발명품 중 나름대로 파급력이 강한 발명품들의 경우는 정성국이 직접 시제품을 청장들에게 설명한 적도 꽤 있었으니까.
“전하? 그 물건은 뭡니까?”
해서 관리청장이 회의실 위에 올려져 있는 전화기를 보고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은 청장들의 반응이 내심 기대되었기에 슬쩍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연구청에서 새로 발명한 전화기일세.”
“전화기요?”
생소한 단어에 청장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무슨 발명품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성국이 전화기와 연결된 전화선을 슬쩍 들며 입을 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기 보이는 이 전화선을 통해 먼 곳의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통신 장치일세.”
“예?”
“그게 무슨...”
청장들이 정성국의 설명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연구청장이 나섰다.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이동한다는 거지요?”
연구청장이야 전신이라던가 전화기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거들어주자 정성국은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대답했다.
“자세히 설명해봐야 복잡하기만 할 테니...직관적으로 그렇게 이해해도 되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댔고 잠깐 들리던 연결음이 사라지자 전화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아. 호위대장. 미리 이야기한 대로 청장들을 바꿔주겠네.”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청장들에게 전화기를 체험시키기 위해 호위대장에게 미리 이야기해두었기에 호위대장은 곧바로 대답했고 정성국은 슬쩍 미소지으며 청장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청장들은 정성국이 새로운 발명품에 입을 가져다 대고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기에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이 전화기는 내 집무실의 전화기와 연결되어 있다네. 그러니 이 전화기를 이용해 호위대장과 이야기를 나눠보게나.”
그러면서 정성국은 옆에 있는 행정청장에게 전화기를 건네면서 덧붙였다.
“아. 이 부분에 대고 이야기해야 상대방에게 말소리가 전달되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앞에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송화기 부분을 가리켰고.
“그리고 이 부분에서 상대방의 말소리가 들리지.”
정성국이 수화기를 건네며 귀에 가져다 대라고 덧붙이자 행정청장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호위대장? 거기 있소?”
“그렇습니다만...행정청장이십니까?”
귀에 가져다 댄 수화기에서 익숙한 호위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행정청장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 정말 호위대장인게요?”
“그렇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호위대장의 목소리에 무척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화로 호위대장에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행정청장이었고 그런 행정청장의 행동에 다른 청장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청장에게 다가갔다.
“행정청장. 우리도 좀 사용해봅시다.”
한창 호위대장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행정청장은 옆에서 무척 안달이 난 표정으로 재촉하듯 말하는 관리청장을 보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화기를 관리청장에게 넘겼다.
“아. 그러시지요.”
그렇게 행정청장이 자리에서 비키자 다른 청장들도 전화기를 사용하면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호위대장의 목소리와 전화기에 대고 한 말을 호위대장이 용케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정성국은 전화를 사용한 후로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전화기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청장들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한 번씩은 전화기를 이용한 것 같으니 진정들 하게. 그리고 연구청장. 전화기를 이리 주게.”
“아...알겠습니다. 전하.”
마지막으로 전화기를 사용하던 연구청장은 곧바로 정성국에게 전화기를 넘겼고 정성국이 이를 받아들고 말했다.
“호위대장? 청장들을 상대하느라 고생했네. 전화를 끊겠네.”
“아. 알겠습니다. 전하.”
그 말을 끝으로 정성국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사이 제자리를 찾아 앉았던 청장들이 일제히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전하. 그것도 전기를 이용한 물품입니까?”
“그렇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화선을 통해 먼 곳으로 전송하는 장치니까.”
“전하. 허면 전화선만 연결되어 있다면...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던 간에 통화가 가능한 겁니까?”
교육청장의 질문에 다른 청장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중계기도 이미 개발해두었거든. 그러니 전화선만 연결되어 있다면 저 멀리 떨어진 보스턴에서 있었던 일도 실시간으로 보고받을 수도 있겠지.”
현 상황에서 보스턴의 관리가 시급히 보고할 일이 생겨 새한성으로 급히 연락을 보낸다 하더라도 빨라야 10일은 걸렸다.
물론 이것도 배가 더욱 빨라지고 새진주에서 새한성까지 철도가 깔려 단축된 편이었고.
헌데 전화선만 연결되어 있다면 그 먼 보스턴과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다는 말에 청장들은 전화기의 효용성을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허. 냉방 장치를 개발해 임의로 기온을 조절했을 때도 놀랐지만 이건 정말...”
“그러게 말입니다. 거리를 초월한 셈 아닙니까.”
그렇게 감탄한 청장들은 곧 눈에 불을 켜고 정성국을 바라보며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하. 하루라도 빨리 이 전화선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화기를 이용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통치가 가능할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도 전화기가 보급된다면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나 친지들과도 손쉽게 연락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표정을 살짝 굳혔다.
“그래야지. 문제는 전화선을 만들기 위한 고무와 구리가 부족하다는 걸세. 그나마 고무야 외무청의 노력 덕분에 에스파냐를 비롯한 식민지를 보유한 유럽 각국에서 고무 농장을 건설한 상황이니 당장은 고무가 부족해도 점차 상황이 나아질 텐데 구리는...”
“전선을 만들고 동전을 찍어내기 시작한 후로는 확실히 구리 부족 문제가 심해졌죠.”
정성국의 말을 흐리자 관리청장이 이를 받아 대답했고 구리 부족 문제는 다른 청장들도 인식하고 있는 문제였기에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리다가 행정청장이 개발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개발청에서 나서야 할 문제 같습니다만...”
이에 다른 청장들도 한마디씩 거들었고.
“새의주에 꽤 큰 구리 광맥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목포 동쪽에도 구리 광맥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개발청장은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이 넓은 땅에 설마 구리 광맥이 없겠습니까. 그간 개발청에서는 꾸준히 자원을 탐사했고 발견한 구리 광맥들도 많습니다. 다만 이걸 개발하는 건 다른 문제지요.”
“휴우.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군요.”
행정청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자 개발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력도 부족하고 광부는 더더욱 부족하다 보니 당장 중요한 금, 은, 철, 석탄 광산에 집중했었습니다만...최근 구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구리도 북미왕국의 발전에 중요한 자원이니만큼 어떻게든 구리 광산을 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발청장의 말에 그 옆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조용한 곰이 나섰다.
“음...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저희가 나서지요.”
“외무청에서 말입니까?”
이미 에스파냐에서 막대한 구리를 수입하고 있었던 터라 기대하지 않았던 개발청장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아시아도 그렇고 유럽의 구리도 추가로 수입한다면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북유럽에서 구리가 꽤 많이 생산된다고 하더군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교육청장이 끼어들었다.
“북유럽이요? 하지만 북유럽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조용한 곰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잉글랜드를 통해 북유럽의 구리를 수입하면 그만이지요. 구리를 비싸게 사들인다고 알리면 잉글랜드에서 알아서 구리를 구해올 겁니다.”
“하긴...”
교육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관리청장이 질문을 던졌다.
“아시아라면 결국 왜국과의 교역을 확대하겠다는 뜻이지요?”
“맞습니다. 그리고 왜국은 구리가 풍부한 만큼 교역량을 대폭 확대한다면 꽤 많은 구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왜국에 팔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왜국에서는 우리 북미왕국의 면직물을 원하고 있고 면직물의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터라 이 물량을 왜국으로 보내면 당장 구리 광산 개발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될 겁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정성국이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이 건은 외무청에서 맡도록 하게. 그리고 개발청장. 전선과는 별개로 통신망으로 사용할 전화선까지 설치하려면 더 많은 기술자가 필요할 테니 개발청에서는 광부를 모집하기보단 전기 기술자들을 더욱 늘리게.”
정성국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개발청장이 수긍했다.
“하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후로 전화선을 어디부터 설치해야 할지를 청장들과 함께 의논하던 정성국은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청장들은 정성국에게 인사하고 하나둘 회의실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 정성국이 조용한 곰을 보고 말했다.
“아. 그리고 조용한 곰은 잠깐 남게.”
이에 조용한 곰은 정성국에게 다가와 물었다.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스웨덴과 직접 접촉했으면 해서 말일세.”
정성국이 뜬금없이 발트해의 패자인 스웨덴을 거론하자 조용한 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스웨덴과 말입니까?”
“그래. 내가 알기로 북유럽에서 생산되는 구리 태반은 스웨덴의 구리 광산에서 캐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17세기 초만 하더라도 스웨덴은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는데 이 스웨덴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에는 막대한 구리도 분명 지분이 있었다.
특히 이 시기 유럽에서 생산되는 구리의 대부분은 모두 스웨덴 팔룬 지역의 거대한 구리 광산에서 생산되었을 정도였으니.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긴 합니다. 다만 스웨덴의 무역선은 북미 동해안 지역을 방문한 적이 없고 저희가 직접 북유럽으로 무역선을 보낼 수도 없기에 잉글랜드의 상인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거고요.”
“아. 물론 단순히 구리 수입 문제만 놓고 보면 그편이 효율적이겠지. 그리고 당장은 급하게 구리를 구해야 하니 잉글랜드 상인을 이용하는 게 맞고. 하지만 전략적인 관점으로 보면 스웨덴과 직접 교역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일세.”
“전략적인 관점에서요? 아! 설마 러시아 차르국 때문입니까?”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확하네.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하려면 스웨덴이 발트해의 강국이자 패자로 남는 것이 나아. 문제는 스웨덴의 국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고.”
물론 아직도 발트해의 패자이자 발트 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이기는 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그 명성은 빛이 바랬다.
그리고 지금 스웨덴의 왕인 칼 11세가 사망하면서 그동안 땅을 뺏기고 스웨덴에 앙심을 품었던 러시아 차르국, 덴마크, 폴란드가 동맹을 맺고 대북방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스웨덴은 몰락하면서 러시아 차르국은 다시 발트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되고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만큼 정성국은 미리미리 스웨덴과 접촉해 교역을 통해 스웨덴의 경제 사정이 좋아진다면 스웨덴이 알아서 러시아 차르국의 발트해 진출을 막아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 그럼 스웨덴과 직접 교역해 중간에 껴서 잉글랜드가 가져갈 이익까지 스웨덴에 쥐여주겠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웨덴을 지원해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하겠다는 정성국의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이번 분쟁이 아니더라도 러시아 차르국과는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가 된 셈이고 이웃 국가가 강성해 봐야 좋을 것은 없었으니.
하지만 당장 스웨덴에 접촉하긴 쉽지 않았기에 조용한 곰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하의 뜻은 알겠습니다. 다만 직접 스웨덴과 접촉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운행되는 범선은 모두 프랑스 이주민을 태우기 위해 투입된 터라 스웨덴에 보낼 배가 없고 잉글랜드의 경우 저희가 직접 스웨덴과 교역하게 되면 이익이 줄어들 것이 뻔했기에 훼방을 놓지 않으면 다행이며 스웨덴은 프랑스의 동맹이다 보니 네덜란드를 통해 접촉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니까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어쩔 수 없나. 알겠네. 어차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은 꾸준히 진행할 생각이니 천천히 스웨덴과 접촉하도록 하게. 아. 그리고 슬슬 에스파냐, 잉글랜드, 네덜란드와 외교관을 파견하는 문제를 논의하도록 하게.”
“오! 드디어 말입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반색했는데 외무청에서는 정확한 유럽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 외무청 관리를 상주시키고 싶어했지만 정성국은 유능한 인재들이 병에 걸려 죽을까 봐 이를 막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성국은 그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엔 4, 50년 후에나 보내고 싶긴 한데...”
북미왕국의 의학 서적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유럽에서도 위생과 청결이 건강에 직결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전해지긴 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유럽 각국이 당장 상하수도 문제에 막대한 돈을 사용할 리도 없었기에 정성국은 가능한 한 늦게 보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유럽의 정보를 획득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결정을 내리는 했지만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조용한 곰은 그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맹렬히 손을 흔들며 반대했다.
“가뜩이나 유럽의 소식에 어두운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하.”
이에 정성국은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허락하는 걸세. 최소한 유럽 내에서도 위생과 청결을 신경 쓰기 시작했으니 조금은 괜찮겠지 싶어서. 다만 유럽에 파견하는 자들은 어지간하면 조선 출신으로 채우게.”
원주민들보다야 같은 구대륙 출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인들이 구대륙에 흔한 질병에는 강할 것으로 생각해 정성국이 덧붙이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