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1677년 새해 축제가 끝난 후 왕실 가족이 모두 모여 시간을 보냈고 정성국은 자식들과 조카들이 새롭게 개발된 간식을 먹고 놀란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보다 올해 신년 축제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어갔지?”
정성국의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정평국은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형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관광객들 일부가 새진주로 분산되면서 자연스럽게 새한성으로 몰려드는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새한성 주민들도, 관광객들도 비교적 쾌적하게 이번 축제를 즐길 수 있었고요.”
“아. 물론 새진주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이러한 상황을 의도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달까?”
이러한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미 신문에서 형님께서 관공서 건물을 직접 보기 위해 새진주를 방문했다는 기사부터 관공서 건물 옥상에서 새진주의 풍경에 감탄했다는 기사, 고층 건물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를 내보냈으니 당연히 효과가 좋을 수밖에요. 아마 북미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새진주를 방문해 승강기를 타고 관공서 건물 옥상을 둘러보며 새진주의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 할 걸요? 실제로 그 이후 새진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현저하게 늘기도 했고요.”
“덕분에 새진주의 관리들이 무척 고생했겠군.”
이에 정성국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정평국이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그렇긴 하지만 관공서 건물을 건설하면서부터 이를 예상하고 충분히 준비했었기에 큰 사고 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 3년 후면 지금 북미 동해안 지역에도 다른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며 관광객들은 더 분산될 테니 잠시만 고생하면 될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
* * *
봄이 되자 정성국은 춘곤증이라도 온 듯 집무실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 호위대장이 집무실에 들어와 연구청에서 온 보고를 알렸고.
이를 듣고 잠이 확 깬 정성국은 급히 연구청으로 향했다.
정성국은 연구청에 도착해 자신을 보고 인사하는 연구원들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한 연구실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전하.”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정성국의 등장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지만, 정성국은 손을 휘휘 흔들며 지혜로운 나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드디어 완성했다고?”
전신을 개발한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을 정성국이 이야기해준 전화기의 구조를 듣고 반신반의하면서도 곧바로 전화기 개발에 착수했고 정성국의 발상처럼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꿀 수 있게 되자 미친 듯이 전화기 개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전화기와 각종 장비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정성국에게 보고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정성국은 급히 연구청을 찾았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늦어져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야. 이렇게 완성해준 것만으로도 어딘가.”
그러면서 정성국은 연구실 안을 둘러보았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꽤 커다랗고 길쭉한 모양의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
“저건가?”
“그렇습니다. 이 전화기는 옆 방의 전화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성국은 천천히 전화기를 관찰했다.
정성국이 처음 전화기를 설명했을 때 송화기와 수화기 부분을 따로따로 설명했기 때문인지 그에게 익숙한 송수화기를 결합한 형태가 아닌 송화기와 수화기가 분리된 형태였다.
그리고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송화기는 전화기 몸통에 붙어있어 마치 커다란 마이크나 촛대처럼 보였고 수화기는 그 옆 고리에 걸려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정성국이 보기에 다이얼이 자리해야 할 전화기 몸통 아랫부분에는 작은 종이 달려있었고.
마치 초창기 흑백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양의 전화기에 정성국은 슬쩍 미소지으며 수화기를 집어 들자 고리가 철컥 소리가 나며 위로 들렸고.
‘땡땡땡땡!’
옆 방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에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에게 물었다.
“아. 옆 방의 전화기와 연결되어 있다더니...지금 들리는 종소리가...”
“그렇습니다. 전화가 연결되면 전류가 흘러 전화기 아래쪽에 달린 종이 울려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겁니다.”
지혜로운 나무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삐. 삐. 삐’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란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리 소리가 들렸기에 정성국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이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연결음이고?”
“그렇습니다. 연결음이 없다면 전화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 말입니다. 뭐 지금이야 옆 방이니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로 인해 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만 먼 곳이라면...”
“확실히 그렇긴 하지.”
정성국이 수긍하며 수화기를 계속 귀에 대고 옆 방의 전화기를 받으라고 눈치를 주자 지혜로운 나무는 재빨리 연구실을 나갔다.
그리고 옆방에서 나는 종소리와 수화기에서 들리는 연결음이 사라지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이거 연결된 건가?”
“연결되었습니다. 전하.”
지혜로운 나무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했다.
“허. 이거 생각외로 목소리가 선명하게 잘 들리는군.”
“계속해서 전화기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음? 이게 첫 시제품은 아닌 건가?”
“다섯 번째 시제품이옵니다. 전하.”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쩐지...생각보다 완성도가 높다 했지. 헌데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되었을 때 바로 보고하지 그랬나.”
“첫 번째 시제품은 제대로 목소리를 전달하지도 못했고 세 번째 시제품까지는 수화기와 송화기의 문제인지 통화 품질이 조악해 실제 사용하긴 어려웠기에 굳이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전화기 몸통을 잡고 들어 올려 송화기를 입에 가까이 대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 번째 시제품에서야 제대로 완성한 건가?”
“그렇습니다. 네 번째 시제품을 개발했을 때야 비로소 선명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연결음과 통화 종료음, 전화가 연결되면 소리가 나게 개선한 것이 이 다섯 번째 시제품이지요. 그리고 이 정도면 전하께 보고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보고한 것이고요.”
“어? 통화 종료음이라고?”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전화 연결을 종료하면 연결음보다 짧은소리가 나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도록 만들었습니다.”
정성국은 이 다섯 번째 시제품이 생각보다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생각에 탄성을 내지르고 곧바로 말했다.
“오오. 그럼 자네가 먼저 통화를 종료하도록 하게. 통화 종료음을 확인하고 싶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통화를 종료하겠습니다. 전하.”
지혜로운 나무의 말이 끝나고 잠시.
‘삐삐삐삐’
곧바로 수화기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전화기를 사용하면서 예전 기억이 떠올랐기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지혜로운 나무가 연구실로 들어와 정성국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전하.”
이에 정성국은 수화기를 고리에 걸고 나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한 지혜로운 나무를 보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정말 고생했네. 이 전화기는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바꿀 걸세! 그리고 이 전화기를 개발하는데 일조한 자네들은 역사에 남을 테고!”
정성국의 극찬에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실 안에 있던 연구원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전신도 그랬지만 이 전화기는 확실히 말도 안 되는 물건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전화기의 개발로 북미왕국의 발전은 더욱 빨라질 걸세.”
정성국이 덧붙이자 지혜로운 나무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통신망만 연결되어 있다면 거리를 뛰어넘어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드넓은 북미 대륙에 통신망을 설치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서 지혜로운 나무가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북미왕국의 국력을 총동원한다면 못할 정도는 아니지. 오히려 통신망을 설치하는 일보다는 구리 부족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 같은데...”
“아. 확실히...”
북미왕국이 동전을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북미왕국 내에서 구리 부족 문제는 더욱 심해졌고 이러한 사정은 지혜로운 나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의 말에 동의하자 잔뜩 들떴던 연구실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를 눈치챈 정성국은 피식 웃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건 따로 구리 광산을 개발하든 수입하든 할 테니 자네들이 신경 쓸 필요는 없네. 헌데 중계기의 개발은 끝난 거지?”
방금의 통화야 바로 옆 방에서의 통화였기에 직접 전선을 연결했지만, 원거리 통화를 위해선 신호를 증폭해주는 중계기가 필요했기에 정성국이 질문하자 지혜로운 나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신을 개발하면서 신호를 증폭하는 중계기를 연구했던 터라...물론 전신과는 달리 음성 신호를 증폭하는 중계기를 개발해야 하는지라 애를 좀 먹긴 했습니다만 최근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해서 일정 간격마다 중계기를 설치한다면 원거리 통화도 가능하지요.”
정성국이 지혜로운 대답에 탄성을 지르고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오오! 그럼 교환기는?”
교환기는 증폭기와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상용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장치인데 이 교환기를 통해 두 회선을 서로 연결해주는 장치였고 이 교환기가 없다면 전화기는 1:1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기에 아무래도 가치가 떨어졌다.
이에 지혜로운 나무는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음...전하께서 언급하신 교환기가 두 종류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수동 교환기와 자동 교환기.”
초창기 전화는 일괄적으로 전화국에 연결되었고 전화국의 교환원을 통해 원하는 회선과 연결될 수 있었다.
이렇게 교환원이 직접 통신선을 조작해 연결하는 것이 수동 교환기이고 전화기에서 보내는 전기적인 신호로 자동으로 회선이 연결되는 것이 바로 자동 교환기였다.
“예. 수동 교환기야 비슷한 것을 전신에서도 사용할 예정이었으니 금방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만...자동 교환기는 아직도 연구 중입니다.”
“그런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수동 교환기가 있으니 자동 교환기는 천천히 개발하면 되겠지.”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정성국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자동 교환기가 전기적인 신호로 자동으로 회선을 연결했고 이 전기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 바로 다이얼이었는데 이번에 개발된 전화기에는 이 다이얼이 없었기에 정성국도 내심 자동 교환기는 개발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수동 교환기가 존재하는 이상 급할 것은 없기는 했고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자동 교환기를 만들어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전생에서 이 자동 교환기는 미국의 스트로저라는 사람이 개발했는데 스트로저는 발명가가 아닌 잘나가는 장의사였다.
헌데 어느 날부터 장례문의가 급감했고 사정을 파악해보니 자신에게 연결되어야 할 전화가 교환원 때문에 경쟁상대에게 연결되었고 이 교환원이 경쟁상대의 아내라는 사실과 전화국 사장의 딸이라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기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그 후 스트로저는 사람이 필요 없는 자동 교환기의 개발에 매달렸고 조카의 도움을 받아 결국 자동 교환기를 개발해 교환원이라는 직업 자체를 없애버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정성국은 스트로저와 조카보다는 이 연구실에 있는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에 북미왕국 곳곳에 전화선을 깔고 실제 전화를 사용할 때쯤이면 자동 교환기를 개발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자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은 안도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정성국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다들 그동안 전화기를 개발하느라 무척 고생했네. 내 연구청장에 이야기해 확실하게 포상하도록 하지. 아. 휴가도 충분히 줄 테니 푹 쉬고 천천히 자동 교환기를 연구하도록 하게.”
“오오오!”
“와아!”
정성국의 장담에 그동안 연구실에서 전화를 개발하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연구원들은 환호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정성국은 그런 연구원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부려먹으려면 적절한 휴식을 보장해야 하는 법이지. 암.’
자동 교환기를 연구하고 전화기도 개량해야 하며 유선 통신 시스템을 완성하면 무선 통신을 개발해야 하는 만큼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은 할 일이 넘쳐났다.
그런 만큼 더 오래 부려먹기 위해서라도 정성국은 연구원들의 건강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연구원들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연구원들은 이상하게 오한이 일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