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던져!”
“피해!”
장정들의 고함과 돌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행정청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몸을 숙이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고.
“좋았어! 다 때려눕히라고!”
“그래! 그거야!”
여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 행정청 직원들은 시야를 가리던 관목들이 사라지자 나타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 * *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집무실을 방문한 행정청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행정청장의 보고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행정청장에게 되물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린가? 이 북미왕국 내에서 석전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송구합니다. 전하.”
석전은 한자 그대로 돌싸움인데 눈싸움이 눈을 던진다면 석전은 돌을 던지는, 일종의 투석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석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온 한민족의 민속 놀이 중 하나였는데 흔히 민간에서 즐기는 석전의 경우 수십, 수백의 장정들이 서로 돌을 던졌으니 부상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고 석전이 벌어지면 사람 몇이 돌에 맞아 죽어 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니 정성국은 당연히 석전을 금지하고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에게 기본 교육을 할 때도 북미왕국에서는 석전은 금지라는 것과 이를 어기고 석전을 벌이다 걸린다면 죄인으로 여겨 가차 없이 탄광행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알렸고.
이러한 경고 때문인지 그동안은 석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는 없었기에 정성국은 무척 안심하고 있었다.
헌데 새나주 인근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석전이 벌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니 정성국이 화들짝 놀라며 행정청장을 다그쳐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허. 마을 최외곽의 숲에 아예 경기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한두 해 진행한 것도 아닌 듯하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번에 처음 한 것도 아니고 알음알음 계속 석전이 벌어졌는데 그동안 행정청에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니 다른 마을들에서도 석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해서 정성국은 사정을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질문을 던졌다.
“경기장 자체가 마을에서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데 이걸 어떻게 발견한 건가?”
“아무리 전문 석전꾼이라 한들 부상을 피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닙니까. 물론 저들도 약소한 부상은 그냥 버티고 넘어간 모양입니다만 큰 부상은 의원에게 보일 수밖에 없지요.”
“아. 의원은 환자들이 석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군.”
엄밀히 말해 의원은 곧바로 이를 알아챈 것은 아니었다.
환자들은 부상당한 경위를 적당히 둘러댔으니까.
의원이 눈치챈 것은 환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늘어난다는 것과 주기적으로 다친 환자들이 존재했기에 석전에 참여한 자들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고.
“그렇습니다. 해서 이를 행정청에 알렸고 행정청의 관리들이 의원이 지목한 이들을 유심히 지켜본 끝에 석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해 이렇게 보고가 올라온 겁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거참...분명 석전을 벌이다 걸리면 탄광행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석전에 참여했다고?”
조선에서 벌어지는, 마을의 모든 장정이 참여하는 석전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석전에 참여하다 걸린 장정만 하더라도 60명이 넘었으니 정성국은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이에 행정청장은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이번에 행정청 관리에게 적발된 장정들이 일관되게 진술한 내용을 말했다.
“그들의 말론 워낙 심심하고 할 것이 없어서 그랬다고는 합니다만...”
“끙...”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내심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정성국은 밖에서의 유흥 거리가 마땅치 않다면 결국 일찍 귀가할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 의도적으로 유흥 거리를 일부 제한하기는 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북미왕국의 생활이 안정되고 아이를 많이 낳아도 아이들을 굶길 걱정은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북미왕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는 매년 폭증하고 있었고.
헌데 석전에 참여한 자들은 너무 심심해서 석전을 즐겼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서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유흥 거리를 제한한 반동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전하. 이들을 어찌 처리할까요.”
행정청장의 질문에 정성국은 고심하다 물었다.
“혹시 석전을 진행하던 도중 죽은 이가 있나?”
“다행히도 없습니다. 전하.”
“흠...그래?”
정성국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안도하면서도 그 위험한 석전이 벌어졌는데 사망자가 없는 것이 가능한가 싶어 조금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짓자 행정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이들도 석전을 벌이다 사람이 죽는다면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해 나름대로 보호구를 만들어 장착한 모양입니다.”
“허. 그래?”
“예. 가죽으로 만든 머리 보호구와 몸통 보호구를 착용했고 전문 석전꾼처럼 방패까지 사용해 석전을 벌였기에 용케 죽은 자는 없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민간에서 벌어진 석전과는 달리 전문 경기 수준의 석전도 존재하긴 했다.
이 경우는 돌을 던지고 피하는데 능숙한 전문 석전꾼들이 참여하며 단순히 돌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인원 중 일부는 방패나 몽둥이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진을 짜고 기동하고 상대를 눕히는 어떻게 보면 고대 로마의 검투경기나 군사훈련과 무척 흡사한 모양새였으니 당연히 보는 재미가 있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긴 했다.
그리고 이번에 석전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이런 전문적인 수준의 경기를 직접 목격한 자가 있었던 모양인지 방패를 도입하고 또 가죽으로 만든 보호구들까지 착용해 즐겼다고 하니 정성국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렇게까지 석전을 좋아하니 보호장구를 갖춰 제대로 된 스포츠로 만들어 볼까 하고 아주 잠깐 생각해보았지만 그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내심 고개를 젓고 이들을 어찌 처리할까 고심하다 결정을 내렸다.
“흠...그나마 다행이군. 그럼 이자들을 모두 탄광에 보내게. 그리고 3개월 후에 풀어주고. 그러면 다음 해 농사에도 큰 지장이 없을 테지.”
그동안 북미왕국에서는 석전을 금지했고 이를 어기면 탄광행이라고 경고한 상태에서 걸린 만큼 아무리 죽은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일벌백계해 혹시라도 몰래 석전을 즐기는 조선인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정성국이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행정청장은 정성국이 정말 탄광행을 명령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뒤이어 3개월 후에 풀어주라는 말에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아...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정성국은 그런 행정청장을 보고 살짝 표정을 굳히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분명 북미왕국에서 석전은 금지라고 몇 번이고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한 것을 보면 이곳 말고 다른 마을에서도 몰래 할 수도 있을 것 같네.”
“음...행정청 관리들에게 공문을 보내 마을 주민 중에 주기적으로 다치는 주민이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북미 신문에 공익 광고도 내게.”
어차피 이번 일은 신문 기사로 나갈 것이 분명했기에 굳이 광고까지 낼 필요가 있나 싶은 행정청장이었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행정청의 이름으로 광고를 내지요.”
* * *
“부르셨습니까. 형님.”
정평국이 정성국의 집무실에 들어오며 정성국을 향해 인사하자 정성국은 정평국을 힐끗 보고 다시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어. 왔냐?”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정평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정성국에게 다가갔다.
“뭘 쓰시는 겁니까?”
하지만 정성국은 여전히 시선은 종이에 고정하고 열심히 펜을 놀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북미왕국 내에서 석전이 벌어졌다는 기사는 읽어봤지?”
“아. 마을 외진 구석에 경기장까지 만들어서 금지된 석전을 벌이다 걸려 결국 탄광행이 선고되었다는 그 기사 말이죠?”
“그래. 분명 북미왕국에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석전을 벌인 것은 결국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
이에 정평국은 그들을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밖에 없지요. 북미왕국에서는 도박도 강력히 금지하고 있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석전도 금지하고 있잖습니까. 거기에 술도 건강에 무척 안 좋다고 경고 문구가 떡하니 붙어있고 술을 마시는 것은 몰라도 술을 마시다 문제를 일으키면 가중 처벌을 받지요. 그러니 아무래도 농한기에 농부들은 심심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농부들이 농한기만 되면 그렇게 북미왕국을 돌아다니는 거고요.”
“쯧. 심심하면 마누라 엉덩이나 붙들고 있을 것이지.”
“하하하.”
정성국이 투덜거리자 정평국은 크게 웃었고 그 웃음이 그칠 때쯤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번에 걸린 백성들 말고도 다른 백성들도 알음알음 석전이나 골패를 만지고 있을 것 같으니 그런 이들이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흠...그건 그렇지요. 아. 그럼 형님이 지금 적으시는게...”
“그래. 몸을 움직여 놀 수 있는 각종 공놀이의 경기 방식과 규칙을 적는 중이다. 휴. 다 적었네.”
정성국은 펜을 내려놓고 미리 적어둔 종이 맨 뒤편에 이를 추가한 후 종이뭉치를 정평국에게 건넸고 정평국은 이를 받아들고 목차를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어이구. 종류가 꽤 많네요? 축구, 농구, 야구, 배구, 탁구, 핸드볼, 배드민턴, 테니스, 라...어째 일부는 이름이 좀 요상한데요?”
이에 정성국은 정평국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명칭은 신경 쓰지 말고. 아무 의미 없이 대충 지은 거니까.”
정성국은 이전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적당히 명칭을 바꿀 수도 있긴 했다.
아니면 통일감을 위해 영어로 된 종목만 적당히 한자로 바꿔도 될 테고.
핸드볼은 수구(手球)로, 배드민턴은 우구(羽球), 테니스는 정구(庭球)로 말이다.
하지만 정성국의 입장에선 생소하기도 했고 북미왕국이 한자 문화권도 아닌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싶어 전생에 사용하던 대로 명칭을 정했고.
‘뭐 이대로 정착하든 아니면 알아서 이름을 바꾸든 하겠지.’
“그렇습니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정평국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정성국의 말마따나 공놀이의 명칭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걸 저에게 왜? 아. 이걸 기사로 내보내라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혹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일단 내가 널 부른 건 그 공놀이에 필요한 장비들을 국영 상단에서 생산하라는 뜻으로 부른 거다.”
“아...”
“그리고 나는 공이나 장비들을 팔 때 해당 공놀이의 경기 방식과 규칙이 간략히 적힌 종이를 함께 나눠주고 교육청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가르칠 생각이었는데...네 말마따나 국영 상단에서 공을 비롯한 장비들을 생산할 때쯤에 기사로 내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정성국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파악한 정평국은 정성국에게 받은 종이뭉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종이뭉치에는 여러 공놀이의 경기 방식과 규칙이 적혀 있었는데 아주 간략한 설명이 적힌 종이와 그보다 상세한 내용이 담긴 종이가 존재했고 정평국은 이 상세한 내용이 담긴 종이를 살펴보다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휴. 뭐가 이리 복잡합니까. 골대의 크기며...허. 이거 공의 크기나 재질이나 경직도도 공마다 다 다른 겁니까?”
“일단은 그렇게 설정했지.”
이에 정평국은 고작 공놀이에 뭐 이리 세세한 규칙을 정했나 싶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휴...알겠습니다. 국영 상단의 장인들을 독촉해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