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정성국은 청장 회의가 끝난 후 곧바로 연구소에 처박혀 있는 강평화를 호출했고 시간이 흐른 후 강평화가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정성국도 그렇지만 강평화도 무척 바빴기에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터라 정성국은 오랜만에 보는 제자의 얼굴에 미소짓고 커피를 마시면서 강평화와 이런저런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쯤 정성국이 강평화를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자 강평화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이제 와서 머스킷을 생산하라고요?”
“그래. 그리고 대량으로. 흑색 화약까지 함께.”
“아니. 그걸 대량으로 생산해서 어디다 쓰시게요?”
원래 민간에 총기를 허용하면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잉글랜드인들은 머스킷을 팔아달라고 청원했지만, 군사청장은 해수를 상대하려면 장전이 느린 머스킷보다는 신식 소총이 낫다는 이유로 머스킷 생산을 반대했고 정성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북미왕국에서 머스킷은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헌데 다시 머스킷을, 그리고 흑색 화약을 대량으로 생산하라고 정성국이 명령하니 이제 와서 민간에 머스킷을 풀 생각인가 싶어 질문하자 정성국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
“시베리아 지역에 풀 생각이다.”
“예? 시베리아 지역이요?”
애당초 시베리아 지역과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강평화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기에 정성국은 러시아 차르국에서 마침내 연락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방금의 청장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까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이에 강평화는 상황을 이해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래서 국영 상단을 시베리아로 보내 그곳의 원주민들과 교역할 생각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화약 무기를 넘길 생각이고요?”
“그렇지.”
“음...그냥 신식 소총을 풀지 않는 것은 역시 일단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러시아 차르국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인가요?”
어차피 신식 소총은 갑오 소총보다 못했기에 신식 소총을 풀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강평화였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흑색 화약과는 달리 신식 소총의 경우 북미왕국에서 생산하는 총알을 사용해야 했고 이를 통해 원주민들을 제어할 수 있는 만큼 강평화는 차라리 신식 소총을 푸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헌데 이것을 모르지 않을 정성국이 머스킷과 흑색 화약을 대량 생산해 저들에게 넘길 생각이라고 하니 강평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뭐 그런 것도 없지 않지만...그보다는 시베리아 지역에 신식 소총을 풀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식 소총에 대한 정보가 주변에 퍼질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청나라도 신식 소총의 존재를 알고 입수하게 될 테고. 난 그게 좀 꺼려져서 말이지.”
비록 삼번의 난이 발생해 청나라 내부가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직 청나라의 군사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런 청나라가 신식 소총을 입수해 화약 무기의 가능성을 깨닫고 화약 무기에 더욱 관심을 보여 대량의 화약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된다면 북미왕국에도, 조선에도 딱히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이었다.
특히나 북미왕국의 존재로 전생의 역사와는 달라졌고 조선의 개화파는 친청파라기보단 반청파에 가까웠으니 더더욱.
그래서 정성국은 일관되게 청나라에 북미왕국의 화약 무기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숨기고 있었고 이를 상기한 강평화는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겠습니다. 뭐 상황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머스킷은 그렇다고 쳐도 흑색 화약은 지속해서 시베리아 지역에 공급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성국의 대답에 강평화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지금의 화약 제조 공방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계속 늘어나는 탄약 소모량 때문에 계속 화약 제조 공방을 확장 증축하고 있지만 버거운 상태니까요.”
이 문제는 강평화가 지속해서 보고서를 통해 알리기도 했었기에 정성국을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흠...그럼 당분간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흑색 화약을 넘기도록 하고 전에 네가 건의한 대로 이번에 새한성 북동쪽에 건설 중인 새로운 도시에 일부 공방을 이전하도록 하자.”
강평화는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은 보안 문제도 있었고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만큼 이 두 공방을 비롯해 몇몇 공방을 다른 도시로 확장 이전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렸다는 것을 기억한 정성국이 그렇게 대답하자 강평화가 밝게 웃었다.
“오. 그곳 부지가 꽤 넓은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환영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강평화는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을 기존의 시설보다 수배는 더 크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정성국은 피식 웃고 다른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동형 60mm 화포도 추가로 생산해서 카무이 반도로 보내도록 하고.”
이동형 60mm 화포는 야전에서 사용할 것을 전제로 화포를 최대한 경량화해 우마를 이용해 손쉽게 견인할 수 있도록 만든 화포였다.
이런 화포를 추가로 생산해 카무이 반도로 보내라는 이야기에 강평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동형 60mm 화포를요?”
“그래. 국영 상단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탐사대가 시베리아 지역을 드나들기 시작하면 러시아 차르국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그러다 보면 충돌이 벌어질 테고...상황을 봐서 시베리아 지역에 건설한 요새 몇 개 정도는 깨부숴야 할 필요도 있겠지.”
아무리 북미왕국의 무기가 우세하더라도 소총만으로 적의 진지를 제압하려면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에 차라리 번거롭기 기동력이 떨어지더라도 이동형 화포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는 정성국의 판단에 강평화도 동의했다.
“하긴...야전에서야 무기의 우위로 러시아 차르국의 군대를 쉽사리 상대할 수 있겠지만 저들이 요새에 틀어박혀 있으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긴 하겠군요. 알겠습니다. 한 30문 정도 생산하면 될까요?”
“뭐...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동형 60mm 화포도 일단은 후장식 화포인 만큼 10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야전에서 대포는 많을수록 좋은 만큼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100mm 화포 개발은 어떻게 되가?”
이에 강평화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시제품을 운용하며 몇몇 문제점을 개선 중인 상황입니다.”
“오. 그래?”
정성국이 반색하자 강평화는 어깨를 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120mm 화포도 개발 중이고요.”
“허. 120mm 화포까지?”
솔직히 100mm 화포로도 당분간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기에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강평화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철선이 건조된 이상 차후에 건조될 신규 전선은 크기가 대폭 커질 테니 더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해서 주명이가 신규 전선에 걸맞은 강력한 화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서 100mm, 120mm 화포를 함께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철선의 양산이 시작된 이상 천급 전선 이후의 신규 전선은 철선을 기초로 만들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했고 신규 전선의 크기가 더 커진 만큼 화력도 더 강력해져야 한다는 최주명의 주장에 강평화가 동의해 120mm 화포까지 함께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중얼거렸다.
“흠...너무 과한 화력이 아닌가 싶은데...”
어차피 60mm 화포로 무장했을 때도 바다에서 북미왕국의 해군은 무적에 가까웠고 이번에 대대적으로 전선을 개조하면서 80mm 화포까지 추가해 화력은 더욱 늘어난 상황이라 정성국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표정으로 슬쩍 의견을 내비쳤지만 강평화는 의견을 꺾지 않았다.
“뭐 선박이든 화포의 구경이든 크면 클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그리고 구경을 키울수록 사거리도 손쉽게 늘릴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지요.”
정성국이 간혹 이야기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듯한 강평화의 말에 정성국은 실소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알았다. 뭐 신규 전선을 언제 건조할지는 모르겠다만 미리 연구해두는 것이 나쁠 것은 없으니까.”
정성국의 허락에 강평화는 활짝 웃으며 커피잔에 남아있는 식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연발 소총의 개발에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래?”
정성국이 다시 흥미를 보이자 강평화가 씩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 회전 단총은 약실마다 총알을 넣어두고 약실을 회전해서 발사하는 방식이잖습니까. 헌데 지금 개발 중인 연발 소총은 약실은 하나고 대신 이 약실에 총알을 공급하는 공간을 만들고 손으로 조작해 이 총알을 약실로 이동시킨 후 격발하는 구조랄까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러면서 강평화는 품에서 빈 종이를 꺼내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새로 개발 중인 연발 소총의 구조를 그려가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이를 유심히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볼트 액션이군. 그것도 탄창까지 결합한. 정말 발전이 빠르긴 하네. 헌데 지금 시점에서 이 연발 소총을 양산해 무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정성국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모든 설명을 끝낸 뒤 정성국의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강평화를 보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확실히 그 방식이라면 연발 소총을 개발할 수 있겠네.”
“그렇지요?”
정성국의 긍정적인 반응에 강평화가 환하게 웃을 때 정성국이 덧붙여 말했다.
“다만 내가 생각할 땐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예?”
의아한 표정의 강평화를 보고 정성국이 강평화가 그려놓은 볼트 액션의 구조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설명한 구조대로라면 탄창에서 총알을 약실로 장전할 때 사람이 일일이 조작해야 한다는 거잖아?”
“탄창...이라. 예. 그렇죠.”
“총알이 발사되는 반동을 이용해서 이걸 자동으로 탄약을 장전할 수 있게 만드는 거지.”
어차피 지금 다른 국가들은 전장식 머스킷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롤링 블록 방식을 채택한 갑오 소총만 하더라도 개인 화력에서는 월등히 앞서있었다.
물론 지금 강평화와 연구원들이 개발 중인 연발 볼트 액션 소총은 롤링 블록 방식의 갑오 소총보다는 연사 속도도 빠르고 우월했지만, 지금도 개인 화력에서는 월등히 앞서 있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 무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해서 정성국은 개인 무장의 교체보다는 분대 지원 화기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연발 볼트 소총까지 개발한 이상 조금 더 연구하면 기관총의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강평화에게 자동화기에 대한 개념과 구조를 설명했다.
“허...그런 방법도 있군요.”
강평화가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찔리는 것이 많았기에 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다만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할 테니 일단은 크게 만들어봐.”
“크게요?”
회전 단총의 개발로 연발 소총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갑오 소총을 대체하는 신규 소총을 개발하고 있었던 만큼 정평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꼭 개인 소총으로 만들 생각을 일단은 접어두란 이야기야. 만들기만 한다면 전선이나 요새에 장착해도 되고 이동형 화포처럼 마차로 끌고 다니면 그만이잖아?”
“아. 일단 만들어놓고 경량화, 소형화는 나중에 하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리고 병사를 상대하는 건 화포보단 이 기관총이 더 나아.”
“흠.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네요. 알겠습니다. 어라?”
정성국의 대답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강평화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이에 강평화는 정신을 차리고 조금 흥분한 어조로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연구원 중 한 명이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거든요? 최근 연구청에서 개발한 건설 장비를 개조해 무기로 사용하자고? 경유기관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검차라고 해야 할까요?”
“허...그건...”
정성국도 최근 개발한 건설 장비들을 확인하고 슬슬 장갑차를 개발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기도 전에 이미 이를 떠올렸다는 말에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강평화는 흥분해 그런 정성국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여기에 이동형 60mm 화포를 장착할 생각이었는데...이 기관총이 완성된다면 차라리 이걸 경유기관으로 움직이는 검차에 장착하면 해전처럼 육전에서 전투가 벌어져도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강평화는 정성국에게 빨리 연구를 허락해달라는 눈빛을 강렬하게 보냈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지. 한번 연구해 봐.”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