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08화 (408/850)

408화

매월 정성국의 주관으로 진행되는 청장 회의에서 조용한 곰이 러시아 차르국에서 보낸 외교 문서에 관한 내용을 보고하자 회의실은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조용한 곰의 보고가 끝나자 행정청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에게 되물었다.

“잠깐만요. 그게 정말 러시아 차르국의 대답이라는 겁니까?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이 전적으로 우리 북미왕국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도 몇 번이고 잉글랜드 외교관에게 확인한 모양입니다만...”

조용한 곰이 확실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청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답변을 한 거랍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 참...”

“러시아 차르국은 유럽에서도 변방에 불과한 영토만 큰 국가라고 알고 있는데...정말 러시아 차르국이 저런 대답을 했다는 겁니까? 혹시 잉글랜드에서 중간에 장난을 친 것이 아닌가요?”

교육청장이 알기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국가는 바로 프랑스였고 러시아 차르국은 동쪽 변방의 나라에 불과했다.

특히나 러시아 차르국은 차르가 황제와 동격이고 자신들은 황제국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반 4세가 죽으면서 시작된 동란의 시기에 가짜 디미트리들이 나타나 자신이 적법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면서 결국 내전도 벌어지고 여기에 강대국인 스웨덴과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끼어들면서 러시아 내부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러다 류리크 왕조의 외척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차르로 선출되어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면서 내부의 상황이 조금은 안정되기는 했지만, 외부의 위기 상황은 여전했고 이를 넘기기 위해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여러 영토를 할양하며 두 나라를 달래야만 했으니 여전히 유럽은 로마노프 가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러시아 차르국의 평가도 높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내부 사정이 좋지 않은 틈을 타서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공격해 이전에 내어준 땅보다 더 많은 땅을 획득해 조금이나마 평가가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 봐야 땅만 넓은 변방의 국가에 불과했다.

헌데 이런 러시아 차르국이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유럽의 그 어떤 국가도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듣는 북미왕국과의 분쟁에서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교육청장이었다.

차라리 외교 문서를 전한 잉글랜드가 러시아 차르국이 오판하도록 일부러 유도했으리라는 것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고 일부 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그 점을 우려해 네덜란드를 통해서도 외교 문서를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잉글랜드 외교관의 말론 변방에 처박혀 있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고 하더군요. 아. 물론 잉글랜드도 러시아 차르국에 북미왕국의 국력을 나름대로 상세히 설명하긴 했지만, 저들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했고요.”

“흐음...”

조용한 곰의 대답에도 청장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조용한 곰이 덧붙여 말했다.

“아. 그리고 러시아 차르국은 북만주 지역을 탐내며 흑룡강 인근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답니다.”

이에 관리청장이 끼어들었다.

“북만주 지역이 자신들의 영토다? 그럼 우리 북미왕국의 선박이 무단으로 자신들의 영토에 침입한 셈이라는 겁니까? 그래서 전적으로 이번 분쟁이 일어난 원인은 우리 탓인 거고?”

“그런 논리인 것 같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청장들은 다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니...흑룡강 인근은 만주 지역이고 만주 지역은 이전부터 여진족의 땅 아닙니까. 근데 그게 무슨...”

“우리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면 북만주 지역이 청나라의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뻗댄 모양인데...”

교육청장의 중얼거림에 다른 청장들도 러시아 차르국의 행동을 조금 이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관리청장은 그래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저들의 행동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북만주에서 청나라와 분쟁 중인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대응해서 우리 북미왕국을 적으로 돌리는 모양새 아닙니까. 거기에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 우리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유럽에 알려졌고 잉글랜드나 네덜란드의 외교관들도 분명 이를 언급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말에 조용한 곰이 무어라 대답하려 할 때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정성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우리의 군사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어차피 러시아 차르국은 제대로 된 함대도, 항구 도시도 없으니 우리의 군사력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시베리아 지역이 있지 않습니까.”

이에 관리청장이 반문했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뭐 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영토는 우랄산맥 서쪽이지 동쪽은 그저 명목상의 영토에 불과하니 그런 거겠지. 더불어 시베리아 지역은 무척 광활해서 우리가 이곳으로 치고 들어와 봐야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테고.”

“으음...”

정성국의 대답에 관리청장은 신음을 흘렸고 교육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확실히 새한성이 개방된 후 우리 북미왕국이 신생국가라는 사실과 인구가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이에 다른 청장들도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먼저 북미왕국의 선박을 공격해놓고도 자신들은 이번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고 오히려 북미왕국에 책임을 전가했으니 청장들의 표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해서 청장들은 하나둘 정성국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시베리아에 각종 자원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어차피 북미 대륙만 하더라도 자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굳이 시베리아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힐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 차르국이 최소한의 유감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이번 분쟁은 아무르 강으로 들어온 북미왕국의 선박 때문이라고, 그리고 자신들은 자비롭게 그런 북미왕국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겠다고 지껄인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해서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군사청장. 아이누 탐사대의 창설은 끝났나?”

“그렇습니다. 전하. 더불어 아이누 경비대도 추가 증원해서 카무이 반도에 배치했고 3함대에서 카무이 반도 인근 해역을 정찰해둔 상황입니다.”

“오.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한 3함대에서 미리 오호츠크해 안쪽의 해역을 정찰해두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자 군사청장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해서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계획대로 뱃길을 통해 카무이 반도 북쪽의 원주민들과 교역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예. 그리고 카무이 항의 창고에 원주민들과 교역할 물자를 가득 채워둔 상황입니다. 허니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이 물자들을 이용해 카무이 반도 북쪽의 원주민들을 우리 북미왕국으로 회유할 수 있습니다.”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교역을 통해 러시아 차르국에 복속한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준비를 다 해두었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그럼 내년에 북방 항로가 열리면 바로 국영 상단을 카무이 반도 북쪽으로 파견하게. 그리고 국영 상단의 안전을 위해 아이누 탐사대가 이를 호위하고. 또한, 만약을 대비해 아이누 탐사대의 인원을 5천 명까지 늘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국영 상단의 호위라는 명목으로 북미왕국의 군대가 러시아 차르국의 영토로 들어가는 셈이니 이것이 알려진다면 러시아 차르국은 격하게 반발할 테고 결국 군사적인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청장들은 내심 긴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동안 북미왕국은 항상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과 교전한 아이누 경비대가 일방적으로 이겼던 전적도 있었기에 청장들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교육청장.”

“말씀하시지요. 전하.”

“이전에 이야기했던 외국인 학교의 설립을 좀 앞당겼으면 하는데 가능할까?”

외국인 학교는 남태평양 원주민들을 위해 교육청에서 준비하고 있는 학교로 남태평양 탐사대와 비교적 우호적으로 교류 중인 원주민들을 북미왕국으로 초대해 이 외국인 학교에서 이들에게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을 가르쳐 원주민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헌데 정성국이 이 외국인 학교를 언급하자 교육청장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했다.

“아. 시베리아의 원주민들도 북미왕국에 데려와 가르치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생각이네.”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교육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흠. 외국인 학교로 사용할 건물은 거의 완공되었고 외국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들을 어느 정도 선별해두었으니 설립을 앞당기는 것은 큰 문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북방 항로가 닫힌 이상 저들은 빨라야 내년에나 입학할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전하. 외국인 학교는 원주민들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 아닙니까. 허면 시베리아 지역을 북미왕국의 영역으로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교육청장의 질문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남태평양의 섬들이야 무척 멀리 떨어져 있어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어봐야 제대로 통치하기 어렵지만, 시베리아 지역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시베리아 지역이 넓긴 해도 철도를 깔면 충분히 통치할 수 있는 만큼 시베리아 지역을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관리청장은 비록 시베리아 지역이 척박하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가죽만 하더라도 무척 비싸게 팔리는 만큼 이 기회에 시베리아 지역도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비쳤고 이에 다른 청장들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성국은 그런 청장들을 보고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뭐 시베리아 지역이 무척 척박하긴 해도 반대급부로 여러 광물 자원들이 넘치는 곳이니 북미왕국의 영토로 삼는 것도 크게 나쁠 것은 없겠지. 하지만 이 지역을 통치하는 게 문제란 말이지? 저 땅은 넓고 인구가 적은 시베리아 지역을 우리가 제대로 통치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나?”

이에 관리청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철도를 건설하면 자연스럽게 원주민들은 철도역 인근으로 몰려들 테니 통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북미왕국 영토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베리아에 철도를 깔겠다고? 글쎄...”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시베리아 지역에 철도를 까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다.

다만 아직 북미 대륙에도 철도를 깔아야 할 곳이 넘쳐나는데 이를 제치고 시베리아 지역에 철도를 깔기 위해 북미왕국의 역량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정성국이었다.

특히나 시베리아 지역은 넓기는 더럽게 넓고 그에 비해 인구는 무척 적은 곳이며 이미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지역에 진출해 각종 전염병을 옮긴 이후라 원주민의 수도 급감한 터라 더더욱.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시베리아 원주민들도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그편이 원주민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나을 거야.”

정성국이 아예 시베리아 지역의 원주민들을 자립시켜 원주민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세울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한 행정청장과 관리청장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원주민들이 자립해 스스로 나라를 세운다 한들 힘이 없으니 북미왕국에서 계속해서 지원해야 할 텐데 그럴 바에는 아예 시베리아 지역도 북미왕국이 차지하고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북미왕국 내에서도 모든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고 지금껏 자신들이 살던 대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거부한 일부 부족에게는 자치권을 주고 일정 영역을 그들에게 내어주며 북미왕국 백성들의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었으니.

물론 정성국도 시베리아 지역을 북미왕국의 영토로 삼고 원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그편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위해서는 더 낫지 않나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게 되면 광활한 국경선을 감당해야 하는지라 아무래도 꺼려졌다.

아무리 자연 지형을 국경선으로 삼는다 해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여기에 묶일 병사들의 수를 생각하면 아무리 각종 자원이 묻혀있는 시베리아라 하더라도 썩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달까.

정성국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행정청장과 관리청장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웬만하면 원주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야기하자 이들도 이내 수긍했다.

“흠...그렇긴 하군요. 우호적인 에스파냐와의 국경선에도 꽤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으니...”

“그렇지. 그런 국경선을 더 늘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랄까.”

“알겠습니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