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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05화 (405/850)

405화

정성국은 새진주를 방문한 김에 북미왕국의 영토인 서인도제도의 두 섬이나 내륙인 미시시피 지역, 북미 동해안 지역이나 누벨 프랑스 지역을 방문해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는 셈이었고 아무리 청장들에게 어지간한 일을 재량껏 처리할 수 있도록 맡기긴 했지만, 간혹 정성국이 직접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도 있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가족들과 함께 다시 왕실 전용 기차에 올라탔고.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 응접실에서 정성국이 창밖의 풍경을 보고 미소짓고 있을 때 아이들을 재운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정성국과 이야기하기 위해 응접실에 들어오다 그런 정성국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라버니.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예. 입이 귓가에 걸려 있으신데요?”

“저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입이 귓가에 걸릴 수밖에 없는데?”

왕실 전용 기차는 북미왕국 남부인 애리조나 지역의 거대한 목화밭을 달리고 있었고 한창 목화를 수확하는 시기인 만큼 창밖에는 순백의 목화솜을 매단 목화가 가득했다.

그리고 여기서 수확한 목화로 만든 면직물이 비싼 값으로 유럽에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정성국은 목화솜이 마치 하얀 금처럼 보였고 이 하얀 금이 지천에 널려있었으니 실실거렸던 것이다.

그런 정성국의 말에 정성국을 도와 각종 보고서를 확인했던 하얀 들꽃이 그제야 정성국의 마음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러고 보면 최근 면직물 수출이 무척 늘어났다는 보고서를 확인한 적이 있었죠. 특히, 멕시코 지역으로 수출되는 양과 유럽으로 수출되는 양이 대폭 늘었던데요?”

“그렇지. 웅크린 늑대의 말론 면직물뿐만 아니라 직물 전체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더라. 이건 전적으로 너와 화학자들의 공이 크지.”

그러면서 정성국이 전아라를 보고 미소짓자 전아라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가 정성국의 말을 이해하고 살포시 웃었다.

“아. 염료 때문에요?”

“응. 기본적인 직물의 품질도 유럽보다 좋은데 색감마저 다양하니 유럽에서 북미왕국산 직물의 수요가 폭등하는 모양이야.”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아라가 예뻐 죽겠다는 시선을 보냈고 전아라는 그런 정성국의 시선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라버니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그때 하얀 들꽃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형님과 화학자들이 새롭게 염료 개발에 매진한 후 더 다양한 색감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직물들이 많아지긴 했지요. 그걸 유럽에서도 알아챈 모양이군요? 헌데 그렇게 되면 목화밭을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유럽의 직물 시장을 장악할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요?”

하얀 들꽃은 다른 고가의 교역품보다 유럽의 직물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북미왕국을 더 부유하게 해줄 것이라고 직감해 정성국을 쳐다보았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비단이야 투로시노 덕분에 더 많은 생사를 사 올 수 있으니 공방만 건설하면 그만이고...축산 연구소에서도 계속 양의 숫자를 늘리고 있으니 모직물의 수요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데 문제는 면직물이야. 개발청에서 계속 이곳의 목화밭을 늘리고 있는데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부족한 상황이니까. 해서 치카소 인근에 추가로 이곳처럼 대규모 목화밭을 건설할 생각이고.”

“미시시피 강 유역에요?”

“그래. 보고서를 확인해보면 그곳도 목화 농사에 적합한 기후로 생각되거든. 거기에 목화 농사는 꽤 많은 인력이 필요한 만큼 미시시피 강 인근의 원주민들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어 보이고.”

정성국의 대답에 하얀 들꽃은 슬쩍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고용한 일꾼들을 후하게 대접해서 말이죠?”

“그렇지. 그리고 목화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후하게 대접해야 하는 게 맞아. 목화밭에서 일하는 것도 무척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이에 전아라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어느 농사일이든 힘들지 않은 것이 있나 싶긴 한데...확실히 목화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땡볕에서도 코와 입을 천으로 막고 일해야 하니 더 힘들긴 하죠.”

북미왕국에서 광부와 함께 가장 일이 힘들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목화밭에서 일하는 일꾼이었는데 두 직업 모두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지가 많은 작업 환경에서 계속해서 일하다 보면 진폐증에 걸릴 수 있고 진폐증의 경우 치료 방법도 마땅히 없고 예방만이 최우선이었기에 정성국은 이런 환경에서 일할 때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했다.

그나마 다른 직업은 괜찮지만, 계속 몸을 움직이며 힘을 써야 하는 광부나 땡볕에서 일일이 목화솜을 손수 따야 하는 목화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이 마스크 덕분에 더욱 힘들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전아라가 이를 언급했지만, 정성국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건강을 위해서니까.”

그나마 이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후한 보수를 지급하고 단순히 나라에서 이들을 괴롭히기 위한 명령이 아닌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한 명령을 내리는 거라는 것을 계속 주지시켰기에 그나마 불만이 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전아라는 배시시 웃으며 대꾸했다.

“오라버니는 참 자상한 군주세요. 백성들의 건강까지 챙기시니까요.”

옆에서 하얀 들꽃도 동의한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자상한 군주는 무슨...악덕 군주지. 백성들이 건강해야 오랫동안 일해 북미왕국의 발전에 한 손 보탤 테니까 그러는 거야.”

하지만 정성국이 쑥스럽기에 저런다고 생각한 하얀 들꽃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정말 악덕 군주시라면 더는 북미왕국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노인들의 부양은 가족들에게 맡기고 모른 척하시겠지요. 하지만 최근 행정청 연구소에서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문제를 두고 한창 연구 중이고 이 연구가 전하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면서요. 그러니 전하께서는 자상한 군주세요.”

이에 전아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얀 들꽃을 바라보았다.

“연금? 그게 뭐야?”

“매달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월급처럼 돈을 지급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 돈으로 더는 일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먹고살 수 있게끔.”

하얀 들꽃의 대답에 전아라는 고개를 갸웃하다 정성국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어? 그건 가족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요? 그리고 조선과는 달리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부유한 편이라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텐데요?”

“물론 그렇긴 하지. 그래도 부담은 부담이잖아. 그리고 이들도 북미왕국 발전에 기여한만큼 나라에서 보답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돼.”

정성국의 대답에 전아라는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원상에서도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주었으니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그러면 북미왕국에서 일한 기록이 있는 노인들에게만 주는 건가요?”

“글세? 난 개인적으로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모두 지급할 생각이기는 한데...”

정성국은 고개를 젓자 하얀 들꽃이 끼어들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요?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이번에 합류한 일리노이 족의 노인들도 이 연금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 일리노이 족의 노인들은 북미왕국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잖아요?”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물론 일리노이 족의 노인들은 직접적으로 북미왕국의 발전에 기여하진 않았지. 하지만 이 노인들의 자식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북미왕국 발전에 기여할 테니 일리노이 족의 노인들도 간접적으로는 북미왕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음...”

솔직히 억지에 가까웠지만, 정성국의 말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하얀 들꽃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정성국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이 노인 연금 외에도 다른 연금들도 만들어 지급할 생각이야.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 임신을 하게 되면 몸이 불편해지고 일을 하기 힘든 만큼 연금을 지급할 생각이고 가정에 아이가 여럿이라면 당연히 아이를 키우느라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울 테니 연금을 지급할 생각이기도 해.”

이 정성국의 말에는 하얀 들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의 인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르지 않았으니 이러한 정책으로 북미왕국의 인구 증가가 가속화되면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에.

“아. 그렇게 지원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낳으라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 외에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연금도 만들 생각이고.”

정성국이 말한 경우는 보통 가정 내의 일이었고 가장이 이를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는 했지만, 조선과는 달리 북미왕국은 부유한 만큼 나라에서 직접 개입해 이들을 돕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해 전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취지의 연금을 언급하는 정성국을 보고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휴. 그러다가 모든 백성에게 연금을 지급하게 되는 것 아니에요?”

정성국은 한참 하얀 들꽃에게 각종 연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전아라의 이야기에 놀란 표정으로 전아라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음? 어떻게 알았어? 그게 최종 목표인데?”

“예?”

“전하? 나라에서 모든 백성을 먹여 살리시겠다고요?”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전아라도 하얀 들꽃도 당황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라에서 직접 모든 백성을 먹여 살린다기보다는...북미왕국 백성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돈을 지급하겠다는 거지.”

기본 소득제의 원형이 되는 최소 소득에 관한 아이디어는 16세기 인문학자인 비베스가 언급한 이후로 유럽에서는 꾸준히 논의됐던 사안이고 북미왕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일부 번역해 출판한 것은 언젠가 연금으로 북미왕국 백성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려는 정성국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었다.

정성국은 원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북미왕국의 왕이 된 만큼 북미왕국 백성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복지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전생처럼 복잡한 조건을 걸게 되면 정작 이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 이를 악용해 부당하기 혜택을 받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를 관리 감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공무원과 행정 비용이 발생했기에 차라리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싶었고.

이런 정성국의 생각에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서로를 바라보다 정성국에게 시선을 돌리고 전아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하기 어려운 노인들, 임산부들, 많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주부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까지는 이해했어요. 가족들이 없다는 전제하에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는다면 오라버니의 말씀처럼 생활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왕은 모든 백성의 어버이인 만큼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오라버니의 말씀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백성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너무...”

그리고 하얀 들꽃이 뒤이어 입을 열었다.

“이건 형님의 걱정이 맞는 것 같은데요? 모든 백성에게 연급을 지급하면 누가 힘들게 일하려 들겠어요? 그냥 나라에서 주는 연금을 받고 놀러 다니겠지요.”

하얀 들꽃의 이야기에 전아라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성국은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글쎄? 그러기 쉽지 않을걸? 말 그대로 기본 연금의 취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돈을 지급하는 것뿐이야. 연금만 받고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지금처럼 풍족한 생활을 누리던 사람들이 기본 연금을 준다고 이 돈에 매달린다? 글쎄...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원래 씀씀이는 수입에 비례하는 법이었고 씀씀이를 늘리기는 쉽지만 이를 줄이기는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정성국이었다.

그리고 연구청 연구소에서 면밀히 연구한 끝에 액수가 결정될 테지만 기본 소득의 취지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돈을 지급하는 것인 만큼 이 그동안 누리던 풍족한 생활을 버리고 나라에서 지급하는 연금에 매달리기보다는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정성국의 이야기에 전아라가 그 부분은 일단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시 반문했다.

“하지만 오라버니. 북미왕국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 않나요? 특히 임산부나 많은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에게 추가로 연금을 지급한다면 인구 증가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테지요. 그렇게 늘어난 북미왕국 백성들을 모두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건데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애당초 북미왕국의 모든 땅은 나라의 소유라 이 땅에서 나는 소득이 나라로 들어오는 만큼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국가의 수입도 증가하는 만큼 감당하고도 남지. 그리고 국영 상단도 존재하고.”

원래 기본 소득을 실시하는 데 가장 걸림돌은 역시나 기본 소득에 들어가는 재원이었지만 북미왕국의 경우는 그 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더불어 이미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전생의 북유럽처럼 꽤 높은 세금을 감당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 백성들에게 기본 연금을 내어주더라도 백성들이 사용하는 돈이 대부분 나라로 들어온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러니 북미왕국 백성 전체에 기본 연금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그리고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씀씀이도 커지게 되어 있어. 그럼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의 경제는 더욱 발전하겠지.”

정성국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하얀 들꽃이 입을 열었다.

“으음...소비를 늘리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리고 왕실의 안전 때문이기도 해.”

정성국이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자 하얀 들꽃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원래 사는 것이 고달프면 왕실을 원망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들고 일어날 수도 있고.”

“어?”

“아...하지만...”

그 말에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정성국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내 말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왕실에서 미리미리 백성들의 생활을 신경 써야 한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백성들에게 일괄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이러한 설명에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왕실을 위해서라니...저도 백성들의 생활에 더욱 신경 쓰도록 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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