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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03화 (403/850)

403화

새진주가 보인다는 보고에 갑판 위로 올라온 에스파냐 선장은 저 멀리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길쭉한 건물을 보고 망원경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 올 때마다 건물이 쭉쭉 올라가더니만...어느새 공사가 끝난 모양인데?”

선장의 감탄에 옆에서 선원들을 지휘하던 부선장이 놀란 표정으로 망원경을 꺼내 건물을 확인하고 맞장구쳤다.

“예? 정말이요? 와...이거 놀라운데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저런 커다란 건축물을 세울 줄은...”

“그러게. 우리가 저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올해 초 아닌가?”

건물 자체는 작년 가을부터 올리기 시작했지만, 새진주는 한창 발전하는 도시다 보니 꽤 많은 건물이 건설되고 있었기에 지금 보는 건물에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 1월에 새진주를 방문했을 때 다른 건물들에 비해 높고 면적도 커 보였기에 북미왕국에서 큰 건물을 짓나보다 생각했었고.

선장이 이를 회상하면서 질문을 던지자 부선장이 맞장구쳤다.

“그랬죠. 그리고 4월쯤에 방문했을 때 다른 건물에 비해 월등한 높이를 자랑했기에 조금 놀랐었죠.”

“그리고 7월쯤에 방문했을 때는 이전보다 배는 높아져 있었기에 이들의 건축 속도에 기겁했었고.”

“예. 그리고 지금은 건물을 완료해버렸으니...허. 저 커다란 건물을 짓는데 1년도 안 걸린 것 같은데요?”

부선장은 말을 하고도 놀란 표정이었고 이는 선장도 비슷했다.

저런 건물을 짓는데 1년도 채 안 걸리다니.

보통 유럽에서 저 정도 건물을 지으려면 최소 수년씩 걸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의 건축 속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으니까.

그렇기에 선장은 이전 새한성을 다녀온 사절단의 일원들이 배에서 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새한성을 방문한 자 중 일부가 그랬지.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에도 높은 건축물이 없어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생각외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기술이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짓지 않았을 뿐이었나 보네요. 혹시 북미왕국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순식간에 건설한 것 아닐까요?”

“허.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헌데 저게 정말 행정청 건물이라고?”

이전에 방문했을 때 건물을 보고 놀라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외국인 거주 구역 안의 종업원들은 행정청 건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서도 보이는 저 거대한 건물은 행정청 건물이라기보단 일종의 거대 요새가 아닌가 싶었고 이는 부선장 역시 비슷한 생각인지 선장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요새로 쓰면 딱 맞을 거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건물 벽에 유리창이 가득한 것을 보면...정말 행정청 건물이 맞는 것 같네요.”

부선장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건물을 바라보던 선장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왜 그러십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선장을 보고 선장이 말했다.

“생각해보라고. 매일 출근해서 저 건물을 오르느라 헉헉대는 행정청 관리들을.”

“풉. 그것도 그렇네요. 높은 사람들은 1층에서 업무를 볼 테고 젊은 관리들은 출근할 때마다 저 높은 건물을 오르느라 고생 좀 하겠군요.”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 점차 선착장이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 선장이 문득 부선장을 보고 말했다.

“그보다 이전까지 확인한 신문에는 저 건물에 관한 기사는 없었지?”

“예. 그랬지요. 하지만 슬슬 완공되었으니 저 건물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 말에 선장은 마음이 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정박하면 신문부터 사야겠군.”

* * *

9월 말에 정성국은 가족과 함께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새진주를 방문했다.

김봉길은 서인도제도를 둘러보기 위해 새진주를 비운 상황이었기에 웅크린 늑대가 대신 새진주 역에 나와 정성국을 맞이했다.

그리고 정성국과 가족들은 미리 준비한 마차에 올라탔고.

“우와!”

“와아!”

마차에 탄 정안문과 정나리는 멀리서 보이는 고층 건물을 보고 입을 벌렸고 그건 전아라나 하얀 들꽃도 비슷했다.

“어머. 정말 건물이 크기는 하네요. 이렇게 멀리서도 건물이 보이다니.”

“그러게요. 그리고 생각보다 창이 많네요? 고층 건물을 지은다길래 안전을 위해 벽이 다 막혀있을 줄 알았는데...”

정성국은 익숙한 외형의 빌딩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도 전생에서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적당한 크기의 빌딩이 이곳에선 무척 거대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하얀 들꽃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저 건물은 실제 사용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너무 답답하지 않겠어? 그리고 저렇게 창이 많아도 건물은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때 전아라가 정성국을 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했다.

“헌데 오라버니. 유럽에는 저 건물보다 더 커다란 건축물이 많다면서요? 그게 진짠가요?”

“그렇지. 주로 유럽의 교회들이 그래. 유럽의 교회는 엄숙하고 장엄한 건축물로 교회를 바라보는 신도들에게 외경심을 심어주려고 했거든. 그래서 웅장하고 높은 첨탑을 세웠고 그 첨탑 덕분에 100m가 넘는 건축물이 꽤 있지.”

“저 건물이 45m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아라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와...저 건물만 해도 거대함에 기가 질리는데 저 건물의 배라고요?”

“배? 정말 높은 건축물은 저 건물의 3배 정도까지도 될 거야. 다만 첨탑만 높은 교회와 건물 전체를 이용하는 저 관공서 건물은 다른 만큼 비교가 무의미하긴 하지.”

정성국이 웃으며 대답하자 전아라는 그래도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하얀 들꽃은 무척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보고 싶네요. 그렇게 높다니.”

이에 정성국은 괜히 말했다 싶어 속으로 혀를 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잉글랜드에 갈 일은 딱히 없을 것 같은데...?”

“그래요? 아쉽네요.”

하얀 들꽃도 그렇고 시선은 관공서 건물에 고정했으면서도 귀를 열고 대화를 듣고 있던 정안문과 정나리도 묘하게 아쉬운 표정을 짓자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유럽이나 혹은 이집트라도 다녀와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기에 정성국은 다른 대안을 찾아 급히 입을 열었다.

“뭐 굳이 잉글랜드에 갈 필요 있나? 북미 대륙에 그보다 더 높은 건축물을 지으면 그만이지.”

“어?”

전아라가 정성국의 장담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하얀 들꽃이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가능할까요?”

“그럼. 충분히 가능하지. 우리 북미왕국의 건축가들을 믿으라고. 아마 1, 20년 안에 세상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을 분명 건설할 거야.”

이미 정성국을 통해 유럽에도 더 높은 건물이 있다는 사실을 북미왕국의 건축가들이 인지하고 있으니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더 높은 건물을 설계할 것이 뻔했다.

다만 정성국은 굳이 이를 건설할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고층 건물을 지어 그동안 유럽에서만 독점해오던 세계 최고층 건물 타이틀을 가져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때 전아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오라버니는 고층 건축물의 효율은 별로라고 투덜거리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도시마다 일종의 상징물이 있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으니 적당히 짓는 것도 괜찮아 보여. 그리고 주민들도 그러한 고층 건물을 보고 북미왕국의 기술에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을 테고.”

정성국의 말에 전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흐음...그러면 제일 높은 건축물은 새한성에 짓는 건가요?”

이에 정성국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진을 생각하면 고층 건물들을 북미 서해안 지역에 건설하는 건 좀 자제할 생각이라...”

“아. 하긴. 안전이 제일이니까요.”

“그렇지.”

* * *

마침내 마차가 건물에 도착하자 정성국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은 마차에서 내렸고 다른 마차에 타고 있던 웅크린 늑대가 정성국에게 다가왔다.

정성국은 건물을 둘러보다 웅크린 늑대를 보고 질문했다.

“입구가 여러 개인 건가?”

“그렇습니다. 이 관공서 건물은 일종의 관광자원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북미왕국 최초의 고층 건물이자 처음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건물이니까요. 그러니 이 관공서 건물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은 다들 승강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구경하려 할 텐데 입구가 하나라면 무척 혼잡하겠지요. 해서 설계단계에서부터 입구도 나누고 공간을 분리했다고 하더군요.”

“나쁘지 않네. 생각해보면 보안 문제도 있고 하니 그게 맞겠지.”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차분히 건물을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정안문과 정나리는 외부인들이 이용하는 통로 안쪽의 승강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기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들이 못 기다릴 것 같네. 일단 옥상으로 먼저 올라가지.”

“그러시지요.”

정성국은 발걸음을 옮기며 웅크린 늑대에게 물었다.

“헌데 이렇게 공간이 나뉘어 있으면 승강기도 여러 개인가?”

“그렇습니다. 총 8개의 승강기가 나뉘어 존재합니다.”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고 전면이 유리창인 승강기를 바라보다 그 안에 단정한 복장을 한 사내를 확인하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승강기 안에 안내원이 탑승해서 조작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승강기에 탑승하는 사람 대부분이 처음으로 승강기를 타는 만큼 안내원이 탑승해 만약을 대비할 필요도 있고요.”

웅크린 늑대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도 승강기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안내원을 따로 두곤 했었으니.

정성국은 승강기 안쪽의 유리 벽면에 정안문과 정나리를 세우면서 말했다.

“자. 너희들 자리는 여기다.”

“아버지! 이 승강기가 정말 올라가는 겁니까?”

정안문의 질문에 정성국은 정안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리고 이 승강기는 한 면이 커다란 유리로 되어있어서 승강기가 올라가면서 땅이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꽤 볼만할 거야.”

정성국의 말에 정안문과 정나리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바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강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승강기 통로는 한쪽이 유리로 채워져 있는 만큼 외부에서도 승강기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건물이 완공된 후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일종의 구경거리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성국과 왕실 가족이 등장해 승강기에 탔으니 새진주의 주민들은 잔뜩 흥분해서 열렬히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고.

정성국은 그런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어주고 덧붙였다.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 덜컹거리기는 할 텐데 안전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불안하거나 무섭다면 눈을 꼭 감거나 고개를 돌리면 된단다. 알았지?”

““네!””

아이들의 대답에 함께 승강기에 탄 호위대장은 안내원에게 눈짓했고 안내원이 손수 승강기의 문을 닫은 후 말했다.

“그럼 승강기를 가동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승강기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와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재미있는지 탄성을 질렀고.

“어머!”

전아라는 감탄을.

“전하. 이거 정말 안전한 거 맞죠?”

하얀 들꽃은 불안한 표정으로 정성국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에 정성국은 별말을 하지 않고 하얀 들꽃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하얀 들꽃은 정성국이 손을 잡아주자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살짝 웃었다.

“옥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옥상에 도착한 후 안내원이 승강기의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정원처럼 잘 꾸며 둔 옥상 공간이 보였기에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며 정성국의 눈치를 살폈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와아!”

아이들이 빠르게 달려나가자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아이들이 걱정되는지 급히 따라 이동했고.

정성국은 안내원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웅크린 늑대를 보고 말했다.

“생각보다 잘 꾸며뒀네? 마치 정원 같은 분위기인데?”

“그렇지요? 공간이 워낙 넓고 기본적으로 관람객들은 저 옥상 주변 부분에서 새진주의 풍경을 바라볼 테니 남는 공간이 아쉽잖습니까. 그래서 저렇게 화분과 의자 등을 이용해 정원처럼 꾸몄다더군요. 주변을 구경하고 잠시 쉬라는 뜻으로.”

정성국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좋은데? 간단하게 음료를 파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아. 그것도 그렇군요.”

정성국은 발걸음을 옮겨 계획도시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바둑판 모양의 도시 구조를 자랑하는 새진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허. 이렇게 보니 새진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군.”

이에 웅크린 늑대는 슬쩍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처음 왔을 때는 허허벌판에 가까웠고 점차 새진주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솔직히 크게 실감하지 못했거든요. 헌데 이곳에 와서 둘러보니 새진주가 정말 많이 개발되고 발전했다는 것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더군요.”

“그러게. 그리고 확실히 높은 곳에서 보는 도시의 풍경은 확실히 다르네. 다른 곳에도 고층 건물을 짓기는 해야겠어.”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웅크린 늑대가 동의했다.

“그거 괜찮지요. 이런 식으로 전망대로 사용하면 주민들이 도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럴 것 같네.”

“그리고 외국인들도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무시하지 않을 테고요.”

“음?”

정성국이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자 웅크린 늑대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가 들리긴 했거든요. 다른 부분에 비해 건축 기술은 북미왕국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다는.”

“하하하. 그거 개발청 소속 건축가들이 들으면 열 좀 받겠는데? 이거 슬쩍 알려주면 가뜩이나 유럽의 교회보다 작은 건물이라 아쉬워하는 개발청의 건축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고층 건축물을 짓자고 하겠군. 아주 좋아.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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