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00화 (400/850)

400화

"쿨럭! 그게 대체 무슨...아직 파나마 운하의 건설조차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운하라니요!“

개발청장은 더운 날씨 탓에 정성국이 건네준 얼음이 담긴 매실차를 쭉 들이키다가 정성국이 뜬금없이 새로운 운하를 언급하자 기겁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위해 개발청의 뛰어난 기술자와 연구원들이 대거 투입된 상황에서 또 다른 운하의 건설은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개발청장이 무어라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누가 곧바로 운하를 건설하자고 했나? 그저 계획을 미리 세워두라는 걸세. 파나마 운하 건설 이후의 일."

"아..."

그 말에 개발청장이 조금 진정한 듯 하자 정성국은 그런 개발청장에게 파나마 운하 건설 이후 북미왕국 영토에 건설할 운하에 관해 설명했고 이를 듣고 개발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흠. 오대호를 따라 북미왕국의 영역을 넓히고 온타리오 호와 이리 호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리고 지금 미시시피 강의 지류를 탐사하는 미시시피 탐사대에도 오대호 쪽으로 난 지류를 우선해서 탐색하라고 했네.“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그 명령의 속뜻을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으음...지류 중 일부가 오대호와 연결되어 있다면 온타리오 호와 이리 호를 연결하는 운하로 인해 수운이 모두 연결되는 셈이로군요. 자연스럽게 내륙 개발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테고요. 이걸 노리시는 거군요?“

정성국의 결정에 따라 미시시피 강 안쪽의 두 곳에 거점을 세우기 위해 개발청 관리들을 보냈고 그들의 보고를 통해 개발청장 역시 미시시피 강과 수많은 지류가 존재하는 이 북미대륙의 내륙 지역이 무척 비옥하다는 것과 농사를 짓기엔 최적의 땅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륙을 개발한다면 북미왕국의 국력은 한층 성장할 것이라고 보았고.

다만 북미왕국의 영토는 넓었고 고질적인 문제인 인구 부족으로 인해 내륙 개발보다는 해안가 개발이 우선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성국은 운하를 건설해서라도 내륙을 개발할 뜻을 내비쳤으니 개발청장은 내륙 개발로 인해 북미왕국이 더 부유하고 성장할 거라는 기대감과 수많은 일거리에 치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섞인 묘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개발청장의 얼굴을 보고 정성국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꾸했다.

"그렇네. 뭐 설사 지류가 오대호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대호와 가까운 지류에 운하를 파 연결하면 그만이고."

정성국이야 미시시피 강의 지류와 미시간 호를 연결하려면 결국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이곳은 제대로 탐사하지 못한 곳이었고 정확한 지도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돌려 이야기했고 그 말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미리 개발청 연구원들에게 이야기해두고 운하 건설 계획과 내륙 개발 계획을 세워두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게. 그리고 파나마 운하 건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나?“

올 초에 개발청에서는 파나마 운하 건설 계획을 정성국에게 최종 보고했고 파나마 운하 건설 계획에 따르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올해 가을부터 공사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올해의 공사는 일꾼들의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농지 건설, 일꾼들이 지낼 숙소 건설, 장비와 물자를 옮기기 위한 도로 건설, 벌레를 없애기 위한 벌목 작업 같은 사전 작업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운하 건설 공사는 내년 가을쯤에 진행할 예정이었고.

아무튼, 슬슬 파나마 지역으로 떠날 시기가 다가오는 만큼 정성국이 질문하자 개발청장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찾아온 것은 바로 이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예정대로 준비 중입니다. 관리청에서도 공사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비축해두고 있고 연구청에서 세운 공방에서도 열심히 건설장비들을 생산하고 있지요. 해서 예정대로 올 9월에 개발청 직원들과 경운차를 비롯해 여러 건설장비를 파나마 지역으로 보내 사전 작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가지고 온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매실차를 마시면서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개발청장은 그런 정성국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헌데 전하."

"음?"

"공사 기간의 단축과 편의를 위해 이번에 파나마 지역에 사전 작업을 하면서 도로망을 건설하는 것을 넘어 철도를 까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으로 보고서에서 시선을 뗐다.

"뭐? 철도를 파나마 지역에?“

"그렇습니다. 기차 몇 대만 있다면 물자를 손쉽게 운송할 수 있으니까요.“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반문했다.

"그것 때문에 일부 물자는 새진주에서 운반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

대서양 방면의 수송선이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태평양 방면으로 모든 물자를 수송할 계획이었지만 아무리 사전 작업을 통해 도로를 건설한다 하더라도 육로로 수십km 가까이 물자를 옮기는 데는 꽤 많은 인력이 필요했기에 어떻게든 대서양 방면의 수송선 일부를 차출하기로 한 만큼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이자 개발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새진주에서 태평양 방면의 파나마 지역으로 물자를 운송한다 한들 그 많은 물자를 내륙으로 30km 정도는 옮겨야 하니까요.“

"그러니 아예 철도를 깔아 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기차와 철도는 회수하고요."

"흠...“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기차를 파나마 지역에 가져가는 것이 조금 꺼려지긴 했지만, 어차피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기술이 알려질 위험을 무릅쓰고 경운차나 각종 건설장비도 가져가는 만큼 기차를 가져가 써먹는 것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때 정성국의 안색을 살피던 개발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사 현장의 통제와 안전을 위해 에스파냐에서도 파나마 지역에 북미왕국 함대와 병사들의 진주를 허락했으니 보안 문제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성국은 굳이 북미왕국 병사들을 파나마 운하 지역에 파견할 생각은 없었지만, 워낙 많은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을 고용할 예정이라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적절히 통제할 필요도 있었고 빠른 공사를 위해 화약도 대거 사용할 예정이었기에 안전을 위해서라도 결국 병사들을 파견하기로 했고 외무청에서는 에스파냐와 협상을 통해 에스파냐의 허락을 받아냈다.

에스파냐로서는 파나마 지역에 대거 에스파냐 병사를 파견해 치안을 유지하는 것보다 공사 기간에 한정해서 북미왕국 병사의 파나마 진주를 허락하는 편이 싸게 먹혔으니.

해서 군사청에서는 파나마 지역에 파견할 병사들을 선발하고 있었고 만약을 대비해 1함대도 일부 파견될 예정이었고.

그러니 개발청장은 에스파냐가 미치지 않고서는 기차나 경운차, 건설장비 같은 북미왕국의 기물을 탐내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하며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걸 허락해주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물자를 수송하는데 투입하는 인력까지 운하 건설 공사에 투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공사를 빠르게 해치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알겠네. 그러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이 결국 허락하자 개발청장은 이를 반기며 환하게 미소짓다가 문득 다른 용건이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전하. 조만간 새진주에 한 번 행차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새진주에? 왜?“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개발청장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새진주에 건설 중인 관공서 건물이 거의 다 완공되었거든요.“

"어? 벌써?“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개발청장이 말한 관공서 건물이 바로 고층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새진주에 건설 중인 고층 건축물은 전생의 빌딩과 같았고 그렇기에 안쪽의 공간을 그냥 놀릴 수 없어 행정청과 외무청에서 이 건물을 쓰기로 했기에 개발청에서는 관공서 건물로 부르고 있었는데 이 고층 건축물이 벌써 완공 직전이라는 소리에 정성국이 놀라며 되묻자 개발청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벌써라니요. 이미 첫 삽을 뜬 지도 벌써 9개월이 흘렀는데요.“

"아...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그렇지요. 물론 내부 공사 등이 아직 남아있고 각종 부서가 먼저 입주해야 하니 10월 정도에 민간에 건물을 개방할 생각입니다만...“

"그 전에 방문해달라 이거지? 그럼 건물에 관련된 기사도 나올 테니?“

새진주에 건설 중인 고층 건축물은 관공서 건물로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애초에 고층 건축물을 건설한 이유가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과시하고 관광객들을 새진주로 분산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정성국의 방문을 통해 고층 건축물의 존재를 북미왕국 전역에 알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이 웃으며 대꾸하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미 관공서 건물은 새진주에서 무척 유명하고 우리 북미왕국 최초의 고층 건축물이니만큼 완공되는 즉시 신문에 실리기야 하겠습니다만...전하께서 직접 방문하신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관공서 건물에 관심을 보이고 이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새진주를 찾겠지요.“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던 것을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새진주에도 숙소는 많이 지어놨지?"

"그럼요. 충분히, 그리고 근사하게 잘 지어뒀지요. 아마 관공서 건물뿐만 아니라 숙소 건물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꽤 자신만만한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호오. 그래? 그럼 직접 방문해봐야겠군. 알겠네. 민간에 개방하기 전 가족들과 함께 다녀오도록 하지."

"오오. 알겠습니다. 그럼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 * *

정성국과 대화를 마친 개발청장이 집무실을 떠난 후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업무에 매진했고 슬슬 저녁 시간이 다가올 때쯤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찾았다.

이에 정성국은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곰에게 물었다.

“음?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이 보고가 오늘 만난 개발청장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기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무실을 찾아온 겁니다.”

개발청장이 정성국과 나눈 대화를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에게 전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이 보고하라는 듯 손짓하자 조용한 곰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미시시피 강 북쪽 거점의 주변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지.”

“이들 타마로아 족은 알고 보니 이들은 범 일리노이 족에 속하는 작은 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범 일리노이 족은 주로 미시시피 강에서 북동쪽의 오대호 사이에 분포한 부족 동맹이나 다름없고요.”

“아...”

정성국은 익숙한 단어에 탄성을 지를 때 조용한 곰은 계속 설명했다.

“그리고 이 범 일리노이 족은 범 알곤킨 족에 속한다고 봐도 됩니다. 범 알곤킨 족 중 일부가 이로쿼이 족에 밀려 이 지역에 정착한 셈이니까요.”

이로쿼이 족의 공격으로 범 알곤킨 족 일부가 남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들이 전생의 일리노이 지역에 정착해 일리노이 동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 참.”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슬쩍 미소짓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해서 타마로아 족을 통해 이 범 일리노이 족과 접촉했는데 범 일리노이 족은 이미 우리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로쿼이 연맹이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했다는 사실도요.”

“설마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지?”

이들도 범 알곤킨 족처럼 이로쿼이 연맹에 맺힌 원한이 많지 않을까 싶어 걱정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 사나운 이로쿼이 연맹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북미왕국에 항복한 것을 보면 우리 북미왕국이 얼마나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확장을 멈췄고 이전처럼 가죽을 독점하려 하지도 않으니 오히려 이들은 북미왕국에 호의적인 편이었지요.”

“그래?”

정성국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그래서 북미왕국에 관심을 보이는 와중에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쪽에서 우리 북미왕국이 등장한 겁니다. 그리고 범 일리노이 족에 속하는 타마로아 족의 영역에 거점을 세웠고 우리와의 교역을 통해 타마로아 족은 풍족한 식량을 얻을 수 있었고 타마로아 족이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주변의 아이오와 족, 미주리 족, 오세이지 족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범 일리노이 족의 일부 부족은 타마로아 족처럼 북미왕국에 밑에 들어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긴 것이지요.”

아이오와, 미주리는 전생 미국의 주 이름이었기에 정성국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조용한 곰의 마지막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설마?”

“그렇습니다. 그래서 북쪽 거점과 가까운 범 일리노이 족인 카호키아 족, 모인궤나 족, 페오리아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할 뜻을 밝히자 다른 범 일리노이 족도 북미왕국에 합류할 뜻을 밝혔습니다. 덕분에 북미왕국의 영역이 오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 호까지 넓어진 셈이고요.”

물론 범 일리노이 족 전체가 합류한 것은 아니라 지류와 연결되어 탐사대와 접촉한 부족들에 한정된다고 덧붙였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싶었던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거리다 문득 한마디 했다.

“어? 재작년에 이리 호 인근에 사는 이리 족도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했잖아?”

“그렇습니다. 이리 족은 범 이로쿼이 연맹에 가까웠고 외무청에 합류한 옛 이로쿼이 부족장들의 설득에 결국 북미왕국으로 합류했지요. 그렇기에 북미왕국은 오대호 중 미시간 호, 이리 호, 온타리오 호 이렇게 세 호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종 자원이 넘쳐난다는 오대호 인근이 북미왕국의 영역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크...좋군.”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이 미소짓다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보고에 따르면 아쉽게도 미시시피 강의 지류들은 미시간 호와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해서 전하의 생각처럼 수운을 이용하려면 이 지역에도 운하를 파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정성국도 짐작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개발청장에게도 이야기했나?”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럼 이 지역에 관한 문제는 내일 다른 청장들도 불러서 논의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