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정성국은 드디어 5천 톤급 철선의 건조가 마무리되었다는 최주명의 보고에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를 타고 새한성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린 정성국은 선착장 맨 끝에 나란히 정박해있는 커다란 철선 3척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 이건 정말 장관이네.”
왕실기를 단 마차가 다가오기에 정성국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오던 최주명은 그런 정성국의 감탄에 씩 웃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정성국은 철선에 눈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순조롭게 5천 톤급 철선을 건조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은 실소했다.
“순조롭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지요. 5천 톤급 철선은 처음으로 건조하다 보니 중간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 건조 기간이 꽤 늘어졌으니까요.”
“그래?”
“예. 예정대로였다면 올 초에 건조가 끝나야 했던 녀석들이니까요.”
최주명은 5천 톤급 철선을 건조하면서 발생한 여러 문제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정성국은 피식 웃고 물었다.
“3척을 동시에 건조하다 늘어진 것은 아니고?”
“하하하. 뭐 그것도 없지 않고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최주명을 보고 정성국이 물었다.
“근데 3척을 동시에 건조할 정도면 나름대로 철선 건조에 확신이 있었던 거야? 너 예전 쾌속선 건조 때 한번 망한 뒤로는 무척 조심했잖아?”
예전 처음으로 쾌속선을 건조했을 당시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은 꽤 자신만만하게 쾌속선을 건조했었지만, 시험 항해 중 여러 문제가 발생해 결국 배를 해체하고 새롭게 연구해 쾌속선을 건조한 적이 있었다.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최주명은 급소를 맞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스승님께서는 태연하게 아픈 곳을 찌르시네요. 뭐 3천 톤급 철선을 건조하며 경험을 쌓았고 설계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으며...저건 철선이라 문제가 생기면 그냥 다시 녹여버리면 그만이잖아요? 그래서 도전해본 거죠. 그리고 새진주의 조선소에서도 꽤 많은 인력을 보내온지라 저들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필요도 있었고요.”
5천 톤급 철선의 건조에 성공하게 되면 앞으로는 목재로 만든 선박보다 철선을 주로 건조할 테니 새진주의 조선소에서도 꽤 많은 인력을 보냈고 철선을 건조해본 경험이 있는 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조금은 무리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최주명의 판단을 칭찬했다.
“그래. 잘 했어. 헌데 배가 똑같지 않고 2종류네?”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2척의 선박은 똑같아 보였고 오른쪽의 한 척은 모양이 완전히 달랐기에 정성국이 묻자 최주명이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3종류긴 해요.”
“응? 3종류? 2척은 모양이 같잖아?”
정성국의 의문에 최주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 기본 틀은 같으니까요. 내부 구조가 다를 뿐이지. 일단 저 왼쪽의 배는 수송선이에요. 물자를 최대한 많이 수송하기 위해 창고를 극단적으로 늘린 녀석이죠.”
“아. 아마 가장 많이 양산될 녀석이겠군?”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가운데 있는 배는 여객선이에요.”
“여객선?”
정성국이 굳이 여객선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은 표정이자 최주명이 입을 열었다.
“예. 지금까지야 개항장과 새김포를 왕복하는 천급 함선 외에는 여객선이라고 부를만한 선박은 없었고 또 여객선이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었죠.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적었으니까요. 해서 수송선 한쪽에 마련된 객실만으로 충분했지요. 헌데 북미신문 발행 이후 여행객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젠 배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더군요.”
“아아. 그 이야기는 들었어. 특히 요근래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배는 거의 만선이라고 들었는데?”
그동안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백성들은 다른 지역에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는 않았었다.
다들 북미왕국의 말과 글을 배우느라 바쁘기도 했었고 처음으로 맛보는 풍요로움에 취하기도 했으며 그 후엔 프랑스와의 전쟁이 벌어진 탓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라도 집에서 북미왕국 관리들이 이야기하는 전황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만약을 대비할 뿐이었고.
그러다 북미왕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북미신문이 발행되면서 북미 동해안 백성들은 자신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라는 동질감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소위 북미왕국 본토라 칭해지는 새한성에서 새진주까지의 남서쪽 지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새진주를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바다를 누비는 배에는 여행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예. 북미 동해안 지역과 새나주부터는 분위기 자체가 전혀 다르니까요. 그러다 보니 20인 객실에 3, 40명을 태우는 경우도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북미 동해안의 잉글랜드 출신 백성들은 이 정도만 하더라도 쾌적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는 하는데...”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범선과 비교해서 쾌적하다는 것은 딱히 칭찬이 아닌데?”
“그렇죠. 해서 수송선을 조금 개조해 객실을 늘리고는 있지만 임시방편이라서요. 하지만 이 여객선이 몇 척 건조되어 바다를 누빈다면 그러한 문제도 다 해결되겠지요.”
확실히 북미 동해안 지역도 그렇고 북미 서해안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지역의 백성들, 특히 새남포의 주민들은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을 무척 궁금해했고 새한성 주민들은 이전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새남포를 구경하고 싶어 했기에 수송선 갑판에는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했으니까.
‘여객선의 건조로 관광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도 있겠네. 그러면 다른 지역의 개발도 가속화될 거고. 거기에 비상시에는 여객선을 징발해 병력을 수송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여객선을 따로 건조하는 것도 괜찮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은 최주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흠. 발전기도 설치했지?”
“물론이죠. 객실에 전등을 설치해 화재 위험이 줄어들었고 냉동창고도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장기 항해에도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해 승객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제공할 수도 있고요. 아마 시범 운행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내년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조선 유민들은 저 배를 타고 올 텐데...그럼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척 편하게 북미왕국으로 올 수 있을 겁니다.”
무척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최주명을 보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하겠지. 헌데 저 배엔 얼마나 태울 수 있어?”
“약 1000명 정도죠.”
“음? 의외로 적다?”
이주 초기만 하더라도 1천 톤급인 지급 함선에 500명을 태우기도 했었지만, 현재는 이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2천 톤급인 천급 함선에 600명가량을 태우고 있었다.
그것을 고려하면 5천 톤급의 철선에 1000명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정성국이 의외라는 듯 묻자 최주명이 대답했다.
“쾌적함을 중시한 여객선인데 사람을 바글바글 태울 수야 있나요. 해서 10인실의 공간을 꽤 크게 만들었거든요.”
“아...그럼 여객선에서의 선상 생활이 정말 쾌적하겠는데?”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럼요. 특히 이 선박을 주로 이용할 이주민들은 거대한 선박의 외형과 쾌적한 선상 생활 때문에 북미왕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북미왕국에서의 생활을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게 될 겁니다.”
정성국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승객을 태우도록 개조하는 것이 어떤가 싶었지만, 최주명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심리적인 요인도 중요하니...뭐 부족하면 더 많은 여객선을 건조해 투입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오른쪽에 있는 녀석은 양산하기 위해 건조한 녀석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5천 톤급도 아니고.”
“음?”
“오로지 갑문을 운반하기 위해 건조한 3천 톤급의 배죠.”
그 말에 정성국은 배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이유를 깨닫고 중얼거렸다.
“아...그래서 저렇게 선폭이 넓고 갑판도 낮은 거구나?”
“예. 모형을 만들어 실험해봤는데 기존의 선형대로 배를 만들면 무게 중심이 올라가서 안정성이 떨어지더라고요. 해서 장폭비도 조절하고 배의 높이도 대폭 낮춰 안정성을 키웠지요.”
정성국은 최주명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 딱 봐도 안정적으로 보이네.”
“다만 무척 느린 것이 문제입니다.”
“느리다고?”
얼마나 느리길래 그러느냐는 표정의 정성국을 보고 최주명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기껏해야 12노트가 최고 속도인 것을 보면 계산대로 갑문 2개를 실으면 10노트도 내기 어려울 거에요. 다른 배가 평균 20노트 정도의 속도로 항해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척 느리죠.”
“흠...좀 느리긴 하구나.”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평균 20노트의 속도로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태반인 만큼 10노트 이하의 배는 확실히 느리긴 했다.
해서 정성국이 동의하자 최주명이 말했다.
“그죠. 그래서 저건 파나마 운하만 건설하고 나면 해체해 버릴 생각이에요. 저걸 어디다 쓰겠어요.”
“에이. 그건 아니지. 저걸 왜 해체해. 잘 이용하면 되지.”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이 기겁하며 손을 내젓자 최주명이 그럴 필요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느린 걸 어디다 쓰시게요? 그냥 해체한 후 강철은 녹여서 다시 쓰면 그만이죠.”
“건조 목적대로 계속 갑문을 옮기는 데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은 놀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음? 설마 파나마 운하 말고 다른 운하도 건설하실 생각이세요?”
“응. 그럴 생각이야.”
“어디에요? 설마 또 외국 영토인가요?”
최주명의 물음에 정성국은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그럴 리가. 파나마 운하 건설이 끝나면 옛 이로쿼이 연맹 지역에 운하를 건설해 온타리오 호수와 이리 호수를 연결할 생각이야. 지금은 두 호수에 사이에 있는 거대한 폭포 때문에 배를 타고 이리 호 안쪽으로는 이동할 수 없거든.”
당장 내륙 곳곳에 철도를 깔 수는 없으니 일단은 수운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 사이를 가로막는 나이아가라 폭포 때문에 오대호를 따라 내륙으로 진출하려면 온타리오 호에서 육지를 거쳐 이리 호로 이동해야 하는지라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물자 수송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미국은 이 때문에 이리 호와 뉴욕의 허드슨 강을 연결하는 이리 운하를 건설해 온타리오 호를 거치지 않고 대서양에서 오대호 안쪽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훗날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를 건설해 미시시피 강과 오대호를 연결함으로써 수운 시스템을 완성 시켰다.
다만 북미왕국의 경우 전생의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 지역까지 모두 북미왕국의 영역이니만큼 580km에 달하는 이리 운하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전생의 캐나다처럼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운하를 건설해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연결하는 것이 나아 보였고.
해서 정성국은 파나마 운하의 건설이 끝나면 북미왕국 영역 내에 운하를 건설해 수로 시스템을 정비할 생각이었고 이를 최주명에게 슬쩍 내비치자 최주명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과 호수, 운하를 이용해 북미대륙의 내륙으로 진출하겠다라...괜찮은데요? 그렇게만 되면 내륙의 발전이 더욱 빨라지겠군요.”
“그렇지. 뭐 물론 아직 해안가 지역의 발전만 해도 벅차긴 하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둬야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저 녀석은 해체하지 않고 계속 정비하며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하지요.”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리고 새로운 쾌속선 건조가 완료되어 이미 시험 항해 중이라면서?”
“하하하. 그렇지요. 여러 조언을 받아 결국 쾌속선의 회전 날개를 개량했고 덕분에 평균 30노트를 자랑하는 쾌속선이 탄생했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쾌속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기존의 쾌속선보다는 조금 빠른 배를 만드는 데 만족해야만 했던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정성국의 조언으로 박기동에게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30노트의 벽을 깰 수 있었고.
해서 최주명은 정성국의 질문에 가슴을 쭉 펴고 대답했고 정성국은 그런 최주명의 반응에 미소지었다.
“오. 꽤 빠르네?”
“그렇지요. 그만큼 아이누 지역이나 조선과의 거리가 단축되는 셈이고요.”
이에 정성국은 최주명의 어깨를 도닥여주고 말했다.
“고생했다. 조선 장인들에게 포상과 휴가를 넉넉히 주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너도 이 기회에 휴가좀 쓰고 좀 쉬도록 하고."
최주명은 정성국의 말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러겠습니다."
"아. 그 전에 철선과 쾌속선 건조 계획은 세우고 가라?"
혹시나 해서 정성국이 덧붙이자 최주명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휴. 이미 다 세워뒀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