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397화 (397/850)

397화

“전하!”

식후의 나른함을 애써 버티며 보고서를 살피던 정성국은 갑작스럽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연구청장의 외침에 깜짝 놀라 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깜짝이야. 연구청장?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이것 좀 보십시오.”

멍한 표정을 짓는 정성국을 보고 연구청장이 다가와 가지고 온 주머니를 건넸고 정성국은 의아한 눈빛으로 주머니를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음? 이건 진주잖아? 자네가 이걸 왜...어?”

주머니 안에는 진주가 들어있었기에 정성국은 이걸 왜 연구청장이 들고 온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캐는 진주는 교역을 통해 북미왕국으로 흘러왔고 그 진주는 다시 유럽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런 만큼 탐사대가 교역을 통해 확보한 진주는 관리청의 소관이었기에 연구청장이 왜 이 진주가 담긴 주머니를 가져왔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성국은 문득 자신이 내린 명령을 떠올리고 눈을 크게 뜨며 연구청장을 바라보고 다급히 물었다.

“설마 이거 양식한 진주인가?”

정성국의 질문에 연구청장은 환히 웃으며 소리치듯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진주만의 어업연구소에서 3년간 양식한 진주입니다!”

“오오!”

남태평양 탐사대에서 처음으로 진주를 가져온 후 정성국은 진주 양식을 생각했었다.

동양에서도 그렇고 서양에서도 진주는 무척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 시기 유통되는 진주는 모두 천연 진주였고 천연 진주의 생산량은 많지 않았으며 천연 진주라고 모양이 다 이쁜 것은 아니었기에 최상품의 진주는 무척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런 만큼 양식 진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또 하나의 짭짤한 수출품이 생기는 셈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정성국은 전생에서 진주 양식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꽤 재미있게 보았었기에 어떤 식으로 진주를 양식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를 적어 어업연구소에 보냈고.

이를 확인한 어업연구소에서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적힌 내용도 일리는 있었기에 일단 연구에 착수했다.

그 이후론 별다른 보고는 없었기에 정성국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양식한 진주를 가져왔으니 정성국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진주를 한 알 꺼내 손 위에 올려두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흐음...생각보다 괜찮은데? 모양도 완벽한 구형에 가깝고 크기도 괜찮네.”

정성국이 손 위에서 아름다운 광택을 뿜어내는 진주를 보고 그렇게 평가하자 연구청장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남태평양 탐사대에서 가져오는 최상품의 진주와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헌데 이게 전분가?”

주머니 안에는 약 스무 알 정도밖에 없었기에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정성국이 묻자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일단 어업연구소의 목적은 진주의 대량 생산이 아닌 진주 양식 기술의 확립에 있었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 그럼 진주 양식 기술은 완전히 확립한 거고?”

이에 연구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새김포 어업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진주조개를 양식에도 성공했고 이 진주조개에 핵을 삽입해 진주를 생산하는 기술도 이번에 확립했으니 이제 진주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아직은 폐사율이 높은 편이고 이번에 가져온 것 같은 최상품 진주의 비율도 적은 편이긴 합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부분은 일단 물량으로 때우면 되지 않겠나. 그리고 어업연구소에서 계속 연구하다 보면 상황이 나아질 테고.”

“예.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손 위에 있던 진주를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에 넣고 주머니를 다시 연구청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튼, 고생했네. 이거 어업연구소의 공이 무척 커. 해삼과 전복의 양식 성공에 이어 이렇게 빠르게 진주 양식에 성공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아무리 정성국이 대략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하더라도 고작 4년 만에 진주 양식에 성공할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이 무척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연구청장은 입꼬리를 슬쩍 귀에 걸면서 대답했다.

“이것도 다 전하의 통찰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진주만의 어업연구소에서도 전하께서 언급한 부분들이 진주 양식에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고 덕분에 연구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연구청장은 존경의 눈길을 보냈지만, 정성국은 그저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기억한 것에 불과했기에 쓴웃음을 머금고 손을 내저었다.

“그냥 그러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생각해봤을 뿐이야. 실제 이를 성공시킨 것은 전적으로 어업연구소의 공이지. 그러니 제대로 포상해주도록 하게.”

“그야 물론입니다. 전하.”

어차피 연구청은 중요한 발명을 했을 시 연구원들에게 후한 보상을 해주는 만큼 이번 진주 양식에 성공한 연구원들에게도 충분히 포상할 거라고 설명하는 연구청장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진주 양식장을 건설해야 할 텐데...”

“어업연구소에서는 수온이나 지형을 고려했을 때 진주만이 최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연구청장이 곧바로 대답하자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아후 섬의 원주민들은 진주만을 와이 모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의미는 진주의 바다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진주만은 진주조개가 서식하는데 적합한 지형이라는 뜻이었고.

그리고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해 하와이 제도 전체가 북미왕국의 땅이 된 만큼 딱히 걸릴 것도 없었다.

다만 정성국은 한 가지가 조금 걱정스러워 중얼거렸다.

“뭐 그렇겠지. 원주민들이 가끔 진주를 채취하던 곳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문제는 보안인데...”

아무래도 진주만은 그동안 북미왕국의 거점 항구이다 보니 각종 시설이 들어섰고 덕분에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진주만 인근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 진주 양식장을 건설하면 보안에 취약하지 않을까 하는 정성국이었고.

이에 연구청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비교적 인적이 드문 만 안쪽 깊숙한 곳에 진주 양식장을 건설하고 근처를 적당히 통제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러면서 해안가 쪽에는 목책을 세우고 바다 쪽에는 배를 띄워 진주 양식장을 통제하겠다고 설명하는 연구청장이었고 정성국은 이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일단은 그렇게 하세. 다만 진주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전하게.”

“물론입니다. 기술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요.”

“그래. 신경 좀 써주게.”

* * *

새진주의 2함대 사령부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김봉길은 집무실을 들어오는 이정운을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오. 이게 누구야. 북쪽으로 간 후 얼굴 한번 안 비치던 4함대 사령관 아니신가.”

여전한 김봉길의 모습에 이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도 새진주에 오고 싶었죠. 헌데 워낙 일이 많아서 별수 있나요.”

이에 김봉길은 이정운을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혀를 찼다.

“쯧쯧쯧. 적당히 부관들을 키워 일을 넘길 생각을 해야지.”

“하하하. 저도 그러고 싶긴 했는데 서류 작업을 잘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이 사람아. 일단 일을 맡기고 계속 시켜야 일머리가 느는 거지.”

김봉길은 오랜만에 만난 이정운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다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렇게 바쁜 자네가 이곳에 직접 온 것은 역시 이번에 새로 건조한 천급 전선 때문이겠지?”

천급 전선의 건조가 거의 완료되어 4함대 사령부로 공문을 보냈었기에 4함대에서 사람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이정운이 온 것은 좀 의외이긴 했지만.

해서 묻자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함대의 기함이 될 녀석이니 제가 직접 끌고 가야할 것 같아서 온 거죠.”

“아아. 딱 맞춰 왔어. 내장 공사도 거의 끝날 때가 되었거든. 그럼 가자고.”

이정운은 김봉길을 따라 2함대 사령부에서 나와 조선소 방향으로 이동하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 작년에 새한성을 다녀오셨다고요?”

“그렇지. 기차를 타니 정말 금방이던데? 왜 기억나나? 우리가 처음 새진주로 배치된 후 새나주에서 마차를 타고 한참 이동했던 거?”

이에 이정운은 옛날 생각이 나는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요. 이동하는데 만 40일 가까이 걸렸던 것 같은데...”

“그랬지. 헌데 야간에도 운행하는 기차를 타니 4일이면 새한성까지 도착하더라고.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지.”

“허. 신문을 보고 알긴 했지만...대단하네요.”

“그렇지. 그리고 우리가 새한성을 떠났을 때와 지금 새한성 풍경은 전혀 달라. 그사이 엄청 발전했더라고.”

그러면서 김봉길이 작년에 방문했던 새한성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이정운은 무척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물론 신문을 통해 새한성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짐작은 했었지만, 그의 생각 이상으로 발전한 것 같아 이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고 직접 새한성을 방문한 김봉길이 내심 부러워져서 투덜댔다.

“아. 부럽네요. 저도 새한성을 한번 방문하고 싶기는 한데 워낙 멀어서 말이죠.”

“휴가 잘 모아뒀다 한 번에 써버리지?”

그 말에 이정운은 손사래를 쳤다.

“어휴. 그래도 이동하는 데만 왕복 20일은 넘게 소모될 텐데 휴가를 그렇게 쓰는 건 좀 아쉽죠.”

“하긴. 그건 좀 그래.”

김봉길은 수긍하고 조선소의 입구로 들어갔고 이정운도 김봉길을 따라 조선소 안으로 들어와 물이 가득한 건선거에 떠 있는 천급 전선을 확인하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아. 이거 정말 큰데요? 역시 천급 함선과 동급인 천급 전선이로군요!”

“아아.”

하지만 김봉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이에 이정운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김봉길을 바라보았다.

“어라? 좀 시큰둥하신 것 같은데요?”

김봉길이 큰 배를 좋아하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김봉길이기에 저 천급 전선을 보고 흥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했으니까.

이정운의 의문에 김봉길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아. 내가 새한성에 다녀왔다고 했잖나.”

“그랬지요.”

“그때 주명이 얼굴도 볼 겸 조선소에 갔었고.”

그 말에 이정운은 눈을 크게 뜨며 급히 질문했다.

“어? 설마 신규 선박이 있었던 겁니까?”

“그렇지. 조선소 인근 선착장에 3천 톤급 철선이 떡하니 정박해있더라고.”

김봉길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봉길의 말에 이정운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헉! 3천 톤급? 그럼 천급 보다 크다는 뜻이잖습니까. 아니. 그보다 철선이라고요?”

“그래. 철선이었어. 전선처럼 겉에 철판을 두른 게 아니라 처음부터 철로 만들어진 배였지.”

이정운은 생각지도 못한 3천 톤급의 철선의 존재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다가 중얼거렸다.

“아니. 갑자기 그런 배가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이정운의 질문에 김봉길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새한성을 떠난 후 꾸준히 철선을 연구한 모양이야. 나무로 만드는 건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를 넘으려면 결국 철선이 답이라고 생각한 거지.”

“허. 철선이라...”

이정운은 3천 톤급 철선의 존재를 파악한 후 생각이 많아졌을 때 김봉길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더 놀라운 건 3천 톤급 철선이 끝이 아니었다는 거야. 내가 방문했을 때는 한창 5천 톤급 철선을 건조 중이었거든. 그건 정말 크던데. 육중하고 거대했지.”

“...맙소사.”

천급 전선이 2천 톤급인 것을 생각해보면 5천 톤급 철선은 정말 대단한 크기였기에 이정운이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을 때 김봉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명이 말로는 그게 성공적으로 건조되면 5천 톤급 철선을 대량 양산한다고 하더라고.”

“그렇습니까? 대량 양산이라고요?”

5천 톤급의 거대한 선박을 대량 양산하겠다는 소리에 그게 과연 가능한가 싶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김봉길에게 되묻자 김봉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계획이라더라. 오히려 철선의 건조가 더 쉽다던가? 다만 불만인 점이라면 신규 건조되는 철선은 모두 수송선이라는 건데...”

“아. 뭐 이해는 되는데 좀 아쉽긴 하네요.”

그런 이정운의 반응에 김봉길은 반색했다.

“그치? 내가 철선의 존재를 알고 전하께 따졌는데 전하께선 천급 전선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그러시더군.”

그러면서 투덜거리는 김봉길을 보고 이정운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충분은 하죠. 솔직히 이번에 전선들도 완전히 개조해서 화력이 대폭 오르기도 했고.”

이번에 전선 개량 작업에 돌입하면서 전선의 심장인 증기기관을 교체하고 발전기를 추가한 것뿐만 아니라 화포 역시 전격 교체되었다.

유럽의 전열함에 관련된 보고를 확인한 강평화와 최주명은 만약을 대비해 실질적인 화력을 올리기로 합의하고 화포 일부를 교체한 것이다.

덕분에 인급 전선에도 80mm 화포가 일부 탑재되었고 지급 전선의 무장은 80mm 화포로 모두 교체되었고.

어차피 인급, 지급 전선이 해군의 주력 함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 해군의 화력은 대폭 늘어난 셈이고 상징적인 천급 전선까지 추가된 만큼 굳이 철선을 전선으로 전용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이정운이었다.

그런 이정운의 반응에 김봉길이 답답해했다.

“아오.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더 큰 배와 더 강력한 화포가 필요하다고 해야지!”

“그거 낭비입니다. 낭비.”

그러면서 이정운은 투덜거리는 김봉길을 뒤로하고 천급 전선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고 건선거에 떠 있는 천급 전선이 한 척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후 다시 감탄했다.

“오. 이거 정말 장관인데요. 4척의 천급 전선이 나란히 정박한 모습이라니. 여기서 2척의 천급 전선이 4함대에 배치되는 겁니까?”

“그렇지. 어떻게 배치할지야 자네 맘이지만 분함대에 한 척 배정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

이정운은 김봉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뉴펀들랜드 섬에 천급 전선이 배치되면 곧바로 유럽에 소문이 퍼지겠군요.”

“뭐 그런 용도로 건조한 선박이니까.”

“역시 추가 건조는 없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뭐. 지급 전선은 추가로 건조하겠다던데...차라리 이 기회에 철선으로 넘어가면 좋지 않을까? 응?”

4함대 사령관으로서 자신과 함께 새한성에 이러한 요청을 하자고 채근하는 김봉길을 보고 이정운은 못 들은 척하면서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고 그런 이정운의 반응에 김봉길은 버럭댔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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