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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96화 (396/850)

396화

정성국은 집무실의 창가 인근에 냉방장치를 설치하는 장인들을 잠시 바라보다 이들과 함께 방문한 이상돈에게 말을 건넸다.

“냉방장치 개발이 생각보다 어려웠나 보네?”

“하하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보니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에 궁 안은 시원할 테니 그게 어딥니까.”

이상돈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왔다. 널 부르려고 했었는데.”

“예?”

수력발전소가 완공되었고 더 많은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반 가정집에도 전기를 쓸 수 있도록 개발청에서 공사하는 중이니 슬슬 전기를 사용하는 물품들의 생산에도 신경 쓸 때가 되었기에.

“냉장고 양산은 어떻게 되가? 올 초부터 공방이 돌아가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말이지.”

정성국의 물음에 이상돈은 최근 수력발전소가 모두 완공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 순조롭게 업소용 냉장고, 냉동고를 생산하고 있고 새한성에 추가로 전력이 공급되면서 상가에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그동안 생산해서 비축해두었던 냉장고, 냉동고가 모조리 팔렸습니다.”

“허. 그래?”

아직 냉장고, 냉동고와 관련된 신문 기사나 광고조차 나지 않았는데 불티나게 팔린다는 말에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이상돈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예. 뭐 워낙 대단한 물품이잖습니까. 직접 냉장고를 열고 그곳에서 나오는 냉기를 확인하는 순간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안 살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사야지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거기에 국영 상단에서 운영하는 음식점, 찻집에서 냉장고, 냉동고를 일제히 사들이기 시작하니 개인이 운영하는 음식점, 찻집에서도 앞다투어 사들이는 바람에 지금 냉장고, 냉동고를 구입하겠다고 신청해도 아마 겨울쯤에나 받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상돈의 부연 설명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아직 식당이나 찻집의 절반 이상이 국영 상단에서 운영했고 냉장고, 냉동고를 생산하는 것도 국영 상단이었으니 일종의 내부 거래에 가까웠기에 광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국영 상단에서 사들였다면 꼭 새한성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네?”

“그렇지요. 기차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번 여름부터는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에 사는 백성들은 시원한 음료와 차가운 빙수를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오오!”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을 때 이상돈이 덧붙였다.

“그리고 전에도 보고 했었지만, 냉동 창고의 연구도 끝난 상황이라 기차역 인근에 냉동 창고를 건설 중이고 이 냉동 창고의 건설이 완료되면 내륙에서도 생선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냉동 창고는 자체 발전기로 돌아가는 거지?”

아직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꽤 한정적이었기에 정성국이 혹시나 해서 묻자 이상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좋네. 고생했다.”

최근 넘쳐나는 식량으로 소와 돼지, 닭을 키우고 있었지만, 매일같이 고기를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 생선까지 공급한다면 북미왕국 백성들은 풍족하게 단백질 섭취를 할 수 있었으니 정성국은 무척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서 이상돈을 칭찬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가정용 냉장고의 연구는 어떻게 되가?”

기껏 열심히 공사해서 가정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이 전기로 고작 전등만 밝힌다면 아쉬웠고 전력도 각 가정에서 전등만 밝혀도 전력은 남아돌았기에 이를 묻자 이상돈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 최근에 연구를 끝냈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간을 둘로 나누고 아래쪽은 냉장고, 위쪽은 냉동고로 사용할 수 있게 말이지요. 해서 새롭게 공방을 세울 예정이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가정용 냉장고는 올해 보급하긴 어렵겠군.”

“예. 천상 내년은 돼야 할 겁니다.”

정성국은 조금 아쉬웠지만, 어차피 아직은 가정마다 전기가 공급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을 삼켰다.

그때 집무실 한쪽에서 냉방장치를 설치하던 장인이 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전하. 설치가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가동해보게.”

“알겠습니다. 전하.”

장인이 단추를 누르자 냉방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흐르자 냉방장치에서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시원한데?”

“그렇지요? 이제 여름에도 쾌적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대량 생산해야지?”

이상돈은 정성국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휴. 그렇죠. 거기에 이건 전기선만 꼽으면 되는 냉장고와는 다르게 직접 설치해야 하는지라 설치도 꽤 까다로워 단기간에 보급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이상돈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알지. 다만 지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보급하는 기간을 줄일 수 있겠지?”

이에 이상돈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바로 공방을 건설하도록 하지요.”

“아. 그리고 가능하면 공방은 새한성 말고 다른 지역에 건설하는 게 어때?”

“예?”

이상돈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설명했다.

“너무 많은 공방이 새한성에 있으니 인구가 너무 새한성으로 몰리는 느낌이라 그래.”

이에 이상돈도 계속해서 인구가 폭증하고 있는 새한성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조금 비효율적일 것 같긴 한데...정치적인 고려도 해야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세우도록 하지요.”

* * *

아이누 경비대장인 박경수는 3함대 사령부의 사령관실에서 3함대 사령관 정일신이 건네준 새한성의 명령서를 받아들고 봉인을 뜯어 그 안의 담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으음...”

정일신은 박경수에게 명령서를 전해준 후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박경수의 표정이 살짝 굳는 것을 확인하고 슬쩍 입을 열었다.

“무슨 명령이기에 표정이 그래?”

정일신의 물음에 박경수는 명령서에 고정했던 시선을 정일신에게 돌리며 말했다.

“아이누 경비대의 규모를 대폭 늘리라네요. 그리고 아이누 탐사대를 창설하라는군요.”

이에 정일신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박경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응? 아이누 경비대를 늘리고 아이누 탐사대마저 창설하라고? 잠깐. 탐사대면 기병 아니야?”

“그렇지요.”

박경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일신이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섬에서 기병을 굴릴 생각은 아닐 테고. 역시 러시아 차르국 때문인가?”

“아마도 그렇겠지요.”

정일신의 추측에 박경수가 동의하자 정일신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흠. 외교적 협상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걸까?”

“그러니 이런 명령이 내려온 거겠지만...좀 의아하긴 하네요.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은 우리 북미왕국의 국력을 인정하는 줄 알았기에 이번 문제는 외교적 협상으로 잘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박경수의 의견에 정일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투로시노를 통해 북미왕국 본토와 유럽의 사정을 어느 정도 들었고 그 때문에 본토에서 나서면 러시아 차르국에서 곧바로 사절단을 보내 이번 일을 협상을 통해 해결할 것으로 예상했었으니까.

“흠...병력을 얼마나 늘리라고 해?”

“일단 아이누 경비대는 3천 명, 아이누 탐사대는 2천 명을 모집하라는데요? 그리고 이 병력을 모두 카무이 반도에 배치하라네요.”

지금껏 아이누 경비대를 5천 명 규모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2배에 가깝게 늘리라는 명령이었으니 박경수는 당분간 바쁠 것 같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아이누 섬을 비롯한 주변 섬을 개발하면서 조선에서 말과 소를 가져온 지도 꽤 되었기에 말에 익숙한 아이누인들이 적지 않았고 덕분에 탐사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하지만 본토에서 탐사대를 창설하라고 명령했다기에 흑룡강을 통해 탐사대를 이동시켜 러시아 차르국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했던 정일신은 박경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카무이 반도? 직접 알바진을 공격할 생각은 아닌 건가?”

이에 박경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서쪽은 청나라 영토이니 함부로 병력을 움직일 수야 없는 노릇 아닙니까. 거기에 청나라는 알바진 역시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요.”

“에이. 그거야 청나라와 협상을 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지금 청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러시아 차르국 놈들을 공격하겠다면 오히려 환영할걸?”

남방의 일에 신경 쓰느라 북방의 일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정일신이 피식 웃으며 반박하자 박경수 역시 흑룡강 인근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수긍했다.

“뭐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우리 북미왕국의 무기 체계를 파악하고 화약 무기에 더 관심을 보일 테니 이를 극도로 경계하는 새한성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리가 없지요.”

북미왕국은 청나라와 활발히 교역하는 것과는 별개로 청나라를 내심 경계하고 있었고 정일신이나 박경수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도 이웃 국가가 강성해지면 골치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이런 본국의 행동에 맞춰 북미왕국의 화약 무기를 최대한 숨기고 있었고.

그런 만큼 청나라 군대가 뻔히 파악할 수 있는 흑룡강 인근에 병력을 배치하고 러시아 차르국과 제대로 붙을 리는 없다는 박경수의 말에 정일신도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서 카무이 반도에 배치하고 그곳에서부터 동진한 러시아 차르국의 세력을 서쪽으로 몰아내겠다는 건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러시아에서 새로운 차르가 등극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다시 한번 외교문서를 보낼 생각인데 그래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카무이 반도 북쪽으로 외무청과 국영 상단을 파견할 계획이라네요.”

“응? 바로 공격하는 게 아니고?”

이에 박경수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년 러시아 차르국의 일을 보고받고 박경수는 투로시노를 통해 러시아 차르국의 정보를 파악하고 저들이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아이누 섬이나 카무이 반도 북서쪽의 거대한 대지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시베리아 지역은 워낙 넓고 지형도 썩 좋지 않았기에 섣불리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위험했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러시아 차르국의 거점마저도 무척 떨어져 있는 판에 먼 거리를 이동해 이 거점들을 하나씩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아. 보급 문제가 걸린다는 거지?”

“그렇지요. 그리고 러시아 차르국이 동진한 이유는 모피 때문인 만큼 외무청과 국영 상단이 움직여 러시아 차르국에 복속한 원주민들을 회유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는 모피를 차단하기만 해도 저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외무청의 판단입니다.”

그제야 정일신은 외무청의 전략을 완전히 이해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탐사대는 외무청과 국영 상단의 호위를 하는 거겠네? 그렇게 원주민 부족을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이면 러시아 차르국이 덤비든 협상장에 앉든 반응을 할 테고?”

“예. 그런 전략인 것 같습니다.”

박경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일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 방법이네. 그럼 나중을 대비해 우리 3함대에서도 카무이 반도 서쪽 바다의 해안선 일대를 제대로 탐사해둬야겠군.”

외무청의 계획에 따르면 카무이 반도 북쪽의 원주민 부족부터 접촉해 회유해야 했는데 거대한 카무이 반도를 생각하면 육로보단 해로를 이용하는 편이 나아 보였으니까.

이에 박경수도 동의했다.

“뭐 많은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이니 그러면 좋겠네요.”

“흠. 알겠어. 인급 전선을 파견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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