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395화 (395/850)

395화

“자네. 미술관은 다녀왔나?”

정성국이 커피잔을 건네면서 집무실을 찾아온 교육청장에게 질문하자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받아 티테이블 위에 올려둔 교육청장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개관하기 전에 한 번 방문해보라고 하셔서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는데 정말 멋진 곳이더군요.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미술관도 일종의 교육 기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관람객들의 문화적 의식을 교육하는 기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교육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교육청장의 말마따나 박물관의 기본적인 기능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 기능이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미술관을 건설한 것이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네를 부른걸세.”

“예?”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자네도 미술관을 다녀왔다니 잘 알겠군. 미술관 주변은 허허벌판에 가까웠지?”

“그렇습니다. 물론 훗날에 미술관을 증축할 것을 대비해 부지를 넓게 잡은 것은 이해합니다만...조금 광활한 부지였지요.”

교육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넓은 땅이 다 미술관의 공간은 아닐세. 여러 시설이 들어설 공간이야.”

“여러 시설이라고 하시면...”

교육청장이 흥미를 나타내자 정성국이 자신의 계획을 슬쩍 내비쳤다.

“뭐 극장을 비롯한 각종 공연장도 건설할 생각이고...박물관도 건설할 생각이지. 그것도 여러 개.”

그동안 과학기술의 발전에만 매달렸던 정성국은 자신의 대에 문화를 중흥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문화 산업이 발전할 기반 정도는 다져둬야겠다고 생각했고 미술관을 시작으로 그 주변에 각종 시설을 건설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렇다고 문화청을 신설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겼기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교육청장에게 일을 맡길 생각이었고.

교육청장은 정성국이 박물관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자신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저 박물관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을 불렀다고 판단했고 박물관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질문했다.

“박물관...이요? 모든 사물을 전시하는 공간입니까?”

아직 유럽에 근대적 의미에 박물관은 없었고 애초에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근대 이후에나 쓰이는 단어인 만큼 단순히 한자를 통해 추측하자 정성국이 웃으며 말했다.

“미술관이 미술품들만 전시하는 미술박물관의 줄임말이라고 이야기하면 박물관의 개념을 잡기 쉬울까?”

이에 교육청장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미술관의 상위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비슷하네. 여러 물품을 모아 전시해 사람들의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시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걸세. 그리고 자네가 말한 것처럼 미술관을 통해 관람객들의 문화적 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면 역사박물관을 통해 관람객들의 역사적 의식을 고취할 수도 있을 테고 과학박물관을 통해 관람객들의 과학에 관한 관심과 호의를 끌어낼 수도 있겠지.”

“아! 그래서!”

정성국의 설명에 교육청장은 손뼉을 짝 치면서 소리쳤다.

정성국이 갑자기 자신에게 박물관을 꼭 방문해보라고 명령하고 다시 자신을 찾아 박물관의 일을 맡기려 한 이유를 그제야 이해한 것이다.

정성국은 교육청장이 감을 잡은 것 같았기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자네를 부른걸세. 미술품의 수집이야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나라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왕실에서 운영하는 것이 나은데...역사박물관이나 과학박물관 같은 경우는 왕실에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편이 나아 보이거든. 그리고 이를 맡을 곳은 교육청 외엔 없어 보이고.”

특히 박물관을 운영하려면 박물관에 적합한 물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해야 하는 만큼 당분간은 새한성 대학교와 연계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그런 만큼 교육청에서 이 박물관들을 관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설명에 교육청장이 수긍했다.

“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군요. 다만 새한성을 개방한 상황에서 과학박물관은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교육청장이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정성국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교육청장이 무슨 착각을 했는지 파악하고 웃으며 말했다.

“음? 아. 과학박물관이라고 해서 자네가 착각한 모양인데 과학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 않나. 자연과학이나 생물학 같은.”

“아...”

“그러니 뭐 증기기관이나 기차, 발전기 등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 지질의 표본을 수집해 전시해서 관람객들에게 자연과학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고 새한성 대학교와 연계해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 같은 세부적인 학문을 발전하는 토대를 만들 수도 있겠지.”

정성국의 자세한 설명에 교육청장은 박물관이 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렇군요.”

“그리고 자네 말마따나 우리 북미왕국의 과학, 산업기술은 무척 뛰어나니 이에 관련된 각종 물품을 전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조금은 시기상조로 보이거든. 뭐 증기기관이야 교과서에도 기본 원리가 실려있는 만큼 크게 상관없는데 이 증기기관을 가지고 움직이는 각종 물품을 전시했다간 유럽인들이 얻는 게 많을 것 같고.”

유럽은 증기기관의 개발에도 애를 먹고 있었지만 이를 응용하는 부분에서도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박물관에 떡하니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방직기, 방적기, 인쇄기 등의 실물을 전시하면 유럽인들은 이를 보고 얻는 것이 많을 테고.

“그렇지요. 그것 때문에 유럽인들의 공방 출입을 금하기도 했었으니까요.”

교육청장의 맞장구에 정성국은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해서 그건 나중에 전시실을 추가하든 따로 박물관을 세우든 하는 것으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일단 과학박물관에 전시할 물품들을 수집하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새한성 대학교에 이야기해두겠습니다.”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그러도록 하게. 아. 그리고 과학박물관 내에 의학 전시관을 만들고 의학 기술과 관련된 물품을 전시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네.”

이에 교육청장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아. 그도 그렇군요. 유럽에서도 우리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북미왕국의 의학 발전을 이끄는 우리 김 의원의 사진이나 그림도 좀 전시해두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은 새한성 대학교에서 고생하는 김 의원을 떠올리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역사박물관은 북미왕국의 역사와 관계된 물품만을 전시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에 정성국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대답했다.

“그럼. 고작 12년 된 나라인데 전시할 것이 많겠어? 당연히 우리 북미왕국을 구성하는 원주민들의 역사에 관련된 유물을 수집하고 이를 주로 전시해야지.”

하지만 정성국의 대답에 교육청장은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북미왕국이 비록 건국된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와 비교하더라도 무척 역동적이고...”

그리고 그런 교육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식겁하며 손을 들어 교육청장을 진정시켰다.

“워워. 진정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래도 그걸로는 한계가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북미왕국은 수많은 원주민 부족이 연합한 국가나 마찬가지니 이들의 역사도 결국 우리의 역사나 마찬가지라 이에 관련된 물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벅찰 테고. 한두 부족이 아니잖나. 그러니 이 부분에 더 집중하자는 이야길세.”

“음...알겠습니다.”

교육청장이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개발청도 바쁘고 한 만큼 건물은 천천히 올리라고 할 생각이니 전시할만한 물품들을 수집하고 수집한 물품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게.”

“그리 하겠습니다. 전하.”

* * *

정성국의 집무실로 갑작스럽게 개발청장과 연구청장이 찾아왔고 정성국은 이들을 바라보고 기대 섞인 눈초리로 말문을 뗐다.

“음. 개발청과 연구청의 조합이라. 자네들이 이렇게 함께 보고하기 위해 집무실로 왔다는 건...”

“그렇습니다. 슬슬 새한성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발청장이 웃으며 대답하자 정성국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오! 수력발전소 건설이 다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8곳의 수력발전소가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새한성에서 전기를 이용해 가로등에 불을 밝힌 이후 전기의 유용함을 깨닫게 된 청장들은 앞다투어 더 많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길 원했고 결국 북미왕국 곳곳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수력발전소의 건설이 드디어 끝났다고 선언하는 개발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감탄하는 사이 연구청장이 뒤이어 말했다.

“그리고 8곳의 수력발전소 모두 성공적으로 가동되어 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럼 현재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가까운 인근 지역으로 송전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작년 겨울부터 단기 교육으로 육성한 기술자들을 파견해 송전탑을 세워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가까운 도시와 인근 지역으로 송전할 수 있게 설비를 다 갖춰두었으니까요.”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활짝 웃으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럼 이제부턴 새한성의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사는 북미왕국의 백성들도 전기의 유용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뭐 아직은 단순히 전기가 공급될 뿐이지 가로등조차 설치 중인 상황이라 실제 백성들이 전기의 유용함을 누리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지만 말입니다.”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고작 가로등으로 끝낼 상황은 아니잖아? 이번에 건설한 수력발전소들의 규모는 큰 편이라 생산하는 전기가 생각보다 많을 텐데?”

“그렇지요. 해서 다른 지역의 경우 가로등을 세워 거리를 밝힌 후 관공서를 시작으로 가정집에도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다만 아직은 전기 기술자의 수가 적은 터라 각 가정집에서도 전기를 사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요.”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상황을 이해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작년부터 건설되는 건물에는 배선 공사를 필수로 하고 있지만 그 전에 건설한 건물들은 따로 배선 공사를 해야 하니...”

“그렇습니다. 물론 추가로 전기 기술자들을 더 육성하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전기 보급률이 빠르게 늘어나긴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전기는 위험한 만큼 빠르게 전기 기술자를 키우기 위해 지금의 교육을 더욱 단축할 수는 없었기에 애써 아쉬움을 삼켰다.

“알겠네. 그리고 새한성은?”

지혜로운 나무가 시범적으로 건설한 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은 큰 편이 아니었기에 궁이나 관공서에서 전기를 사용할 뿐이지 각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새한성을 비롯한 주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새한성 상류에 추가로 커다란 수력발전소를 건설했고 여기서 생산하는 전기는 기존의 전력망에 연결되어 일단 새한성으로 전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개발청장이 대답했다.

“열심히 배전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배전 공사가 완료된 가구는 새한성 전체 가구의 2할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정성국은 연구청장의 보고에 중얼거렸다.

“흠. 확실히 갈 길이 멀긴 하군. 하지만 추가로 전기 기술자들을 육성하고 있으니 2, 3년 안에 새한성 주민 모두가 전기의 혜택을 보게 될 테니 그건 고무적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현재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에 사는 백성들은 5년 안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요.”

“그래. 기대하지. 그리고 추가로 수력발전소를 더 건설할 거지?”

정성국이 개발청장에게 묻자 개발청장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번에 건설을 끝낸 수력발전소는 대부분 서쪽에 집중되어있는 터라 새롭게 건설할 수력발전소는 주로 북미 동해안 지역에 건설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북미왕국 백성 모두가 전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건설된 수력발전소는 대부분 북미왕국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실제 전기를 공급받는 지역도 서쪽에만 국한되었다.

이는 전기를 보관하기가 어려운 만큼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지역 위주로 수력발전소를 우선해서 설치하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인구가 많은 서쪽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던 것이다.

해서 이번엔 북미 동해안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생각이라는 개발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 동해안 지역이라...알겠네. 다만 자네도 알다시피 프랑스 이주민이 꽤 많이 이주하고 있으니 그것을 고려해서 수력발전소의 위치를 정하도록 하게.”

작년에 프랑스인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이후 생각보다 많은 프랑스인이 단기간에 북미 동해안 지역에 유입되었고 더 많은 프랑스인이 유입될 거라고 예상하는 만큼 정성국이 이를 상기시키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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