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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91화 (391/850)

391화

1675년도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 되자 정성국을 비롯한 관리들은 곧 신년 축제가 다가오기에 작년의 고생을 떠올리고 내심 긴장했다.

특히 북미 신문의 발행으로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다른 지역에도 관심을 두게 되면서 기차를 이용해 북미왕국 곳곳을 여행하는 백성들이 늘었고 여기에 수확이 끝나고 농한기를 맞은 농부들마저 가세하자 기차와 숙소는 항상 만석에 가까웠으니.

하지만 작년에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신년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보단 숙소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사람에 치여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관광객들의 불평을 실은 기사와 새한성으로 몰리는 관광객들을 분산하기 위해 새한성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불꽃놀이를 진행한다는 기사 덕분인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관광객들만 새한성을 찾았고 덕분에 신년 축제는 큰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다만 큰 사고가 없을 뿐이지 이런저런 사고들도 발생한 터라 이를 처리하고 수습하느라 관리들은 꽤 고생했고 덕분에 정성국은 이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신년 연휴를 즐겼다.

그렇게 신년 연휴를 즐긴 후 정성국이 1676년 처음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 집무실을 방문하자 집무실 책상 위에는 외무청의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고 정성국은 이 보고서를 확인한 후 급히 조용한 곰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이거 사실인가?”

정성국이 집무실을 들어오는 조용한 곰을 보고 보고서를 들어 올리며 곧바로 묻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갑자기 왜? 지금까지는 딱히 그런 소리 없었잖아?”

1660년 정성국이 지급 함선을 이용해 북미 대륙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때 하와이 제도의 오하우 섬을 방문한 이후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에 식수와 신선한 과일, 채소 등을 공급해주는 대신 북미왕국의 여러 물품을 얻을 수 있었고 후에는 안정적인 중간 거점을 원하는 북미왕국 덕분에 여러 지원을 받아 처음 북미왕국과 접촉했던 원주민 부족은 오하우 섬 전체를 장악하고 오하우 섬을 탐내는 다른 섬의 침입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이 건네준 철제 무기와 갑옷을 이용해 하와이 제도를 정복하기보다는 철제 농기구와 북미왕국이 건네준 작물들을 이용해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고 이를 이용해 북미왕국과 교역을 중시했고 덕분에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 수준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하우 섬의 변화를 알게 된 다른 섬의 원주민들은 당연히 이를 무척 부러워했고.

하지만 무장에서 차이가 나는지라 감히 오하우 섬을 약탈하거나 점령할 엄두는 내지 못했기에 이들의 선택은 결국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처럼 커피나 사탕수수 등을 재배해 북미왕국과 교역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그동안의 교류로 북미왕국이 무척 거대하다는 사실과 다른 섬들에서 커피나 사탕수수를 재배한다고 해도 어차피 북미왕국이 다 사들일 거라는 생각에 상품 작물과 재배법을 알려주면서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의 삶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북미왕국에서도 이러한 하와이 제도의 변화를 환영하며 각 섬의 부족과 교류해오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북미왕국과 교류하며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각 섬을 장악한 추장들은 굳이 북미왕국에 합류해 자신들의 기득권 일부를 내려놓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성국은 이런 추장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이들을 반겼고.

괜히 이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자신들끼리 살아가겠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생각을 오히려 반겼달까.

어차피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과 거래해 진주만 인근의 땅을 확보한 후 그곳에 항구를 비롯한 각종 시설을 건설해두었기에 굳이 하와이 제도 전체를 노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헌데 갑자기 이러한 추장들이 생각을 바꿔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요청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조용한 곰은 쓴웃음을 머금고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랬지요. 헌데 재작년까지 북미왕국에서 공부하던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응? 아. 그 추장들의 자제들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섬들도 북미왕국과 교역하기 시작하면서 추장들은 자신의 자식 중 일부를 북미왕국으로 보내 북미왕국의 정보를 얻길 원했고 북미왕국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이들을 받아들여 몇 년간 가르쳐왔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정성국은 다른 북미 원주민들처럼 이 추장들의 자제들이 북미왕국에서 생활한 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권유했으리라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에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어? 잠깐만. 그들이 돌아가서 북미왕국으로 합류하자고 주장한다는 건가? 전에 보고하기론 꽤 야심 찬 인물들이 많아서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어?”

이들은 북미왕국에서 교육받으면서 처음에는 북미왕국의 국력에 감탄하고 또 북미왕국을 두려워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북미왕국이 무력으로 하와이 제도를 점령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북미왕국은 오하우 섬에 건설한 항구를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지 그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일부는 하와이 제도를 정복해 추장보다 더 높은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를 파악한 외무청에서는 꽤 걱정했었고 이에 관한 보고가 정성국에게까지 올라오기도 했었다.

해서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요. 그리고 저희의 예상대로 그들 중 일부는 하와이 제도로 복귀한 후 추장들을 설득해 세금을 올리고 군대를 만들 준비를 하며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하지만 하와이 제도 전체의 원주민 부족이 그러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이 그렇지요. 이들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고 오하우 섬을 지금까지 잘 이끌어왔던 추장 역시 별다른 야심이 없던 탓이 그 자식들도 성향은 비슷했고요. 문제는 다른 섬들의 움직임이 영 심상치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배력을 강화하고 섬을 완전히 장악한 후엔 자연스럽게 하와이 제도의 통일을 노리리라는 것을 알아챘나 보군?”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섬과는 달리 오하우 섬에는 우리 북미왕국의 시설들이 있으니 섣불리 오하우 섬까지 정복하겠다고 군대를 들이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였지만 오하우 섬의 추장은 꽤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북미왕국은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이 서로 싸우기보단 북미왕국에 필요한 각종 작물을 생산해주기를 원했기에 저들이 원하는 철제 무기와 방어구 등은 넘겨주지 않았기에 다른 섬의 원주민들이 오하우 섬을 정복하겠답시고 덤빈다 한들 상대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섬의 원주민들도 북미왕국과 교역하며 각종 철제 농기구 등을 사들였고 하와이 제도 전체를 정복하겠답시고 나선다면 그 규모가 클 테니 물리친다 하더라도 큰 피해가 날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기에 오하우 섬의 추장은 북미왕국과 접촉하기 전에는 주변 부족들에 시달렸던 촌장이었던지라 북미왕국에 무척 호의적이었고 북미왕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자식들에게 북미왕국의 이야기를 듣고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북미왕국에 합류한 후 더는 외부의 침략 걱정 없이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누 족을 비롯한 북미왕국에 합류한 여러 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되자 오하우 섬의 추장은 미련 없이 진주만에 상주하는 외무청 관리에게 찾아갔고.

“그래서 오하우 섬의 촌장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렇습니다. 동시에 추장들의 자식들이 복귀한 후 주변 섬들의 움직임이 탐탁지 않았던 오하우 섬의 외무청 관리가 슬쩍 소문을 낸 모양입니다.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은 곧 북미왕국의 백성이 될 테니 더 많은 혜택을 누릴 거라고요. 또한, 오하우 섬이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북미왕국에서 오하우 섬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북미왕국 본토에서 필요로 하는 커피와 사탕수수 물량을 전부 생산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돌아가는 사정이 짐작되었기에 실소하며 중얼거렸다.

“이후의 상황은 짐작이 되는군. 다른 섬의 추장들이 이 소식에 위기감을 느꼈을 테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 자신들이 생산하는 커피나 설탕 등의 교역이 중단될 테니 지금껏 누려왔던 비교적 풍족한 생활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니까요. 동시에 이 소문이 하와이 제도 전역에 알려지면서 다른 섬의 원주민들이 불안해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래서 추장들은 즉각 오하우 섬의 외무청 관리에게 찾아와 소문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물어보았고 외무청 관리야 당연히 오하우 섬이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본토에서 직접 오하우 섬을 개발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답니다. 더불어 자국에서 필요한 커피나 설탕을 자국에서 생산한다면 굳이 타국에서 비싸게 수입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고요.”

진주만에 상주하는 외무청 관리는 가뜩이나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커피, 설탕 등의 물량이 증가하는 판국에 하와이 제도를 통일하겠다면서 한창 일해야 하는 청년들을 불러다 군사 훈련을 시키려 드는 추장들의 행태를 곱게 볼 수 없었다.

더불어 일부는 하와이 제도를 장악하면 자연스럽게 커피, 설탕 등 북미왕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장악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지금보다 더 이득을 볼 수 있다며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던 터라 조금은 공격적으로 이야기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서 다른 섬의 추장들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했다는 건가? 뭐랄까...포기가 너무 빠르지 않나?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했던 추장들이?”

상황은 이해가 되었지만, 왕이 되려고 야망을 품었던 추장들이 이렇게 쉽게 그 야망을 포기한 것이 의아했던 정성국이었다.

이러한 의문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 이전에도 북미왕국과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오하우 섬의 원주민들이고 덕분에 오하우 섬은 다른 섬에 비해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추장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도 오하우 섬이 가장 먼저 북미왕국으로의 합류하겠다고 선언했고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시간을 끌어봐야 오하우 섬만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한 작은 섬의 추장들이 즉각 자신들 부족도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겠다고 외무청 관리에게 이야기하자 이를 알게 된 나머지 추장들도 생각이 많아진 모양입니다. 그러다 하나둘 북미왕국에 합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하와이 섬의 추장마저 북미왕국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하와이 제도의 모든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셈이고요.”

더불어 지금과는 달리 북미왕국에 합류를 요청한 섬들은 결국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는 만큼 정복할 곳이 사라지는 셈이었고 아무리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다 한들 북미왕국에 덤빌 수야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덧붙이자 정성국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뭐 상황은 알겠는데...진주만을 확보한 이상 굳이 하와이 제도 전체를 북미왕국의 땅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애당초 정성국이 정말 하와이 제도를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외무청 관리들에게 이야기해서 어떻게든 이들을 설득해 진작 하와이 제도를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주만을 확보해 항구를 건설한 이상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기에 원주민들끼리 알아서 살아가게 내버려 두고 훗날 유럽 세력이 하와이 제도에 들어오는 것만 막을 생각이었고.

해서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전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만...일이 이렇게 흘러간 이상 저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피를 흘리게 될 겁니다. 그것도 전하께서 원하시는 바는 아니잖습니까. 그렇기에 진주만의 외무청 관리가 슬쩍 개입한 것이고요. 또한, 하와이 제도의 위치는 무척 중요한 만큼 이 기회에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드는 것이 북미왕국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합니다.”

“그거야 알지. 그리고 일이 이렇게 진행된 이상 저들의 요청을 거절할 생각도 없고. 다만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이 죄다 본토로 이주할까 봐 조금 걱정스러울 뿐이지.”

정성국이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을 굳이 설득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의외로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의 인구는 많은 편이었고 덕분에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상품 작물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인구가 유출되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곤란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하지만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말에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진주만 인근으로 몰려들면 모를까. 그리고 경운차를 이용해 진주만 인근만 개발하더라도 상품 작물의 생산엔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끙.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면 추장들이 불만을 표할 수 있으니 오하우 섬을 제외한 다른 섬들에도 제대로 된 항구를 건설하도록 하게. 더불어 추장들에게도 적당히 감투를 줘서 잘 달래도록 하고. 한창 왕이 될 꿈에 부풀었던 친구들이었잖아?”

“하하하.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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