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투로시노는 쾌속선을 통해 새한성에서 보낸 명령문을 확인하고 신음을 흘렸다.
“흐음...”
이에 쾌속선에서 명령문을 가져왔던 외무청 관리가 살짝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내용입니까?”
“예술품을 사들이라는군.”
“예? 그건 지금도 원상에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평국의 명령으로 원상에서는 조선의 예술품을, 주로 미술품을 하나둘 사들이고 있었다.
다만 이 명령이 정평국의 이름으로 전해졌어도 실제로는 왕실, 정확히는 정성국의 명령이라는 것과 미술품을 사들여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보여줄 목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투로시노도 원상을 도와줄 겸 그나마 친분이 있는 정태화나 유철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었고.
헌데 같은 명령이 또 도착했다는 것에 의아해하는 외무청 관리를 보고 투로시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 원상에서는 조선에서 그림을 사들이고 있지. 헌데 이젠 왜국에서도 그림을 사들이라고 하는군.”
“예? 왜국의 그림을 말입니까?”
본국에서 조선의 그림을 사들인다더니 왜국의 그림마저 사들여 전시할 생각인가 싶어 묻자 투로시노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왜란 시절 저들이 약탈해간 조선의 예술품들을 말일세.”
“아...”
외무청 관리는 조선 출신이었기에 왜란 시절 왜군들이 수많은 보화와 예술품을 약탈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본국의 명령을 이해하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의적인 표정으로 투로시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왜란 시절 저들이 가져간 약탈품들은 결국 번주들의 창고에 틀어박혀 있을 텐데 그걸 무슨 수로 사들입니까? 거기에 왜란에 참여한 번주들은 주로 저 서쪽에 있는 번주들 아닙니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상륙한 병사들은 주로 서쪽 번주들의 병사들이었고 이들이 조선의 예술품을 약탈했으니 당연히 그 약탈품은 서쪽의 번주들 손에 들어갔을 텐데 문제는 북미왕국 소속의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는 북쪽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서쪽의 번주들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투로시노도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하께서 왜국에 팔 수 있는 면직물의 양을 상당히 늘려 주었다는 점이야. 이를 이용해 봐야지.”
“아. 북부의 번주들에게 약탈한 조선의 예술품을 가져오면 면직물의 물량을 더 배정하겠다고 이야기해서 저들이 알아서 구해오도록 하겠다는 뜻입니까?”
외무청 관리의 말에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솔직히 그 방법 외엔 없지 않나. 그렇다고 큐슈나 시코쿠 지역으로 사람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긴 하지요. 허면 제가 슬쩍 이야기를 흘리겠습니다.”
직접 이야기하면 일이 커질 테니 외무청 관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내 보고서를 쾌속선에 전달했지?”
투로시노는 원상을 통해 유철의 편지를 받고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 외무청 관리에게 건넸기에 다시 한번 확인하자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북방 항로가 닫히기 전 마지막 출항이니 조선의 요청에 관련된 보고서는 바로 새한성에 도착할 겁니다. 답변이야 내년에 내려오겠지만 말이지요.”
“알았네.
* * *
정성국은 연구청의 외곽에 마련된 뼈대만 보이는 건축물 사이를 움직이는 승강기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야. 생각보다 잘 움직이는데?”
새진주에 새로운 고층 건축물을 세울 생각이었으니 당연히 승강기가 필요했고 개발청의 요청으로 연구청에서 승강기를 개발했다.
그리고 승강기가 개발되었다는 이야기와 곧 시제품을 실험한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구경하러 나왔고.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보고 정성국이 감탄하자 이 승강기 개발에 관여했던 박기동이 씩 웃었다.
“그렇지요?”
“그래. 괜찮아 보인다. 헌데 저거 안전장치는 있어?”
승강기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했다.
사람이 타고 있는 승강기가 추락이라도 하는 날엔 대참사였으니까.
특히 저 승강기가 설치될 건물은 고층 건물이었으니 더더욱.
해서 정성국이 묻자 박기동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안전장치를 고안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걸요. 그게 아니었으면 저 간단한 장치를 만드는데 왜 반년이 넘게 걸렸겠어요.”
원래 승강기 자체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다.
물론 간단히 도르래와 줄을 이용하는 방식이었고 동력은 인력이나 축력을 사용하는 원시적인 승강기에 불과했지만.
연구청에서는 이를 적당히 개량해 전기를 사용하는 전동기로 승강기를 움직이게 했을 뿐이었다.
거기에 무게추를 이용해 들어가는 동력을 줄였고 그 외에는 안전장치를 고안하는 일에 골몰했다.
물론 현대적인 승강기에 안전장치만 10개가 넘게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꽤 원시적인 안전장치 2, 3개 정도가 다였지만 정성국은 그것만 해도 어딘가 싶었다.
전생에서 루이 15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설치한 승강기는 안전장치가 없어 사고가 잦았으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 헌데 저거...승강기 중간에 구멍을 뚫어도 안전할까?”
박기동이 정성국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에? 구멍이요?”
“응. 그리고 유리를 부착하고.”
그제야 정성국의 의도를 눈치챈 박기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음. 승강기에 유리를 부착한다면 결국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서인데...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결국 저 승강기의 위치를 건물 외벽에 붙여야겠군요. 그리고 승강기가 움직이는 통로 한쪽도 창문 형식으로 만들어야 할 테고.”
“그렇지.”
“알겠습니다. 바로 개조해 실험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개발청에도 이야기해두고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10m 높이의 건물 사이를 계속해서 움직이는 승강기를 바라보다가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에 박기동이 정성국을 따라오면서 질문을 던졌다.
“헌데 모든 승강기를 그렇게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설마. 이번에 새진주에 건설되는 건축물은 첫 고층 건축물이니만큼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이 많을 테고 그중에는 건축물의 옥상에서의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 그들을 위해 만드는 것일 뿐이야. 승강기가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승강기를 무서워하지도 않을 테고.”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겠군요.”
“아니면 겁에 질리거나.”
“큭큭. 그렇기는 하죠.”
그렇게 승강기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던 정성국은 문득 연구청 뒤쪽 공터 쪽의 잡다한 발명품들 가운데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음?”
정성국은 자신이 제대로 본 것이 맞는가 싶어 눈을 비벼본 후 여전히 그 물체가 보였기에 다가가며 박기동에게 물었다.
“이건 뭐야?”
“예? 아...”
정성국이 가리킨 물체는 일종의 오니솝터였다.
오니솝터는 새가 하늘을 날듯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의미하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케치한 오니솝터가 대표적이었고.
헌데 그러한 물건이 연구청 공터 한구석에 박혀있었기에 정성국이 황당하다는 듯 묻자 박기동이 입을 말했다.
“작년에 들어온 신입 연구원이 만든 날틀이에요.”
“날틀?”
“예. 새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관찰해 설계했다고 하더군요. 경유기관을 이용해 새처럼 저 날개를 움직인다면 사람도 저 날틀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지 않겠냐면서요.”
이에 정성국은 무척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비행기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저 오니솝터를 설계한 신입 연구원이 정성국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를 보았을 리도 없으니 결국 신입 연구원은 박기동의 설명처럼 새의 움직임을 보고 이를 설계한 셈이니 여러모로 놀랍기도 했고.
“그래서?”
정성국이 저 날틀에 무척 흥미를 보이자 박기동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턱도 없어 보이긴 했어요. 하지만 발상이 괜찮아 보였고 설계도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물론 결함은 조금 있었지만. 아무튼, 실패해도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 싶어서 제가 설계도를 일부 수정하고 장인들을 붙여 만들어보라고 했죠. 그리고 예상대로 실패했고요.”
뭐 성공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도 보고가 올라왔을 테고 이렇게 초라하게 공터 한구석에 처박혀 있지도 않을 테니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이 오니솝터가 실제 움직이며 날개를 파닥이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던 정성국이 박기동을 보고 타박했다.
“그래? 야. 넌 그런 재밌는 이벤...아니 일이 있었으면 나를 좀 부르지.”
“실패할 것이 뻔한데 바쁜 스승님을 부르라고요? 됐습니다.”
최근 하얀 들꽃이 정성국의 업무를 일부 맡아 도와주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정성국은 워낙 많은 일을 하고 있는 터라 바쁘다는 것을 잘 아는 박기동이었기에 그게 말이 되느냐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이에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정성국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오니솝터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전혀 동작하지 않았던 거냐?”
“아뇨. 제가 설계도를 수정했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계대로 날개가 움직이긴 했지만...그 정도로 저 동체를 띄울 수는 없었을 뿐이죠.”
“흐음...”
이 날개를 움직이는 방식은 새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니만큼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날기 위해 애를 썼다.
주로 팔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파닥인다든가 하는.
다만 그러한 방식으로는 이 물체와 인간의 무게를 띄울만한 양력을 얻을 수 없었고 이는 어지간한 동력으로도 쉽지 않긴 했다.
그러니 경유기관을 이용했다 한들 날개만 파닥이고 끝났으리라 짐작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뒷이야기를 물었다.
“그래서?”
이에 박기동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끝인데요?”
“저걸 더 연구하지는 않고?”
정성국이 되묻자 박기동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은 기계를 이용해 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응.”
정성국이 단호히 대답하자 박기동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날틀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제 생각에 저 방식으로는 힘들어 보이는데요. 신입은 경유기관이 더 발전해 빠르게 날갯짓을 하면 날틀을 하늘에 띄울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제가 보기엔 나는 것과는 별개로 날갯짓의 반동 때문에 사람이 타는 것은 무척 위험해 보이거든요. 해서 연구를 접었고요.”
어차피 날개를 직접 움직여 양력을 얻는 방식은 효율이 무척 떨어진다는 것을 아는 정성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물론 저런 방식은 네 말대로 반동을 잡기 전에 안정적인 비행은 어렵지. 하지만 새가 꼭 날갯짓만 해서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니잖아?”
“활공하는 모습을 이야기하시는 거군요.”
“...바로 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에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박기동을 바라보았고 박기동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거 때문에 새를 좀 관찰하긴 했거든요.”
그 말에 정성국도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그래. 날개를 고정하고 경유기관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을 사용하면 충분히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신음을 흘렸다.
“으음...공중에 떠서도 추진력을 유지하려면 경유기관에 바퀴를 연결하는 것은 안 되겠네요.”
“회전날개를 이용해야지.”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국의 통찰력을 생각해보면 분명 날틀을 만들 수 있어 보였는데 그렇다고 이것에 매달리자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흠. 이거 갑자기 일이 엄청 늘어나는 느낌인데요.”
그런 박기동을 보고 정성국은 혀를 찼다.
“쯧쯧.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날틀을 설계했다는 신입 연구원이 꽤 쓸만해 보이는데 그 친구에게 맡겨. 그리고 네가 적당히 관여하고.”
그 말에 박기동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네요. 이 소식을 들으면 하얀 수리 녀석이 무척 좋아하겠군요.”
“응? 하얀 수리? 원주민 출신이야?”
“예. 윈투 족 출신으로 초등학교에서 새한성 대학교까지 졸업한 우리 북미왕국의 교육 체계가 만든 인재라고 할 수 있지요.”
이에 정성국은 교육의 성과가 보이는 듯했기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교육에 매달린 보람이 있군. 나중에 그 녀석 나한테 데려와. 이야기 좀 하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