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385화 (385/850)

385화

이정운 4함대 사령관은 갑작스럽게 집무실에 들어온 외무청 관리의 보고에 활짝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이번에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한 에스파냐 어선 선단에 약 800명가량의 프랑스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북미왕국의 포로로 1년 가까이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본국으로 돌아간 프랑스 병사들이 드디어 뉴펀들랜드 섬을 드나드는 어선을 타고 북미왕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이정운은 화색이 돌 수밖에 없었다.

이미 북미왕국에서는 프랑스 포로 중 일부는 다시 북미왕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 포로수용소 일부를 광산 도시로 완전히 바꾸어두기도 했고 누벨 프랑스 지역 곳곳에 마을을 건설하고 경운차를 이용해 밭을 개간해두기도 했다.

더불어 뉴펀들랜드 섬의 외국인 거주 구역을 대폭 확장해 어선을 타고 올 프랑스 이주민들이 편히 쉴 공간도 마련해두었고.

헌데 지금껏 프랑스인이 단 한 명도 이주하지 않았고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한 어부들에게 물어보아도 프랑스인은 안 보인다는 이야기에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8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어선을 타고 북미왕국에 도착했다니 다행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주민이 나타나지 않아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헌데 의외로 이주민이 많은데?”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인 사실은 어부들이 출발하기 전에도 그들의 마을에 계속해서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도착한 에스파냐 어부들은 에스파냐의 바스크 지역 출신이었고 이 바스크 지역은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과 인접해 있었기에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한 프랑스인들이 육로를 통해 바스크 지역으로 하나둘 몰려들고 있다는 설명에 이정운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그래?”

“예. 선장들이 이야기하기를 이미 한계까지 태운 상황이라 더 태우긴 위험하다고 판단해 뒤늦게 온 프랑스인들은 내버려 두고 출항했다고 하더군요.”

“어? 내버려 뒀다고? 그럼 배에 타지 못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돌아갈 때까지 알아서 잘 지내지 않겠느냐고 하긴 하던데 말이지요...”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이정운은 살짝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헌데 저들이 이곳에서 돌아가려면 못해도 반년은 더 걸리지 않나?”

유럽에서 온 어부들이 이곳에서 주로 잡는 어종은 바로 대구였다.

대구는 기름기가 적은 편이라 소금에 절이고 잘 말리기만 하면 거의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기에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식재료였는데 이렇게 손질하고 말리는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고 어선의 경우 속력이 빠른 편도 아니었기에 이정운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자 외무청 관리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프랑스인들을 태우고 오면 어부들에게 저희 북미왕국에서 뱃삯을 대신 내어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해서 지금 뉴펀들랜드에는 도자기나 설탕, 비단 등이 꽤 많이 보관되어 있지 않나?”

북미왕국에서는 프랑스인들이 뱃삯 때문에 이주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어부들에게 프랑스인을 태우고 오면 자신들이 대신 뱃삯을 내어준다고 선언했고 올해 프랑스인들이 이주할 것을 대비해 꽤 많은 물품을 이 뉴펀들랜드 섬의 창고에 가득 보관하고 있었다.

해서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외무청 관리가 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이번에 프랑스인들을 태워 온 선장들에게 적당히 대가를 내어주었고요. 헌데 이 대가가 저들의 기준으로는 생각보다 많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현지에서 팔리는 가격이 저희 예상보다 더 높을 수도 있고요.”

“아. 그럼...?”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이정운이 놀란 표정을 짓자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들로서는 이곳에서 몇 달 동안 생선을 잡고 손질하고 이를 말리고 가져가 파는 것보다 바로 되돌아가 프랑스인들을 태워오는 것이 더 이득인 상황이지요. 해서 도자기와 비단 등을 받자마자 바로 돌아갈 채비를 하더군요.”

이에 이정운은 묘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중얼거렸다.

“이것 참. 우리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긴 한데...”

“예. 어선의 선장들이 그렇게 행동해주면 일단 우리에게도 이득인 만큼 일단은 모른척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에스파냐 어부들이 프랑스인들을 가득 태워와서 저희에게 비싼 교역품을 받고 바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이미 뉴펀들랜드 섬에서 머물며 고기를 잡던 어부들도 꽤 동요하는 눈치였습니다.”

외무청 관리의 설명에 이정운은 어부들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중얼거렸다.

“아마 저들의 마을에도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면 한 몫 챙길 수 있을 테니...”

“그렇습니다. 해서 이미 뉴펀들랜드 섬에서 조업 중이던 다른 지역의 에스파냐 어부들은 이미 조업을 중단하고 상의 끝에 돌아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바스크 지역의 어부들이 프랑스인을 태워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했고 북미왕국은 약속대로 도자기와 비단 등을 내어주자 이를 목격한 어부들의 눈은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바스크 지역에는 이주를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바글거린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이베리아 반도 최북서단에 위치한 갈리시아 출신 어부들과 그 동쪽에 위치한 아스투리아스 출신 어부들은 상의 끝에 조업을 중단하고 회항하기로 정했다.

잘만하면 몇 배는 더 벌 기회를 놓칠 수야 없는 법이었기에.

“허. 이것 참...어부가 아니라 수송선의 선장이 되어버린 셈이로군.”

외무청 관리의 이야기에 이정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리고 에스파냐 어부들의 행동에 다른 나라의 어부들도 꽤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에스파냐 어부들의 경우는 이미 프랑스에 가까운 바스크 지역에 북미왕국으로 이주를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회항을 결정했지만 다른 나라 어부들의 경우는 그게 아니니까요.”

“그렇겠지. 최근 뉴펀들랜드 섬으로 조업하러 왔으니 아직 말려 둔 생선도 얼마 없을 텐데 잘못하면 꽤 손해를 볼 수 있을 테니...”

“예. 도박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다만 일부 어선에 얼마 안 되는 말린 생선을 싣는 것을 보면 일부 어선을 회항시켜 상황을 확인할 생각인 듯하더군요. 그리고 자신들의 마을에도 뒤늦게나마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존재한다면 곧바로 회항할 테고요.”

외무청 관리의 보고에 이정운은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잘 하면 생각보다 많은 프랑스인을 이주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조촐히 가족들까지 온 사람도 있지만, 일가친척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이주한 자들도 꽤 있으니까요. 800명 중 실제 회수한 삼태극이 그려져 있는 주머니는 고작 50장 정도에 불과하고요.”

이는 프랑스 포로 한 명당 평균 16명의 사람과 함께 이주했다는 뜻이었기에 이정운은 혀를 내둘렀다.

“허. 생각외로 많은데?”

이에 외무청 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외무청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함께 이주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북미왕국은 북미 동해안을 개방하지도 않았고 마음대로 이주할 수 없다 보니 이주하게 되면 더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자신들이 이주할 때 주머니를 사용하게 되니 저들을 추가로 데려올 수 없다고 판단해 최대한 설득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걸렸고요.”

돌아가자마자 바로 이주할 분위기였던 프랑스 포로들의 이주가 왜 이렇게 늦어진 것인지 파악한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면 슬슬 프랑스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겠군?”

“그럴 것으로 예상합니다. 더불어 이번에 이주한 전 프랑스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희가 나눠준 주머니가 일종의 이주 허가증으로 알려져 꽤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답니다.”

“응? 그걸 누가 사?”

이정운이 의아한 듯 묻자 외무청 관리가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개중에는 이주를 결심한 병사들이 남는 가족을 위해 사는 경우도 있었고, 북미왕국의 통치가 관대하다는 것과 주머니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주로 위그노들이 사들이고 있답니다.”

“위그노면...그 개신교도들?”

“그렇습니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를 뜻하는 말로 1598년 앙리 4세의 낭트칙령 이후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여러 권리를 인정받았었지만, 지속적인 탄압과 반란 때문에 보장받았던 정치적, 군사적 자치권은 모두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나마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인 이유로 신교도 국가의 편을 들었고 덕분에 이들을 조금 유화적으로 대하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1661년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하면서 다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위그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주로 네덜란드, 프로이센 같은 신교도 국가들로 이주했고.

그러다 유럽에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지고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위그노들은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도 고려했지만, 아직 북미왕국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고 북미왕국이 이주를 받아들일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택할 수는 없었다.

헌데 프랑스로 귀환했던 병사 일부가 가족, 친인척, 지인들을 설득해 이주를 결정하고 에스파냐의 바스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위그노들의 세력이 강한 프랑스 남부를 지나치게 되었고 그러면서 북미왕국의 정보가 제한적이나마 알려지게 되면서 위그노들은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매력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으며 이들의 통치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한다면 무척 관대한 편이었고 북미왕국의 물자가 넘쳐나는 터라 생필품의 가격도 싼 편이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니.

특히나 북미 동해안 지역에 남았던 잉글랜드인들이 무척 잘살고 있었다는 병사들의 이야기와 맨몸으로 이주한다 해도 북미왕국에서 경작할 밭을 내어주거나 광부가 되면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에 위그노들 일부는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했다.

해서 네덜란드나 프로이센으로 이주하려고 준비했던 위그노들은 바스크 지역으로 이동하는 병사들에게 적당히 대가를 지불하고 이 이주 행렬에 끼어들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이주 허가증으로 알려진 주머니를 구하고 있었고.

이정운 역시 4함대를 맡으면서 유럽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외무청 관리의 이야기에 혀를 차면서도 북미왕국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기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종교가 다르다고 자신의 백성을 핍박하는 군주와 관리라니...뭐 저들의 사정이 딱하기는 한데...덕분에 위그노들이 대거 북미왕국으로 이주한다면 우리로선 나쁠 것은 없겠군.”

이에 외무청 관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북미왕국의 법을 준수한다면야 전혀 나쁠 것이 없지요.”

“그러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프랑스인이 이주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지요. 해서 행정청과 개발청에 더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할 생각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이정운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래야지. 우리 예상으론 몇 년에 걸쳐 2, 3만 명가량이 이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거 어째...”

북미왕국에서는 포로 생활을 했던 프랑스인 3만 명 가운데 5천 명 정도가 실제 이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이곳은 여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렸으니 이주민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가정을 이루고 올 것으로 생각해 실제 이주민은 2, 3만 명가량으로 예상한 것이고.

헌데 포로수용소임에도 불구하고 북미왕국의 생활이 무척 만족스러웠을뿐더러 떠날 때 포로들에게 은을 지급하자 북미왕국이 무척 부유하다는 것을 확신한 프랑스 병사들은 주변 가족, 친척, 지인들까지 설득해 이주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위그노들까지 북미왕국으로의 이주에 끼어들었으니 북미왕국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주민들이 몰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 그보단 많은 수가 이주할 것 같습니다.”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운은 격무에 시달리는 개발청 관리들과 이 이주민을 감당해야 하는 행정청 관리들이 안쓰러워져서 중얼거렸다.

“이거 당분간 개발청, 행정청 관리들은 죽어나겠군.”

“하지만 이주민들이 생각보다 많이 온다면 누벨 프랑스 지역의 개발이 빨라질 테니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이를 알리면 새한성에서도 추가로 지원해주겠지요.”

이에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렇기야 하지. 문제는...지금 뉴펀들랜드 섬을 드나드는 어선들이 열심히 이주민을 실어나른다고 해도 그게 감당이 되려나 모르겠는데...”

이정운의 지적에 외무청 관리가 얼굴에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예. 확실히 그게 좀 걱정스럽긴 합니다. 지금도 한계까지 태워오는 터라 이주민들의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주민들이 타국에서 배를 기다리며 오래 머물다 보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고요.”

외무청 관리는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이정운을 바라보았지만, 이정운이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쓱했다.

“흠...일단 새한성에 보고를 올리도록 하지. 이건 위쪽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 같으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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