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정성국은 오랜만에 궁궐을 나와 외곽의 한 공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정평국과 장인들이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었고.
정성국은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뒤쪽에 놓여있는 자전거를 보고 씩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오. 이거야? 잘 만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정성국이 자전거에 걸터앉자 여러 장인이 움찔했고 정평국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정성국은 정평국의 만류에도 씩 웃고는 그대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이에 호위대장을 비롯해 정평국과 장인들은 기겁했지만,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정성국은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공방 앞 공터를 뺑뺑 돌다가 정평국 근처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야. 이거 괜찮은데?”
하지만 정평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거 왜 이리 잘 타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꾸준히 운동해 왔으니까.”
그 말에 정평국도, 다른 장인들도 의아한 듯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그것과는 별개던데...”
그렇다고 전생에서 타봤다고 이야기할 수야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은 이를 못 들은 척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살펴보다 말했다.
“흠. 생각보다 튼튼하네.”
이에 국영 상단 소속의 장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지적하신 대로 나무에서 철로 틀을 변경하면서 더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탑승자가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바퀴에는 고무를 덧대었고요.”
“덕분에 어디서나 이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뒤이어 정평국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세...아무리 고무를 덧대었어도 도로가 제대로 깔리지 않은 곳에선 타기 어려울 것 같은데...”
“뭐 많이 흔들리기는 하지만...그렇다고 아예 못 탈 정도는 또 아닙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아무튼, 잘 만들었네. 이거 양산해서 보급하면 북미왕국 백성들이 조금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군.”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과 장인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가 개발되고 철도가 깔린 이후에 먼 지역으로의 이동은 오히려 편리해졌지만 가까운 곳에서의 이동은 여전히 불편했다.
걷거나 말을 타는 방법뿐인데 말의 경우 관리가 쉽지 않았기에 주로 행정청에서 운용하는 마차를 이용했고 이에 행정청에서는 새한성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계속 마차의 수를 늘리고는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여전히 이동수단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성국은 정평국에게 말해 국영 상단의 장인들에게 자전거를 만들게 했고.
시제품을 보고 다시 조언한 끝에 전생의 철제 자전거가 완성된 것이다.
“다만...이 앞쪽에 커다란 바구니를 달자.”
“바구니요?”
“그래. 짐을 실을 수 있게 말이야. 그리고 뒤쪽에도 커다란 바구니를 달거나...혹은 사람을 태울 수 있게 평평한 안장을 다는 것도 괜찮겠네. 그럼,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실을 수도 있으니까.”
“음...그거 괜찮네요.”
더불어 세세한 것들을 지적한 정성국은 자전거의 손잡이를 정평국에게 넘기며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평국아.”
이에 정평국은 알겠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예. 형님. 바로 저 자전거를 생산할 공방을 건설하겠습니다.”
정평국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정성국은 옆에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전거를 살펴보던 박기동을 불렀다.
“기동아.”
이에 박기동은 관찰하고 있던 자전거를 장인에게 넘기고 정성국에게 다가왔고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할지 짐작하지?
“뜬금없이 절 왜 부르셨나 했더니...국영 상단에서 이런 신기한 이동수단을 개발 중인 줄은 또 몰랐네요. 아마 스승님께서 절 부르신 이유는 이 자전거를 개량해보라는 뜻이겠지요? 그것도 기관을 이용해서?”
“그래도 되고...아예 이 원리를 이용해 구조 자체를 바꿔도 되고.”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기동은 시선을 돌려 다시 자전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크기를 보면 경유기관을 더 소형화하고 출력도 낮춰서 부착하면 될 듯 한데...”
“그렇다고 너무 출력을 낮추지는 말고.”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생각보다 빨라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냐. 일단 기관을 부착한 건 민간에 팔기보다는 마차를 끄는 말을 대신하려고 만들려는 거라...”
정성국의 말에 기관을 탑재한 자전거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 생각인지 파악한 박기동이 탄성을 질렀다.
“아. 말 대신 경유기관을 탑재한 자전거로 마차를 끌겠다는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언제까지 말똥을 치우느라 고생할 수는 없잖아? 냄새도 그렇고.”
아침마다 환경 미화 공무원이 열심히 말똥을 치우긴 하지만 점차 거리를 오가는 마차가 늘어나고 날이 더워지면서 거리에는 말똥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경운차를 개조해 버스를 만들어볼까도 고민해봤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고 경운차로 마차를 끄는 것도 경운차의 속력이 느렸기에 마땅치 않았다.
해서 일단은 비교적 제작이 쉬워 보이는 오토바이와 유사한 동력 자전거의 개발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정성국의 투덜거림에 박기동은 피식 웃고 자전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하지요. 흠...그럼 바퀴의 폭도 넓히고...대대적으로 개조하긴 해야겠네요. 스승님의 말씀처럼 아예 구조 자체를 적당히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고. 알겠습니다. 바로 연구에 착수하도록 하지요.”
“그래. 고생 좀 해라.”
* * *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조용한 곰의 보고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미시시피 강 유역의 보급 기지 주변 부족들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기로 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이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 초 미시시피 강 유역의 두 곳에 보급 기지 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외무청 관리들이 다수 배치하긴 했지만,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 합류를 결정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달까.
“이거...너무 빠른 것 아닌가?”
정성국의 그러한 반응에 조용한 곰도 처음 보고를 접했을 때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말이 통하기에 설득하기 쉽기도 했고 계속해서 보급 기지에 각종 물자가 쌓이고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이러한 물자를 더 싸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미시시피 유역의 원주민들은 꽤 흔들리는 눈치더군요. 그리고 최근 보급 기지의 방어를 위해 군사청에서 탐사대 일부를 배치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말을 타고 이동하며 사냥하는 모습을 본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택했습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공격할 것으로 생각한 건가?”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북쪽의 보급 기지 주변의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다른 부족들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전생의 세인트루이스 인근 부족들은 세력이 그다지 강성하지 못했기에 가끔 주변 부족들이 약탈하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미시시피 탐사대가 이들과 접촉해 내어준 여러 물품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몇몇 부족이 이를 탐내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소규모 분쟁이 발생하고 있던 터라 저들이 쉽사리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정했다고 설명하자 상황을 짐작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해했네. 그럼 북쪽의 보급 기지 주변 원주민들은 그렇다 치고...남쪽의 보급 기지 주변의 원주민들은?”
정성국이 멤피스 인근의 원주민들에 대해 묻자 조용한 곰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처음 탐사대를 목격한 원주민들은 무척 겁에 질린 눈치였다고 합니다.”
“응? 겁에 질렸다고?”
“그렇습니다. 탐사대와 함께 온 말을 보고 기겁하더군요.”
“대체 왜? 아...설마?”
의아한 표정을 짓던 정성국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1539년 멕시코 북쪽 지역을 탐사하라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명령을 받은 에르난도 데 소토는 600명의 부하를 이끌고 플로리다 지역에서 원주민들과 싸우며 북쪽으로 이동했고 캐롤라이나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미 내륙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541년 5월에 미시시피 강을 발견하고 신성한 영혼의 강이라는 이름의 ‘리오 데 에스피리투 산토’라고 이름 붙이고 주변을 금이나 은을 찾기 위해 인근을 샅샅이 뒤지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에르난도 데 소토는 열병에 걸려 사망한다.
그 이후 부하들은 배를 만들어 미시시피 강을 타고 내려와 복귀하고.
미시시피 유역은 꽤 비옥했던 터라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농경 생활을 하며 도시를 이룰 정도로 번성했었지만 15세기 이후 차츰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에서 이 에스파냐 탐사대가 가져온 전염병이 퍼지면서 문명 자체가 완전히 몰락해버렸고 인구는 대폭 줄어들어 다시는 미시시피 문명이 재건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한 정성국이 설마 하는 표정이자 조용한 곰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족 주술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옛날에 자신들과는 생김새가 다른 인간들이 말을 타고 방문한 적이 있었답니다. 헌데 그들이 방문한 후 저주를 받은 듯 부족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 나갔다고 하더군요.”
“쯧쯧. 역시 전염병을 옮긴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말이 보이자 기겁한 모양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상황을 이해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예전에 방문한 자들로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해서 이들을 설득하는데 진땀을 뺐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잘 설득한 모양이군.”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조금 묘한 표정으로 슬쩍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죽어 나간 것은 저주가 아닌 전염병이고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일부 병을 예방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 있으니 북미왕국 합류해야 한다고 강권하자 원주민 부족들은 고민 끝에 이에 응했다고 하더군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설득 맞아? 왠지 질병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협박한 것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인가?”
이에 조용한 곰은 슬쩍 시선을 피했고 정성국은 한숨을 쉰 후 입을 열었다.
“휴우. 뭐 이미 지나간 일이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겠네. 그리고 저들이 무슨 생각으로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했든 저들은 이제 북미왕국의 백성이니 최대한 지원해주도록 하게. 그래야 저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원주민들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할 테니.”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안도하며 급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개발청, 관리청, 행정청, 교육청에 이미 이야기를 다 해두었고 전폭적으로 도와주겠다는 확답도 받았습니다.”
“그렇담 다행이고. 그리고 그린란드는?”
“외무청 관리가 그린란드의 원주민을 설득하고 있기는 한데...저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과는 별개로 꼭 북미왕국에 합류해야 하는지는 의문을 표하는 터라 설득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정성국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조용한 곰은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이를 파악한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미시시피 강 유역의 원주민들이 여러 상황 때문에 빠르게 북미왕국으로의 합류했을 뿐인데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이 당장 합류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뻔히 보였으니까.
“뭐 이미 북미 신문에 그린란드 원주민의 존재를 알렸고 뻔히 이를 알고도 유럽에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네. 천천히 설득하게. 너무 강압하거나 채근하지 말고. 춥고 척박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니만큼 기질이 강할 거야. 잘못하면 오히려 상황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런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만 원주민 중 모험심이 강한 젊은 친구들을 설득해 조만간 새진주로 데려올 생각이라고 하니...새진주를 방문한다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누이트를 비롯한 북방 원주민들은 대대로 추운 곳에서 살다 보니 따듯한 곳에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어 섣불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전생에선 실제로 북극해 주변에서 살던 이누이트들이 따뜻한 남쪽으로 이주한 이후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걸려 태반이 사망한 예도 있었고.
물론 북미왕국의 의학이 발전에 어지간한 예방 접종을 다 할 수 있다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아직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다 보니 이 점이 걱정된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으음...저들은 추운 곳에서만 살던 친구들이라 조심해야 할 걸세. 잘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군요. 허면...상황을 봐서 겨울에 방문하도록 권하던가 해야겠습니다.”
“그래. 차라리 그편이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