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한참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집무실로 이동해 업무를 시작할 시간에 조리실에서 숙수들과 함께 이상돈과 장인들이 가져온 냉장고, 냉동고를 구경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크네?”
정성국이 연구청에서 보았던 냉장고 시제품은 높이가 약 1.5m 정도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였는데 반해 지금 조리실에 설치 중인 냉장고, 냉동고는 전생의 업소용 냉장고보다도 조금 더 커 보였다.
해서 정성국이 놀란 듯 중얼거리자 장인들에게 설치하라고 명령하고 슬쩍 뒤로 빠져 정성국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이상돈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 시제품은 작아서 궁에서 쓰기는 좀 그렇죠. 해서 일부러 크게 만든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투박하고 거대한 냉장고, 냉동고를 살펴보다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쁘지 않네. 저 크기로 양산하면 되겠다.”
“예? 저건...너무 크지 않나요?”
이상돈의 의문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 크기는 되어야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지 않겠어?”
“아. 식당! 확실히 식당이라면 그렇겠네요.”
이상돈이 수긍하자 정성국이 덧붙여 설명했다.
“어차피 새롭게 건설 중인 수력 발전소가 완공되기 전까지 전기가 여유로운 편은 아니니까...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기보단 관공서나 식당 같은 곳을 우선해서 전기를 공급할 생각이야. 그러니 일단 저걸 양산하고...냉장고와 냉동고를 하나로 합친 가정용 냉장고를 연구해보라고.”
“알겠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냉동고의 개발은 빨리 끝냈네?”
이에 이상돈은 뭐 어려울 것이 있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단열에 더 신경 쓰고 증발기 부분만 촘촘하게 깔아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만 만들면 되니까요. 냉동고의 개발 자체는 이전에 끝났습니다. 다만 여러 실험을 하느라 실제 제작이 늦춰진 거죠.”
“아. 식품의 장기 보관 실험 말이지?”
“예. 스승님의 말씀처럼 냉장고로는 장기 보관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해서 배의 경우 냉장고보다는 냉동고를 크게 만들어야 할 것 같더군요.”
이상돈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배의 경우는...냉동고를 크게 만든다고 감당이 되겠어? 아예 냉동 창고를 만들어야지. 특히 이주 선단의 경우에 말이야.”
조선 조정의 호의와 원상의 노력 덕분에 지금도 꾸준히 조선 유민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 중이었다.
그리고 조선 유민 중에는 뱃멀미로 고생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기에 조선 유민들의 편의를 위해 가장 큰 천급 함선을 배정하고 있었고 초창기와는 달리 유민들의 쾌적한 선상 생활을 위해 배에 타는 인원도 줄이긴 했다.
하지만 이주민과 선원까지 합하면 그래도 600명가량은 되었기에 이들이 소비하는 식량을 생각하면 냉동고를 얼마나 크게 만들든지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정성국이 지적하자 이상돈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냉동 창고도 연구 중이긴 합니다.”
“어? 그래?”
“예. 이미 냉동차의 개발은 끝났고...냉동차를 통해 운반한 물품을 임시보관하는 냉동 창고가 필요하긴 하니까요. 해서 연구 중이었고 그 연구가 끝나면 이를 이용해 배에 냉동 창고를 설치하면 되겠지요.”
정성국은 이상돈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냉동차라면...냉동장치를 설치한 칸이지?”
“그렇습니다. 기동이가 발전차를 이미 설계해 두어서 발전차 하나당 냉동차 10칸까지는 연결해 냉동시킬 수 있습니다.”
박기동이 지혜로운 나무를 도와 발전기를 개량해 이전의 발전기보다 훨씬 효율적인 발전기를 새로 개발했다는 보고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발전기를 이용해 발전차를 설계 중이라는 보고도 받았고.
헌데 어느덧 이 발전차의 설계가 끝난 모양이었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호오. 그래? 그럼 기차에서도 본격적으로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해서 조만간 모든 객차에는 전등이 설치될 테니 더는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등불을 관리할 필요는 없겠지요.”
지금껏 전기를 이용하지 못했기에 해가 진 후에는 등불을 사용했다.
물론 여러 안전장치 덕분에 화재의 위험성이 적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승무원들은 해가 떨어지면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
허나 객차 안에 전등이 설치되면 이러한 수고가 줄어들게 되니 정성국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발전차를 이용해 기차에서도 전기를 사용하게 된 만큼 전기를 이용한 냉난방 장치를 개발해 객차 안에 설치한다면 더 쾌적한 기차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해서 정성국이 이상돈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잠깐만. 어차피 냉장고나 에어컨이나 원리는 같잖아? 냉장고의 확장판이 결국 에어컨이지. 거기에 냉동 창고마저 연구할 정도면...’
“상돈아. 냉동 창고를 연구 중이라면...하는 김에 하나만 더 연구해 봐라.”
계속해서 일거리를 던져주는 자신의 스승을 보고 한숨을 내쉬던 이상돈은 정성국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에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뭐를요?”
“냉방장치.”
“냉방장치요?”
“그래. 방 안에 설치해 온도를 낮춰주는 장치랄까. 그게 있으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지.”
윌리스 캐리어가 습도 조절을 위해 개발한 에어컨이 실제 사용되면서 지구상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지역은 무척 넓어졌다.
특히 고온 다습한 남아시아 지역이나 서아시아 지역의 경우 에어컨이 없었다면 제대로 된 대도시를 이루고 발전하긴 쉽지 않았을 테고.
또한, 북미왕국에서도 새한성까지는 그나마 괜찮지만,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그리고 플로리다 지역의 경우 여름엔 무척 더운 편이라 한낮에는 건강을 위해 자율적으로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있기도 했고.
그런 만큼 에어컨을 개발한다면 이 지역의 백성들이 훨씬 쾌적하게 지낼 수 있고 그러면서 업무의 효율은 더 높아질 테니 정성국으로선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상돈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중얼거렸다.
“어?! 그렇네요? 방 전체에 증발기를 설치하면...”
이상돈의 중얼거림을 듣고 정성국은 기겁해 손을 내저었다.
이상돈은 냉동 창고의 방식을 응용해 방을 일종의 냉동 창고로 만들어 온도를 낮출 생각인 듯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설치가 무척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기에.
“야. 더위를 피하려다 얼어 죽을 일 있냐. 거기에 그런 식이면 설치가 너무 번거롭지. 냉장고랑 비슷하게 만들면 돼. 다만 응축기 부분을 외부로 빼서 흡수한 열을 외부로 방출해버리라는 거지.”
냉장고와 에어컨의 원리가 거의 흡사한데도 불구하고 냉장고의 문을 열어두면 오히려 방 안의 기온은 올라가고 에어컨의 경우, 방 안의 기온이 내려가는 이유가 바로 이 응축기 부분의 위치였다.
냉장고든 에어컨이든 원리는 결국 냉매를 순환시키며 열을 흡수, 방출해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었는데 냉장고의 경우 냉장고 뒤편에 응축기가 존재했기에 흡수한 열을 뒤쪽으로 방출했고 에어컨의 경우 응축기를 실외기의 형태로 밖으로 빼버려서 흡수한 열을 방 밖에서 배출해 방 안을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그게 낫겠군요. 설치도 편할 테고. 알겠습니다. 함께 연구해보도록 하지요.”
“그래. 부탁한다.”
* * *
정성국은 냉장고와 냉동고가 가동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늦게 집무실로 향했는데 마침 교육청장이 집무실로 오는 모습이 보였기에 정성국은 교육청장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가면서 교육청장의 보고를 받았다.
“그래? 드디어 협상이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해서 하버드 칼리지라 불리던 매사추세츠 지역에 있는 사설 교육 기관은 이제부터 하버드 대학교라는 이름의 정식 고등 교육 기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하버드 칼리지를 북미왕국의 정식 교육 체계에 편입시키기 위해 교육청 관리를 보내 하버드 칼리지의 학장을 설득했고 처음엔 정식 교육 체계에 편입되는 것을 꺼렸던 하버드 칼리지의 학장은 북미왕국의 교육청장이 직접 하버드 칼리지로 방문하면서까지 설득하자 고민 끝에 결국 이를 승낙했다.
“하하하. 고생했네. 자네가 직접 매사추세츠까지 방문했다면서?”
이에 교육청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예. 뭐 하버드 칼리지의 총장도 설득하고 이 기회에 북미 동해안 지역의 초등학교들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을 뿐입니다.”
아직 북미 동해안 지역에는 초등 교육 기관만 존재했고 매사추세츠 지역까지 이동한 김에 겸사겸사 초등학교들을 방문해 현지 상황을 파악했다는 교육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 북미 동해안 지역의 초등학교들은 어떻던가? 잘 운영되고 있나?”
이에 교육청장은 조금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잘 운영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그래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더군요.”
“뭐 당장은 제대로 교육받은 선생들이 부족한 편이니 어쩔 수 없지.”
정성국도 현 초등학교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사범 대학교의 규모가 무척 큰 편이라고는 하나 사범 대학교에서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것이 작년부터였기에 당장은 선생들이 부족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단기 교육을 받았지만, 독학하며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식과 경험을 쌓은 새한성의 선생들과는 달리 북미 동해안 지역은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지역이라 아직 선생들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덧붙이는 정성국을 보고 교육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한 선생이 저에게 건의하더군요.”
“무슨 건의?”
정성국이 흥미롭다는 듯 교육청장을 바라보자 교육청장이 대답했다.
“사범 대학교의 졸업생들을 중등 교육 기관에만 보내지 말고 초등 교육 기관에도 보내달라고요.”
“응?”
“제대로 교육받은 사범 대학교의 졸업생이 초등학교의 선생으로 온다면 방학 동안 그 선생에게 배우는 것이 선생들끼리 책으로 독학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면서 말입니다.”
지금껏 초등학교의 선생들은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교과서 해설서를 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저학년의 경우 큰 상관은 없었지만, 고학년의 경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아무런 기초지식 없이 그저 북미왕국의 말과 글을 빠르게 습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생이 되었기에.
하지만 사범 대학교의 졸업생들은 정식 교육을 받았으니 이러한 선생들은 궁금한 부분을 졸업생들에게 물어 빠르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테니 여러모로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쁘지 않은데?”
“예. 당장 중등 교육 기관의 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이긴 합니다만...각 초등학교에 제대로 교육받은 선생 한 명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부담되는 것은 또 아니니까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일단 내년 졸업생은 초등학교의 선생으로 보내고 방학 중에 다른 선생들을 가르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정성국은 다시 하버드 대학교에 흥미를 보이며 직접 하버드 대학교를 방문한 교육청장이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래? 당장 학생들을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아. 건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건물이라 봐야 유럽식 3층 건물 한 채가 다여서 말입니다. 해서 주변에 도서관, 강의실, 기숙사 등등 꽤 많은 건물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개발청에서 최대한 힘써주기로 했습니다만...빨라야 2년, 늦어지면 3년은 되어야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건물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싶어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럼 유럽에서 초청한 인재들이 도착하면 일단 새한성 대학교로 보내야겠군.”
“그러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새한성 대학교의 경우 건물이야 남아도니까요. 헌데 전하.”
“음?”
“하버드 대학교의 경우 새한성 대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학과를 개설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겠지. 연구청의 연구원들과 장인들을 매사추세츠 지역으로 보낼 수야 없는 노릇이고. 일단 하버드 대학교는 종교와 관련된 여러 학문, 의학, 법학, 인문학, 예술학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세.”
“허면 자연과학 계열의 학문과 공학기술 계열의 학문은 모두 제외합니까?”
연구청의 연구원들과 장인들이 선생으로 가르치는 학문이 바로 저 두 계열의 학문이었기에 교육청장이 묻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 자연과학 계열에서는 생물학, 공학기술 계열에서는 건축학만 예외로 두도록 하지.”
생물학의 경우 의학과 연관된 부분이 있었고 건축학의 경우는 유럽의 학자들을 하버드 대학교에 선생으로 배치하면 그만이었고 이를 통해 북미왕국의 건축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허락한 정성국이었다.
이러한 설명에 교육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