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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77화 (377/850)

377화

조선 사절단이 새한성을 방문한 것을 환영하는 만찬이 열리자 이 만찬에 참석한 에스파냐 외교관은 잉글랜드 외교관과 얀센과 대화를 나누다 만찬장에 들어오는 독특한 복식의 조선인들을 보고 조금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흐음. 생각보다 만찬에 참석한 인원은 적군요?”

“아. 알고 보니 만찬이 두 군데에서 열린다더군요.”

얀센의 대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뭐 이해는 합니다. 조선 사절단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으니.”

“그렇지요.”

조선 사절단이 새한성에서 머무는 숙소는 유럽 각국의 사절단이 머무는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 때문에 숙소에서 머물던 유럽 각국의 사절단은 숙소로 이동하는 조선 사절단의 규모를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럽 각국의 사절단 전부를 합한 것보다 몇 배는 많아 보였으니.

그 때문에 이번 만찬은 무척 혼잡할 거라 생각했고 만찬에 참석한 수많은 조선인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저들과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캐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이 만찬장에 들어온 조선인들은 30명가량에 불과했기에 내심 아쉬웠던 에스파냐 외교관이었다.

“저들이 바로 조선인이군요. 흐음...복식이 꽤 독특합니다. 저게 정복이나 관복 같아 보이는데.”

잉글랜드 외교관이 중얼거리자 에스파냐 외교관이 자신도 모르게 대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북미왕국의 복식과는 전혀 다르군요.”

에스파냐 외교관은 북미왕국이 조선인들에 의해 세워진 국가이니만큼 복식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침에 먼발치서 본 사절단의 복식도 그렇고, 이런 자리에서 입는 복식도 북미왕국과의 복식과는 전혀 달랐기에 그렇게 말하자 잉글랜드 외교관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아무리 조선이 북미왕국과 지속해서 교류해왔다고 한들 조선은 동아시아의 나라이니 멀리 있는 북미왕국의 복식과 비슷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가까운 청나라나 일본의 복식과 비슷하면 모를까.”

이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잉글랜드 사절단의 경우 아직 조선과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북미왕국말을 할 줄 모르는 네덜란드인들과는 달리 잉글랜드 사절단 중에는 북미왕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저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려줘야 할 이유는 없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내색하지 않고 그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반응에 잉글랜드 외교관은 맥이 빠진 듯 시선을 돌려 얀센을 보고 말했다.

“오히려 북미왕국의 복식은 묘하게 우리의 복식과 비슷한 느낌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커다란 천을 두른 듯한 느낌의 아시아 복식보다는 우리 유럽의 복식에 더 가까운 모습이기는 하군요. 물론 화려하고 풍성한 느낌이 나는 우리들의 복식과는 방향 자체가 전혀 다른 느낌이긴 합니다만...”

“그렇지요. 북미왕국의 복식은 우리의 복식과는 달리 장식이 없고 활동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모양인지 몸에 달라붙는 형태라 볼품없고 수수한 느낌이 나야 할 텐데...의외로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요.”

17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유럽의 복식은 주로 이탈리아나 에스파냐에서 발전된 르네상스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복식 문화의 중심지는 잉글랜드, 프랑스로 옮겨갔고 이전 르네상스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화려한 색상과 수많은 레이스 장식을 과하게 사용해 경박할 정도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바로크 스타일이 주류가 되었다.

그런 유럽의 복식 문화와는 달리 북미왕국의 복식은 비교적 어두운 계통의 단색에 장식이라고는 거의 없고 직선적인 형태에 가까웠기에 유럽의 복식이 익숙한 자신들에게는 분명 볼품없다고 느껴져야 할 텐데 그렇지는 않았기에 의외라는 듯 잉글랜드 외교관이 중얼거리자 얀센이 맞장구쳤다.

“예. 오히려 절도 있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달지...”

“그리고 묘하게 품위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푸른 안개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나누십니까.”

“아. 북미왕국의 복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꽤 근사해서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전하께서 들으시면 참으로 좋아하시겠군요.”

그 말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아. 전하께서 북미왕국의 복식을 고안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장인들에게 이야기해 이러한 양복을 만드셨죠.”

조용한 곰의 대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조선의 복식과 북미왕국의 복식이 왜 저렇게 다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에 독립한 후 복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건가?’

에스파냐 외교관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잉글랜드 외교관이 흥미를 보이며 조용한 곰에게 질문을 던졌다.

“양복이라...그게 북미왕국 복식의 정식 명칭입니까?”

“그렇습니다. 양털을 사용해 만든 의복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뭐 개중엔 정복이나 정장으로 부르기도 하고요.”

정성국이 직접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양복은 북미왕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조선 사절단이 북미왕국에 방문했을 때 청장들에게 입으라고 지급해줬기에 일종의 관복으로 인식해 고위급 관리들과 하급 관리들이 청장들을 따라 양복과 비슷한 형식의 옷을 만들어 입고 다녔고 관리들이 이렇게 양복을 입자 일반 백성들도 양복과 비슷한 형식의 옷을 하나둘 입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양복을 관복이라고 여긴 일부 고위급 관리가 이를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성국에게 고했지만, 정성국은 양복은 관복이 아닌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기 위해 고안한 복장이라고 일축하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양복은 정복, 정장 등으로 불리며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고.

“어? 그게 모직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으음...”

잉글랜드 외교관은 가까이에서 조용한 곰이 입고 있는 양복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 허락을 맡고 옷감을 만져본 후 생각보다 북미왕국산 모직물의 품질이 좋아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고급품이로군. 더불어 북미왕국산 면직물도 최상품에 가깝던데...이거 잘못하면 국내 직물 산업이 초토화될 수도 있겠어.’

그렇게 잉글랜드 외교관이 본국의 직물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 만찬장에 정성국이 등장해 만찬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에스파냐 외교관은 꽤 많은 음식을 먹고도 새로운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조선 사절단의 정사인 신임 예판을 따라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서양 음식들 앞에서 무엇을 집을지 고민하는 신임 예판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아...안녕하십니까. 에스파냐 사절단의 책임자라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헌데 생각보다 북미왕국 말을 유창히 하시는군요? 역시 조선과 북미왕국간의 교류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 하하하.”

신임 예판은 얼핏 칭찬하는 듯하지만 묘하게 떠보는 에스파냐 외교관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신임 예판은 새남포에서 북미 신문을 보고 유럽 각국의 사절단이 새한성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새김포에서 조선 사절단을 환영하기 위해 마중 나온 푸른 안개에게 이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기에 신임 예판은 에스파냐 외교관이 새한성을 방문해서 북미왕국이 건국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과 북미왕국 건국에 조선인이 관여한 것을 눈치채고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이라 확신하고 슬쩍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조선 말과 북미왕국 말이 같다는 것을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닌 것 같고...어째 궁금한 것이 많은 듯하신 눈치신 듯한데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속 시원히 물어보시지요.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대답해드리리다.”

“끄응...”

조선 사절단의 책임자가 단번에 자신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얼굴이 달아올라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외교관으로써 쉽게 속마음을 읽혔다는 치욕보다는 이 기회에 자신들의 추측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허면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조선 왕실의 일원이십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에스파냐 외교관을 보고 신임 예판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 하하하. 설마요.”

“정말로 관계가 없습니까?”

“예. 조선 왕실과 북미왕국 왕실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신임 예판의 확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속으로 혀를 찼다.

북미왕국 왕실과 조선 왕실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은 북미왕국의 국왕이 조선 왕실의 일원이기에 북미왕국의 독립을 허용했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가설이 틀렸다는 뜻이었기에.

해서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으음. 허면...북미왕국이 귀국의 식민지이긴 했었습니까?”

“북미왕국이 아국의 식민지였다? 허허허. 이거 점입가경이군요.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하던가요?”

신임 예판이 헛웃음을 짓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다 알게 된 정보를 통해 추측한 내용이었습니다만...귀하의 반응을 보니 아닌 모양이군요.”

“대체 어떤 정보를 얻었길래 북미왕국이 우리 조선의 식민지라고 추측한 겁니까?”

이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보좌관이 전해준 북미왕국의 건국에 관련된 이야기와 이를 통해 자신들이 추측한 내용을 신임 예판에게 들려주었고 그제야 신임 예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요. 헌데 귀하나 사절단 일원들은 한글을 읽지는 못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면 서점에서 북미왕국의 역사 교과서를 구해 읽어보시지 그러십니까. 거기에 잘 나와 있는데 말입니다.”

“어?! 아...”

에스파냐 외교관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그런 에스파냐 외교관의 반응에 신임 예판은 실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나 보군요. 정확한 것은 나중에 역사 교과서를 통해 확인해보시고...이 자리에서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모험심이 강한 몇몇 조선인들이 배를 타고 이 북미 대륙에 당도해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세력이 커지면서 북미왕국을 건국한 겁니다.”

그동안 북미왕국은 이러한 사실을 유럽에 숨기고 있었다는 푸른 안개의 설명에 북미왕국이 유럽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신임 예판은 이런 북미왕국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자신들도 함구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에 푸른 안개는 계속해서 숨길 생각이었다면 새한성을 개방하지도 않았을 거라면서 이를 알려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했고.

해서 신임 예판은 에스파냐 외교관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었고 신임 예판의 지적에 만찬이 끝나고 돌아가면 보좌관부터 갈굴 생각이었던 에스파냐 외교관은 신임 예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물었다.

“으음...그 과정에서 조선의 개입은 없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개입은커녕 북미왕국의 존재 자체도 몰랐지요.”

“몰랐다고요?”

“그렇습니다. 한 5년 전쯤에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요.”

신임 예판의 대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중얼거렸다.

“으음...믿기 어렵군요.”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습니까. 간단히 생각해보시지요. 만약 이 미대륙을 발견했다는 콜럼버스가 이곳에 도착해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대륙에 남아 원주민들과 지내다 원주민들의 추대로 왕이 되고 새로 나라를 세웠다고 칩시다. 더불어 선원들도 모두 이곳에 남았고. 그 경우 귀국도 이곳에 새롭게 건국된 나라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신임 예판의 이야기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또 그렇긴 한데...”

“애당초 우리 조선은 유럽과는 달리 사사로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먼바다를 나가는 것 역시 금하고 있지요. 그렇기에 북미 대륙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조선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질 수 없었지요. 그러다 북미왕국이 아시아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된 거고요.”

“으음...상황은 이해했습니다만...그렇다면 더 놀랍군요. 조선의 도움 없이 2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전한 셈이니까요.”

신임 예판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한 에스파냐 외교관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에스파냐 외교관이나 보좌관은 개척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북미왕국이 발전하기까지 조선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조선에선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으니 이러한 북미왕국의 발전은 오로지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원주민들의 손으로만 이루어졌다는 뜻이었고 길어봐야 20년 안에 이러한 발전을 이루어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9년 전에 북미왕국은 함대를 움직여 우리 에스파냐를 공격했으니...최소 6년, 길어봐야 11년 만에 우리 누에바 에스파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는건데...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건가?’

에스파냐 외교관은 정성국이 만약을 대비해 키운 인재들과 원상의 존재를 몰랐기에 비상식적인 북미왕국의 발전상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러한 에스파냐 외교관의 반응에 신임 예판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도 처음 북미왕국을 방문했을 때는 이들의 발전에 무척 놀랐으니까요. 이 만찬장을 밝게 비추는 전등도 그렇고, 지금 이 사진도 그렇고...정말 북미왕국의 발전은 감히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신임 예판이 무척 신기하다는 듯 만찬장을 둘러보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급히 물었다.

“잠깐만요. 조선은 북미왕국처럼 전기를 다루지 못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신임 예판은 만약 조선 장인들이 남아있었다면 조선의 명운이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이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허면 증기기관은요?”

“조선에도 증기기관 기술이 있긴 하지만 무척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그제야 에스파냐 외교관은 조선의 기술력이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듯 신음을 흘렸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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