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생소한 새한성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던 얀센이 중얼거렸다.
“이거...어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제는 가로등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새한성에 도착한 이후 곧바로 북미왕국 국왕을 알현한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해서 새한성 풍경을 둘러볼 정신은 아니었고 환영 만찬이 끝났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기에 제대로 된 새한성의 거리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물론 대로를 따라 쭉 설치된 가로등과 그 가로등의 불빛을 즐기며 산책을 하는 새한성 시민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새한성 대로의 밤길 풍경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만 이렇게 해가 떴을 때의 새한성 대로의 풍경도 이국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새나주라는 곳도 꽤 번화하다고 생각했지만...역시나 이곳은 다르군요.”
“수도니까요. 헌데 왠지 모르게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엄청난 폭의 대로도 그렇고...”
라위터르가 텅 빈 대로를 보고 질린 듯 중얼거리자 얀센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어제 숙소를 호위하는 병사에게 슬쩍 물어보니 수도를 이 새한성으로 이전한 지 10년이 채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라위터르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그래서 이렇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군요.”
“그리고 정말 놀란 것이...이런 거대한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악취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 말에 라위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기 도시에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의 거리에는 아무렇게나 내다 버린 쓰레기와 오물들이 즐비했고 이것이 썩어가면서 고약한 악취를 뿜어냈다.
특히나 서양의 건물들은 창문 하나만 열면 바깥으로 연결되니 집을 청소하고 나오는 쓰레기나 요강에 들어있는 오물을 창문 밖으로 버리면 끝이었으니.
더불어 이 시기 도시 대부분은 주로 식수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강을 따라 도시가 발전했는데 이 강에도 수많은 오물 덕분에 악취가 가득했고.
그러니 도시에 산다면 악취로 인한 고통은 당연히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북미왕국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들이 방문했던 도시 중 보스턴 정도가 악취가 조금 심한 편이었고 새진주는 깨끗하고 악취가 거의 없어 처음 방문했을 때도 놀랐었다.
다만 이건 소규모 도시였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여긴 한 나라의 수도였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사는 듯했는데도 불구하고 악취는 거의 없었고 거리는 무척 깨끗하니 놀랄 수밖에.
물론 이는 철저한 위생 교육과 행정청의 철저한 단속, 환경미화 공무원의 노력, 곳곳에 설치된 공중 화장실, 그리고 새한성뿐만 아니라 새한강 상류 인근 마을 전체에 설치한 상하수도 시설과 원시적인 하수처리시설로 오물을 할 수 있는 최대한 정화해서 강에 방류했기에 가능했고.
다만 새한성의 경우, 다른 곳보다 도로에서 악취가 좀 나는 편이었는데 이는 도로를 오가는 마차를 끄는 말들이 도로에 말똥을 싸댔기에 악취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환경미화 공무원들이 저녁에 말똥을 치우고는 있었지만, 악취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 정성국은 위생을 위해 빠르게 자동차를 개발해 운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었고.
“뭐 이들이야 위생을 광적으로 신경 쓰니까요. 거기에 이 도시는 계획도시인 만큼 상하수도 시설도 완비한 듯하고. 여러모로 살기 좋은 곳 같습니다.”
라위터르의 말에 얀센이 동의했다.
“그렇지요.”
“헌데 어딜 가는 거랍니까?”
“아. 제독께서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북미왕국의 무장 수준을 확인하고 싶다고.”
얀센의 대답에 라위터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설마?”
“예. 주기적으로 수도 경비대가 외곽에서 실탄 훈련을 하는데 이 훈련을 참관하러 가는 겁니다.”
“오오! 이거 기대가 되는군요.”
기차를 타고 새한성까지 오면서 에스파냐, 잉글랜드 외교관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얀센 역시 무척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지요.”
* * *
유럽 각국의 사절단이 새한성 외곽의 훈련소에 도착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의 훈련을 참관했다.
이들은 지금 훈련하고 있는 병사들을 수도 경비대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비대가 아닌 호위대원들이었다.
예전에는 호위대가 궁의 경비뿐만 아니라 새한성 치안도 감당해야 했었지만, 경비대가 새한성에 배치되어 새한성의 치안 업무를 맡고 호위대는 오롯이 정성국 등 왕실 인사의 호위와 궁의 경비만 하면 되었을뿐더러 호위대의 규모도 대폭 증가했기에 호위대원들은 드디어 과로에 벗어나 조금은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다만 지휘관 대부분이 그렇듯 호위대장 역시 휘하의 병사들이 마냥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그냥 보지는 않았고.
호위대는 정성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북미왕국의 어떤 부대보다 강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은 느슨했던 훈련 시간을 대폭 늘려버렸고 덕분에 호위대원들은 차라리 예전이 좋았다고 간혹 투덜거릴 정도였달까.
아무튼, 이런 호위대장 덕분에 호위대는 여러 훈련에 익숙했고 그 때문에 이들의 훈련 모습을 직접 살펴본 유럽 각국의 사절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바꾸어 사격하는 북미왕국 병사들의 모습에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도 경비대인 만큼 어느 정도 정예병이라고 예상했었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달까.
더불어 그동안은 이야기만 들었던 후장식 소총의 실제 사격 모습에 무척 놀라기도 했고.
그렇게 유럽 각국의 사절은 북미왕국 병사들의 훈련을 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일단의 북미왕국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허리춤에서 단총을 꺼내 들고 사격하기 시작했고.
‘탕! 탕! 탕! 탕! 탕! 탕!’
이미 유럽에서도 기병들은 저런 단총을 부무장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에 별다른 기대 없이 바라보던 사절들은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북미왕국 병사들이 한 손에 든 단총으로 계속해서 사격하는 모습에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게 무슨!”
“연발 단총이라고?!”
“맙소사...”
탐사대는 이미 2자루의 회전 단총을 지급받아 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탐사대 자체가 누벨 프랑스 지역에 이동해 있었고 실전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기에 유럽인들은 회전 단총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충격을 받은 눈치였고.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허...북미왕국이야 이미 후장식 소총을 만들었으니 저런 연발총도 언젠가는 개발할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이에 옆에 있던 얀센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엄청나군요.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음...6발이 한계인 것 같긴 합니다만...그래도 놀랍군요.”
라위터르의 중얼거림에 얀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외교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그린란드는 언급도 말아야겠군. 그보다 저 연발 단총을 수입할 수는 없을까? 그게 안 된다더라도 큰돈을 들여 후장식 소총을 일부 수입하고 연구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 * *
분쟁지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운 흑룡강의 주변 풍경을 감상하던 북미왕국 수송선 선장은 수송선의 진로에 무언가가 보였기에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라? 저건 뭐지?”
이에 지나가던 부선장이 의아한 듯 선장에게 다가와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저기 보이는 쪽배 말일세. 어?”
선장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부선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한두 척이 아닌데요? 그리고 이곳으로 다가오는군요.”
자신들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일제히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흑룡강에서 물고기를 낚는 원주민 같지는 않았기에 선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해적. 아니 수적이라고 봐야 하나?”
이에 부선장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거리가 좀 있긴 합니다만...러시아 차르국 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청나라의 보급 물자를 탈취하려고 덤벼든다 이거지? 저런 쪽배로?”
선장이 가소롭다는 듯 다가오는 쪽배들을 바라보고 이야기하자 부선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가까이서 머스킷을 사용하거나 밧줄로 도선 하려는 속셈이겠지요.”
그 말에 선장은 고개를 저었다.
“능숙한 뱃사람도 아닌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빠르게 움직이는 배에 올라타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비슷한 크기의 배도 아니고 저렇게 배의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면 더더욱.
“뭐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어쩌시겠습니까? 점점 다가오는데?”
“뭘 어째. 만약을 대비해서 아이누 경비대가 타고 있으니 그들에게 알려.”
포로나이에서는 북방에서 러시아인들과 대치 중인 청나라 군대에 재작년부터 식량을 공급해오고 있었는데 일단은 분쟁지역에 식량을 수송하는 일이다 보니 혹시 모를 전투에 휘말릴 것을 대비해 아이누 경비대 50명 정도가 수송선에 타고 있었다.
다만 수송선은 기범선이라 갑판 위는 선원들로 붐볐기에 주로 선실 내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알겠습니다.”
부선장이 급히 선실로 내려가 비상종을 쳤고 아이누 경비대는 비상종을 듣고 무장을 챙겨 하나둘 갑판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
이 배에 탑승한 아이누 경비대의 조장이 선장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지다 수송선으로 접근하는 쪽배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을 때 선장이 상황을 알려 주었다.
“각 배에 10명 정도 타고 있고 그러한 배가 모두 20척이니 총 200명의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로 판단됩니다. 이들은 우리 배를 노리는 듯하고요.”
이에 조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버젓이 삼태극 깃발이 걸려있는데도 덤벼들다니...”
그 말에 선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지역은 러시아 차르국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삼태극기의 의미를 알기나 하겠습니까? 어쩌면 북미왕국의 존재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미왕국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진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기에 러시아 차르국의 귀족들이야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청나라와 대치하는 자들은 제대로 된 정규군도 아니라는 것을 사전에 들었던 조장은 이에 수긍했다.
“으음...하긴 그렇군요.”
“어쩔까요. 속도를 조금 올려 빠르게 저들을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흐음...”
조장은 조금 고민하다 저들과 전투를 치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대포가 없는 이상 전투가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고 투로시노를 비롯한 외무청에서는 저 러시아 차르국을 꽤 경계하는 눈치였고 러시아 차르국이 확장정책을 펼치고 있는 터라 언젠간 카무이 반도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거라 예상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차라리 이 기회에 저들 일부를 포로로 삼아 러시아 차르국과 협상의 물꼬를 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속도를 늦춰주십시오. 저 정도면 상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 저들을 격멸하도록 하지요. 뒷일이야 외무청 관리들에게 맡기면 될 테고요.”
“알겠습니다.”
조장의 말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부선장에게 수송선의 속도를 줄이라고 명령하며 갑판 위의 선원들에게 방어판을 꺼내 장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선원과 아이누 경비대는 재빠르게 움직여 쪽배들이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갑판 난간에 방어판을 부착할 수 있었고 가뜩이나 높은 배에 오르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러시아인들은 갑판의 높이가 오른 셈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누 경비대들은 방어판 뒤에서 근접한 러시아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탕!’
러시아인들도 일부 화승총을 발사하긴 했지만 방어판에 총알이 막혀 제대로 피해를 주지는 못했고 그에 반해 아이누 경비대는 실전에도 흥분하지 않고 그동안 훈련받은 대로 총알을 발사했기에 잠깐의 교전 후 쪽배 위에 살아있는 러시아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조장이 중얼거렸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군요.”
“그렇군요.”
전투가 끝났다고 판단한 선장과 조장이 방어판을 해체했을 때 어디선가 뇌를 찌르는 듯한 지독한 냄새가 났었기에 조장은 급히 코를 막으며 투덜댔다.
“윽! 이게 무슨 냄새지?”
이에 선장은 무언가가 묻은 방어판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러시아인들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악취를 심하게 내는 주머니들을 던져 갑판 위를 혼란스럽게 하고 도선 할 계획이었나 보군요.”
“아...”
선장은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며 방어판을 한쪽에 가져가려는 선원을 보고 급히 소리쳤다.
“그 방어판들은 집어넣을 생각 말고 그냥 버리게!”
“알겠습니다.”
선원과 아이누 경비대가 악취가 나는 검은 무언가가 묻은 방어판들을 선별해 강에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선장은 부선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배를 완전히 멈추게. 저기 허우적대는 러시아놈들이 힘이 적당히 빠지면 건져서 묶어두라고.”
자신들이 탄 배에 집중적으로 총격이 가해지자 이를 버티지 못한 러시아인들은 배를 포기하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강 위에는 허우적대는 러시아인들이 꽤 있었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이에 조장이 선장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저희는 당분간 갑판 위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