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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73화 (373/850)

373화

시간이 흘러 환영 만찬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외무청 관리가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각국의 사절단을 만찬장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들어선 커다란 만찬장에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숙소에서 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사절단의 일원들과 북미왕국의 청장들, 여러 관리들도 자리해 있었고 사절단의 책임자들은 외무청 관리들의 소개로 북미왕국 청장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잠시 대화를 하던 찰나 정성국이 만찬장에 들어왔고 이에 북미왕국의 청장들과 관리들은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고 사절단의 일원 역시 적당히 눈치를 보며 이를 따라 했다.

이에 정성국은 앉으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합니다. 조금 늦었군요.”

“아니옵니다. 전하.”

정성국이 자리에 앉고 청장들과 사절단의 일원들이 모두 정해진 자리에 앉자 정성국은 시종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럼 바로 만찬을 시작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시종들이 음식이 가득 담긴 커다란 접시를 가지고 등장해 만찬장 벽 쪽의 식탁에 죽 올려놓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녀들은 사절단이 앉은 식탁 위에 빈 접시와 수저, 포크, 칼 등을 올려두었고.

“이건...?”

“빈 접시?”

사절단의 일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 귀하들께서는 이러한 북미왕국의 만찬 방식이 생소할 수 있겠군요. 저기 보시면 수많은 음식이 보이시지요?”

“그렇습니다만...어?”

사절단들은 조용한 곰의 말에 시선을 돌리다가 정성국이 직접 빈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이 가득 담겨 있는 식탁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담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하의 행동이 보이시지요? 저렇게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덜어 먹는 만찬 방식입니다.”

“아...”

보아하니 북미왕국 사람들은 꽤 익숙한 듯 빈 접시를 들고 곳곳으로 퍼져 좋아하는 음식들을 담고 있었다.

이에 라위터르가 흥미롭다는 듯 그 모습을 살펴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이거 꽤나 이색적인 식사 방식이로군요. 이게 북미왕국의 전통적인 식사 방식인 겁니까?”

그 질문에 조용한 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건 주로 외국 사절단이 방문했을 때 주로 사용되는 식사 방식입니다.”

“외국 사절단이요?”

조용한 곰의 말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국 사절단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원주민 부족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유럽의 사절단이 새한성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용한 곰이 이야기하는 외국 사절단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곰은 이를 눈치채고도 슬쩍 말을 돌렸다.

“예. 원래라면 북미왕국의 음식을 내어 주는 것이 맞겠지만...사람에 따라 북미왕국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전하께서 함께하시는 만찬이라는 특성상 외국 사절단은 무리해서라도 먹을 수밖에 없고요. 해서 이러한 만찬 방식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지역의 음식을 만들어 두었으니 알아서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원래 정성국이 만찬 방식을 뷔페 형식으로 만든 것은 역시나 편의 때문이었다.

북미왕국의 궁궐이 무척 커다란 것과는 별개로 시종과 시녀의 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조선 사절단이 방문해 가끔 만찬을 열 때는 임시로 시종을 구해야 할 정도였기에 정성국은 뷔페를 떠올렸다.

뷔페는 특성상 적은 인원으로 많은 사람을 대접하는데 최적화된 방식이었기에.

더불어 뷔페는 수많은 음식을 진열해놓는 터라 자연스레 북미왕국의 풍요로움을 과시할 수도 있었고.

해서 작년부터 뷔페 형식으로 만찬을 열었는데 조선 사절단의 일원들도, 관리들도 모두 좋아했기에 그 이후로 만찬을 열 때는 어지간하면 뷔페 형식을 사용했다.

“아. 일종의 배려에서 시작된 식사 방식이군요?”

“그렇습니다. 저 오른편의 음식들은 주로 북미왕국과 동양의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저 왼편의 음식들은 주로 유럽의 음식들이지요. 물론 고향의 맛과 완전히 같지야 않겠지만 낯선 음식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웃는 조용한 곰을 보고 라위터르가 감명 깊다는 듯 중얼거렸다.

“참으로 뜻깊은 식사 방식이로군요.”

조용한 곰의 설명을 듣고 사절단의 일원들은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에스파냐 외교관은 만찬 방식의 유래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조용한 곰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눈을 빛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헌데 새한성에 외국의 사절단이 자주 방문합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어차피 조선의 존재를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아. 여기 계신 분들은 우리 북미왕국의 영토가 저 동아시아까지 뻗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그 말에 잉글랜드 외교관이 탄성을 내뱉으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 동아시아의 나라에서도 사절단을 보내는 모양이군요. 혹시 청나라입니까?”

“청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긴 했습니다만 주로 새한성에 사절단을 파견하는 나라는 조선입니다.”

“조선...이요?”

에스파냐 외교관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부연 설명했다.

“조선은 청나라와 왜국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아. 그 고려 말씀이십니까?”

“예. 동아시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려로 알고 있긴 하지요. 고려는 조선 이전의 왕조입니다.”

얀센이 아는척하자 조용한 곰이 이를 정정해주었고 얀센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잉글랜드 외교관이 이 끼어들었다.

“고려. 아니 조선은 무척 폐쇄적인 국가로 알고 있는데...”

“그렇긴 한데 조선과는 여러 인연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해서 조선에서는 매년 사절단을 보내곤 하지요.”

“음...그렇습니까?”

매년 새한성에 사절단을 보낼 정도면 조선과 북미왕국의 관계는 생각보다 좋을 것이라고 짐작한 잉글랜드 외교관이 괜찮은 정보를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에스파냐 외교관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매년 조선의 사절단이 새한성을 방문한다면...올해도 오는 겁니까?”

“예. 조만간 도착하지 싶습니다.”

“호오...”

그렇게 대화 중일 때 접시를 가득 채운 정성국이 사절단과 조용한 곰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대화를 나누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만 그러한 대화는 음식을 가져와서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먼 길을 오느라 시장할 텐데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하. 이거 설명이 너무 길어진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무척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그럼 일단 음식부터 가져오도록 하지요.”

그렇게 사절단은 빈 접시를 들고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일부는 익숙한 모양의 음식을, 그리고 일부는 용감하게 처음 보는 음식들을 적당히 담아 자리를 돌아와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정성국과 알현했던 사절단의 책임자와 보좌관들은 정성국과 청장들이 자리한 커다란 원형 식탁에서 식사했고.

“음...독특하니 맛있군요.”

라위터르가 불고기를 먹으며 중얼거리자 가까이 있던 정성국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군요.”

이에 라위터르는 기겁하며 음식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렇게 외신을 신경 써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손님을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정성국과 사절단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 에스파냐 외교관이 후식으로 나온 호두 파이를 먹고 중얼거렸다.

“정말 인상 깊은 만찬이었습니다. 음식들의 맛도 무척이나 훌륭했고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이국적인 음식도 비교적 수월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이 자유로운 만찬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둘 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기엔 무척 표정이 좋았기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만족했다니 다행이군요.”

그때 잉글랜드 외교관이 정성국을 보고 입을 열었다.

“헌데 만찬장에 걸린 저 흑백 그림들 말입니다. 저 그림들을 그린 화가는 궁정 화가입니까?”

사절단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사진 전시나 사진과 관련된 기사는 모두 사절단의 새한성 방문 이후로 미루었기에 사진을 그림으로 착각한 잉글랜드 외교관의 물음에 다른 사절들도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무척 사실적인 그림이었기에.

그리고 정성국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사진 말입니까?”

“사진이요?”

“음...아. 혹시 카메라 옵스큐라를 아십니까? 유럽에서는 사진기의 원형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던데...?”

이에 잉글랜드 외교관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설마?!”

“아신다니 설명이 쉽겠군요. 예. 그겁니다. 카메라 옵스큐라에 맺히는 상을 정착시킨 것이 바로 사진입니다. 그러니 그림은 아니지요.”

정성국의 설명에 잉글랜드 외교관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정말 가능한 거였군요?”

“빛을 정착시키다니...대체 어떻게?”

“아니. 뭐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또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에스파냐 외교관의 중얼거림에 다른 사절들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바라보다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그때 라위터르가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헌데 사진이 모두 풍경 사진이던데...사람을 찍은 사진은 없습니까?”

“아. 사진기는 최근에 개발된 물건이라 단점이 많습니다. 그 단점 중의 하나가 바로 촬영 시간이지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지라 인물 사진보다는 주로 풍경을 찍습니다.”

“아...”

“그건 조금 아쉽군요.”

왕이라면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라면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초상화를 그리는 시기인 만큼 사진기의 개발로 손쉽게 초상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잉글랜드 외교관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촬영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겁니까?”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어?”

“그 정도면...”

초상화를 그릴 때는 단순한 스케치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시간을 대기해야 했기에 30분만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 사진으로 찍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는 표정의 사절들이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사진은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나중에 결과물이 안 좋게 나오는지라 30분 동안 정말 가만히 있어야 해서 말입니다. 생각보다 선명한 인물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아요. 화가가 그리면서 적당히 보정할 수 있는 그림과는 다르지요.”

정성국은 사진기가 개발된 후 최초의 초상사진 타이틀을 노리고 전아라의 사진을 찍긴 했다.

일단 전아라가 사진기를 발명한 셈이라 전아라의 모습이 역사책에 실리길 바라며 시도한 것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자세가 바뀌는 순간 사진으로는 윤곽이 흐릿하게 나오는지라 2번의 실패 끝에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정성국은 당분간 자신의 사진을 찍을 생각을 접었고 전아라는 조악한 성능에 투덜거리며 사진기의 개발에 열을 올렸다.

“아...”

“그렇습니까?”

그 말에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사절들이었고 잉글랜드 외교관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카메라 옵스큐라...아니. 사진기라고 했지요? 그걸 구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흠...사진기는 최근에 개발된 물건이라 비싸기도 할뿐더러 아직 단점이 많기에 돈을 받고 팔기도 참 애매해서 말입니다.”

정성국의 말 자체는 사진기를 넘길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지만 뉘앙스는 조금 달랐기에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사절들은 눈을 빛내면서 급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원래 발명품들이 다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반응에 정성국은 내심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유럽 각국의 사절단이 이렇게 새한성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사진기를 선물로 내어드리리다.”

어차피 사진기는 회중시계처럼 민간에 풀 생각이었으니 언젠간 다른 나라로 흘러 들어가리라 짐작했고 그런 만큼 이렇게 사진기를 넘기며 적당히 생색을 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더불어 이들이 새한성에 머물면서 북미왕국의 사정을 파악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미리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고.

“헉!”

북미왕국이 얼마나 자국의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경계하는지를 잘 아는 사절들은 최근 개발된 사진기를 흔쾌히 넘겨주겠다는 정성국과 정성국의 대답에 무척 당황해하는 청장들을 보고 청장들의 반대에 정성국의 결정이 바뀔 것을 우려해 급히 입을 열었다.

“가...감사합니다. 전하.”

이에 정성국은 웃으며 잉글랜드, 에스파냐 외교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웅크린 늑대의 보고를 들어보니 여기 계신 두 분께서는 외무청에서 진행하는 유럽의 학자와 예술가들을 초빙하는 일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자그마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각국의 유럽 사절단의 새한성 방문을 계기로 어느 정도의 제한을 풀 예정이었고 그 때문에 외무청에서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올해 초부터 유럽의 학자나 예술가들에게 북미왕국으로의 초청 의사를 알리는 편지를 보냈었다.

이를 언급하는 정성국의 말에 잉글랜드, 에스파냐 외교관은 웅크린 늑대의 부탁에 조금 신경 썼던 일로 정성국이 직접 고마움을 표시했기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고 그러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 라위터르나 얀센은 조금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눈치챈 정성국은 웃으며 그들에게도 말했다.

“아. 가능하면 네덜란드의 인재들도 초청할 생각이니 본국에 돌아가시면 도움을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북미왕국에 흥미 있는 학자와 예술가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들에게 북미왕국의 초청 의사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최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각국의 예술품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해서 서양화 쪽에도 관심을 두는 중인데...알아보니 잉글랜드나 에스파냐의 화가들도 유명하지만, 네덜란드의 화가들도 이에 못지않더군요.”

“그렇습니다. 무척 위대한 화가들이 많습니다.”

얀센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웃으며 말했다.

“예. 그래서 네덜란드의 그림 일부를 사들일 생각인데 그때 조금이나마 도와주셨으면 좋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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