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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71화 (371/850)

371화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커피를 내릴 때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했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에게 커피를 건네주면서 조용한 곰의 용건을 물었다.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내린 커피의 향을 조심스럽게 받아들며 향을 즐기다가 정성국의 물음에 답했고.

“그래? 유럽의 사절단이 새진주에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사절단이 새진주에 도착해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출발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잠시 커피의 향을 즐기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흠. 알겠네. 뭐 사절단을 대접하는 문제야 외무청에서 잘 할 테니 내가 신경 쓸 것도 딱히 없고.”

어차피 유럽 사절단의 목표는 북미왕국의 정보 수집인 만큼 정성국은 잠깐 얼굴만 비추고 그 외에는 외무청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외무청이야 매년 방문하는 조선 사절단을 상대하다 보니 이런 업무에 능숙해지기도 했고.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전하. 유럽의 사절단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터라 어쩌면 조선 사절단과 새한성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어쩔까요?”

“어? 아...”

생각해보니 벌써 5월이고 조금 있으면 조선 사절단이 도착할 시기였다.

그리고 유럽의 사절단은 네덜란드 사절단의 도착이 생각보다 늦어져 일정이 늦춰졌기에 유럽의 사절단이 새한성에서 일정을 거의 마무리할 때쯤이면 조선 사절단이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일정을 적당히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해 서로 마주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유럽의 사절단을 철저히 통제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백성들과 접촉해 이런저런 정보를 파악하려 들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년 새한성을 방문하는 조선 사절단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될 테니까.

또한, 조선도 북미왕국을 통해 여러 정보를 파악하면서 북미왕국이 강하게 경계하는 유럽을 경계와 흥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이 기회에 유럽의 사절단과 접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고.

“그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유럽 사절단을 철저히 통제할 것이 아니라면 저들도 결국 조선 사절단의 존재를 파악하게 될 텐데?”

조선 사절단의 경우 워낙 대규모 사절단이기도 했고 사절단의 일원 중 화공이나 악공 등을 기다리는 북미왕국 백성들도 꽤 있었기에 조선 사절단이 방문할 때쯤이면 새한성 내의 찻집에서는 조선 사절단의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조용한 곰은 묘한 자신감을 보였다.

“웅크린 늑대의 보고에 따르면 본토에서 온 네덜란드 사절단을 제외하면 잉글랜드, 에스파냐 사절단의 규모는 작은 편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이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이에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조선 사절단에 관한 기사를 막을 수야 없는 법 아닌가.”

“아...”

작년의 경우 조선 사절단이 방문 중에 북미 신문이 발간되었고 당시에는 조선 사절단의 기사 말고도 실을 기사가 많았기에, 그리고 새진주를 자주 드나드는 에스파냐나 잉글랜드에도 신문이 흘러 들어갈 것을 예상했기에 의도적으로 조선 사절단과 관련된 기사를 제외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야 없었다.

“더불어 이번에 유럽의 사절단이 새한성을 방문하는 것도 기삿거리가 될 테니 짤막하게나마 이를 싣는다면 조선 사절단이 유럽 사절단을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그러니 괜히 무리하지 말자고.”

조용한 곰은 유럽 사절단이 새한성에서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다 조선 사절단을 만나면 북미왕국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북미왕국의 국왕인 정성국을 비롯해 청장들이 대부분 조선인이었고 새한성에 조선인 비율도 높은 편이었으니.

그동안 북미왕국은 유럽에 순수 원주민 국가로 알려져 있었고 외무청 관리들은 유럽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북미 대륙이 원주민의 땅임을 주장해왔었기에 이 사실들이 알려진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정성국의 말처럼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었고 북미왕국이 신생국에 가깝다는 사실과 함께 알려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음? 또 보고할 게 남아있나?”

“예. 이건 조금 다른 건인데...그동안 새남포를 방문해 우리와 교역하던 치누크 족과 하이다 족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할 뜻을 밝혔습니다. 헌데 이 원주민들의 영역이 생각보다 거리가 있는 곳이라...차라리 이번에 합류한 치누크 족과 하이다 족의 영역에 새로운 거점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품에서 새남포 인근 지역의 지도를 꺼내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한 곳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이곳이 치누크 족의 영역입니다. 이들은 이 우래건 강 하류에서 살며 연어를 잡으며 산다고 하더군요.”

“아...”

조용한 곰이 가리킨 곳은 바로 전생의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의 경계라 할 수 있는 컬럼비아 강 하류 인근이었다.

‘컬럼비아 강을 원주민들은 우래건 강이라고 부르는가 보군. 그러면 오리건 주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했을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성국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곳곳에 거점 항구가 존재하는 북미 동해안 지역과는 달리 북미 서해안의 경우 거점 항구라 부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새남포와 새의주 정도였달까.

이는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북미 서해안 지역과는 달리 유럽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의 확장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그나마 새남포의 경우 초창기에 건설된 거점이었고 이곳에서 그동안은 볼 수 없었던 물품들을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원주민 부족들이 새남포를 방문했고 그러면서 새남포의 영역이 무척 커지긴 했지만 그래 봐야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에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발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슬슬 북미 서해안 지역도 개발하긴 해야 하니 이 기회에 거점을 건설하고 주변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켜 영역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특히, 오리건 주는 캘리포니아 주와 비슷한 곡창지대이기도 하고.’

오리건 주의 지형은 태평양 바다에 접한 해안가 지역, 해안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 사이에 낀 중부,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의 사막과 초원 지대, 이렇게 삼등분으로 나뉘는데 이 중 중부 지역의 지형이 캘리포니아와 무척 흡사했고 컬럼비아 강의 지류가 중부 지형을 관통하고 있기에 수자원도 풍부한 편이라 적당히 개간하면 또 다른 곡창지대가 될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도 식량이 넘쳐나는 편이긴 한데...뭐 지금이 소빙하기인 것을 생각하면 식량이야 많을수록 좋으니 상관없겠지.’

정성국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다시 새남포 북서쪽의 섬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하이다 족의 영역입니다. 새남포와는 거리가 꽤 되는 편인데 이곳은 새의주로 가는 길목이라 가끔 새의주로 향하는 북미왕국의 배를 보고 새남포를 찾아 북미왕국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동안 교역해오다가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했고요.”

조용한 곰이 가리킨 곳은 전생에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태평양 연안 앞바다의 퀸샬럿 제도였는데 이를 보고 정성국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 이곳은 그저 관광지에 불과했던 것 같은데...뭐 상관없나? 이곳에 거점을 두고 가까운 해안가의 원주민들을 끌어들이면서 천천히 영역을 넓혀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후 정성국은 먼저 우래건 강의 입구를 손으로 짚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도록 하게. 그럼 치누크 족의 경우는 일단 이 우래건 강 하류에 선착장과 조그마한 항구를 건설해 거점으로 삼고 치누크 족과 주변 부족들과의 교역을 위한 각종 물자를 실어나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퀸샬럿 제도를 짚으며 말했다.

“그리고 하이다 족의 경우는...뭐 섬이니만큼 물이 풍부한 곳에 항구를 건설하면 되겠지. 이곳을 거점으로 해안가 원주민 부족들을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이자고.”

“알겠습니다. 전하.”

그 말을 끝으로 조용한 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정성국이 덧붙였다.

“아. 그리고 북태평양 탐사대에 이야기해서 배 한 척 정도를 빼서 이 우래건 강을 탐사해달라고 요청하게.”

지형상 정성국이 가리킨 우래건 강 하류의 거점을 크게 키우긴 어려웠다.

주변에 산이 많은 편이기도 했고.

해서 전생의 포틀랜드 위치에 새로운 거점을 세우는 것이 낫겠다 싶었고 그러자면 우레건 강을 탐사해야 했기에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륙 탐사라...알겠습니다.”

* * *

응접실의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얀센은 덜컹거리는 기차의 진동에 정신을 차리고 오늘 몇 번이고 반복했던 감탄사를 다시 토해냈다.

“허어...정말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장관이로군요.”

이에 잉글랜드 외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밭이라니. 저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보니 북미왕국의 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군요.”

“아마 이곳이 북미왕국의 주요 곡창지대겠지요?”

얀센의 물음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물론 다른 곳도 몇 군데 있다고는 합니다만...”

“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런 곡창지대가 또 있다니...”

얀센이 질린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잉글랜드 외교관이 창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돌려 에스파냐 외교관을 바라보고 말했다.

“새나주였던가요? 그 도시 이전까지는 기대했던 북미왕국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황량하고 마을도 어쩌다 보일 뿐이었고.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건 엄청난 규모의 목화밭이 다였지요. 헌데 새나주 이후부터의 풍경은 전혀 다르군요. 이곳이 바로 예전 북미왕국의 영역이겠지요?”

이 물음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새나주 이전 거의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은 멕시코 북부 지역이 아닐까 싶고...그곳은 아카풀코 조약 이후 북미왕국이 영역을 확장한 곳이니 외곽 지역이나 다른 바 없어 한산했던 겁니다.”

“아. 그렇다면 그 황량한 풍경들도 이해가 가는군요.”

그 말에 얀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잉글랜드 외교관은 의문이라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아카풀코 조약도 벌써 10년 전 일 아닙니까?”

“정확히는 9년 전의 일이지요.”

에스파냐 외교관이 덧붙였지만 그건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잉글랜드 외교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북미왕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너무 방치한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의외로 북미왕국의 인구는 많지 않은 걸까요?”

이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스파냐가 처음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원주민들이 국가를 이루었기에 당연히 인구가 많으리라 짐작했었다.

헌데 북미왕국에서 새로 확보한 멕시코 북쪽 영역을 개발하겠다는 이유로 국경선 인근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하려 하자 의문을 품었고.

다만 시간이 흐르며 북미왕국이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관리, 병사, 막대한 물자들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밭을 보니 자신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에스파냐 외교관이 입을 열었다.

“뭐 청나라처럼 어마어마한 인구수까지는 아니겠지만 인구가 적진 않으리라 봅니다. 저길 보시지요. 몇 시간째 드넓게 펼쳐져 있는 곡창지대를. 기차의 속도를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면적에서 작물을 재배해 식량을 생산 중이라는 뜻이고 그 어마어마할 정도의 식량을 생산해야 할 정도로 북미왕국의 인구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인구수는 식량 생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잉글랜드 외교관은 수긍했다.

“으음...그건 그렇지요.”

“아마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이 비옥한 영토를 떠나려 하지 않았기에 새나주부터 새진주까지의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 북미왕국 외무청 관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고.”

“그렇습니까?”

얀센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에스파냐 외교관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예. 멕시코 북부 국경 인근을 개발하는데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하고 싶다길래 의아해서 묻자 북미왕국 백성들은 굳이 새로 확보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꺼리는 터라 일손이 부족할 거라고 이야기했었지요. 당시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만...저 비옥하고 끝없이 펼쳐진 밭을 보니 이해가 가는군요. 이곳을 떠날 농부가 있긴 하겠습니까?”

이에 얀센과 잉글랜드 외교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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