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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69화 (369/850)

369화

사절단의 책임자로 대서양을 건너 북미왕국으로 향하던 미힐 더 라위터르는 선원의 보고를 듣고 갑판 위로 나와 잔잔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라위터르의 모습을 보고 네덜란드의 외교관인 얀센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고.

“이곳이 뉴펀들랜드 해전이 벌어졌던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제독.”

“흐음...”

얀센의 대답에 라위터르는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돌려 얀센을 바라보고 말했다.

“여긴 그냥 망망대해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80척의 프랑스 대함대와 8척의 북미왕국 함대가 정면에서 맞붙었는데 북미왕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라...놀랍긴 하군요. 듀케인 제독이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닌데 말입니다.”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야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 과정은 아직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라위터르는 직접 해전이 벌어진 장소를 확인하고 놀라움을 표하자 얀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랬기에 처음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해 어부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요. 해서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었습니다. 그리고...나중에 보스턴 항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 있는 전열함들을 확인하고 진짜구나 싶었죠.”

라위터르가 얀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 한 선원이 소리쳤다.

“아. 저기 북미왕국의 군함이 보입니다!”

그 외침에 라위터르는 품 안에서 망원경을 꺼내 북미왕국 군함을 관찰하면서 중얼거렸다.

“으음...군함의 외형이 정말 독특하긴 하군요. 그리고 정말로 포구가 몇 안 되는군요. 그럼 후장식 속사포가 분명하다는 소린데...북미왕국은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유일하게 허용된 곳이 바로 뉴펀들랜드 섬과 새진주지만 두 곳 모두 외국인은 외국인 거주구역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해서 이번 새한성 방문의 허락이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에스파냐의 외교관이 이야기하더군요.”

라위터르는 얀센의 대답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면...섣불리 기술자들과 접촉하긴 무리겠군요.”

네덜란드는 영토가 작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만큼 해군력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런 만큼 라위터르는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북미왕국의 군함과 군함에 장착된 대포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자들과 접촉해 저들의 기술을 빼돌릴 생각까지 했던 라위터르였지만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아 중얼거리자 얀센이 고개를 저었다.

“예.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육로로 연결된 에스파냐조차 북미왕국의 기술을 빼돌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흠...후장식 속사포를 양산해 배치할 정도라면 육군의 무장도 만만치 않을 테니 육로로 연결된 에스파냐로선 북미왕국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긴 하지요.”

“그렇습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의 이야기로는 북미왕국의 육군은 모두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라위터르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얀센이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 군대의 사격 훈련을 직접 참관한 적이 있었다더군요.”

“음...이번 방문 일정 중에 사열식 같은 것은 없답니까? 저들의 무장 수준을 확인하고 싶은데?”

“글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저들에게 한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 * *

정성국은 정평국이 가져온 사진들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이거 꽤 멋진데? 이게 보스턴의 모습이라고?”

“그렇습니다. 형님.”

전아라가 개발한 사진기를 이용해 북미왕국 전역의 도시와 자연 풍경을 찍고 이를 전시해 백성들에게 북미왕국의 풍경과 사진을 알릴 생각이었던 정성국이었지만 막상 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해서 정성국은 정평국에게 일을 떠넘겼고 정평국은 투덜거리며 북미신문의 기자들에게 다시 일을 떠넘겼다.

해서 사진기를 받고 사용법을 익힌 기자들은 북미왕국 전역으로 퍼져 도시와 주변 풍경을 찍어 돌아왔고 정평국이 이를 가져온 것이다.

다만 기자들이 북미왕국 구석구석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고 주로 기차와 배를 타도 돌아다닌 만큼 사진 중 절반 가까이는 정성국이 한 번쯤 방문했던 곳들이라 정성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미 동해안 지역의 도시와 주변 풍경을 찍은 사진을 감상하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북미 동해안의 주변 풍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확실히 잉글랜드인이 지은 도시들은 북미왕국의 도시 같지 않게 이국적이었으니까.

“확실히 이국적이긴 하네.”

“그렇죠. 하지만 묘하게 예전 개척촌 시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정평국의 말마따나 아주 처음 개척촌을 건설했을 때는 이와 비슷했었기에 정성국은 예전 생각을 떠올리며 웃었다.

“하하하. 그건 또 그렇네. 다만 이거 나중에 상하수도 시설을 다시 정비하고 전선까지 깔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아무래도 그렇죠. 캐롤라이나 지역이야 첫 도시 개발부터 개발청이 개입해 북미왕국의 다른 도시들과 비슷합니다만...그 외에 북미 동해안 지역들은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면 차라리 주변에 새로운 도시를 짓고 이주시킨 후 밀어버리는 게 빠를 겁니다.”

정평국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렇다고 이 지역들을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밀어버리고 북미왕국 스타일의 도시로 재건축하는 것은 썩 마땅치 않아 중얼거렸다.

“근데 그럼 이런 독특한 풍경이 사라질 테니 아무래도 아쉽지. 나중을 생각하면 이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개발하는 게 최선인데...”

“어휴. 개발청장이 들으면 학을 떼겠네요.”

“하하하.”

정성국은 웃으며 다시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시골이나 다름없는 제임스타운, 생각보다 허름한 뉴욕, 제대로 된 건물도 몇 없는 몬트리올까지.

“역시 보스턴이 제일 번화한 건가?”

“아무래도 그렇죠. 잉글랜드 식민지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모여 살았으니.”

다른 지역에도 잉글랜드인이 많기는 했지만, 그 인구가 도시에 뭉쳐있기보단 곳곳에 퍼져있던 반면 매사추세츠 지역의 인구는 보스턴에 꽤 집중되어 있었고 덕분에 다른 식민지 지역에 비해선 번화한 편이었다.

이러한 정평국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걸 그대로 신문에 실을 수는 없지?”

“아무래도 그렇죠. 해서 이 사진 원판을 판화로 음각해 복제하고 이를 통해 인쇄하는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정평국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그런가. 그럼 예정대로 사진들은 액자에 넣어 전시해야겠군. 이거 미리 이야기한 대로 여러 장 찍었지?”

“그럼요. 거의 똑같은 사진이 30장씩 있습니다.”

지금의 사진기는 기계적인 복제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같은 장소, 같은 위치에서 계속 사진을 찍었고.

다만 지금의 사진기는 한 장을 찍는 데만 30분이 걸리기에 같은 장소, 같은 위치에서 계속 사진을 찍었어도 빛의 영향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이는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한 장은 훗날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사료가 될 테니 잘 보관해두고 나머지는 액자에 넣고 새한성뿐만 아니라 각 도시의 광장에 전시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신문에는 사진에 관한 기사를 대거 싣긴 해야겠군요. 아. 사진기를 민간에 파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광고도 싣고.”

어느덧 능숙하게 신문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 드는 정평국을 보고 정성국은 흡족한 듯 웃었다.

그때 정평국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아. 그리고 궁에도 일부 걸어두는 편이 어떻습니까? 특히 1층에 말이지요.”

1층을 강조하는 정평국의 말에서 정성국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응? 1층? 아. 곧 새한성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라 이거지? 나쁘지 않네. 그러자고.”

* * *

1675년 5월의 어느 날.

네덜란드의 사절단이 마지막으로 새진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웅크린 늑대는 곧바로 새한성으로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에스파냐, 잉글랜드, 네덜란드의 사절단은 북미왕국이 마련해 준 마차를 타고 그동안은 넘지 못했던 외국인 거주구역을 넘어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새진주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진주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웅크린 늑대와 함께 역사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멀리서 망원경을 통해 확인했던 기차를 아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허. 멀리서 봤을 때도 짐작은 했습니다만...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육중한 것 같습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이 육중한 기차의 모습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수행원이 북미왕국의 기술력에 놀란 눈치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헌데 이 육중한 기차가 달리는 말보다도 빠르게 움직인다니...”

그때 잉글랜드 외교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저 앞부분의 황금상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게요. 원래 기차에 저런 조각상이 붙어 있던가요?”

그러한 의문에 웅크린 늑대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일반 기차에는 조각상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저건 왕실 전용 기차에만 붙어 있는 조각상이지요.”

“예? 왕실 전용 기차요?”

에스파냐 외교관이 놀란 표정을 짓자 웅크린 늑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는 사절단의 새한성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왕실 가족들이 사용하는 왕실 전용 기차를 보내셨습니다.”

“오오. 그럼 이 기차가 바로 귀국의 국왕 전하께서 평소에 사용하시는 기차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국왕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침실차는 빠졌습니다만 그 외의 객차는 전하께서 사용하시던 객차입니다.”

“허어.”

어디 조그마한 소국의 왕도 아니고 영토만 따져보면 유럽 전체를 합한 것과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자랑하는 북미왕국의 왕이 유럽의 외교관들을 위해 자신이 사용하던 기차를 직접 보냈다고 하니 외교관들은 황송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미왕국의 국왕은 절대왕권을 구축한 강한 군주였는데 그런 북미왕국의 국왕이 그만큼 자신들을 대우해준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 외교관들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속으로 조용한 곰의 생각이 제대로 적중했음에 환호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기차에 오르시지요. 아. 일반 수행원들은 다른 객차에 탑승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웅크린 늑대가 손짓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외교관들이 사절단의 일반 수행원들을 다른 객차로 안내했고 이를 확인한 웅크린 늑대는 중간에 있는 삼색으로 구성된 기차에 오르자 유럽인들도 잔뜩 기대한 눈치로 기차에 올랐고.

화려하면서도 이국적인 장식으로 가득한 객차 안의 풍경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여긴 식당...입니까?”

“그렇습니다. 식당이지요. 이 앞쪽 객차는 식당차이고 그곳에서 음식을 조리해 이곳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니 식사 시간에는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허.”

보통 마차 여행의 경우 미리 건조된 식품을 준비하거나 멈춰서 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기차의 경우 이동하면서 식사를 준비해 곧바로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잉글랜드 외교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반응을 확인한 웅크린 늑대는 슬쩍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고 외교관들은 웅크린 늑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응접실입니다. 새한성까지 이동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지루한 기차여행을 버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설명하며 웅크린 늑대는 객차의 문을 열고 다음 객차로 이동해 나타난 복도에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여러분들이 사용하실 객차입니다. 객실은 비교적 좁은 편입니다만...공간상 어쩔 수 없으니 그 부분은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웅크린 늑대가 좁다고 말한 객실은 마차보다 넓었고 안에 책상과 의자, 침대까지 있었기에 얀센이 중얼거렸다.

“허. 이 정도면 그리 좁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마차를 생각해보면 뭐...”

“헌데 다른 객차들도 다 이렇습니까?”

에스파냐 외교관이 궁금한 듯 묻자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귀빈들을 위한 객차이기에 그나마 공간이 넓은 편입니다. 일반 백성들이 타는 객차의 객실은 이것보다 더 좁고 4명이 이용해야 합니다.”

“아...”

이곳에 온 외교관들은 본국에선 하급 귀족에 불과했다.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긴 한데 거리가 거리인 만큼 고위급 귀족이 이곳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았고.

그렇기에 자신들을 대접해주는 북미왕국을 보고 내심 기분 좋을 수밖에 없는 외교관들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웅크린 늑대는 피식 웃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좁은 방을 열었다.

“이곳이 화장실이니 볼일을 볼 때 이용하시면 될 테고...”

“허. 화장실도 있는 겁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객차뿐만 아니라 다른 객차에도?”

“그럼요. 물론 중간중간 기차역에 서긴 합니다만...갑작스럽게 화장실을 이용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허어...”

외국인 거주 구역의 화장실과 동일한 구조였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이 화장실을 확인하고 고개를 저을 때 웅크린 늑대는 다음 객차로 이동했다.

“이곳은 국왕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집무실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는 객차입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다만 집무실은 국왕 전하의 개인 공간에 가까워 잠가두었으니 양해해주시길 바라며 저 뒤쪽의 회의실도 응접실처럼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외교관들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집무실의 경우 주인도 없는데 함부로 들어갈 수야 없는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기관차에서 기적이 울리자 웅크린 늑대가 입을 열었다.

“아. 슬슬 출발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그럼 새한성까지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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