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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67화 (367/850)

367화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가 올린 보고서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집무실을 나와 마차를 타고 연구청으로 이동했다.

지혜로운 나무는 작년부터 정성국이 마련해준 새한성 대학교의 연구실에서 개인 연구를 하며 틈틈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책을 집필 중이었다.

다만 점등행사 이후로 북미왕국은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하면서 연구청의 연구원들과 장인들은 전기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두며 지혜로운 나무와의 협업을 원했고 이런 협업이 점차 많아지자 지혜로운 나무는 결국 새한성 대학교의 연구실보다는 연구청의 연구실에서 지내는 것을 택했고.

“오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이 연구실에 들어오자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정성국은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연구실을 둘러보다 한쪽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물체들을 확인하고 지혜로운 나무에게 급히 질문했다.

“저건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지혜로운 나무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해주신 전자석이 전류에 따라 움직이는 원리를 이용해 만든 전기신호기입니다.”

정성국은 통신 체계의 발전을 위해 최근 전신의 원리를 적어 지혜로운 나무에게 건네주었고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이 적어 준 전신의 원리를 연구해 전기적인 신호를 빠르게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는 전신을 개발하고 이를 정성국에게 보고했다.

그 때문에 정성국은 집무실을 박차고 이렇게 연구청으로 행차한 것이고.

정성국이 커다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전신기와 이 전신기를 연결하는 전선을 바라보자 지혜로운 나무는 직접 전신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지혜로운 나무가 전신기를 짧게 세 번 누르자 이 전신기와 연결된 다른 전신기는 스스로 움직이며 부딪쳐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딱. 딱. 딱.’

“오.”

정성국이 스스로 움직여 소리를 내는 전신기를 보고 탄성을 지를 때 지혜로운 나무가 다시 전신기를 길게 세 번 눌렀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와우!”

지금 정성국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전신기의 원리는 무척 간단했다.

어찌 보면 전등 스위치의 원리와도 동일했다.

스위치를 조작해 전류가 흐르면 불이 켜지고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전신기를 누르면 전류가 흘러 반대쪽 전신기 안에 내장된 전자석이 전류에 의해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짧게 전류를 흘리거나 길게 전류를 흘려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고.

“보낼 수 있는 신호는 짧은 신호와 긴 신호 두 개뿐입니다만 이를 적당히 조합한다면 여러 정보를 빠르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흐음...”

지혜로운 나무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가지 신호를 조합해 만든 것이 바로 전생의 모스 부호였으니까.

‘전생의 모스 부호를 그래도 쓸 수야 없는 노릇이니 천상 자음과 모음마다 적당히 신호를 붙여 새로운 신호 체계를 만들어야겠지. 하지만...어차피 전화기의 원리도 대충 아는 만큼 바로 전화기로 넘어가 볼까? 가능할 것 같은데...’

정성국이 고민하자 지혜로운 나무는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정성국은 일단 전화기도 개발해보고 단기간에 개발이 어렵다면 전신을 채택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아. 이 전신의 발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네만 여기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경청하겠습니다.”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웃으며 경청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어차피 그가 처음으로 공부했던 책들도 대부분 정성국이 쓴 만큼 지혜로운 나무 역시 정성국이 천제라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고 이 전신기의 개발 역시 자신과 연구원들의 공이라기보다는 정성국의 발상 덕분에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오히려 여기서 더 발전시키겠다는 정성국의 발상을 듣고 싶었다.

이에 정성국은 내심 안도하면서 말했다.

“인간의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선을 통해 먼 거리로 전송하고 이 전기신호를 다시 인간의 음성으로 바꾼다면 멀리서도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예?”

지혜로운 나무는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겠다는 정성국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정성국의 말에 귀 기울이던 다른 연구원들은 그게 가능한가 싶은 표정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정성국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와 자네가 대화하는 것을 생각해보세. 나는 이 성대를 진동시켜 목소리를 만들어내지. 이 성대의 진동이 공기를 진동시켜 자네의 귀에 들리는 걸세. 그러니 이 공기의 진동을 전기의 진동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걸세.”

그러면서 정성국은 빈 종이에 정성국이 기억하고 있는 송화기, 수화기의 구조를 그려가며 한참 동안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에게 설명했다.

정성국의 설명이 끝나자 연구원들은 아리송한 표정이었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이 그려준 전화기의 구조를 자세히 살피다가 대답했다.

“으음...전하의 말씀대로라면 공기가 진동하면서 이 송화기라는 부분의 진동판이 흔들리고 이것이 진동판 뒤에 있는 탄소가루에 전달되면서 음성의 진동과 동일하게 변화된 전류가 흐른다는 거군요.”

“그렇지. 탄소가루의 전기저항은 압력에 따라 변화하니까.”

“그리고 이 음성의 진동과 동일한 전류가 전선을 타고 이동해 이 수화기라는 부분에 들어오면 전자석이 음성 전류의 변화에 따라 자력선이 변화하며 붙어 있는 진동판을 진동시키면서 전기신호가 음성으로 변화되는 거고요?”

“그렇네!”

지혜로운 나무가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아 정성국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그런 정성국을 보고 그저 놀랍다는 표정으로 힘없이 웃었다.

“허허허...”

그리고 그런 지혜로운 나무의 반응에서 예전 제자들의 모습이 생각난 정성국은 그의 심경을 눈치채고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오해하지는 말게. 바로 이런 구조를 떠올린 것은 아니니까. 전기신호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후 이를 더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계속 생각했었거든.”

하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하더라도...전하의 발상은 정말 놀랍군요.”

“자네들도 시간만 충분했다면 분명 이러한 발상을 떠올렸을 거네. 내 예상과는 달리 이렇게 빠르게 전기신호기를 개발한 자네들이라면 분명히.”

어차피 정성국이야 전생의 발명품의 원리를 떠올리는 것에 불과했기에 지혜로운 나무의 저런 눈빛이 영 부담스러워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지혜로운 나무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하군요. 아무튼, 전하께서 말씀해주신 이 전기 음성 전송 기계는 최대한 빠르게 연구해 구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기 음성 전송 기계라고 부르기보다는...전화기라고 하세.”

“전화기라...알겠습니다.”

* * *

정성국은 연구청에 온 김에 다른 연구실들도 둘러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러운 정성국의 등장에 잠시 쉬려고 복도에 나왔던 연구원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연구원들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연구원들에게 다가가 잠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맡은 연구에 대해 듣기도 하고 혹시 모를 불만 사항이나 건의 사항도 받았다.

물론 태반은 그저 얼어붙어 있었지만, 개척촌 시절부터 정성국을 봐왔던 몇몇 연구원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이런저런 불만 사항을 이야기해주었고.

“역시나...가장 큰 문제는 일이 너무 많다 이거지?”

“아무래도 그렇죠. 뭐 저희야 전하께 단련된 덕분에 이젠 익숙합니만...요새 애들은 좀...”

묘하게 꼰대스러운 말을 하는 연구원을 보고 정성국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큭큭. 알겠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 같아. 대학교 정원을 늘려 대학교 졸업생을 늘릴 수야 있겠지만...”

정성국이 말을 흐리자 연구원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결국, 저희가 제대로 단련시켜야 한다는 거겠죠?”

“그렇지. 처음부터 모든 일을 완벽하게 잘하는 신입이 어디 있겠나.”

“끙...그렇기야 하죠.”

“자네들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신입 들을 잘 가르치라고. 그래야 나중에 후배들에게 일을 떠넘기고 이 연구청을 탈출해 그동안 번 돈을 쓰며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겠어? 이대로는 연구청의 지박령으로 남게 될걸?”

정성국의 농담에 피식 웃는 연구원들을 뒤로 한 채 정성국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한 연구실에 들어갔다.

“헉! 전하! 여긴 어인 일로...”

한 연구원이 정성국의 등장에 기겁하자 정성국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지나가던 길에 잠깐 들렀네. 어? 너희들이 여긴 웬일이냐?”

정성국이 고개를 돌리자 연구실 안에는 이상돈, 박기동, 최주명이 커다란 상자 근처에서 정성국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놀란 표정으로 묻자 박기동이 먼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그리고 이상돈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라? 스승님이 이번 시연을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응? 시연? 뭐야. 벌써 냉장고의 개발이 끝났다고?”

북미왕국 곳곳에 수력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공급하기로 한 이상 이 전기를 단순히 빛을 밝히는 데만 사용하는 것은 영 아쉬웠던 정성국은 이상돈에게 직접 냉장고의 원리를 설명해 주며 냉장고의 개발을 지시했다.

냉장고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물품이 또 없었으니까.

물론 당장 가정용 냉장고를 개발하라고 한 것은 아니고 최소한 산업용 냉장고, 냉동고만 개발한다 하더라도 북미왕국 백성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해서 이왕 연구청에 들른 김에 냉장고 개발의 진행 상황이나 알아볼까 하고 방문했는데 이미 냉장고의 시제품이 존재한다는 말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알고 오신 것 아니십니까?”

“아니야. 지혜로운 나무를 만나고 오는 길에 잠깐 들렸을 뿐이지. 헌데 시제품을 만들었으면 즉각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성국이 투덜거리자 이상돈이 어깨를 으쓱했다.

“스승님께서 얼마나 바쁘신지 뻔히 아는데 함부로 보고할 수야 있나요? 성공한 다음에 알리려고 했지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옮겨 냉장고로 짐작되는 물품 앞으로 이동하며 박기동과 최주명을 바라보았다.

“근데 너흰 왜 여기 있냐?”

“저야 냉장고 개발에도 도움을 주었으니 최소한 시제품이 돌아가는 것은 직접 확인해야죠.”

박기동이 먼저 대답했고 최주명이 뒤이어 입을 열었다.

“이 냉장고가 개발되면 선박에도 설치하실 계획이라면서요? 해서 냉장고의 실물이 궁금하기도 하고 상돈이나 기동이 녀석이 저 냉장고가 북미왕국 백성들의 삶의 질을 대폭 끌어올릴 엄청난 기계라고 하도 떠들기에 시연한다는 소리에 와본 거죠.”

이에 정성국은 혀를 차며 타박했다.

“쯧쯧. 얼마나 자랑을 했길래 저 바쁜 애가 직접 시연을 보기 위해 오는 거냐?”

“하하하.”

박기동과 이상돈이 멋쩍은 듯 웃자 정성국은 고개를 젓다가 시제품인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시제품인 냉장고는 높이는 약 1.5m 정도 되어 보였고 문은 하나뿐이었으며 철제 손잡이가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외국의 고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이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냉장고에서 소음이 들렸기에 정성국이 생각을 멈추고 물었다.

“저거 지금 가동 중이냐?”

“예. 한 30분 전쯤에 유리컵에 물을 넣고 가동 중입니다.”

“그래?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슬슬 물이 차가워졌을 것 같은데? 한번 꺼내봐.”

“알겠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이상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잡이를 잡고 위에 있는 단추를 누르자 철컥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동시에 냉장고 안에서 냉기가 밖으로 흘러나오자 옆에 있던 박기동과 최주명은 일제히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

“야...이거 공기부터 서늘한데?”

그때 이상돈이 냉장고 안에 있던 물컵을 들고 중얼거렸다.

“오. 차갑다.”

“그래? 와. 진짜네.”

박기동과 최주명도 물컵에 손을 대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상돈은 물컵을 정성국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스승님.”

정성국은 차가운 물컵의 감촉에 씩 웃으며 시원한 물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크으. 적당히 시원하니 물맛 좋네. 이걸 보니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인데...이건 내부 온도가 몇 도까지 내려가는 거냐?”

정성국의 질문에 이상돈이 냉장고 안에 설치된 온도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설계대로라면 5도까지 내려가야 합니다만...지금 내부 온도는 일단 10도 정도네요.”

“흠. 그럼 냉장고를 계속 가동해서 설계대로 5도까지 내려가는지 확인하고 보고해.”

“알겠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이상돈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덧붙였다.

“그리고 저 시제품을 더 연구해서 영하 20도 정도까지 내려가는 냉동고도 만들어 봐. 식품을 장기 보관하려면 결국 식품을 꽝꽝 얼려야 할 테니까.”

이에 이상돈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라? 냉장고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실험해봐. 하지만 육류 같은 경우는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면 결국 상할 거야. 물론 상온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보관할 수야 있겠지만...몇 달씩 보관할 수는 없을걸?”

“흐음...그 부분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때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놀라고 있던 최주명이 중얼거렸다.

“이거 선박에 설치하면 정말 초장기 항해도 가능하겠는데요? 선원들의 식단도 풍성해질 테고.”

“그뿐만이 아니야. 그동안은 보관문제 때문에 곡물 외엔 수송하기 어려웠지만 커다란 냉동고를 설치한 배가 있다면 이곳에서 도축한 신선한 고기를 얼려 아이누 섬으로 보낼 수도 있지. 반대로 내륙에서도 어부들이 잡은 신선한 생선을 즐길 수 있을 테고. 내가 괜히 이 냉장고의 개발로 북미왕국 백성들의 삶이 확 바뀔 거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

“맙소사...”

정성국은 자신의 설명에 놀란 최주명을 보고 피식 웃으며 이상돈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냉장고의 개량에 힘을 써주렴.”

“알겠습니다.”

이상돈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려다 문득 생각나서 덧붙였다.

“아. 그리고 냉장고도 그렇고 냉동고도 개발이 끝나면 시제품을 만들어 바로 궁으로 좀 보내. 얼음 창고부터 없애버리게.”

“하하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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