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365화 (365/850)

365화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3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최주명의 보고를 받고 급히 새한성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헌데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는지 새한성의 선착장 주변에는 꽤 많은 새한성의 주민들이 몰려 선착장 한 편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선박을 구경하고 있다가 흰머리수리 깃발이 달린 마차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마차가 멈추고 정성국이 마차에서 내리자 몰려든 백성들은 정성국을 보고 환호하기 시작했기에 정성국은 웃으며 백성들에게 몇 번 손을 흔들어준 뒤 호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이야. 멋진데?”

정성국이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선박에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하자 최주명과 뒤쪽에 있던 장인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요? 정말 잘 빠진 녀석입니다.”

“저게 3천 톤급 철선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스승님.”

정성국이 최주명의 보고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새한성의 선착장으로 나온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300톤급 철선을 운용하며 연구하던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이 천급 함선보다 큰 철선을 건조했다는데 어찌 구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능력도 좋다. 기껏해야 300톤급 철선을 만들다가 단번에 천급 함선보다 큰 저런 거대한 철선을 만들다니.”

이에 최주명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런 거대한 철선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었으니까요. 다만 당시엔 철도 공사로 인해 강철이 무척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웠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과감히 도전했고 성공했다 이거지? 고생했다. 운용해보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저걸 양산하면 될 것 같은데...”

정성국은 천급 함선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3천 톤급 철선을 보고 무슨 이름을 붙여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최주명이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걸로 만족할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저건 그동안의 연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적인 성격의 배이기도 하고요.”

“응?”

“크기를 더 키워야지요. 저건 기껏해야 천급 함선보다 약간 더 큰 편에 불과하니까요.”

“하하하.”

최주명의 선언에 뒤에 있던 장인들도 비슷한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이들의 자신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이어 덧붙인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웃음을 멈추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5천 톤급 철선의 설계도 거의 끝난 상황입니다.”

“허. 그래?”

“예. 해서 이미 5천 톤급 철선 건조를 준비 중이기도 하고 신철이 녀석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천 톤급 철선이 성공적으로 건조되고 운용상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저 녀석보다 5천 톤급 철선을 양산해 수송선으로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정성국은 무척 자신을 보이는 최주명과 뒤쪽에 서 있는 장인들의 얼굴을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배는 크면 클수록 좋고 이미 이 분야에서 전문가인 최주명과 장인들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 3천 톤급 선박보다 5천 톤급 선박을 양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만큼 이를 존중한 것이다.

‘뭐 당장 수송선이 부족해 허덕이는 상황은 또 아니니 1, 2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생각해보면 파나마 운하의 건설은 이 5천 톤급 철선의 건조 이후로 미루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네. 여러 물자를 수송해야 하니.’

“5천 톤급 철선이라. 그래.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테니 한번 만들어 봐.”

정성국의 승낙에 최주명과 장인들은 무척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 말을 끝으로 정성국은 계단식 사다리를 타고 철선에 올라 내부를 구경하다가 뒤따라오며 설명하는 최주명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개량된 천급 함선의 건조도 끝났다면서?”

증기기관은 계속해서 발전했지만 당장 천급 함선 이상의 선박을 건조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기존의 선박에 장착하는 증기기관의 출력을 높여 더 빠른 배를 건조하라고 지시했었다.

해서 작년부터 신규로 건조되는 지급, 인급 함선들은 기존의 선박보다 배는 빨랐고.

하지만 천급 함선의 경우 새롭게 개발한 증기기관을 장착해야 하는지라 새롭게 설계해야만 했고 덕분에 최근에 건조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이를 묻자 최주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최근 설계를 일부 변경하고 증기기관을 교체해 평균 21노트로 항해할 수 있는 천급 함선이 건조되었고 이로써 현재 건조되는 선박들은 모두 기존의 선박보다 배로 빨라져 더 많은 물자와 인력을 수송하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정성국은 최주명의 보고에 만족하면서도 아직은 기존의 느린 선박들이 더 많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기존의 선박도 개량해 속도를 늘릴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우니 조금 아쉽기야 한데...아. 그러고 보면 전선 개량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냐?”

“이미 2, 3함대의 전선 개조는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끝나면 4함대, 1함대 순으로 개량 작업에 착수할 생각이고요.”

일반 선박이야 개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새로 배를 건조하는 편이 효율적이었지만 전선의 경우는 상황이 달라 개량 작업에 착수했었는데 이미 2, 3함대의 경우 개량 작업이 거의 끝났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그래? 새진주야 몰라도 포로나이에서 전선 개량 작업이 가능할 줄은 몰랐네.”

새진주는 수많은 배를 건조하는 커다란 조선소가 존재했지만, 포로나이는 상황이 달랐기에 중얼거리자 최주명이 웃으며 대답했다.

“뭐 조선소는 없지만, 선박 수리소야 있고 이곳에서 장인들을 추가로 보내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헌데 묘하게 1함대가 푸대접받는 느낌이야.”

원래 1함대는 수도 인근의 바다를 지키는 만큼 가장 정예 함대여야 할 텐데 1함대 사령관은 공석이었을뿐더러 이번 전선 개량 작업에서도 순번이 가장 뒤로 밀렸기에 정성국이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최주명이 웃었다.

“하하하. 후방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다른 함대와는 달리 1함대의 경우 확실히 후방에 가까웠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겨 주변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천급 함선과 거의 똑같구나.”

“그야 그렇죠.”

“아. 그리고 개량된 천급 함선을 건조한 김에 이를 개조해 천급 전선을 건조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이에 최주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천급 전선이라...스승님께서는 당장 천급 전선의 건조는 불필요하다는 입장 아니셨습니까?”

“그렇긴 한데 직접 프랑스 해군과 해전을 치른 이정운 4함대 사령관도 그렇고, 김봉길 2함대 사령관도 80mm 화포로 무장한 천급 전선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더라고. 유럽의 최신 전열함은 지급 함선 정도의 크기는 되는지라 생각보다 튼튼하다면서.”

이미 뉴펀들랜드 해전의 보고서를 무척 상세히 살폈을뿐더러 노획한 프랑스 전열함을 철저히 파악해 올라온 보고서 역시 확인했던 최주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굳이 그 이유로 천급 전선을 건조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반문했다.

“그러면 지급 전선의 무장을 교체하면 그만 아닙니까? 어차피 공간은 충분할 텐데요?”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유럽 각국은 더 크고 튼튼한 전열함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텐데 그냥 가만히 있기도 좀 그렇고. 특히 뉴펀들랜드 해전 이후 2, 4함대를 유심히 관찰하는 유럽인들이 무척 많아졌다는 보고도 있었거든.”

정성국의 대답에 최주명은 그가 천급 전선을 건조하려는 의도를 깨닫고 살짝 웃었다.

“하하하. 그것참...허면 아예 주력 전선으로 채용하실 생각은 아니시군요?”

“그렇지. 각 함대에 1, 2척 정도 배정할 생각이야. 일종의 과시용이자 기함의 역할을 하도록. 아. 이러면 1함대에만 1척이 배정될 것 같은데...”

정성국이 투덜거리자 최주명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일종의 과시용인데 굳이 1함대에 많이 배정할 필요야 없죠. 그거 낭비입니다. 아무튼, 스승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바로 장갑을 강화한 천급 전선의 설계에 착수하겠습니다.”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포탑에 관한 연구도 같이 진행했으면 좋겠다. 당장 천급 함선에 포탑 방식을 채용할 생각은 아니지만, 슬슬 연구는 해야겠지.”

“포탑...이요?”

그건 또 뭔가 싶어 최주명이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발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북미왕국의 정보가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도 더 크고 단단한 배를 건조하기 위해 애를 쓸 거야. 그러다 보면 저들도 우리의 전선들처럼 겉에 금속을 씌워 방어력을 높일 수도 있겠지.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이를 뚫기 위해 더 커다란 화포를 장착해야 할 테고.”

“으음...확실히 그렇게 흘러가겠군요.”

“그렇게 화포가 발달하다 보면 지금처럼 양 현측에 화포를 장착하긴 어려울 수도 있어. 화포가 커지고 길어지니까. 그럼 자연스럽게 화포는 갑판 위로 올라와야 할 테고.”

그제야 최주명은 정성국이 말한 포탑의 의미를 깨닫고 중얼거렸다.

“아. 화포가 갑판 위로 올라가면 아무래도 적 공격에 취약한 만큼 이 화포와 이를 운용하는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구조물이 포탑이군요?”

“그렇지. 엄밀히 말해 지금 저 상부 구조물도 일종의 포탑이야. 선수포와 선미포는 저기에 들어가 있으니까.”

“아. 그렇네요?”

생각해보면 전선에 장착된 선수포와 선미포의 경우 안전을 위해 건설한 상부 구조물 안에 설치되어 있었으니 굳이 이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멍하니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사각을 없애려면 포탑 자체를 회전시켜야 하니 따로 분리하라는 거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의 회전 포탑을 대략 설명해 주었고 최주명은 그 설명을 듣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포탑을 회전하려면 동력이 필요한 만큼 기동이 녀석과 함께 연구해봐야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평화하고도 이야기해 봐. 나중에 개발될 100mm, 120mm 화포가 거기에 장착될 테니.”

“아. 그렇네요.”

그 말을 끝으로 정성국은 계단식 사다리를 타고 철선에서 내려온 후 질문을 던졌다.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해 갑문이나 건설 기계를 운반할 수송선은 5천 톤급 철선을 건조해 이를 개조해 사용한다 치더라도...쾌속선의 개발은 잘 되어 가냐?”

이제부터 일반 선박의 속력도 20노트는 되는 만큼 쾌속선은 그보다 더 빨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최주명을 바라보자 최주명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게...”

최주명과 뒤쪽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는 조선 장인들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지?”

“예. 26, 7노트까지는 올라가는데 그 이상은 여러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해서 일단 평균 25노트로 이동하는 쾌속선을 6척 건조 중입니다.”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쾌속선을 건조 중이라고? 당장 해결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네?”

“예. 속도를 높이면 배의 회전 날개가 손상되는지라...신철이 녀석이 더 강한 합금을 만들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고 판단했거든요.”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조언을 해 주었다.

“그건 물속에서 빠르게 회전 날개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공기 방울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야.”

최주명과 장인들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정성국의 대답에 무척 놀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예?”

“그러니 회전 날개의 모양을 바꿔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박기동과 지혜로운 나무도 이 문제를 겪었고 이를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해봐.”

“...예?! 그게 정말입니까?!”

정성국은 최주명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럼 내가 너한테 농담을 하랴. 그럼 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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