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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64화 (364/850)

364화

1675년으로 해가 바뀐 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나 슬슬 날씨가 풀릴 무렵 개발청장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래? 파나마 지역의 측량이 끝났다고?”

작년에 파나마 지역으로 떠난 측량 기사들이 파나마 지역의 측량을 끝내 상세한 지도를 작성하고 돌아왔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반색하자 개발청장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지도를 정성국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것이 바로 새롭게 측정한 파나마 지역의 상세 지도입니다.”

“흐음...”

정성국은 지도를 받아들고 상세히 측량한 파나마 지역의 지도를 살펴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파나마 운하를 유지하기 위해 산 위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호수인 가툰 호수나 이 가툰 호수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알라후엘라 호수가 없기 때문인지 같은 지역의 지도임에도 확실히 생소해 보였기에.

그리고 이렇게 측량된 지도를 살펴보니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물을 채우기만 하면 생각보다 운하 건설이 쉽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입을 여는 정성국이었다.

“이곳에 분지가 있으니 이 지형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공사 구간은 짧을 것 같은데? 이 산 중턱에 아예 인공 호수를 만들어 버리는 거지.”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그렇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해주신 갑문식 운하를 연구하던 개발청의 연구원들과 기술자들도 다 그런 소리를 하더군요. 이 협곡 전체를 물로 가득 채워 인공 호수 위에 배를 띄울 수 있으면 생각보다 공사 구간은 무척 짧을 거라면서요. 호수로 진입하는 갑문만 건설하면 그만 아니겠느냐면서.”

최근 북미왕국 곳곳에 들어설 수력발전소를 설계하면서 이런 부분에서는 정성국보다 나은 개발청의 인재들도 이미 정성국과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에 정성국은 만족하며 전생의 파나마 운하를 떠올리고 덧붙였다.

“뭐 대서양과 연결된 부분은 그 친구들의 말처럼 갑문만 건설하면 될 테지만 태평양과 연결된 부분은 갑문과 인공 호수를 연결하는 수로를 어느 정도 파긴 해야 할 거야. 그리고 인공 호수의 수위를 조절해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니 댐도 여럿 건설해야 할 테고 필요에 따라선 이 동쪽 지역에 또 다른 저수지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네.”

정성국의 설명에 개발청장은 이를 유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지요. 개발청의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에게 전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곳 원주민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되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못해도 10만 명 안팎의 장정들은 동원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오?! 그래?”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반색하자 개발청장은 씁쓸히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에스파냐 관리의 말에 따르면 영 비실비실한 자들이라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에스파냐는 멕시코 원주민들도 비슷하게 평가했었다.

해서 이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하려는 북미왕국을 내심 비웃기도 했었고.

하지만 북미왕국의 급격한 발전에는 분명 성실히 일하는 이 멕시코 원주민들의 지분이 없지 않았고 이를 잘 아는 정성국은 에스파냐 관리의 평가가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에스파냐놈들이야 원주민들을 노역을 통해 어떻게든 공짜로 부려먹으려니 빌빌대는 거겠지. 원주민들을 고용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식량도 충분히 제공한다면 멕시코 원주민들처럼 제 몫을 할걸세.”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며 일하는 동안 먹을 식량마저 알아서 챙겨야 하니 당연히 원주민들은 빌빌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 북미왕국에서는 고용된 일꾼의 대우에 최대한 신경 썼고 그 결과 전생의 정성국이 기억하는 느긋한 멕시코인들의 조상뻘인 멕시코 원주민은 무척 열심히 일하며 북미왕국의 발전을 도왔고.

그런 만큼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도 같을 거라는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이 동의했다.

“그렇지요.”

“문제라면 생각보다 원주민의 수가 많으니 이들에게 먹일 식량을 운송하기도 쉽지는 않다는 점인데...”

“그렇습니다. 새김포에서 파나마 지역까지는 의외로 먼 편이니까요.”

가뜩이나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해 각종 자재를 수송해야 하는데 원주민들을 배불리 먹일 식량까지 수송하기는 쉽지 않았다.

새김포에서 파나마 지역까지의 거리는 대략 6천km가량 되는 만큼.

그렇기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데?”

정성국의 제안에 개발청장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편이 낫겠지요. 충분한 고기도 공급해야 하는 만큼 현지에 축사를 건설해야 할 텐데...동물들의 먹이까지 북미왕국에서 수송할 수야 없는 법이니까요. 해서 말인데 아무래도 실제 운하 착공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습니까? 설계도 끝나야 하고 일단 북미왕국 곳곳에 건설하는 수력발전소의 건설이 끝난 뒤에나 파나마 운하 건설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러니 공사에 들어가기 한 1, 2년 전쯤에 일부 원주민을 고용해 논밭을 개간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흐음...생각해보면 어차피 파나마 지역 곳곳에 일꾼들이 지낼 숙소를 건설할 생각이었잖나?”

정성국이 한마디 하자 개발청장은 곧바로 정성국의 의도를 알아채고 대꾸했다.

“아. 아예 공사 시작 전 마을을 건설하고 그 주변을 개간하라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게 나아 보이네.”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에스파냐에 통보하고 내년 가을쯤에 인력 일부를 파나마 지역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파나마 운하 건의 보고가 끝나 돌아가려던 개발청장은 정성국이 말을 흐리자 멈춰 고개를 갸웃했다.

“또 하명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예전에 고층 건축물에 관해 연구해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지? 강철과 석회를 이용해 건설하는 고층건물 말일세.”

“아.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지시하신 이후 일부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이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 덕분에 강철과 석회를 이용한 건축 기술이 무척 발전한 편이지요.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슬슬 고층 건축물을 지을까 싶어서 말이네.”

정성국이 대답에 개발청장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층 건축물에 관한 연구는 개척촌 시절부터 정성국의 명령으로 진행되었고, 시일이 흘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어 정성국에게 이를 알렸지만, 정성국은 지진에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건설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음...하지만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이곳은 지진이 간혹 일어나기에 고층 건축물을 짓기엔 아직 이르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캘리포니아 지역이 지진에 안전한 지역은 아니었기에 깐깐하게 굴었던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반문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아직 지진에 버틸 만한 고층 건축물을 짓는 것은 무리인 모양이군?”

“흔히 인식도 하기 어려운 약한 지진 정도야 무슨 문제겠습니까마는 땅이 뒤흔들리고 사람들이 지진을 버티지 못해 쓰러질 정도라면 어렵다고 하더군요.”

전생의 기준으로 따지면 대략 진도 6 정도를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었는데 어차피 그 정도면 전생에서도 건물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건축 기술이 발전했구나 싶어 내심 만족한 정성국이었다.

“그런가? 하지만 상관없네. 어차피 이곳에 지을 생각은 아니니까.”

“허면?”

“새진주에 지을 생각이네.”

“으음...새진주라...”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이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정성국은 다시 입을 열었다.

“새진주를 건설한 이후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은 없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안전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일세.”

“한데 갑자기 고층 건축물을 새진주에 지으시려는 까닭이 있으십니까?”

개발청장의 질문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최근 새한성을 구경하려는 백성들이 몰려들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새한성의 출입을 막고 기차와 배의 표를 환불해준 사태는 자네도 알고 있지?”

그 일과 새진주에 고층 건축물을 건설하려는 이유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지만, 개발청장은 일단 정성국의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 때문에 백성들이 새한성에 대거 몰려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행정청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꼭 그 때문만은 아니더군. 철도가 개통된 이후 기차를 통해 손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여행객이 늘어 새한성의 숙소 공실률이 생각보다 낮은 편이었어. 거기에 철도 노선이 확장되고 안정적으로 정착해 부유해진 농부들이 신문을 보고 새한성을 궁금해하면서 새한성을 한 번쯤은 방문해보려는 백성들이 더 늘어난 거지.”

정성국의 대답에 개발청장은 정성국의 의도를 눈치채고 중얼거렸다.

“아. 허면 새한성을 찾는 백성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새진주에 고층 건축물을 건설하시겠다는 뜻이로군요?”

“정확하네. 처음엔 관광도시라도 건설해볼까 고민을 좀 했었는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교통이 불편하면 백성들이 몰려들진 않으리라고 생각했거든.”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뉴욕이나 LA 등은 존재하지 않지만, 자연경관은 존재했다.

옛 이로쿼이 연맹의 영역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라던가, 애리조나 북쪽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던가.

해서 정성국은 새한성을 구경하겠다고 몰려드는 백성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저 인근에 관광도시를 건설해볼까 싶었지만, 철도라도 깔지 않는 이상 새한성으로 몰려드는 백성들이 저곳을 방문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는 개발청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지요.”

“그러다 보니 철도 노선이 건설된 도시 중에선 그나마 새진주가 괜찮아 보이더군. 일단 이곳은 유일하게 바다와 접한 곳 아닌가.”

“아. 그건 그렇군요. 바다를 건너 이주해 온 조선 이주민들은 몰라도 내륙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기차를 타고 한 번쯤은 새진주로 가 바다를 구경해볼 법하군요.”

“그렇지. 다만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새한성에 비해 아무래도 매력은 떨어지지. 그래서 고층 건축물을 짓고 볼거리를 제공할 생각이고.”

정성국의 설명에 일리가 있다는 듯 수긍한 개발청장은 정성국을 보며 물었다.

“볼거리라...확실히 고층 건축물이 지어진다면 이를 구경하려는 백성들이 많긴 하겠군요. 허면 어느 정도 높이의 건축물을 지어야 할까요?”

“못해도 40m 정도는 되어야 고층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엄밀히 따지면 40m의 건물을 고층 건축물이라고 이야기하긴 조금 애매하긴 했다.

기원전 이집트에 세워진 기자의 피라미드 높이만 하더라도 146.5m는 되었고 13세기에 건축된 잉글랜드의 링컨 대성당은 하늘로 솟은 뾰족한 첨탑 덕분에 피라미드보다 높았고 이런 성당들은 생각보다 꽤 있었기에.

다만 이는 정성국이 건설하려는 전생의 빌딩과는 조금 달랐기에 무시하고 전생에서 세계 최초의 마천루라고 불리었던 시카고에 건설된 홈 인슈어런스 빌딩의 높이가 42m 정도라는 것을 떠올려 40m를 언급했다.

“40m라...”

“만약을 대비해 굉장히 튼튼하게 지어야 하는데...가능할까?”

정성국이 묻자 개발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가능할 겁니다. 지금 건설하고 있는 댐 중에 가장 높은 것은 60m 가까이 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물론 댐과 고층 건축물은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전하께서 고층 건축물의 건설을 허락하셨다는 소식을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그 친구들 의욕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그래?”

“예. 외무청을 통해 유럽의 정보가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유럽의 건축 수준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이 알려졌고 특히 유럽에는 거대한 고층 건축물이 다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의욕을 불태우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터라 아마 고층 건축물을 지을 기회가 생겼고 그 건축물이 유럽인들이 드나드는 새진주에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의욕을 불태울 겁니다. 하하하.”

“아...”

개발청장은 자신 있게 웃었지만, 유럽의 상황을 잘 아는 정성국은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유럽의 사정을 대충 설명해 주었고.

“허...유럽의 건축술이 대단하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헌데 그러면 더 높은 건축물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저들의 건축물을 의식할 이유는 없네. 그리고 북미왕국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고층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저들의 건물이 높은 것은 첨탑 때문일세. 하지만 우리가 지을 건물은 다르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의 고층 빌딩을 설명해 주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아. 일종의 장식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실제로 활용하시겠다는 뜻이로군요.”

정성국의 설명에 개발청장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그러니 단순히 높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건물을 이용할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해야 하네. 그러니 연구청의 도움을 받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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