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정성국은 사색이 되어 허겁지겁 집무실을 찾아온 행정청장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행정청장은 잠시 숨을 고른 후 곧바로 정성국에게 자신이 급히 집무실을 찾은 이유를 이야기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지금 새한성 내의 숙소가 꽉 찼다고 이야기한 건가? 아직 새해가 되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보통 새해에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새한성으로 백성들이 몰려오긴 했지만, 기껏해야 전날이나 당일에 새한성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헌데 아직 새해가 되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도 새한성에 존재하는 모든 숙소에 사람이 가득 찼다는 소리에 그게 말이 되느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행정청장은 그저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참고로 기차역 근처에 건설한 숙소들 역시 모두 새해에 새한성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기 위해 각지에서 기차를 타고 모여든 백성으로 인해 꽉 찬 상황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새한성으로 몰려오고 있고?”
“그렇습니다. 전하.”
“돌겠네. 진짜.”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철도가 완공되면서 기차역 주변에는 기차 여행객이 쉴 수 있는 숙소를 대규모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여행이 쉽지 않은 터라 일반 여행객이 많지 않았지만, 교통이 발전함에 따라 여행객이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아는 정성국이었기에 철도 공사가 완공될 때쯤 선착장 인근에만 주로 건설했던 숙소들을 기차역 주변에서 건설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이 숙소들은 이전 점등행사 당시에만 하더라도 아직 건설 중이었기에 당시에는 숙소가 부족하다는 행정청장의 보고에도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이 숙소들이 운영되는데도 불구하고 꽉 찼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깨달은 정성국이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아니. 이럴까 봐 일부러 새해에 열리는 축제와 관련된 기사는 자제시켰는데...”
이전에 멋모르고 새한성에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기사로 냈다가 백성들이 몰려 고생했었기에 이번에는 정평국에게 이야기해 축제와 관련된 기사는 축제 이후로 미뤄버렸는데도 이전보다 사람이 더욱 몰린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망연자실 하자 행정청장이 쓰게 웃었다.
“그동안 꾸준히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었고 이것이 알음알음 알려졌으니까요. 그리고 예전이었다면 거리가 멀어 축제를 보기 위해 한겨울에 새한성을 방문하려고 집을 나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이젠 기차를 타면 금방이기도 하고요.”
“금방?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며칠만 고생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지루할 뿐이지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잖습니까. 거기에 신문이 발행되면서 새한성의 정보를 접한 다른 지역의 백성들이 새한성을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어 하는 터라...”
행정청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이를 받았다.
“기왕이면 축제가 열리는 새해에 맞춰 방문한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특히 농부들의 경우는 겨울에 크게 할 것이 없으니까요.”
“하아...”
생각해보면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새한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새한강 유역의 농부들이었다.
이들은 겨울에 크게 할 것도 없었고 수확 후였기에 주머니는 두둑해서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철도가 개통되면서 새한강 유역의 농부뿐만 아니라 새진주의 농부들까지 새한성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기차운임이 그리 싼 편도 아니고 숙박비에 이런저런 비용까지 생각해보면 그만큼 북미왕국 백성들이 부유하다는 뜻이니 나쁠 것은 없는데...죄다 새한성으로 몰려든다는 것이 문제네. 여행객을 분산하기 위해서라도 경치 좋은 곳에 관광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에서도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면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던 정성국은 이러한 계획이 당장 사태 수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후우. 일단 날이 추우니 이전처럼 공터에 천막을 칠 수도 없어. 그러니 결국 민박 외엔 답이 없는데...”
“문제는 새해에 가까워질수록 기차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새한성에 방문하는 새김포와 새한강 유역의 백성들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수도 만만치 않아서 민박으로 이들을 모두 감당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새한성 출입을 통제하는 수밖에.”
“음...역시 그 수밖에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를 하겠습니다.”
* * *
한참의 항해 끝에 마침내 다시 프랑스에 도착해 곧바로 루이 14세의 알현실을 방문한 아브라함 듀케인은 알현실의 옥좌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루이 14세를 보고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크흑. 국왕 폐하.”
루이 14세를 보자 여러 감정에 휩싸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루이 14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오랜만이군. 듀케인 제독. 그래도 포로 대우는 괜찮았던 모양이야. 오랜 포로 생활에도 불구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을 보니. 다행이군.”
루이 14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브라함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이 무능한 덕분에 국왕 폐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북미왕국 해군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뉴펀들랜드 해전의 패배로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급감해 네덜란드와 에스파냐 놈들에게 수모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모두 소장의 책임이니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을 끝으로 아브라함은 고개까지 숙이며 루이 14세의 처분을 기다렸다.
루이 14세는 그런 아브라함을 보고 씁쓸히 웃다가 손을 내저었다.
“됐네. 일어나게.”
“예?”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로 자네를 문책할 생각은 없다는 소릴세.”
본국에서 보낸 배를 타고 귀환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를 해둔 아브라함은 루이 14세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루이 14세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하오나...”
“물론 관료들 가운덴 이번 뉴펀들랜드 해전의 패배를 자네의 탓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네. 하지만 자네가 보낸 보고서나 다른 함장이나 사관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뉴펀들랜드 해전의 패배는 단순히 전술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명백하네. 그러니 자네를 문책하진 않을걸세.”
아브라함은 유능한 제독이고 북미왕국 해군과 실전을 경험한 인물이었기에 그냥 내치기는 아깝기도 했고 따지고 보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프랑스 해군을 뉴펀들랜드로 보낸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는 만큼 그냥 넘어가려고 마음먹은 루이 14세였다.
“하지만...”
“그리고 자네 말마따나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자랑스러운 프랑스 해군이 반 토막 나버려 곳곳에서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네. 그러니 자네가 이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나?”
비록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항복이었지만 이 때문에 루이 14세가 분노해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었던 아브라함은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루이 14세의 말에 감격해 루이 14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국왕 폐하. 국왕 폐하의 말씀대로 프랑스 해군의 재건과 무역로 보호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루이 14세는 아브라함이 조금 진정하자 뉴펀들랜드 해전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비록 아브라함이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외교 사절로 북미왕국을 방문한 데니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는 했지만 직접 듣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그리고 아브라함은 뉴펀들랜드 해전의 진행 과정과 당시의 상황을 무척 자세하게 설명했고.
“흐음...바람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배와 후장식 대포, 그리고 폭발하는 포탄의 조합이라...자네가 보낸 편지에도 적혀 있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대단했다는 뜻이지?”
루이 14세의 물음에 아브라함이 조금은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용감한 프랑스의 해군들이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 백병전으로 돌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 전에 모두 격침당한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확실히 우리가 북미왕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긴 했군. 잉글랜드처럼 북미왕국과 교류하며 저들의 정보를 수집했어야 했는데...”
그런 아브라함의 대답에 루이 14세는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이에 옆에서 조용히 대기하던 콜베르가 루이 14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에스파냐 놈들 때문에 저들과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 큽니다. 있지도 않은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넘겨버리는 바람에 섣불리 북미왕국과 교류하기가 힘들었지요. 더불어 잉글랜드가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팔아버리면서 북미왕국이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까지 확장했으니 애써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은근슬쩍 누벨 프랑스의 총독을 변호하는 콜베르였지만 루이 14세는 냉소했다.
“흥. 그렇다면 끝까지 무시했어야지. 대체 왜 다른 원주민 부족을 선동해 북미왕국을 공격하려다가 저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건지...쯧.”
누벨 프랑스의 총독은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의 식민지를 장악하면 주변으로 확장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렇다면 그 대상은 누벨 프랑스가 될 수밖에 없기에 네덜란드와의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 본국의 지원이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고자 원주민들을 선동했으리라 짐작한 콜베르였다.
하지만 이런 누벨 프랑스 총독의 사정을 이야기해봐야 루이 14세가 이를 이해할 것 같지는 않았고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섣불리 움직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침묵했다.
“아무튼, 전쟁은 끝났고 당장 북미왕국과 적대할 생각이 없긴 하지만...그렇다고 언제까지 북미왕국의 해군을 두려워하며 저들의 눈치를 살필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러니 저들을 따라 새로운 배와 대포, 포탄을 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루이 14세의 말에 아브라함은 신음을 흘렸다.
이는 아브라함 자신도 포로수용소에서 한참을 생각했던 문제였으니까.
직접 북미왕국의 해군과 해전을 치렀고 저들에게 제대로 피해를 주지 못해 무력하게 항복해야만 했던 아브라함으로선 당연히 북미왕국의 군함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단기간에 북미왕국의 무기를 따라 하기는 어려워 보였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으음...물론 국왕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당장 북미왕국의 배가 무슨 원리로 움직이는지도 알 수 없고 후장식 대포의 경우 기술의 문제로 양산하기 어려우니까요.”
이에 루이 14세가 콜베르를 바라보자 콜베르가 입을 열었다.
“아. 북미왕국의 배는 증기기관을 사용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네.”
“예? 증기기관이요?”
북미왕국을 방문하면서 새진주로 이동하기 위해 북미왕국의 배를 탔던 데니스 도다르가 북미왕국의 배는 출항할 때마다 석탄을 가득 싣는 것을 볼 때 석탄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하자 콜베르는 여러 학자에게 이를 알리며 북미왕국 배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고 결국 학자들은 토론 끝에 북미왕국의 배가 증기기관으로 움직인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아브라함에게 설명하자 아브라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제 생각을 말했다.
“으음...북미왕국의 배가 움직이는 원리를 짐작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원리를 안다고 당장 이를 적용해 북미왕국처럼 바람에 상관없이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렇지...”
학자들이 북미왕국의 배가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이야기하자 루이 14세와 콜베르는 반색하며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배를 건조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북미왕국과의 기술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해서 아브라함의 말에 콜베르가 맥빠진 표정으로 수긍하자 아브라함이 덧붙였다.
“그리고 후장식 화포도 비슷한 상황이고요. 그러니 그 부분은 천천히 연구해 개발하도록 하고 일단은 폭발하는 포탄을 개발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에 루이 14세가 중얼거렸다.
“폭발하는 포탄이라...”
“제가 언급한 것 중에서 가장 위력적인 것이 바로 폭발하는 포탄이고 이것을 개발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만 개발한다면...”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할 수 있다?”
루이 14세가 흥미로운 얼굴로 아브라함을 바라보자 아브라함은 잠시 머릿속에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뉴펀들랜드 해전에서처럼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히 우리 프랑스의 해안가를 공격했던 네덜란드 해군이나 생도맹그를 공격한 에스파냐 해군 따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테고요. 이 폭발하는 포탄은 목재로 만든 배에 무척 위력적이었거든요.”
루이 14세는 아브라함의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군. 그럼 최대한 지원해줄 테니 폭발하는 포탄을 개발해보게.”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