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아. 그래? 새김포에 병력을 추가 배치했다고?”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와 보고하는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되묻자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받은 병사들을 새김포에 추가로 배치함에 따라 올해 모집한 병사들의 배치는 모두 끝난 셈입니다.”
“그럼 북미왕국의 총병력은 대략 5만 명가량 되는 건가?”
정성국이 새삼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자 군사청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경비대와 탐사대만 합한 숫자이지요. 여기서 호위대와 아이누 경비대까지 합치면 6만 명 정도입니다. 여기에 해군 병력을 포함하면 대략 7만 명 남짓이고요.”
“상비군이 7만이라...”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대답에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동양, 특히 청나라나 일본의 병사야 워낙 많으니 넘어가더라도 유럽에서 평상시 이 정도 상비군을 운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유럽의 강국 프랑스나 한때 유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정도가 이보다 많은 대규모 상비군을 운용했을 뿐이었으니.
물론 북미왕국 영토의 크기를 고려해보면 아직 한참 부족했지만, 북미왕국의 후장식 무기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규모만으로도 북미왕국을 지키는 데는 큰 문제 없어 보였기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군을 증강하느라 고생했네.”
“아닙니다. 전하. 헌데 내년의 모병 규모는 어쩔까요?”
“흐음...한 5천 명 정도는 모집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에 군사청장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군사청장 역시 외무청을 통해 정성국이 신경 쓰는 유럽 각국의 군사력을 어느 정도 알아보았고 이 정도 규모라면 후장식 소총을 고려했을 때 더 병력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어...그렇게나 말입니까? 물론 새한성이 개방되고 북미왕국의 정보가 유럽에 알려지면 위험할 수야 있겠지만...차라리 해군의 증강에 힘을 쏟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아니면 서인도제도에 그 정도의 병력을 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프랑스와의 종전 조약으로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 서인도제도의 두 섬에 2함대가 진출해 이곳에 선착장과 방어 시설을 건설 중이라는 것은 군사청장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거점으로 주변 해적들을 소탕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성국이 이 두 섬의 방어를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배치할 생각인가 싶어 묻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 서인도제도에 건설된 시설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2,300명 정도만 보내도 충분하지.”
“허면...”
그것도 아니라는 말에 군사청장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기에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미시시피 탐사대에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륙을 탐사한 것을 알고 있지? 헌데 예상보다 순조로운 상황이라 생각보다 내륙으로의 확장이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네.”
그제야 정성국이 내륙 확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속뜻을 짐작하고 말했다.
“아. 미시시피 탐사대와 접촉한 원주민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곧바로 그곳에 병력을 배치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들이 부유해지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이 허튼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뭐 탐사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륙 부족의 문명은 그렇게 발달한 편이 아니라 탐사대가 선물로 건네준 철제 무기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야 있겠지만...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나.”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이 부유해지는 것을 보고 주변 부족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한다면 환영할 일이었지만 욕심이 앞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외무청 관리들이 알아서 주변 부족의 추장들을 설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야 하겠지만 내륙의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의 정보에 어두운 만큼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기에 빠르게 병사들을 배치해 저들의 경거망동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런 정성국의 뜻에 군사청장은 동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기야 하지요. 허면...경비대보단 차라리 탐사대를 배치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내륙에는 말도 없을 테니 탐사대를 보면 감히 덤비지는 못하겠지요.”
1539년 에스파냐의 탐험가 에르난도 데 소토가 미시시피 강을 탐사하긴 했지만, 남쪽 일부에 불과했고 전생의 미시시피 강을 탐사하는 프랑스인들은 이제 존재할 수 없기에 미시시피 강 인근에 거주하는 부족들은 말이라는 동물도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러니 탐사대를 보면 감히 덤비지 못할 거라는 군사청장에 말에 동의한 정성국이 말했다.
“음...확실히 그렇긴 하지. 다만 탐사대를 모조리 내륙으로 배치하면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방비가 약화될 수 있으니 이곳에 배치할 병사를 모집하는 것으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 * *
정평국은 정성국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다가 정성국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형님. 갑자기 절 부르시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지금 유럽의 예술품을 사 오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예술품. 뭐 이 경우엔 주로 미술품이 되겠지만.”
“아니. 갑자기 왜요?”
물론 정성국이 유럽 미술품에 관심을 가질 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 바쁜 자신을 불러 일을 맡기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북미왕국의 기술은 타국과 비교해도 월등하다만...아직 우리의 문화 예술 부분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지.”
물론 도자기를 비롯해 몇몇 물품들은 일종의 예술품으로 취급받으며 유럽에서 이를 높게 평가하고는 있지만, 그 외의 미술이나 음악 부분은 솔직히 처참할 정도였기에 정성국이 쓰게 웃으며 이야기하자 정평국이 중얼거렸다.
“그거야...”
“아.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 애초에 조선 이주민들은 대부분 유민 출신이니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이곳 원주민들도 비슷한 처지고. 하지만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냐.”
“그렇기는...하죠.”
실제로 새한성의 주민들이 조선 사절단이 올 때마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방문하는 화공들에게 가장 관심을 두고 가끔 그들이 그려주는 그림이 암암리에 꽤 비싼 가격에 팔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성국의 말처럼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에 정평국도 동의했다.
정성국은 정평국이 수긍하기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말이야. 원래 문화 예술은 돈이 있는 자들이 지원을 해줘야 발전하는 법이란다. 그리고 이 북미왕국에서 가장 부자는 바로 나고. 그러니 내가 최소한의 기반은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기반이요?”
대체 어떻게 기반을 세울 거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을 보고 정성국은 전생의 미술관 등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일단은 백성들의 안목을 넓혀줄 생각이야. 수많은 예술품을 사들여 이를 전시해 백성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안목이 넓어지겠지. 그러다 보면 개중에 예술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뛰어드는 친구들도 있을 테고.”
하지만 정평국은 정성국의 말에 회의적인 표정으로 반박했다.
“아. 무슨 생각이신지 이해는 하겠는데...형님의 말씀처럼 기반조차 없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성국은 씩 웃으며 정평국을 바라보았다.
“이미 외무청과 교육청에서 유럽의 인재를 북미왕국으로 초청하기로 했고 그중에는 예술가, 특히 화가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그럼 다행이군요. 헌데 유럽의 미술품만 사들이고 유럽의 화가에게 배우게 된다면 북미왕국의 화풍도 유럽과 비슷해지는 것 아닙니까?”
정평국의 의문에 정성국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손을 내저었다.
“아. 원상을 통해 조선과 청나라의 그림도 사들일 생각이다. 조선 사절단의 화공들 덕분에 북미왕국 백성들은 동양 미술이 더 익숙할 테니. 그리고 상황에 따라 조선의 화공들도 초청할 생각이고.”
아무래도 조선의 실력 있는 화공들은 대부분 도화서에 소속되어 있는 만큼 이들을 초청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왕국과 조선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아.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음...형님께서 저를 부른 것은 나라에서 사들이는 것이 아닌 왕실에서 사들이는 것으로 하라는 의미겠지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뭐 외무청의 도움을 아예 받지 말란 소리는 아니다만 그림을 사들이고 미술관을 만드는 것은 왕실 소관으로 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겠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 * *
정성국은 오랜만에 집무실을 찾아온 전아라가 대뜸 건네준 것을 확인하고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활짝 웃는 전아라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게 이번에 개발한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야?”
“예. 오라버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으면 밖에서 들어온 빛에 의해 맺어진 물체의 상이 반대편 벽에 맺힌다는 것은 유럽인들도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16세기 이후 망원경 같은 관측 도구들의 등장으로 광학 지식과 렌즈 세공 기술이 올라감에 따라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카메라 옵스큐라 라는 물체는 이미 존재하고 천문학자나 화가들은 이를 활용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어두운 곳에 맺힌 상을 고정하지는 못했기에 맺힌 상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정성국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외무청을 통해 카메라 옵스큐라를 구해 전아라에게 건네주며 이러한 사진기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이 물체의 상을 물리적으로 고정할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이야기했었다.
유럽에서야 화학이 발전하지 못했기에 이 부분에서 막혔지만, 북미왕국에서는 달랐으니.
다만 이는 시급한 연구는 아니었기에 전아라는 틈틈이 이를 연구했었고 2년 전 최초의 사진기를 개발하긴 했었지만, 빛에 감광판이 반응하는 속도가 무척 느린 탓에 오랜 노출로 맺힌 상의 윤곽이 무척 흐릿한 편이었기에 계속해서 이를 개량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져온 사진은 처음 개발된 사진기로 찍은 흐릿한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선명한 사진이었기에 정성국은 전생에서 보았던 옛날 흑백사진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와우. 기대 이상으로 선명하네?”
정성국의 감탄에 전아라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개량해나갔으니까요.”
“헌데 이것도 은판을 사용하는 거지?”
“예. 다른 방식을 연구 중이긴 한데 아직은...”
“흠. 그럼 이것도 인물 사진은 어려우려나...”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전아라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은 렌즈에 맺힌 상이 은판에 정착하려면 30분 넘게 가만히 있어야 해서 아이들 사진을 찍기는 아무래도 어렵죠.”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들에게 30분 동안 움직이지 말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전아라가 아쉽다는 듯 말하자 정성국은 웃으며 전아라를 위로했다.
“그래도 뭐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찰나에 찍을 수 있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그 전에 안문이와 나리가 다 커버릴 것 같아 그게 좀 아쉬운 거죠. 이럴 줄 알았으면 석유 화합물 연구보다 이 연구에 더 신경을 쓸 걸 그랬어요.”
이에 정성국은 전아라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아쉬워하지 말자고. 그보다 내 예상보다 사진의 질이 좋으니 이거 양산하는 것도 괜찮겠는데?”
전아라는 정성국이 손을 잡고 위로하자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방긋 웃다가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아직 풍경 사진밖에 찍지 못하는데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이거 상이 움직이면 은판에 정착하지 않으니 아예 안 보이게 되는 거지?”
“그렇죠. 상이 고정되어 있어야만 은판이 반응하니까요.”
결국, 대낮에 도시를 찍는다면 움직이는 사람들은 지워지고 건물만 남는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북미왕국의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을 찍어 전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기자와 해군 탐사대에도 넘기면 잘 써먹을 듯하고.”
“아. 생각해보니 그거 괜찮은데요? 북미왕국의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조선의 풍경을 찍어 전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조선 출신 이주민들은 조선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테고 원주민들도 조선을 꽤 궁금해하는 눈치니까요.”
“아. 그것도 괜찮네.”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체적으로 화가들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사진 전시전 위주로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알았어요. 그럼 상돈이에게 이야기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