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쌀쌀한 기온 덕분에 꺼낸 조그마한 화로 옆에 고구마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성국은 누군가가 집무실을 들어오자 시선을 돌렸다.
“어? 이게 누군가. 해군 탐사대장 아닌가. 오랜만일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의 환대에 해군 탐사대장은 빙그레 웃으며 정성국을 향해 인사했다.
이에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을 티테이블에 앉히고 커피를 내려 적당히 구워진 군고구마와 함께 건넸고 해군 탐사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중얼거렸다.
“후우. 좀 살겠군요.”
“하하하. 자네 너무 남태평양 기후에 익숙해진 것 아닌가? 그래도 이곳은 옛 개척촌보다야 훨씬 따뜻한 편인데.”
정성국의 지적에 해군 탐사대장은 멋쩍은 듯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곳 기후가 따뜻하니 참으로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남태평양 기후에 익숙해지니...”
“하하하. 그래서 그렇게 코트를 껴입은 게로군.”
그렇게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과 잡담을 나누며 군고구마와 커피부터 해치웠다.
그리고 간식거리를 다 처리했을 때쯤 정성국이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해군 탐사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보고할 게 많겠지?”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한둘이 아니지요. 먼저 북태평양 탐사대의 경우 알래스카 해안가 탐사와 인근 해도의 작성까지 모두 끝냈습니다.”
“아. 그래?”
북쪽을 제외한 알래스카 해안가 탐사는 예전에 끝났지만, 아직 상세한 해도는 작성 중이었고 이것이 알래스카 원주민 부족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교류하는 임무와 더불어 현재 북태평양 탐사대의 주요 임무였는데 이를 끝냈다는 소식에 정성국이 미소를 지었다.
“예. 해서 내년부턴 강을 거슬러 올라 알래스카 내륙을 탐사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아. 강을 거슬러 내륙을 탐사한다라...나쁘지 않군. 다만 조심해야 한다는 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급할 것도 없으니 수심을 측정하는 것을 우선하라고 이야기해두었으니 걱정하시는 문제는 없을 겁니다.”
“믿도록 하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는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자 해군 탐사대장은 품에서 지도를 꺼네 정성국에게 건넸다.
“그리고 제가 지휘하는 남태평양 탐사대가 올해 탐사한 지역들입니다.”
“허. 꽤 많은 섬을 발견했네?”
“그렇습니다. 전하.”
해군 탐사대장이 건네준 지도에는 호주와 하와이 제도 사이의 보급 기지인 통가 섬과 호주 사이에 있는 수많은 섬이 모두 그려져 있었다.
‘전생의 바누아투의 영토와 누벨칼레도니 지역인가? 작년과 비교하면 이 지역을 제대로 탐사하긴 한 모양인데...’
“섬을 단순히 발견만 한 건가? 아니면 제대로 탐사한 건가?”
“단순히 발견만 한 섬은 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점이 하나 찍혀있는 섬들은 탐사를 시도했다는 뜻이고 점이 두 개 찍혀있는 섬들은 완전히 탐사하고 동판까지 설치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왜 섬들에 점이 찍혀있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분류한 것을 보니 점이 하나 찍혀있는 섬들은 원주민들이 꽤 적대적으로 나온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물론 경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쪽에서 우호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반응하지 않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기에 무리하게 접촉하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잘 했네.”
탐사할 영역이 워낙 넓은 만큼 원주민들이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굳이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특히 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남태평양의 섬에 사는 원주민 중 일부는 식인 풍습이 내려온다고 기억하는 만큼.
‘다른 건 몰라도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이나 피지의 원주민들은 적의 살을 먹는 일종의 의식적인 식인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나중에 이야기해줘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정성국은 누벨칼레도니 섬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섬은 탐사를 끝냈군? 꽤 큰 섬 같은데.”
“예. 이곳 원주민들은 꽤 우호적이었기에 순조롭게 탐사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참 좋은 곳이었지요.”
해군 탐사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정성국은 누벨칼레도니가 전생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내심 부럽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직접 탐사했나보군?”
“그렇습니다. 정말로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쩝...그거 부럽군.”
“하하하.”
“그리고 미안진에 있던 외무청 관리들은 별일 없지?”
작년 호주의 원주민들과 접촉해 외무청 관리를 비롯해 탐사대 일부가 미안진에 남았었기에 이를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젠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해졌고요.”
“오. 그래?”
일단 원주민들의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체계적으로 농업을 전수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말이 통해야 했기에 해군 탐사대장의 보고에 반색한 정성국이었다.
“예. 그리고 외무청 관리들과 탐사대원들이 선착장 주변에 각종 작물을 심어 재배해 이를 나눠주었고 덕분에 터발 족도 고구마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고구마만으로 인구를 부양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렇지요. 그리고 터발 족은 주변 원주민들과도 어느 정도 교류하는 모양인지 미안진에 건설한 선착장을 방문하는 원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을 더욱 키우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 미안진은 전생의 브리즈번 위치였으니 이곳을 거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흐음...그러도록 하게. 지원은 해 주지.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터발 족에게 농업을 가르치도록 하게. 거리가 거리인 만큼 언제까지 식량까지 옮길 수야 없는 노릇이니.”
북미왕국 본토에서 호주까지의 거리는 1만 km가 넘었고 하와이에서의 거리만 하더라도 7천 km는 넘는 만큼 종자는 몰라도 식량을 옮기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해군 탐사대장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물론입니다. 전하.”
“그래. 이젠 새로 창설된 미시시피 탐사대와 북대서양 탐사대의 보고지?”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씩 웃으며 지도를 꺼냈다.
“먼저 미시시피 탐사대의 보고부터 하자면 이것이 바로 미시시피 탐사대가 올해 탐사한 지역입니다.”
“으음...”
미시시피 탐사대가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탐사한 영역은 전생의 미주리와 일리노이, 그리고 아이오와 지역의 경계 정도였다.
물론 강의 탐사는 바다의 탐사와는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탐사 거리가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싶을 때 해군 탐사대장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탐사가 조금 미진하지요? 이는 미시시피 강은 훗날 내륙 진출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철저히 수심을 파악하며 탐사하고 있기에 탐사가 지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뭐 이젠 프랑스까지 북미 대륙에서 몰아냈으니 급하게 서두를 이유는 없지.”
전생에서야 프랑스인이 오대호 인근을 탐사하다 이 미시시피 강을 발견해 이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주변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이제 북미 대륙에는 유럽 세력이 없는 만큼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군 탐사대장이 맞장구쳤다.
“그렇지요. 해서 천천히 탐사하면서 이동했고 꽤 많은 원주민 부족과 접촉한 모양입니다.”
“그래? 말이 통하던가?”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의례적으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랐다.
“예. 의외로 말이 통했다고 하더군요.”
“응? 정말?”
“이 남쪽 지역들은 주로 새진주 원주민들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고, 이 북쪽 지역들은 의외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들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기에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가능했습니다.”
그제야 이로쿼이 연맹을 피해 오대호의 남서쪽으로 이동한 범 알곤킨 족을 떠올리고 정성국은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그거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덕분에 저들과 우호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지요.”
“오. 그래?”
말이 통하는 것과 우호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기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짓자 해군 탐사대장이 말했다.
“예. 미시시피 탐사대장의 보고에 따르면 탐사선을 보고 호기심에 몰려든 원주민들과 접촉했는데 의외로 말이 통했기에 손쉽게 이들에게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남태평양의 섬과는 달리 이 내륙의 원주민들과는 당장 제대로 교역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미시시피 탐사대장이 만나는 원주민 부족들에게 준비한 물품들을 선물로 나누어 준 덕분에 저들의 영역 곳곳에 선착장을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까지 받았습니다.”
“하하하.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결정만 내리신다면 곧바로 내륙 곳곳에 선착장을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내륙의 원주민들은 우리 북미왕국의 물품을 계속 살 정도의 재력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가죽 정도인데 썩 좋은 품질은 아니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추운 지역의 가죽들과 비교하면 뭐...”
“예. 그래서 차라리 선착장과 중간 보급 창고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저들을 일꾼으로 고용해 그 대가로 북미왕국의 물품을 내어주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보고하더군요.”
“그런 식이라면 생각보다 빠르게 이들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수 있어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근데 지금 개발청이나 외무청에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정성국은 내륙 탐사와 탐사를 하며 접촉하는 원주민 부족들을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이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헌데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북미왕국의 영역을 내륙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기뻐했지만, 동시에 너무 빠르게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고민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도시 건설이 아닌 간단히 선착장과 건물 정도를 짓는 거라면 탐사대에서도 할 수 있으니 당장 개발청의 지원은 없어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은 생각보다 길고 수많은 지류를 모두 탐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2곳 정도의 보급 기지는 필요하다는 것이 미시시피 탐사대장의 의견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그건 그렇지. 알겠네. 그럼 일단은 이 두 곳에 보급 기지를 건설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가리킨 곳은 전생의 멤피스와 세인트루이스가 존재했던 위치로 미시시피 강과 인접한 나름대로 큰 도시들이었고 전생의 미국이 미시시피 강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커졌다는 것을 감안해 두 도시의 위치가 보급 기지로 적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대서양 탐사대의 보고입니다. 북대서양 탐사대는 창설된 후 뉴펀들랜드 섬을 보급 기지로 삼고 그린란드를 찾기 위해 곧바로 북쪽으로 향했고 결국 그린란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탐사대장은 마지막 지도를 정성국에게 건네주었고 정성국은 이를 확인하고 감탄했다.
“그래? 오? 생각보다 탐사한 영역이 넓은데?”
의외로 그린란드 남쪽 지역은 모두 탐사했기에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북대서양 탐사대장은 그린란드를 두고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바를 알고 있기에 정밀한 탐사는 일단 미뤄두고 빠르게 탐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래. 나쁘지 않아. 헌데 이 x 표시는?”
“그린란드에 사는 원주민들의 마을 위치입니다.”
“오? 원주민이 있던가?”
정성국이 반색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무척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과도 말이 통했는데 의외로 이들의 언어는 저 먼 알래스카 지역의 언어와 무척 흡사하다고 하더군요.”
그린란드에 이주에 정착한 원주민들이 바로 이누이트라는 것을 아는 정성국은 별로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뭐 그럴 테지. 허면 이들과의 관계는?”
“뭐 북대서양 탐사대장 역시 미시시피 탐사대장과 비슷한 생각을 한 덕분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예. 단맛을 내는 과일잼과 독한 술을 선물로 내어줬더니 경계는 순식간에 풀렸다더군요.”
“큭큭.”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상황을 짐작하고 웃자 해군 탐사대장이 잠시 커피잔에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해서 이들은 주기적으로 탐사대가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자신들도 탐사대에 자신들이 잡은 모피를 선물하겠다고 이야기했고요. 추운 환경 때문인지 저들이 건네준 모피는 상등품의 모피였다고 합니다.”
탐사대가 먼저 우호적으로 접근하며 선물을 건네자 답례품을 내어주며 계속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자고 이야기했다는 말에 정성국은 슬쩍 미소지었다.
“결국, 교역하자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북대서양 탐사대장은 전하께서 그린란드를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 생각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를 승낙하는 대신 편의를 위해 선착장과 건물을 짓겠다고 요청했고 이들은 승낙했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잘 했네. 이 건은 외무청에 이야기해두도록 하지. 그리고 외무청에서 이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키면 바로 그린란드를 우리의 영토라고 선언하면 될 거야. 이번에 해군 탐사대의 성과가 무척 크군.”
정성국이 탐사대를 칭찬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이는 전하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고생했네. 더불어 고생한 탐사대원들에게도 추가로 포상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