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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58화 (358/850)

358화

9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쾌속선이 도착했다는 보고와 함께 약간의 보고서를 가져온 호위대장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보고서는 이게 전분가?”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보고서 앞쪽을 살펴보니 긴급이라고 표시된 보고서는 없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도착한 쾌속선이 올해 마지막 쾌속선이었지?”

“그렇습니다. 전하.”

결국. 눈앞의 보고서가 올해 마지막 보고서라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이 시기쯤에 현종이 죽었던 것 같은데...뭐 쾌속선이 포로나이를 출발한 시기를 생각해보면 현종의 생사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출발했겠구나. 어쩔 수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성국은 언제까지 이렇게 쾌속선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슬슬 통신의 발전에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특히 각 지역에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공급할 생각이었기에 슬슬 전신이나 전화기를 개발하면서 각 지역에 전선을 깔 때 통신선을 함께 까는 것도 괜찮아 보였기에.

그렇게 통신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그가 죽기 전에 북미왕국의 외곽 영토인 카무이 반도나 아이누 섬에도 해저케이블을 설치해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정성국은 문득 한쪽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호위대장을 깨닫고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아. 미안하네.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전하.”

호위대장이 나가자 정성국은 곧바로 호위대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빠르게 살펴보았고 한양의 동향을 적은 원상의 보고서의 한 부분을 보고 중얼거렸다.

“역시나...”

보고서에는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로 조정이 조금 시끄럽다고 쓰여 있었기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예조에서는 처음 별생각 없이 며느리의 상이니만큼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현종에게 이야기했었고 현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헌데 뒤늦게 송시열이 나서서 이전과 동일한 논리로 효종은 장자가 아니니 효종의 아내인 인선왕후도 맏며느리가 아닌 만큼 1년이 아닌 9개월만 입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문제가 불거진다.

그리고 전생에서는 이 주장에 서인이 모두 동조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종이 격노하고 이 소식을 듣고 대구의 한 유생이 이를 반박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2차 예송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헌데 원상의 보고서에는 송시열의 이러한 지적에 아직 정정한 정태화나 유철 등이 한참 조선을 개혁시켜나가야 할 시점에 굳이 일을 키울 필요가 있느냐며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는 것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이에 몇몇 인사들이 동조하면서 서인들끼리 내분이 일어났다고 쓰여 있었다.

‘허. 전생엔 송시열의 지적을 적당히 순화시키기 위해 옛날 법까지 꺼내서 상복을 9개월만 입어도 된다고 주장하던 서인들이...’

물론 왕에게 대놓고 네 아비가 적통이 아니고 네 어미도 맏며느리가 아니니 상복을 9개월만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바로 역모죄로 목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적당히 돌려 주장해야 했고 그 때문에 서인들은 예전 예법 중 하나에는 맏며느리도 상복을 9개월만 입도록 규정했었다는 예를 들었고,

헌데 전생에선 그랬던 서인들이 무려 송시열의 주장에도 이 시기에 굳이 일을 크게 벌릴 필요가 있느냐며 자체적으로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기에 정성국은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전생과는 달리 실무형 관료라 할 수 있는 정태화가 아직도 영의정의 자리에 있다는 것과 예조판서에 오른 유철이 북미왕국을 방문한 후 충격을 받고 개혁 인사가 되어 조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미왕국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으리라 짐작했다.

‘이미 조선은 변화하기 시작했구나. 그리고 이렇게 변화한 만큼 현종의 운명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고...’

* * *

조선 사절단의 정사로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호조 참판은 조선에 돌아와 현종을 알현해 이번 북미왕국 방문으로 알게 된 각종 정보를 정리한 기록들을 올린 후 먼 길을 다녀왔으니 일단 쉬라는 현종의 배려에 정전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관리들의 퇴청시간이 지난 후 정태화를 비롯한 북미왕국에 관심이 많은 인사들이 하나둘 호조 참판의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고 호조 참판은 이들을 환영하며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커피를 대접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호조 참판이 전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이를 듣고 정태화가 쉬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참으로 믿기 어렵군요. 아무리 북미왕국의 기술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번개를 다룬다니...”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호조 참판은 그런 사랑방의 분위기가 오히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저도 처음 가로등이 켜졌을 때는 도깨비불인가 싶어 정말 기겁했었으니까요.”

“허허허. 그랬습니까?”

“예. 깜깜한 밤인데 허공에 무척이나 환한 불빛이 떠 있었거든요. 거기에 엄청나게 밝았고요.”

이에 사랑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그 정도입니까?”

“화롯불 수준은 아닌가 보군요?”

“그럼요. 화롯불하고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습니다.”

커다란 화롯불도 밝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감히 라는 단어까지 쓰는 호조 참판의 대답에 사랑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직접 이를 보지 못해 아쉽다는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그리고 그 빛이 새한성 대로를 타고 이동해 결국 궁 주변 전체가 환하게 빛나는 모습은 정말이지...”

호조 참판은 처음 보았던 북미왕국 궁궐의 야경 풍경을 떠올리고 말을 잇지 못하자 병조 판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이것 참. 호조 참판께서 그런 반응을 보이시니 이거 궁금해서라도 다음에 북미왕국을 한번 방문해봐야겠군요.”

북미왕국의 발전이 무척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조 참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방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듯했기에 유철은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호조 참판의 표정을 보니 다시 한번 북미왕국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군요.”

이에 사랑방 안의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누군가가 호조 참판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 신문이라는 것은 또 없습니까?”

이미 호조 참판은 정전에서 신문에 관해 보고하며 금상에게 가져온 신문을 바쳤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신문이라는 것은 조보와는 달리 돈을 받고 판매하는 물품인 만큼 더 있지 않을까 싶어 질문을 던졌고 이에 호조 참판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설마 제가 달랑 한 부씩만 챙겨왔겠습니까. 물론 잔뜩 챙겨왔습니다.”

그러면서 호조 참판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에게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상자를 가져오라 일렀고 하인들이 가져온 상자들을 열자 신문이 가득했기에 다들 감탄했다.

“오오. 무척 많군요?”

“예. 그걸 챙기려고 외무청 관리에게 도움까지 요청했었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비싼가 보군요?”

호조 참판의 대답에 누군가가 의문을 표시하자 호조 참판은 고개를 저었다.

“뭐 비싸기도 하지만 그보단 워낙 많이 팔리다 보니 한 사람당 한 부씩만 팔더군요.”

“아. 생각해보니 북미왕국에서는 백성들을 전부 가르치니...”

“예. 그래서인지 북미왕국 백성들이 너도나도 신문을 사는지라 금방 품절 되더군요. 북미왕국 백성들은 부유해서 신문 가격이 크게 부담되는 눈치도 아니고요. 그래서인지 찻집을 돌아다녀도 대량으로 구하기가 영 쉽지 않아서 결국 외무청의 도움을 받아 구한 겁니다.”

“허허허.”

조선에서 관보에 관심을 보이는 자는 오로지 사대부들뿐이었지만 북미왕국에선 백성 전체가 이 신문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에 다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북미왕국의 발전이 빠른 거겠지요.”

“그렇다고 북미왕국을 따라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양민들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으음.”

“따지고 보면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부유하기에 나라의 사정에 관심을 보이는 겁니다. 조선과는 상황이 다르지요.”

“음...일단 조선의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군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하인들이 신문을 건네주자 이를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이거 당분간은 심심하지 않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북미 신문이라...”

“오. 중간에 삽화가 그려져 있군요?”

“아. 가로등이 이런 모습입니까?”

병조 판서가 점등행사 후에 발행된 신문을 들어 올리며 호조 참판에게 묻자 호조 참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략 그런 모습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모습만 그려놓은 삽화는 실제 가로등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실물은 정말 달라요.”

이에 작년에 조선 사절단의 정사로 북미왕국을 다녀왔던 이조 참판이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럴 겁니다. 기차만 하더라도 삽화는 실제 기차의 박력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으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수많은 견문록을 보고 저도 기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기차를 눈앞에 두니 입이 벌어지더군요.”

직접 방문했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삽화와 실물은 다르다고 이야기하자 북미왕국을 방문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허. 그렇습니까? 이거 정말 다음 사절단에는 꼭 끼어야겠습니다. 하하하.”

그 말에 북미왕국을 방문하지 못한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신문에 살펴보느라 사랑방이 꽤 조용해졌다.

이에 호조 참판은 옆에 있던 공조 참판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헌데 어째 조정이 조금 어수선한 것 같던데...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신문을 살피던 공조 참판은 호조 참판의 질문에 움찔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사랑방의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자 호조 참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에 유철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왕대비께서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로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상황이라...”

“예? 당연히 기년복을 입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좌상 대감께서는 대공복을 입는 것이 예법에 바르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러면서 유철은 송시열의 지적을 이야기해주었고 이에 호조 참판은 송시열의 지적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예전에도 이 상복 문제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 아...헌데 그건 좀...”

호조 참판이 대공복을 입어야 한다는 송시열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자 유철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잘못하면 금상의 정통성을 다시 건드릴 수 있는 문제이지요. 해서 이미 기년복으로 정했고 워낙 다른 일이 많으니 그냥 넘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해보려 했습니다만...”

“그 말에 따르던가요?”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정태화가 입을 열었다.

“우암은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정태화를 비롯한 사랑방에 앉아있던 인사들은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호조 참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으음...하지만 대왕대비께서 기년복을 입는 것도 아예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분란을 키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처럼 발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자신들이 송시열의 주장에 동조하는 무리에게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호조 참판의 모습에 정태화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리고 유철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호조 참판을 바라보았다.

분명 호조 참판도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는 자신들에 공감하기는 했지만, 유철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했었으니까.

“호조 참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군요.”

그런 유철의 반응에 호조 참판은 쓴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북미왕국에 다녀오니 자연스럽게 그리될 수밖에 없더이다. 그걸 예판 대감께서는 그걸 노리신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리고...신문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근 북미왕국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에 사랑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쟁이오?”

“아니. 어느 나라와 말입니까?”

“유럽의 강국이자 북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프랑스와 작년 봄에 전쟁을 벌인 모양입니다.”

“아니. 잠깐만요. 작년 봄이라고요?”

그 말에 사랑방에 있던 사람들은 작년에 북미왕국을 다녀온 이조 참판을 바라보았고 이조 참판은 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니...제가 새한성을 방문했을 때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아. 프랑스가 북미 대륙 북동부에 건설했다는 식민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진 터라 멀리 있는 수도에까지 영향을 끼치진 않았겠지요.”

호조 참판의 말에 사람들은 북미왕국의 그 광활한 영토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워낙 넓으니...”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론 북미왕국이 승리했고 올해 초 프랑스와 협상을 해서 결국 저들을 북미 대륙에서 몰아내었다고 합니다.”

이는 북미왕국이 그 넓은 북미 대륙을 모두 차지했다는 소리였기에 사람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조선도 북미왕국을 본받아 발전에 매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청나라의 간섭에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음...하긴. 최근 청나라에서 난이 발생해서 그런지 조선에 오는 사신들이 더 깐깐하게 간섭하는 느낌이긴 하지요.”

남명이 존재했을 때만 하더라도 혹시 조선이 다른 생각을 할까 깐깐하게 굴던 사신들은 남명이 사라진 후 조금 너그럽게 굴었다.

하지만 최근 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후방인 조선에서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할까 다시 깐깐하게 굴며 사신을 보내 조선의 일에 간섭하려 들었기에 유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조 참판이 입을 열었다.

“예. 그러니 지금은 그런 문제로 정쟁을 벌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좌상 대감의 뜻에 공감하는 인물들도 꽤 있는지라...당분간은 시끄러울 겁니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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