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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57화 (357/850)

357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조용한 곰의 보고에 반색했다.

“오. 그래?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전열함 구매 대금을 일부 가져왔다고?”

네덜란드의 외교관 얀센 반 마이어는 네덜란드의 총독 빌럼 3세가 마련해 준 전열함 대금 일부를 싣고 네덜란드 해군 2척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대서양을 건넜고 긴 항해 끝에 겨우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4함대의 도움을 받아 본국에서 가져온 은을 새진주로 옮길 수 있었고.

또한, 네덜란드에서 전열함 구매 대금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베라크루즈에서 대기 중이던 에스파냐 외교관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은이 든 상자들을 가득 싣고 새진주로 향했고 그렇게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가져온 은을 북미왕국에 넘겨줌으로써 전열함 매매 계약이 성사되자 웅크린 늑대는 이 소식을 곧바로 새한성에 알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부라 하더라도 금액이 금액인지라 네덜란드는 해군까지 동원했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가외 소득이 생긴 셈이었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일단 프랑스와 전쟁 중이니만큼 귀금속을 잔뜩 실은 배가 프랑스 해군에 침몰하거나 나포라도 당한다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으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었다.

“아. 네덜란드 사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이 네덜란드를 떠날 때쯤에는 프랑스와의 종전 협상이 한창이었다고 하더군요. 해서 사절단이 해군의 호위를 받아 대서양을 건넜을 시기는 이미 전쟁이 소강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네덜란드에서는 뉴펀들랜드 섬에 드나드는 수많은 어선을 경계한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허. 그래? 뉴펀들랜드 섬에 드나드는 어부들이 따로 사고 쳤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

물론 이 시대의 어부들이 꽤 거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뉴펀들랜드 섬을 드나드는 어부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보고는 들은 적이 없기에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어부들이 감히 4함대의 관할 구역에서 사고를 치겠습니까? 어부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조업권을 박탈하면 그만이라 저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셈인데요.”

“아. 그건 그렇지.”

“다만 4함대가 순찰하는 영역 밖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죠. 그리고 대서양 한복판에서 무리를 지어 뭉쳐 다니는 어선들과 마주치면 아무래도 불안할 수야 있겠지요. 특히 은을 가득 싣고 항해한다면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무법지대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정성국은 네덜란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덜란드 해군과 함께 온 거다 이거지? 이해했네. 헌데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종전 협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게.”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살짝 언급한 유럽의 소식에 관심을 두자 조용한 곰은 웅크린 늑대가 얀센에게 파악한 유럽의 최신 소식을 전해주었다.

“음...그럼 시기상 프랑스는 우리와의 종전 조약을 확인한 후 네덜란드와 종전 협상에 들어간 셈이로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전열함을 다른 나라에 팔았고 그 때문에 단기간에 프랑스 해군 전력을 복구할 수 없으니 계속 네덜란드 해군에 주도권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네덜란드에 종전 협상을 제의한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프랑스가 제의한 종전 협상은 시기가 문제이지 결국 종전 조약을 맺으리라고 판단한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국은 전생에선 이 전쟁이 1678년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전생에는 네덜란드가 살아남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과 에스파냐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꽤 국제적인 성격의 전쟁이 되면서 전쟁이 길어지고 덕분에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꽤 피해를 볼 텐데...최소한 네덜란드는 전생보다는 상황이 좋아졌군. 이것으로 유럽의 역사가 얼마나 바뀌려나...’

정성국은 그런 생각을 하다 아직 집무실에 조용한 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한 곰에게 대꾸했다.

“그 협상만 제대로 마무리된다면 네덜란드도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의 평화는 결국 북미왕국 덕분이라면서 종전 협상이 끝나 프랑스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면 감사의 의미로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번거롭게 사절단을 또 보내겠다고?”

하지만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의문에 답하지 않고 묘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에스파냐에서도 우리 북미왕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결국 북미 대륙 전체를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든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승전 축하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그제야 사절단을 보내겠다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의 속셈을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난 또 뭐라고. 결국, 그러한 구실로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다 이거군? 직접 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해야겠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의 추측으로는 에스파냐의 외교관이 네덜란드를 부추긴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하더군요.”

얀센이 새진주에 도착해 대화를 나눌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는 없었는데 에스파냐의 외교관과 새진주에서 만난 이후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상황은 명백하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중얼거렸다.

“에스파냐가 부추긴 것 같다라...갑자기 이러는 것을 보면 신문이 에스파냐에 흘러 들어가긴 했나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새진주에서도 외국인 거주 구역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만큼 마음만 먹는다면 신문이 외국인 거주 구역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었다.

다만 신문을 통해 북미왕국의 일부 정보나 동향은 파악해도 그 이상은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냥 내버려 두었고.

그렇게 북미신문이 에스파냐에 흘러 들어가자 그동안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새한성의 정보를 알게 된 에스파냐에서는 더욱 조바심을 내며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어 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한 정성국이었다.

“어쩔까요?”

조용한 곰의 물음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새나주까지 철도가 깔리면서부터 이러한 상황은 예상했고 이제 저들이 북미왕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다 하더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허용하게. 언제까지 막을 수야 없는 법이니.”

“알겠습니다. 전하.”

* * *

이정운은 집무실에서 외무청 관리에게 최근 포로수용소의 분위기에 관해 듣던 와중에 허겁지겁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병사를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분함대에서의 긴급 보고입니다! 마침내 프랑스의 배들이 뉴펀들랜드 섬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이정운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드디어 프랑스에서 보낸 함대가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100척이 좀 넘는 대규모 함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리 계획한 대로 분함대가 저들을 이곳으로 안내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프랑스 함대를 뉴펀들랜드 섬에 정박시키고 포로들을 북미왕국의 배로 뉴펀들랜드 섬까지 이동시켜야 하겠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 뉴펀들랜드 섬까지의 거리도 거리였고 북미왕국의 배를 동원해 옮겨야 할 프랑스인이 3만 명에 가까웠으니까.

해서 저들의 함대를 이곳까지 안내하라고 이미 명령을 해 둔 상태였기에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으로 범선의 이동 속도를 계산해보다가 말했다.

“그럼 3, 4일 후면 이곳에 도착하겠네?”

“그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에 이정운은 한숨을 내쉬며 병사를 바라보고 명령했다.

“어휴. 당분간은 어수선하겠군. 자네는 경비대와 탐사대에 이 사실을 알리게.”

포로수용소에 있던 3만 명에 가까운 프랑스인들이 이곳 선착장으로 몰려들면 아무래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경비대와 탐사대에 이야기해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해 두었고.

“알겠습니다.”

이정운의 명령에 곧바로 집무실을 나가는 병사를 바라보던 이정운은 고개를 돌려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휴. 당분간 정말 바빠지겠군요.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한 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한 일주일만 고생하게.”

* * *

마침내 기다리던 본국의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포로수용소에 전해지자 프랑스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북미왕국에 항복해 포로가 된 지도 벌써 거의 1년에 가까웠다.

물론 이곳에서의 생활은 정말 자신들이 포로인가 싶을 정도로 쾌적하긴 했지만, 포로수용소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 조금은 갑갑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헌데 드디어 포로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프랑스인들은 다들 기뻐하며 외무청 관리의 지시에 따라 이동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프랑스인들은 하나둘 짐을 들고 포로수용소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며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처음 북미왕국에 항복했을 때만 하더라도 앞날이 참 걱정됐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 여기에서의 생활도 이젠 끝이구나. 거의 1년 만인가?”

“그렇지.”

“정말 돌아갈 수 있다니 이거 기분이 오묘하구만.”

“...그러게.”

이곳에서의 생활이 썩 나쁘지 않았기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외무청 관리가 포로수용소 입구 근처에서 외쳤다.

“자. 다들 주목하게!”

이에 잡담을 나누던 프랑스인들은 잡담을 멈추고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고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외무청 관리는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곧 이 포로수용소를 나가 작년에 자네들이 배에서 내렸던 선착장으로 이동할 걸세. 그리고 자네들은 이 포로수용소를 나가면서 저 입구에서 북미왕국 병사들에게 주머니를 받게 될 걸세.”

그러면서 외무청 관리가 주먹 크기의 주머니를 들어 올리자 프랑스인들은 저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외무청 관리 손 위에 있는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이 주머니에는 자네들이 포로 신분에서 벗어난 뒤로 이곳에서 일한 대가가 들어있다네. 정확히는 자네들이 캐낸 석탄의 판매 대금에서 자네들이 이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며 사용한 물자 대금을 제외한 금액을 자네들의 수에 따라 나눈 금액이지. 그리 큰 금액은 아니네만 자네들이 이곳에서 반년 넘게 일하며 번 돈이니 잘 쓰도록 하게.”

그 말에 외무청 관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중하던 프랑스인들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곳에서 일한 대가를 주겠다고 한 거 맞지?”

“아니. 그게 남아서 돈을 준다고? 맙소사...”

종전 조약을 맺었던 데니스는 당시 빠르게 본국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포로들에게는 북미왕국과 모든 협상이 끝났기에 이젠 포로 신분이 아니라는 것과 본국에서 배를 보낼 때까지 북미왕국의 통제를 잘 따라줄 것만을 이야기했던 터라 프랑스인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떠들어댔고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외무청 관리는 소리쳤다.

“조용! 잡담은 나중에 하게. 그리고 이 주머니를 펼쳐 안쪽을 보면 삼태극의 문양과 숫자가 적혀 있을 걸세. 이 천은 일종의 배표일세.”

외무청 관리가 들고 있던 주머니를 내려놓고 품 안에서 조그마한 천을 꺼내 들어 올리자 그의 말처럼 천 가운데에 이국적인 문양이 보이자 프랑스인들은 그 천에 시선을 고정했다.

“최근 자네들 중 일부는 북미왕국으로의 이주에 관심을 보이며 여러 질문을 했었고 그때 나는 자네들이 북미왕국으로 오고 싶다면 뉴펀들랜드 섬을 방문하는 어선을 타고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물론 모든 이들이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주를 생각하던 이들이 외무청 관리에게 물어 알게 된 정보를 포로수용소 내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최근엔 포로수용소에선 북미왕국으로의 이주가 주요 화제였기에 대다수는 이를 알고는 있어 고개를 끄덕이자 외무청 관리가 그런 프랑스인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뉴펀들랜드 섬을 오가는 어부들에게 이야기해둘 터이니 그 천을 보여주게. 그러면 어부들이 일행 모두를 배에 태워줄 걸세. 그리고 따로 뱃삯도 받지 않을 테고. 그러니 북미왕국으로의 이주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잘 챙겨두고. 관심 없는 친구들은 그냥 주머니로 쓰다가 버리던가 하게.”

음흉한 여우의 명령 하에 정보기관에 소속된 정보원들이 포로수용소의 프랑스인들과 접촉해 북미왕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들의 이주를 부추기자 대다수는 북미왕국으로의 이주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는 쉽지 않다는 것을 토로했다.

제대로 된 배편을 구하기 위해 타국으로 이동해야 했고 가족들을 모두 태우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면서.

이를 정보원이 보고하면서 현재 포로수용소의 프랑스인들이 북미왕국으로의 이주에 무척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러한 문제 때문에 실제 이주민들은 많지 않으리라고 덧붙였고.

그 때문에 외무청에서 시급히 마련한 대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분간 북미 동해안 지역을 개방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직접 프랑스로 북미왕국의 선박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니 최소한 뱃삯 일부라도 북미왕국에서 대신 내어주겠다는.

“헉!”

“맙소사...”

“그럼 저것만 있으면...?”

프랑스인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외무청 관리는 급히 소리쳤다.

“잡담은 나중에 하고! 그럼 내가 자네들에게 해줄 말은 끝난 것 같으니 다들 두 줄로 서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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