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정성국은 정평국과 행정청장이 창백한 안색으로 집무실을 찾아오자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정평국의 이야기에 정성국 역시 안색이 창백해지며 중얼거렸다.
“아...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이에 정평국은 후회하듯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축제에 관한 기사를 뺄 것을 그랬습니다.”
“그러게.”
송전탑 건설과 가로등 설치가 마무리되었을 때 정평국이 정성국을 찾아와 신문 발행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왔고 이에 정성국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을 기뻐하며 신문을 발행해 판매하라고 허락했다.
그렇게 북미신문이 창간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다만 이 창간호 마지막 부분에 새한성에서 이번 주말 가벼운 축제를 열고 불꽃놀이를 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일주일 동안 최소한 새김포부터 새나주까지는 북미신문이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이번 주말에 새한성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기사에 백성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곳곳에서 몰려든 것이다.
덕분에 새한성에 지어놓은 많은 수의 숙소가 모두 차버리자 행정청장과 정평국은 기겁하고 이렇게 보고하러 달려온 것이고.
이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휴. 어쩔 수 없지. 축제를 보겠다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이라면 최근 새한성에 경비대가 꽤 많이 배치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통제는 가능할 것 같은데...”
“새한성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이 지낼 숙소가 이미 꽉 찼다는 것이 문제죠. 더불어 작은 축제를 계획했기에 노점상의 수도 얼마 안 되는데...”
정평국의 말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노점상의 수야 늘리면 그만이지. 어차피 장비야 신년 축제 때문에 다 마련해두었으니까. 당장 노점상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최대한 구해보라고. 문제는 숙소인데...”
숙소가 꽉 찬 이상 길거리에서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정성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자 행정청장이 입을 열었다.
“새한성 외곽에 천막을 치거나 그게 아니면 민박을 유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성국이 생각하기에도 그 방법 외엔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낫겠다. 그렇게 하자고. 새한성 행정청 관리를 총동원해서 대로 주변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더불어 자금 지원도 좀 해주고.”
“알겠습니다. 전하.”
* * *
전형적인 조선 선비 복장을 한 풍채가 그럴듯한 비교적 젊은 사내가 들고 있던 붕어빵을 마저 먹고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어휴. 맛있긴 한데 더는 배불러 못 먹겠군.”
“하하하. 오후 내내 계속 먹었으니 많이 먹긴 했지요.”
지금껏 젊은 사내와 함께 노점상을 돌아다니며 조선에서는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여러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데 심취했던 왜소한 사내가 많이 먹긴 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들은 조선 사절단의 일원으로 그동안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이야기만 들어보았던 축제가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축젯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이들뿐만 아니라 조선 사절단의 대부분이 비슷했고 이에 조선 사절단의 정사는 결국 축제를 즐기되 이곳은 조선이 아니니 술만 자제하라며 자유시간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해서 조선 사절단은 말로만 들었던 축제에 참여해 즐길 수 있었고.
“그보다 슬슬 해도 거의 졌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그동안 접하지 못한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이것저것 주워 먹었기 때문인지 슬슬 돌아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풍채 좋은 선비가 말하자 왜소한 선비는 그게 무슨 황망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풍채 좋은 선비를 바라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는데 숙소로 돌아가자니 그게 말이 됩니까?”
“중요한 것?”
풍채 좋은 선비가 어리둥절하자 왜소한 선비는 먹느라 정신이 팔려 이번 축제가 무엇인지도 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북미왕국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신년 축제엔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근사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고 하오.”
“허. 그렇소?”
“그리고 그게 조선에서 보던 불꽃놀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저 사람들도 슬슬 어두워지는데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거고. 그리고 이번 축제의 이름이 바로 점등행사 아니요? 해서 북미왕국 사람들은 신년 축제보다 더 대단한 불꽃놀이가 벌어질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다고 하오.”
풍채 좋은 선비는 왜소한 선비의 설명에 주변을 살펴보았고 왜소한 선비의 말대로 북미왕국 백성들은 축제로 인해 마차 이동이 금지된 새한성의 대로와 광장을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였고 몇몇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아. 그럼 그건 봐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일찍 주막이나 찻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을 걸 그랬군.”
“끙...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빈자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왜소한 선비의 말에 풍채 좋은 선비는 발걸음을 옮기며 보이는 찻집이나 주막을 살폈지만 어디든 사람이 바글거렸고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해서 새한성 대로를 따라 광장과는 반대로 이동했는데 대로변의 사람은 줄어들었어도 찻집과 주막은 만석이었기에 풍채 좋은 선비는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어휴. 이렇게 새한성에 사람이 많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빈자리 하나 없을 줄은. 천상 자리를 잡고 불꽃놀이를 구경하기보단 이렇게 바깥에서 구경하는 것이 맞을 듯싶소.”
왜소한 선비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풍채 좋은 선비는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헌데 북미왕국은 확실히 풍요롭긴 하구려.”
“그렇지요. 축제라는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나눠준다니 솔직히 놀랍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먹었던 음식이 보통 음식이 아니잖습니까?”
풍채 좋은 선비의 말에 왜소한 선비가 오늘 먹었던 음식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국적이기도 하고...정말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음식들이었지요. 아마 그것들은 조선에선 양반도 쉬이 먹기 어려운 설탕이 들어간 음식들일 텐데 그런 걸 나눠줄 줄은...”
예전의 설탕이 왕도 먹기 힘들 정도였다면 지금은 원상이 조금씩 수입해오는 터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것도 세도가 정도가 아니면 아직 설탕은 쉽사리 먹기 어려운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헌데 이곳 북미왕국에선 그러한 설탕을 왕창 넣어 무료로 제공하니 솔직히 조선 사람이 보기엔 북미왕국의 풍요에 놀람을 넘어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소한 선비는 이 북미왕국의 풍요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최근 조선에는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선비들과 그들이 가져온 북미왕국의 서적으로 인해 북미왕국을 선망하는 사람들과 조선도 북미왕국처럼 조금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만 왜소한 선비의 경우는 북미왕국과 조선의 실정이 다른데 무작정 북미왕국을 따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하지만 북미왕국을 방문하자 그 생각은 흔들렸고 북미왕국은 건국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땅덩이가 넓다 한들 인구 자체는 적은 편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풍요를 누리는 것은 결국 조선과 달리 북미왕국은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과 공업까지 나라에서 직접 신경 쓰며 발전시켜 나간 결과라고 생각하자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왜소한 선비는 이들의 풍요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지만, 풍채 좋은 선비는 그저 해맑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들은 새해에도 신년 축제를 한다지요? 시기가 맞지 않아 그 신년 축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소이다. 돌아다니면서 북미왕국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번 축제는 그 신년 축제에 비하면 규모가 조금 작은 편이라고 하던데...”
풍채 좋은 선비의 말에 왜소한 선비는 실소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을 때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펑!’
“어?!”
풍채 좋은 선비와 왜소한 선비는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하늘을 바라보았고 광장 인근 하늘에서 화려한 불꽃이 원형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와...”
“정말 아름답구려.”
“그러게 말이외다.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불꽃의 모양조차 저렇게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렇게 목이 아플 정도로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밤하늘을 붉게 밝히는 불꽃을 바라보던 둘은 한참을 기다려도 불꽃이 다시 올라오지 않자 아쉬움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아...”
“끝난...모양이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불꽃놀이였는데...”
그렇게 풍채 좋은 선비와 왜소한 선비는 어두운 밤하늘에 눈을 떼지 못하며 중얼거리는 찰나.
“어?”
“음?”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기 시작하자 두 선비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억!”
“이...이게 무슨?!”
새한성의 대로를 따라 심어진 가로수 근처에 마치 허공에 떠 있는듯한 환한 빛나는 구체가 보이자 풍채 좋은 선비는 반쯤 주저 않아 중얼거렸다.
“도...도깨비불?!”
* * *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커다란 창문을 열어놓고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을 감상하다 마침내 지상에서 올라오는 불꽃이 멈추자 시선을 새한성 대로로 옮겼다.
“와아!”
“우와!”
저 멀리 보이는 새한성 대로를 따라 설치된 가로등이 일정 구간씩 켜지는 모습에 정안문과 정나리는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아름답네요. 마치 자그마한 별들이 땅에 내려앉은 것 같아요.”
하얀 들꽃이 새한성 대로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정성국이 웃었다.
“하하하. 그래?”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거...이해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새한성 대로에만 설치했지만, 훗날에는 거리 곳곳마다 저 가로등이 들어서겠지요?”
“그럼. 거기에 건물 안에서도 전등으로 인해 지금보다 훨씬 환하게 지낼 수 있을 테고.”
정성국의 대답에 하얀 들꽃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더는 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때 새한성 대로의 가로등이 모두 켜지고 광장의 가로등마저 켜져 환하게 빛을 밝힌 후 궁궐의 담벼락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이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와. 궁 주변이 빛으로 가득해요!”
정나리의 외침에 정성국은 궁 주변에서 놀란 표정으로 가로등을 바라보는 호위대원들과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조장들을 보고 피식했다.
그때 조그마한 등불 하나만 켜두었기에 무척 어두웠던 방이 환해졌다.
“와아!”
“엄청 밝아요!”
정안문과 정나리는 등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을 내뿜는 천장에 달린 전구를 보고 신기해하며 눈부심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전등을 보기 위해 애를 쓰자 급히 입을 열었다.
“얘들아. 아무리 신기해도 전등을 직접 보지는 말거라. 눈 건강에 좋지 않거든.”
“네에!”
대답만 잘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정성국이 피식 웃을 때 전아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눈 건강에 좋지 않다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밝은 빛은 그만큼 눈을 피로하게 하니까. 직접 빛을 발하는 물체를 바라보는 것은 좋을 것 없어. 어차피 전구가 밝은 편이라 눈부신 만큼 오래 바라보지도 못할 테지만.”
이에 전아라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럼 이것도 신문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백성들을 생각하는 전아라의 반응에 정성국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에 관련된 기사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전기가 편리하긴 했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특히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전기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기에 여러 안전사고가 발생할 여지도 있었고.
그런 만큼 내일 발간될 신문에는 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전기가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기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리는 기사가 더 많았다.
이를 알리자 전아라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무언가가 생각난 듯 피식 웃었다.
“왜?”
“생각해보면 지금 저 광경을 보고 북미왕국 백성들도 놀랄 테지만 지금 새한성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들도 무척 놀랄 것 같아서요.”
“하하하. 그건 또 그렇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