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정성국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은 슬슬 졸리는지 잘 준비를 했고 정성국은 커피 생각이 나서 서재로 올라갔다.
그렇게 커피를 내리는 동안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아이들을 재우고 서재로 올라왔고.
“오라버니.”
한창 커피가 똑똑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정성국은 전아라가 말을 걸자 고개를 들었다.
“응?”
“최근 장인들이 궁 주변을 드나들면서 무언가를 설치해서 아이들과 함께 구경했는데 어째 전깃줄을 연결하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전아라 역시 개척촌 시절 정성국이 만든 조악한 초기 발전기를 사용해왔기에 장인들이 설치하는 전깃줄을 알아본 모양이라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말한다는 걸 깜박했네. 궁 외곽도 그렇고 궁 내부도 전구를 달 생각이거든.”
이에 전아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궁에도 발전기를 설치할 생각이세요? 궁 전체에 전구를 달고 불을 밝히려면 기존의 발전기로는 조금 어렵지 않아요? 아. 설마 발전기를 개량한 건가요?”
전아라도 전구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고 전기로 환하게 방을 밝히는 전구가 신기하기도 하고 등불보다 환하고 편리한 터라 늦게까지 일하는 관청이나 연구소, 그리고 궁에도 설치하는 것이 어떤가 물었지만, 정성국은 발전기도 아직 조악할뿐더러 전구의 효율도 무척 좋지 않은 만큼 당장은 그럴 생각은 없다고 이야기해 무척 아쉬워했었다.
헌데 궁 곳곳에 전구를 달겠다고 하니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마구 던지자 정성국은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대답했다.
“아니. 최근 지혜로운 나무가 북쪽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거든. 너도 수력 발전소에 대한 개념 정도는 알고 있지?”
전아라도 한때 전기에 관해 관심을 두고 정성국이 집필한 책들을 한번 읽어본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 그거 커다란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대공사를 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요?”
“일단은 시범적으로 지은 거라 작게 지어서 그렇지. 전에 다녀왔는데 조금 커다란 저수지 수준이더라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일반적인 저수지로 생각했을 테니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을 테고.”
전아라는 정성국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그보다 수력 발전이면 제 연구실에 설치된 발전기하고는 다르게 연료를 채워줄 필요 없이 물만 있으면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수력 발전소에서 이곳까지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곳곳에 송전탑을 건설 중이야,”
정성국의 대답에 전아라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그럼 이제 모든 북미왕국 백성들이 전기를 이용하게 되는 건가요?”
“음...당장은 좀 어렵지만,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번에 건설한 수력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으로는 기껏해야 궁 안팎과 새한성의 대로를 따라 설치하는 가로등에 불을 밝히는 것이 전부였지만 곧 본격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수력 발전소를 건설할 생각이었기에 정성국이 대답하자 전아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개척촌 시절과는 달리 북미 대륙에 온 뒤로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느낌인데요?”
“그렇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셈이야.”
증기기관이 근대 문명의 상징이라면 전기는 현대 문명의 상징이자 현대 사회의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전기가 없다면 현대 사회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만큼 정성국은 이번 수력 발전소의 가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실생활에 이용할 생각이었기에 전아라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정성국과 전아라가 전기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일 때 이 대화에서 소외되어 있던 하얀 들꽃은 정성국과 전아라의 대화를 통해 전기가 무엇인가 짐작해보았지만, 도저히 전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전아라를 보고 질문했다.
“저기 형님. 전기가 뭐에요?”
“아. 미안. 그러니까 전기는...”
그제야 하얀 들꽃이 전기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전아라는 하얀 들꽃에게 전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처음 번개가 전기의 일종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하얀 들꽃은 전아라가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헤. 어렵네요.”
이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간단히 생각해. 지금까지 기계를 작동하려면 증기기관을 이용해야 했다면 이젠 전기를 이용해 기계를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야. 달리 이야기하면 공방마다 증기기관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하얀 들꽃도 정성국의 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연구청을 비롯해 수많은 공방을 들락날락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정성국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거...생각보다 대단한데요?”
“그뿐만 아니라 전기는 실생활에도 무척 유용하게 사용될 거야. 지금 궁에서 하는 공사가 끝나면 이제까지 해가 질 무렵에 시종이 궁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등에 불을 켤 필요 없이 환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래요?”
“그리고 새한성의 대로변을 따라 가로등을 설치 중이니 곧 새한성의 주민들은 밤길에 이동하려고 달빛에 의존하거나 등불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겠지.”
“와.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새한성의 주민들도 정말 편하겠네요? 그럼 언제쯤이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계산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 한 달 정도면 공사가 끝날 것 같으니 그때쯤이면 새한성의 주민들도 전기의 혜택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겠지.”
정성국의 대답에 전아라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때 축제를 여는 것은 어때요? 오라버니의 말씀처럼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셈이니까요.”
“아. 그게 괜찮은데요?”
전아라의 말에 하얀 들꽃마저 동의하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다만 신년 행사처럼 거창한 축제는 말고 간단하게 하자고.”
* * *
정성국은 정평국이 가져온 신문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음...이건 너무 보고서 같은 느낌인데?”
종이 크기도, 문서 작성 방식도 보고서와 너무 흡사한 터라 정성국은 이것을 과연 신문이라고 봐야 하는가 고민하며 중얼거리자 정평국은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신문의 목적은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니 보고서처럼 만든 겁니다만...”
뭐 엄밀히 따지자면 정평국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도 소식에 목마른 사람들은 신문의 형식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고 이 신문을 보려고 할 테니까.
생각해보면 조선의 조보(朝報)가 이것과 비슷했고.
하지만 정성국은 북미왕국 최초의 신문이 일종의 보고서 형식이라는 것 자체도 내키지 않았고 신문이 발행되면 정성국도 챙겨볼 생각이었는데 이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거기에 묘하게 낭비도 많은 느낌이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정평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형님이 그러시다면야...어떤 식으로 바꿀까요?”
이에 정성국은 빈 종이를 가져와 슥슥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종이에 커다란 네모난 칸을 그리고 가로로 줄을 2개 그어 칸을 3등분 하고 말했다.
“이런 틀로 하자고. 맨 위의 이 조그만 공간에는 신문의 이름과 발행 일자 같은 정보를 인쇄하고 이곳에 기사를 쓰는 거지.”
정성국이 중간에 제일 커다란 공간을 가리키자 확실히 깔끔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기존의 형식보다 기사를 쓸 공간이 적어졌기에 입을 열었다.
“깔끔하긴 한데 이러면 기사를 실을 공간이 적지 않나요?”
“그러니 이 부분을 이렇게 나누어 쓰는 거지.”
정성국은 가운데 공간에 세로로 줄을 그어 다시 기다란 4칸으로 나누었다.
이를 보고 정평국이 중얼거렸다.
“아...이러면 엄청 빽빽하게 써지겠군요? 그래서 형님이 낭비가 많은 느낌이라고 한 거고요? 헌데 이러면 활자 크기가 엄청 작아야 할 것 같은데...나이 든 사람은 신문 읽기도 어렵겠는데요?”
분명 이런 방식이면 줄 바꿈으로 인한 낭비는 최소화되겠지만 기존의 활자 크기론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 중얼거리자 정성국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활자를 줄일 생각을 하지 말고 종이의 크기를 키워. 기존에 사용하는 보고서 크기 종이의 8배 정도? 그리고 반으로 접고 양면 인쇄를 하면 4면이 나올 테니 그 정도면 괜찮을 듯싶은데?”
정성국이 대충 전생의 신문 크기를 언급하자 처음 너무 크지 않은가 싶었던 정평국은 잠시 생각해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중간에 삽화를 넣기도 괜찮을 테고. 이런 식으로 삽화를 넣는 거지.”
정성국이 가운데 기사가 들어갈 자리에 선을 그어 삽화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면서 때에 따라 삽화의 크기를 조정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정평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 삽화는 이 밑에 칸에 넣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 여긴 광고가 들어갈 자리야.”
“광고요?”
정평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설명을 시작했다.
“일종의 홍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돈을 받고 대신 홍보를 해주는 거지. 예를 들면 이번에 연구청에서 기상 연구소를 세운 것 알지?”
“예. 뒤쪽에 그에 관련된 기사도 있습니다.”
“그래. 그것까지는 기사의 영역이지. 하지만 이번에 세운 기상 연구소에서 기상을 연구할 사람을 모집하니 이에 관심 있는 사람은 지원하라는 글은 광고의 영역이고. 일종의 구인 광고라고 해야 할까?”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은 광고의 개념을 이해한 듯 탄성을 질렀다.
“아...”
“아니면 상품 광고를 낼 수도 있겠지. 만약 회중시계를 전담해서 만드는 국영 상단에서 새롭게 회중시계를 만들었다면 이를 알려 사람들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고.”
“허...”
정성국의 말에 광고의 쓰임새를 확실히 깨달은 정평국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뭐 당장은 국영 상단과 정부에서 광고 물량을 다 감당해야겠지만...”
이에 정평국은 조금 흥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점차 다른 상단들이 커지면 그들이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 앞다투어 광고하겠군요? 이거 생각보다 돈이 되겠는데요?”
이 국영 신문은 북미왕국 전역으로 배포되는 만큼 이곳에 광고를 싣게 되면 북미왕국 백성들이 광고를 본다는 뜻과도 같았다.
당연히 다른 상단들은 자신의 상품을 알리고 더 많이 팔기 위해 광고에 돈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게 생각보다 돈이 될 것 같아 정평국이 언급하자 정성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훗날에는 왕실과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그리고 광고 수익이면 신문사를 운영하는데 크게 부족함이 없을 거야. 다만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기사보다 지면 전체를 광고로 도배할 우려가 있으니 적당히 규제해야겠지.”
“아. 그건 그렇겠군요.”
정평국도 정성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이를 통해 과장된 광고를 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규제도 세워야 할 테고.”
“과장 광고요?”
정성국은 전생의 수많은 사례를 떠올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뭐 적당한 잡초 같은 거 잔뜩 섞어 환으로 만들고 신문사에 돈 주면서 이 제품이 바로 만병통치약이라고 광고할 수도 있잖아? 물론 이 경우는 엄밀히 따지면 사기를 치려는 상단의 잘못이긴 하지만 신문사에서도 최소한의 확인은 하고 광고를 실어야 한다는 거지.”
“아.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그런 문제도 생길 수 있긴 하군요.”
그렇게 정성국은 정평국에게 광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이야기해준 후 정평국이 가져온 신문 내용을 대충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흐음...기사 내용은 크게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이대로 형식만 바꾸어 채우고 광고는 일단 군사청장에게 이야기해둘 테니 군사청의 모병 광고를 넣고 그 외에는 국영 상단에 대한 광고를 싣도록 하렴.”
“알겠습니다.”
정평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이거 창간하려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까?”
“음...인쇄판을 키우고 이에 맞는 종이도 알아봐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데요?”
“그래?”
정성국이 정평국의 대답에 조금 고민하는 눈치이자 정평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조만간 신문을 이용해 전기에 대해 알릴 생각이라.”
정평국도 예전 정성국이 개척촌에서 만든 발전기를 본 적이 있었기에 갑자기 신문을 통해 전기에 대해 알릴 생각이라는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 탄성을 질렀다.
“아. 새한성 대로에 설치하던 것이 그럼 그 전등인 건가요?”
“그렇지. 그리고 가로등을 본 새한성 주민들은 신기하기도 할 테고 또 저게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할 테니 가능하면 신문 발행일 전날 점등행사를 하는 것이 괜찮겠다 싶어서.”
정평국도 정성국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 공사가 끝나는데요?”
“아마 한 달쯤?”
이에 정평국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서 그 전에 창간하도록 하지요. 그래야 일면에 전기에 관한 내용을 쓸 수 있을 테니.”
“그래. 부탁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