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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48화 (348/850)

348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드디어 에스파냐가 움직였다고?”

“그렇습니다. 에스파냐 해군 함대가 움직였고...제대로 저항할 방법이 없었던 프랑스인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아 예상대로 손쉽게 생도맹그를 점령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정성국이 새진주에 방문했을 때 웅크린 늑대가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히스파니올라 섬을 되찾기 위해 병력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조용했기에 언제쯤 움직일 생각인 건가 싶긴 했었다.

정성국이나 외무청이 판단하기에는 북미왕국과 프랑스가 전쟁 중이라 서인도제도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이 감히 생도맹그로 이동하지 못하는 시기에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지만 프랑스와 종전 협상을 맺고 전쟁을 끝낼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으니 말이다.

해서 정성국이 조금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해군도 우리와 종전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생도맹그에 함대를 배치하지 않은 건가?”

프랑스의 특사는 종전 협상을 끝내고 곧바로 북미왕국이 마련해 준 배를 타고 매사추세츠로 이동했지만, 이번에 북미왕국에 양도한 두 섬의 주민들은 빠르게 자국의 섬으로 이주시킬 필요가 있었기에 새진주를 드나드는 잉글랜드, 에스파냐의 배로 함께 온 수행원 일부를 서인도제도로 보냈었다.

그렇기에 최근 프랑스의 배가 토르투가 섬의 주민들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보고도 받았었고.

헌데 생도맹그를 그냥 내버려 둔 건가 싶어 묻자 조용한 곰이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착장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터라 단 2척만 배치했었다고 합니다. 헌데 에스파냐가 10척에 가까운 함대를 대동하고 생도맹그로 몰려오니 그대로 퇴각했다고 하는군요.”

“그래?”

“제대로 된 방어시설도 없이 단 2척으로 에스파냐 함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프랑스 해군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더불어 이미 생도맹그에 배치된 프랑스 전열함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추가로 피해를 보게 되면 여러모로 곤란하니 미련 없이 퇴각한 듯싶습니다. 덕분에 에스파냐는 무혈입성한 셈이고요.”

이미 프랑스 해군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 상황이라 아무래도 프랑스 해군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정성국은 프랑스 해군의 행동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이번 에스파냐의 움직임으로 프랑스에 양도받은 두 섬의 주민 이주 문제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 이번 에스파냐의 행동으로 토르투가 섬의 이주 문제에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

“괜찮습니다. 이미 토르투가 섬의 주민 대부분은 프랑스 선박을 타고 섬을 떠났으니까요.”

“아. 그래?”

“예. 해서 토르투가 섬은 지금 무인도나 다름없지요. 다만 제가 보고받기로 토르투가 섬의 주민들은 모두 가까운 생도맹그로 이주했다고 하던데...그들의 입장에선 황당하긴 하겠군요. 새로 정착한 섬이 다시 공격받고 에스파냐에 의해 점령당하게 생겼으니.”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뭐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에스파냐가 움직였으니 웅크린 늑대는 이를 빌미로 에스파냐에 무언가를 뜯어낼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그가 새진주에 방문해 웅크린 늑대와 이야기했을 때는 이 문제를 거론해 에스파냐를 압박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따내겠다고 이야기했었고 최근 에스파냐와 파나마 운하 건설 협정을 맺었기에 당연히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응? 이를 빌미로 파나마 운하 건설 협정을 맺은 것 아니었나?”

“아니랍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에스파냐 외교관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운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이 건을 빌미로 압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굳이 거론하지는 않았었답니다.”

“하하하. 역시 웅크린 늑대로군. 근데 뭐 뜯어낼 것이 있나?”

만약 에스파냐가 토르투가 섬의 소유권을 걸고넘어졌다면야 몰라도 에스파냐는 토르투가 섬의 소유권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에스파냐는 프랑스와의 조약으로 토르투가 섬이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북마왕국에선 토르투가 섬에 2함대의 분함대가 주둔하며 주변 지역의 해적들을 토벌할 거라는 이야기에 그저 북미왕국의 영토가 늘어난 것을 축하한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딱히 에스파냐를 압박해 뜯어낼 것이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교역품의 가격을 전반적으로 조정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뭐 나쁠 것 없겠네. 그럼 전적으로 맡긴다고 하게.”

“알겠습니다.”

* * *

“후. 고생했네. 나쁘지 않군.”

프랑스로 돌아온 데니스 도다르는 곧바로 루이 14세를 알현해 북미왕국과 맺은 종전조약문을 바쳤고 루이 14세는 이를 훑어본 후 북미왕국과의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과 비교적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북미왕국과 종전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먼저 알현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콜베르 역시 마찬가지인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토르투가 섬은 작은 섬에 불과하고 생크루아 섬은 아직 제대로 개발하지 않은 섬이니 손해가 크지 않습니다.”

이번 협상은 콜베르에게도 무척 중요했었기에 데니스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콜베르는 즉각 루이 14세의 알현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떠나기 전 데니스와 의논했던 대로 소유권이 불분명하거나 다른 나라와 공동으로 점유하고 있는 섬을 내어준 것은 아니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좀 의아하군. 북미왕국에서 왜 이 두 섬을 원한 거지?”

가장 큰 생도맹그야 에스파냐와의 관계 때문에 원치 않더라도 굳이 이 두 섬을 선택한 이유가 의아해 루이 14세가 중얼거리자 데니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랄까. 북미왕국은 서인도제도 진출에 큰 관심이 없는 눈치였습니다. 다만 전쟁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으로 귀금속이 아닌 서인도제도의 섬을 제시하자 어쩔 수 없이 북미왕국과 가까운 섬들을 고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이 원한 이 두 섬은 프랑스가 보유한 섬 중에서 그나마 서쪽에 자리한 섬이라는 것을 깨달은 루이 14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그런가? 해군이 그리 강력한데 식민지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에 데니스는 루이 14세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북미 대륙은 워낙 광활하니 굳이 먼 곳에 있는 조그마한 섬을 노릴 필요는 없다는 눈치였습니다.”

데니스의 대답에 루이 14세는 이번 조약으로 북미왕국은 결국 거대한 북미 대륙을 모두 차지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혀를 찼다.

“쯧...그보다 여기엔 전쟁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만 쓰여있는데 전열함은? 설마 전열함은 귀금속을 내어주어야 하는 건가?”

이에 콜베르도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데니스를 바라보았기에 데니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게도 한발 늦었습니다.”

“응?”

“이미 북미왕국이 노획한 전열함은 타국이 샀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루이 14세가 분노하자 데니스는 급히 자세한 보고를 시작했다.

북미왕국은 전열함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나라가 먼저 노획한 전열함들을 사겠다고 접촉했고 결국 다른 나라가 계약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 듣고 루이 14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이미 판매 계약을 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되팔 수 없다고 하더군요.”

“어느 국가가 사들였는지는 모르고?”

“그렇습니다. 굳이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다며 일축하더군요. 다만 북미왕국과 협상하면서 새진주를 방문하는 선박들을 관찰해보니 대부분이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선박이었습니다. 그러니...”

“둘 중에 하나란 소리군. 빌어먹을.”

루이 14세는 안색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에스파냐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고, 이번에 북미왕국으로 함대를 보내면서 잉글랜드와의 관계도 틀어졌다.

더불어 뻔히 프랑스의 전열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사들이기 위해 나섰다는 뜻은 프랑스 해군의 약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원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향후 저들의 행보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때 옆에 있던 콜베르가 무척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상황이 어렵게 되었군요. 이렇게 되면 천상 전열함을 직접 건조해야 하는데 40척이 넘는 전열함을 다시 건조하려면 그 시간만 해도...”

이에 루이 14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하. 그 말은 최근 해안가를 알짱거리는 모기떼 같은 네덜란드 함대를 그냥 두고 봐야 한다는 거지?”

“후우. 그렇습니다. 이전에 르아브르가 공격당해 급히 해군 일부를 르아브르로 옮겼습니다만...덕분에 다른 곳을 공격하는 네덜란드 함대를 요격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었지요.”

다른 곳은 몰라도 센 강의 하구인 르아브르가 공격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루이 14세나 콜베르는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파리까지 연결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중간에 방어를 위한 방어 요새가 있긴 했지만, 그동안 몸을 사리던 네덜란드 해군은 피해를 감수하고 덤벼대는 통에 이것으로 안심할 수 없었던 루이 14세는 콜베르에게 이야기해 추가로 해군 일부를 르아브르에 배치했었고.

하지만 이 때문에 숫자가 대폭 줄어든 프랑스 해군 일부가 르아브르에 묶이면서 네덜란드 해군은 마음껏 프랑스의 북쪽 해안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만약을 위해 프랑스 육군을 중요한 항구에 배치해두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피해가 커질 것이 뻔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데니스가 노획된 프랑스 전열함을 되사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졌으니 루이 14세는 심각한 얼굴로 콜베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곳에 배치된 해군 함대를 불러들이는 것은 어렵겠지?”

이에 콜베르는 루이 14세를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항로의 안전 문제 때문에 대외 무역이 급격히 줄어들 우려가 있습니다. 더불어 이제 와서 명령을 보내고 해군 함대가 복귀하는 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요. 현실적으로는...”

콜베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루이 14세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끝내는 편이 낫다는 거군? 최소한 해군을 재건할 때까지는?”

“송구합니다. 국왕 폐하.”

루이 14세는 한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이렇게 몰리게 된 현 상황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자신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프랑스의 피해가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애써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와 종전 협상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불리한 조건에 종전하게 될 테지?”

“아무래도...지금 점령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땅 대부분은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젠장.”

루이 14세는 콜베르의 대답에 분노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고 명령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이대로는 피해가 더 크니 점령한 땅을 다 되돌려 주는 한이 있더라도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끝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바로 네덜란드로 외교관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이른 시일 내에 해군을 복구하도록 전력을 다하게.”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그리고 루이 14세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단기간에 해군을 복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또한, 다른 곳은 몰라도 르아브르는 센 강의 하구이니만큼 방어를 더욱 강화해야 하네. 그러니 르아브르의 방어 요새를 재건, 증축에도 지원을 아끼지 말게. 해군이 없어도 적 함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그렇게 명령을 내린 루이 14세는 데니스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포로들은 만나봤나?”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북미왕국에서 포로들을 잘 대우해주고 있는 터라 대부분은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루이 14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다행이군. 헌데 북미왕국이 노획한 배를 되사지 못했으니 결국 저들을 데려오려면 이곳에서 배를 보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꽤 많은 배를?”

북미왕국이 노획한 배를 사들였다면 이를 타고 포로 일부라도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결국 3만에 달하는 프랑스인을 수송하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준비해야 했고 이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콜베르를 바라보자 콜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못해도 100척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 당장 그 정도의 배를 구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 정도 배를 북미왕국에 안전하게 보내는 것도 문제겠군.”

한창 네덜란드 해군이 해안가를 공격 중이었으니 섣불리 수송선이나 상선들을 보낼 수도 없었고 이 때문에 루이 14세가 인상을 찡그리자 콜베르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아무래도 네덜란드와의 종전 협상 이후에나 배를 구해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일단 배는 최대한 수배해 두게. 네덜란드와의 협상이 끝나면 곧바로 보내는 것으로 하고.”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그렇게 급한 일을 모두 처리한 루이 14세는 데니스를 바라보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도다르. 자네는 북미왕국에 관한 이야기나 좀 해 보게. 정말 북미왕국이 소문처럼 대단하던가?”

“제가 방문한 새진주는 북미왕국의 변방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데도 꽤 깔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데니스는 한참 동안 루이 14세에게 새진주를 방문하며 파악한 북미왕국의 정보를 모두 보고해 루이 14세의 호기심을 풀어준 후에야 알현실을 빠져나와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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