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네덜란드의 외교관 얀센 반 마이어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네덜란드의 총독 빌럼 3세는 급히 얀센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오. 북미왕국에 다녀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빌럼 3세가 집무실로 들어오는 얀센을 열렬히 환영하자 얀센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이 젊은 총독을 향해 말했다.
“전황이 무척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빌럼 3세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공께서 사람을 보내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를 전해준 덕분에 프랑스의 해안가를 공격하다 약간의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훗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해서 암스테르담 인근에서 방어에만 전념하던 라위터르 제독에게 공격을 명령했고 꽤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들었습니다. 무려 르아브르에 포격을 가해 저들의 항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면서요?”
르아브르는 파리와도 연결된 센 강의 하구 오른편에 자리한 항구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신대륙으로 향하는 거점 항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르아브르를 네덜란드 해군을 지휘하는 구국의 명장 라위터르 제독이 공격해 방어 요새를 일부 무너뜨리고 선착장과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배들을 공격해 충분한 타격을 주었으니 네덜란드인들은 잔뜩 흥분해 떠들어댈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얀센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이러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제 명령에 따라 라위터르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오른 강을 거슬러 올라가 캉을 위협하게도 했고요.”
빌럼 3세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네덜란드 해군이 움직였으니 이는 자신이 공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언사를 계속했는데 이는 빌럼 3세와 라위터르 제독의 관계가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창 전황이 어려울 때는 일단 국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서로 협력하던 둘이었지만 슬슬 전황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빌럼 3세는 라위터르를 다시 경계하는 것 같아 얀센은 내심 입맛이 썼지만 이를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런 얀센의 속도 모른 채 빌럼 3세는 해군의 공적을 나열하며 자신의 작전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떠들다가 말했다.
“더불어 이 사실을 알려 다른 지역에서도 프랑스를 강하게 압박하라고 명령해두었습니다. 뭐 루이 14세는 어떻게든 버티려는 눈치이지만 계속 이렇게 압박하다 보면 결국 잉글랜드처럼 종전 협상을 위해 외교관을 보내야 할 겁니다. 하하하.”
“휴. 정말 다행이군요.”
처음 프랑스가 공격해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정말 네덜란드 전역이 점령당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는데 북미왕국이 프랑스의 해군을 격파했기에 네덜란드에 유리해진 셈이었으니 얀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빌럼 3세는 그런 얀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공의 빠른 대처 덕분이니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저는 언젠가 알려질 소식을 조금 더 빨리 전했을 뿐이지요. 실질적으론 북미왕국 덕분에 전황이 유리해진 셈입니다.”
이에 빌럼 3세는 웃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북미왕국과의 동맹은 성사되었습니까?”
처음 잉글랜드를 통해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가 북미왕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북미왕국에 승산은 없다고 보았다.
다만 북미왕국이 프랑스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동맹을 생각했을 뿐이었고.
하지만 얀센이 병사를 통해 뉴펀들랜드에서 벌어졌던 해전의 결과를 보고하자 빌럼 3세의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북미왕국은 강력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이를 이용해 여러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잔뜩 기대 섞인 눈초리로 얀센을 바라보았다.
이에 얀센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동맹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북미왕국에서 원치 않더군요.”
“아니! 어째서요!?”
“분명 프랑스와 전쟁 중이긴 하지만 이미 프랑스는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으니 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으음...”
북미왕국에서 동맹을 거절했다는 말에 잔뜩 흥분했던 빌럼 3세는 얀센의 대답에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 입장에서는 뉴펀들랜드 해전을 통해 프랑스 해군에 큰 타격을 준 만큼 프랑스가 이 전쟁을 계속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때 얀센이 빌럼 3세가 조금 진정한 듯 보이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들은 유럽에 사정에 정통한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괜히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가 유럽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극히 경계하더군요.”
북미왕국의 말처럼 유럽에선 전쟁이 빈번했고 그 때문에 북미왕국과의 동맹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 했던 빌럼 3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아쉽군요. 그 듀케인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를 손쉽게 격파할 정도의 해군을 보유한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다른 국가들이 함부로 우리 네덜란드를 공격하진 못할 터인데...”
“죄송합니다.”
빌럼 3세의 아쉬움 섞인 혼잣말에 얀센이 바로 사과하자 빌럼 3세는 손을 저으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아쉬울 뿐이지 공을 탓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지요.”
비록 동맹을 맺진 않았지만, 얀센이 전해준 정보로 전황을 뒤바꿀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빌럼 3세였고 그런 빌럼 3세의 말에 내심 안도한 얀센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음?”
얀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빌럼 3세에게 북미왕국이 뉴펀들랜드 해전에서 노획한 프랑스의 전열함을 다시 프랑스에 되팔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빌럼 3세는 사색이 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요?! 노획한 전열함을 다시 프랑스에 되팔겠다고요?!”
얀센의 편지를 전해 받고 강하게 프랑스를 압박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해안가에 인접한 도시들을 공격했고 그 결과 해군의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헌데 프랑스 전열함이 다시 프랑스에 돌아간다면 지금 유리한 전황도 다시 바뀔 수 있었기에 빌럼은 기겁했고 얀센은 그런 빌럼 3세를 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는 북미왕국과 종전 협상을 할지언정 우리 네덜란드와는 끝까지 전쟁을 지속하려 들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랑스로선 뉴펀들랜드 해전의 패배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잃어버린 셈이니 그 손해를 네덜란드를 점령함으로써 만회하려 들 수도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빌럼 3세가 과연 그럴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얀센이 말했다.
“해서 북미왕국에 제의했습니다. 우리가 전열함을 사겠다고요.”
“팔겠답니까?”
“북미왕국은 꼭 프랑스에 팔 이유는 없으니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잔뜩 긴장했던 빌럼 3세는 얀센의 보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요. 헌데 편지로는 저들이 노획한 선박이 꽤 많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온전히 노획한 전열함 17척과 반파된 전열함 14척, 총 31척의 전열함을 사들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빌럼 3세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생각보다 많은데...?”
물론 빌럼 3세는 얀센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전황이 유리한 것도 다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기에 어느 정도 피해를 보더라도 프랑스 해군을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만약 저 31척의 전열함들이 다시 프랑스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네덜란드 해군은 다시 암스테르담을 방어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묶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전열함이 한두 푼 하는 물건은 아니었고 단번에 31척을 사들이는 것은 아무리 부유한 네덜란드라 하더라도 흔쾌히 결재하기 부담스러운데 현재 네덜란드 영토 대부분은 프랑스에 점령당한 상황이다 보니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빌럼 3세가 중얼거리자 얀센이 대답했다.
“예. 그리고 이걸 저희가 모두 사들이기엔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에스파냐와 함께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에스파냐라고요?”
빌럼 3세는 다행이라면서도 뜬금없이 에스파냐가 나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기에 얀센이 설명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은 프랑스 해군이 큰 피해를 본 현 상황을 기회로 보고 생도맹그를 공격해 히스파니올라를 완전히 장악할 속셈인 듯했습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계약은 체결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 요청해 반파된 전열함 14척은 베라크루즈로 이동해 수리 중이고요.”
계약을 체결했다는 말에 안도한 빌럼 3세는 이미 반파된 전열함을 북미왕국이 내어주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금도 받지 않았는데 내어주었다는 겁니까?”
이에 얀센은 웅크린 늑대를 떠올리고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설마 떼먹겠느냐고 그러더군요.”
“허.”
이는 북미왕국이 네덜란드를 믿는다기보다 네덜란드가 감히 북미왕국의 돈을 떼먹지는 못할 거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헛웃음을 내뱉으며 내심 분노했다.
하지만 북미왕국을 만만히 보았던 루이 14세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확인했기에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얀센의 보고를 듣던 빌럼 3세는 얀센의 보고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16척의 전열함이라...그리고 돈을 나누어 납부하는 방식이니 크게 부담되진 않겠군요. 잘 하셨습니다. 프랑스의 전열함은 최신 전열함이니 이를 사들여 해상 장악력을 올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충분히 제값을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프랑스의 전열함을 쓸모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라는 것이 조금 놀랍군요. 물론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만 확인했을 때도 북미왕국 해군이 무척 강력하다는 사실은 파악했습니다만...”
빌럼 3세의 말에 얀센은 자신이 탑승했던 북미왕국의 배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뭐랄까. 그보다는 북미왕국의 배는 모두 돛도 노도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배들뿐이라 수많은 돛을 조정해야 하는 전열함은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지요.”
“아. 그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배 말씀입니까? 정말 마법인가요?”
빌럼 3세가 흥미가 가득한 눈빛으로 얀센에게 묻자 얀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저도 저들의 배가 무슨 원리로 스스로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저들의 배가 석탄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석탄이요?”
빌럼 3세가 호기심을 보이며 되묻자 얀센은 자신이 관찰하고 뉴펀들랜드 섬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의 보고를 종합해 파악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예. 북미왕국의 배가 정박하는 선착장 근처엔 석탄저장고가 있고 북미왕국의 배는 출항 전 석탄을 싣더군요. 그것을 고려하면...”
“음...그 부분은 학자들에게 이야기해야겠군요.”
바람을 무시하고 이동하는 배의 가치는 무척 대단할 수밖에 없었고 무역을 중시하는 네덜란드로선 북미왕국 배의 비밀을 밝혀내 어떻게든 자신들도 북미왕국처럼 돛이 필요 없는 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여긴 빌럼 3세가 중얼거리자 얀센은 이를 환영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보고를 전했다.
“예. 그래서 학자들이 북미왕국의 비밀을 밝혀내었으면 좋겠군요. 아. 그리고 비록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지는 못했지만, 교역 협상은 맺었으니 이제부터 우리도 북미왕국의 도자기로 이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오! 잘되었군요!”
처음 북미왕국의 도자기로 무척 짭짤하게 이득을 보았던 네덜란드였기에 북미왕국과의 교역 협상은 모든 네덜란드인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거기에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북미왕국에서는 비단도 생산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괜찮은 교역품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라면 제가 방문했던 새진주에서만 교역품을 판다는 점이었습니다만...”
이에 빌럼 3세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허면 이 기회에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는 것도 괜찮겠군요. 어차피 에스파냐도 루이 14세를 썩 좋게 바라보진 않을 테니까요.”
물론 한때는 독립을 위해 에스파냐와 싸웠던 네덜란드였으나 원래 국가 간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었고 루이 14세가 생각보다 호전적이라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는 것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 빌럼 3세였다.
이에 얀센도 나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거 괜찮군요. 그러면 네덜란드령 서인도제도나 기아나 지역에서 손쉽게 새진주를 방문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요? 허면 바로 에스파냐에 외교관을 보내도록 해야겠군요. 아무튼, 위험을 무릅쓰고 북미왕국을 방문하느라 고생하셨으니 당분간은 쉬면서 오랜 여행에 쌓인 피로를 푸시지요. 전쟁이 끝나면 공께서도 할 일이 많을 테니까요.”
“하하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