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정성국은 새한성의 선착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배를 타고 새한강을 거슬러 이동했고 선실에서 들고 온 보고서를 확인하던 정성국은 마침내 배가 멈추자 다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끝에 마차에서 내린 정성국은 흰머리수리 깃발을 확인하고 급히 달려와 인사하는 지혜로운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이네. 지혜로운 나무.”
정성국은 오랜만에 만난 지혜로운 나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저 뒤편에 보이는 저수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과 함께 이동하며 중얼거렸다.
“실험이 끝난 후 제가 보고하러 새한성으로 이동하면 되는데 굳이 전하께서 이곳에 오실 줄은...”
“직접 수력발전소가 가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말게.”
정성국이 이렇게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눈앞에 보이는 저수지가 바로 댐을 건설해 생긴 저수지였고 이 댐에는 당연히 수력 발전을 위한 설비가 들어가 있었다.
예전 정성국이 지혜로운 나무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이야기한 후 지혜로운 나무는 자신처럼 전기에 관심 있는 몇몇 연구원들과 함께 수력발전소 모형을 만들며 수력발전소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개발청의 도움으로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새한강의 수많은 지류 중 하나에 건설한 이 조그마한 댐이 건설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성국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이렇게 발걸음을 옮긴 것이고 말이다.
정성국은 탁 트인 저수지의 수면을 바라보며 예상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 생각보다 저수지의 크기는 큰 편이네?”
“그렇습니다. 계곡이 비교적 넓은 편이라 작은 댐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수지 자체는 큰 편이지요.”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주변 마을에 식수나 관개용수를 대면 될 테니 저수지가 크다고 나쁠 것은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렇게 저수지를 따라 걷던 정성국은 댐 위로 발걸음을 옮겨 가장자리에서 댐 아래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호. 이게 이번에 건설한 댐이로군? 헌데...생각보다도 좀 작은 것 같은데?”
“일단 실험용으로 건설한 녀석이니까요.”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연구는 충분하고 연구실에서 모형으로 진행한 실험도 모두 성공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만 너무 규모를 키우면 주변 마을이 수몰될 우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하께서 저술하신 책에서도 너무 커다란 댐을 건설하면 주변 환경이 변할 수 있으니 댐을 건설하기 전에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경고하기도 하셨고요.”
수력발전소는 거대한 댐을 건설해 일정 이상의 물을 저장해야 했기에 댐으로 인한 마을이 수몰될 수 있었고 물을 가둬 주변 지역에 습도가 올라가 기후가 바뀌는 등 여러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정성국은 책자에 수력 발전을 위해 댐을 건설할 경우 이러한 환경 문제를 간과하지 말라고 적어두었고.
그래서인지 지혜로운 나무는 혹시 모를 부작용을 우려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작은 댐을 건설한 모양이었다.
특히나 계곡이 넓은 편이었기에 댐을 크게 건설하면 그만큼 많은 물을 가두는 셈이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만큼.
“아. 그건 그렇지.”
다만 정성국은 이왕 수력 발전을 위해 댐을 건설할 거라면 조금 크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나무가 덧붙였다.
“그리고 당장 커다란 댐을 건설해 막대한 전기를 생산한다고 쳐도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낭비나 다름없지요.”
전기는 기본적으로 저장해놓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지 않으면 전기는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당장 이 조그마한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 대부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지혜로운 나무는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고.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기계들을 전기로 작동하게 바꾸면 그만이지. 이미 전동기도 개발해두지 않았나?”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니까요.”
지혜로운 나무는 아직 써먹기는 이르다는 견해이었지만 정성국이 보기엔 충분했고 이렇게 활용해야 빠르게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공방마다 석탄저장고를 건설해두고 증기기관을 돌리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것만 해도 써먹을 만은 하지. 공방마다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것보다야. 그리고 정 뭐하면 저걸 대대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고.”
정성국은 댐 위에 설치된 백열전구로 만든 전등을 가리키자 지혜로운 나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전등은 효율이 무척 낮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원래 백열전구는 에너지의 10 프로 정도만 빛에너지로 바뀌고 나머지는 열에너지를 비롯한 다른 에너지로 바뀌는 만큼 무척 효율이 낮긴 했다.
다만 그보다 효율이 좋은 형광등을 만들기에는 아직 기술력이 부족했기에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전기를 그냥 날려버릴 바에야 저런 거라도 설치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잖아? 최소한 북미왕국 백성들에게는 생소한 전기를 알릴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테니.”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허면 궁궐 주변에 전등을 설치하는 것은 어떨까요? 꽤 그럴싸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전기가 남을 것 같은데? 나중에 궁궐 주변 광장과 새한성의 대로를 따라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도 괜찮겠네.”
“허. 그럼 무척 볼만하겠군요.”
“그렇겠지. 음? 수문을 개방하는 건가?”
비교적 조용했던 댐 위에서 지혜로운 나무와 대화를 나누던 정성국은 갑자기 댐 아래쪽에서 시끄럽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슬쩍 고개를 내밀며 중얼거리자 지혜로운 나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3시에 수력발전소를 가동하기로 했으니...지금이 3시인 모양이군요.”
그때 정성국은 댐 위에 일정 거리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던 전등이 일제히 빛을 밝히자 씩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전등에 불이 들어오는군. 주변이 어두울 때 불이 들어와야 그럴싸했을 텐데 이거 좀 아쉬운걸? 그보다 실험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네. 지혜로운 나무. 자네 덕분에 앞으로 북미왕국은 수력 발전을 이용해 값싼 전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연구하느라 그동안 참으로 고생 많았네.”
정성국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결국 북미왕국의 발전에 일조한 지혜로운 나무의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치하하자 지혜로운 나무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고생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제가 좋아서 시작한 연구인 것을요. 그보다 수력발전소가 제대로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니...최대한 빨리 이 전기들을 새한성으로 보내기 위해 송전탑을 세워야겠군요.”
“그래야지. 그리고 슬슬 새한성 대학교에도 전기과를 만들어야겠군.”
아직 전기를 다루는 학문을 가르치는 전기과는 이를 가르칠 선생을 찾기 어려워 만들지 않았었지만 이제 북미왕국도 전기를 제대로 이용하게 된 만큼 이와 관련된 인재들이 필요했기에 내년부터는 전기과를 신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지혜로운 나무는 웃었다.
“하하. 후학을 양성하라는 뜻입니까?”
“자네의 지식을 이어받아 이를 더 발전시킬 인재를 키워야지. 안 그런가?”
“하하하. 그렇긴 하지요. 다만 현업과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는 친구들이 워낙 죽는소리를 해서 조금 겁이 나는군요. 가뜩이나 연구할 것도 많은데 말이지요.”
그러면서 지혜로운 나무가 묘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잠시 움찔하던 정성국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뭐 자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개인 연구에 집중하도록 하게. 어차피 송전탑 건설이나 배전 공사 등은 자네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 저 친구들로도 충분할 거야.”
정성국은 환하게 빛을 발하는 전등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기술자들을 가리키자 지혜로운 나무는 발전소를 건설하며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저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죠. 그럼 알겠습니다.”
* * *
4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새진주의 웅크린 늑대가 보낸 보고서를 확인하고 곧바로 개발청장을 불러들였다.
최근 새진주를 다시 방문한 에스파냐 외교관과 협상 끝에 파나마 운하 건설 협정을 체결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물론 정성국도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면 에스파냐의 관점에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을뿐더러 파나마 운하 건설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기술은 북미왕국에서 감당하는 조건이다 보니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의 운하 건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크게 손해 볼 것은 없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다만 이렇게 빠르게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반응한 것은 의외였고.
해서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오기까지 웅크린 늑대가 보낸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보고 피식 웃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은 파나마 운하 건설과 관련해 북미왕국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도 10년 안에 공사에 들어갈 것과 공사에 들어간 후 40년 안에 공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하고 북미왕국에 허용한 파나마 지역의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회수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이는 아무리 봐도 자신이 부왕일 때 못해도 파나마 운하 건설이 시작되는 것을 원한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웅크린 늑대는 10년 안에 공사에 들어간다는 부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애당초 정성국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고 꼼수로 공사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뜨고 미루기만 해도 되는 만큼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고 말이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은 못해도 자기가 부왕일 때 운하 건설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건가? 뭐 어찌 보면 그것도 자신의 업적이긴 하지.’
정성국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집무실로 개발청장이 찾아왔기에 정성국은 생각을 멈추고 개발청장에게 파나마 운하 건설에 관해 이야기했다.
갑작스럽게 정성국이 자신을 불렀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던 개발청장은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질린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맙소사...새나주-새진주 철도 공사가 끝난 후 한숨 돌리나 했더니 파나마 운하라니요...”
이에 정성국은 쓴웃음을 지으며 급히 입을 열었다.
“아. 당장 파나마 운하 건설에 들어가진 않을 테니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지는 말게.”
“아. 그렇습니까?”
“뭐 파나마 지역에 기술자들을 보내서 주변 지형을 파악하면 알겠지만 그리 만만한 지형은 아니거든.”
정성국은 안도하는 개발청장에게 덧붙이고 주변 지형을 대략 설명하자 개발청장은 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뭐 산맥을 모두 파야 할 테니...차라리 화약을 사용해 공사하는 것도 괜찮겠군요.”
“아. 내가 말을 안 했는데 파나마 운하 건설은...”
개발청장은 산맥 전체를 파는 수평식 운하를 생각하는 듯 보였기에 정성국은 급히 갑문식 운하에 관해 설명했고 이를 듣고 개발청장은 다시 질린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허. 운하를 산 위에다 건설하겠다는 뜻입니까?”
“뭐 산 위에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든다고 생각하게. 그리고 이 호수와 바다를 연결하기 위해 운하를 건설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거야.”
정성국의 자세한 설명에 개발청장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구간이 짧아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엄청난 대공사가 되겠군요. 거기에 외국에서의 공사이니 물자를 수송하기도 쉽지 않겠고요.”
“그럴 테지. 더불어 각종 전염병과 풍토병 때문에 공사를 길게 끌어봐야 피해만 커질 테니 철저하게 준비하고 구간을 잘게 쪼개 단기간에 공사를 끝낼 생각이야. 그 때문에 연구청에서는 건설 장비의 개량에 들어갔고.”
정성국이 이번 건설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뜻을 내비치자 개발청장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건설 장비가 있다면 그나마 좀 낫긴 하겠군요. 허면 일꾼들은...”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을 일꾼으로 써야지. 이미 에스파냐와는 협의가 끝났고.”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그나마 안도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음...허면 공사를 전체적으로 관리 감독할 인력과 원주민들을 관리할 인력, 건설 장비를 운용할 인력 정도만 파견하면 되겠군요.”
“그렇지. 아. 그리고 단순히 운하만 건설하는 것이 아닐세. 아무리 단기간에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려 해도 몇 년은 걸릴 테니 일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마을들을 여럿 건설해야 할 거야.”
정성국의 혹시나 해 이야기하자 개발청장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뭐...”
“그리고 아마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면 피해를 보는 원주민들도 있을 테니 훗날 이들이 지낼 수 있게 제대로 마을을 건설하도록 하게.”
분명 산 가운데에 거대한 호수를 건설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피해를 보는 원주민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대충 숙소만 건설하고 끝내지 말고 마을이 돌아갈 수 있도록 북미왕국에서 새롭게 마을을 건설하는 것처럼 주변 지역까지 함께 개간해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개발하라는 말에 개발청장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공사가 끝나면 비어버린 마을을 그런 원주민들에게 넘긴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러한 점들을 고려해서 건설하도록 하게.”
“음. 알겠습니다. 허면 일단 파나마 지역을 측량할 인력을 보내 상세한 지도를 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