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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44화 (344/850)

344화

정성국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박기동, 최주명, 김신철이 들어오자 정성국은 보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으셨습니까. 스승님?”

“왔구나. 다들 저기 앉거라.”

그나마 박기동과 최주명은 새진주를 방문하기 전 만났었지만, 김신철은 철도 공사를 비롯해 북미왕국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강철을 생산하기 위해 계속 제철소를 확장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셈이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근황을 이야기하던 김신철은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새진주에 다녀오신 직후 다시 새나주를 방문하셨다면서요?”

새진주를 다녀온 정성국은 가족들과 약속한 대로 새나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정성국이 자리를 비운 동안 하얀 들꽃이 업무 대부분을 깔끔하게 처리해 두었고 정성국의 결재가 필요한 보고서 역시 잘 정리해 두었기에 거의 3주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정성국이 처리해야 할 보고서는 많지 않았다.

해서 정성국은 곧바로 보고서를 확인해 서명한 후 가족들과 함께 새나주를 방문해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었고.

“그래. 안문이가 기차를 타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안문이와 나리는 지금껏 궁 밖을 나간 적이 없으니 바깥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새나주를 방문한 거지. 새진주를 방문하면서 느낀 건데 생각보다 왕실 전용 기차가 편하더라고.”

정성국의 말에 옆에서 박기동이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하하. 그렇지요? 그거 만들겠다고 장인들이 엄청 난리를 피웠는데 전하께선 그냥 방치해두셔서 그동안 장인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가끔은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외유하시지요?”

“아. 그럴 생각이야. 생각보다 기차 여행이 나쁘지 않더라고. 그리고 내가 이야기해둘 테니 너희들도 쉴 때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가족들과 기차 여행이라도 떠나봐라. 생각보다 괜찮더라. 편하고.”

이에 최주명과 박기동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휴. 그거 꿈같은 이야긴데요?”

“그럴 시간이 있나요. 일에 치여 사는 판국에.”

정성국은 최주명과 박기동의 반응에 찔리는 것이 많아 슬쩍 시선을 돌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래도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거 연구청에 들어갔으니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어?”

하지만 박기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핏덩이들이요? 걔들이 제 몫을 하려면 몇 년은 더 굴려야 하는걸요. 그때까지는 무리죠.”

“그렇지. 그나마 신철이 너는 여유가 좀 있지 않나?”

최주명이 김신철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자 김신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지. 철도 공사도 끝났으니 당분간은 여유가 있을 테니...이 기회에 나도 가족들과 기차 여행이나 떠나 볼까?”

“그래. 다녀와라. 기차를 타고 북미왕국의 풍경을 보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으니. 그리고 다녀와서는...연구 좀 하고.”

“예? 연구요? 갑자기 무슨?”

김신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박기동과 최주명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건설할 생각이거든?”

“예?”

“운하요? 갑자기요?”

정성국의 선언에 제자들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성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북미 서해안과 북미 동해안을 연결해줄 운하가 필요하다는 건 너희들도 잘 알잖아? 헌데 이번에 에스파냐가 얌체 짓을 해서 웅크린 늑대가 에스파냐에 무언가를 뜯어낼 생각이라고 이야기하길래 이 기회에 에스파냐와 협상해 파나마 지역의 운하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라고 했지.”

“허. 파나마 운하 건설이라니...철도 공사가 끝나자마자 이런 대공사를...”

정성국의 설명에 김신철은 놀랍고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아. 물론 웅크린 늑대라면 에스파냐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면 에스파냐도 이득이니 굳이 반대할 것 같지는 않고. 다만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공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 성공적으로 운하를 건설하려면 준비할 것도 많고 연구도 필요하니까.”

당장 운하 건설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는 말에 제자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또 다른 일거리를 넘겨주는 격이라 박기동이 투덜거렸다.

“어휴. 또 일 폭탄을 넘겨주시네요.”

“하하하. 미안하구나.”

김신철은 몰라도 박기동과 최주명은 최근 만나서 여러 가지 업무를 맡겼는데 다시 일 폭탄을 떠넘기는 꼴이었기에 정성국도 미안한 표정을 짓자 제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서로 바라보다 먼저 박기동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전 건설 장비를 더욱 개량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쪽이 풍토병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오래 공사해봐야 좋을 것이 없어. 그러니 최대한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건설 장비를 대량으로 동원할 생각이고.”

박기동은 정성국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건설 장비를 대형화해야겠군요? 출력도 확 올리고?”

“그렇지. 그리고 대량으로 만들 생각이니 공방도 크게 건설하고.”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나쁠 것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뭐 만들어두면 다른 곳에도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전 뭘 해야 하나요?”

운하 건설과 자신이 맡은 업무와는 크게 상관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최주명의 의아한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웃으며 대답했다.

“북미왕국의 배야 증기기관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다지만 범선들이 운하를 이동하기는 쉽지 않겠지?”

“아! 그럼 예인선을 개발하라는 뜻이군요?”

“그래. 그리고 운하 안에서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운하에서의 이동은 예인선이 맡는 것이 나아. 그러니 천급 함선도 끌고 항해할 수 있는 예인선을 만들어 보라고.”

전생의 파나마 운하는 운하 양쪽에 선로를 깔아 기관차로 선박을 예인했지만 당장은 예인선만으로도 충분해 보였기에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최주명은 어려울 것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럼 저는요?”

정성국은 김신철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넌 거대한 갑문을 만들어줘야겠다.”

“예? 갑문이요? 운하에 갑문을 다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파나마 운하는 지형상 수위 조절을 위한 갑문이 필요하거든.”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에 건설된 파나마 운하의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를 듣던 제자들은 놀란 기색으로 입을 멍하니 벌렸고 정성국의 설명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여러 개의 갑문을 이용해 수위를 조절해서 산 위로 배를 올린다니...”

“배가 산 위로 올라가는 건가요? 이것 참...”

“근데 너무 번거롭지 않나?”

정성국의 말처럼 공사가 진행된다면 인공 수로와 호수는 결국 산 위에 건설되고 바다에서 이 산 위의 운하로 배를 올리기 위해 선거에 물을 채워 배를 올리는 방식이었기에 무척 번거로워 보여 김신철이 굳이 그런 방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표정이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않으면 산맥을 모조리 파헤쳐야 하니 어쩌겠어.”

전생에 처음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시도했던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레셉스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던 경험을 살려 파나마 운하도 수평식 운하, 즉 산맥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운하를 만들려고 했지만, 대부분이 모래사막이라 공사하기 쉬웠던 수에즈 운하 건설 현장과는 달리 파나마 운하 건설 현장은 난공사 구간이 많아 결국 도중에 운하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러한 도중 많은 시간이 흘러 결국 파산했고.

그걸 아는 만큼 정성국은 처음부터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 운하로 건설할 생각이었고.

해서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갑문을 이용한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제자들은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선소에 설치한 갑문보다 더 큰 갑문을 만들어야겠군요?”

“그렇지. 한 40m쯤?”

이에 김신철을 기겁하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자...잠깐만요. 운하의 폭을 최소 40m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쯤은 돼야지.”

김신철은 거대한 규모의 운하에 다시 입을 멍하니 벌렸고 박기동은 복선으로 설치한 철도 노선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운하도 철도 노선처럼 상행, 하행으로 만드실 생각이시군요? 그래서 운하의 폭을 그렇게 넓게 잡으시는 거고요?”

하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훗날을 대비해 최대한 크게 만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운하가 있다면 결국 운하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니 대형 수송선이든 전선이든 결국 운하의 폭에 맞춰 건조될 수밖에 없잖아?”

전생의 파나마 운하의 폭은 33m였고 이 때문에 미 해군은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군함의 폭을 33m에 맞출 수밖에 없었고 빠르게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수많은 선박도 폭을 33m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를 기억하는 정성국은 처음 건설할 때 최대한 큰 폭의 운하를 건설하고자 했다.

미 해군도 처음에는 최소 36m 이상의 운하를 원하기도 했었고.

“아...그건 그렇겠네요. 남미를 빙 돌아 이동하는 것보다야 운하를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고 시간을 확실히 단축할 수 있으니까요.”

박기동은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신철은 정성국이 너무 먼 미래까지 고려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스승님. 너무 먼 미래를 예상하시는 거 아닌가요? 지금 천급 함선의 폭이 15m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맞지?”

김신철이 최주명을 바라보자 최주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12m지.”

“그리고 아직 천급 함선 이상의 선박 건조는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너무 공사 규모를 키우는 것 같은데요? 차라리 지금은 적당한 크기의 운하를 파고 나중에 확장 공사를 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김신철의 주장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 수많은 배가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몰려들 거야. 그러면 추가로 확장 공사를 하기도 쉽지 않을걸? 기존의 운하에 피해를 주면 안 될 테니까. 그리고 운하의 소유권을 에스파냐와 나눌 생각이라 우리가 운하를 확장하고 싶다고 해도 에스파냐가 거부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고. 그러니 한번 만들 때 크게 만드는 것이 나아.”

“휴우. 알겠습니다. 40m의 갑문이라...근데 그거 만든다 하더라도 파나마까지 운반하기도 쉽지 않겠는데요?”

그 엄청난 크기의 갑문을 어떻게 운반할 거냐고 묻자 정성국은 최주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문을 운반할 수 있는 선박도 연구해 만들어야겠지. 갑문이 한두 개가 아니니.”

그러자 박기동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설 장비들도 대량 생산해 운반하려면 천급 함선의 구조도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이에 최주명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 기존의 철선 연구와 갑문을 운반할 수 있는 수송선, 그리고 건설 기계들을 최대한 운반할 수 있는 수송선을 연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 부분은 맡기마. 그리고 기동아.”

정성국이 자신을 부르자 왜 또 부르냐는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는 박기동이었다.

“넌 갑문을 움직일 증기기관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알지?”

“아...그거야 뭐 그렇겠죠. 그 거대한 쇳덩이를 움직이려면야...”

“문제는 파나마 지역은 말라리아나 황열병 같은 질병 때문에 우리 백성들을 그곳에 계속 파견하는 것은 좀 걸린다는 점이야.”

이에 박기동은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증기기관 운용을 에스파냐인들에게 맞길 생각이세요?”

이 부분은 정성국도 고민이 많았다.

철저하게 증기기관 기술을 지키려면 갑문을 다루는 모든 인력과 주변을 통제할 병사까지 보내야 하는데 인구가 부족한 현 북미왕국 상황에서는 솔직히 무리였다.

더불어 이 지역은 말라리아나 황열병에 걸릴 위험도 컸고.

“일단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을 잘 가르쳐 그들을 고용해 맞길 생각이다만...잘못하면 증기기관 기술을 탐내는 에스파냐에 증기기관 기술이 알려질 수 있다는 점이지.”

이에 박기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흠...그럼 저들이 함부로 뜯어보지 못하게 만들어야겠군요? 그리고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고 고장이 나면 고치기보다는 교체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그래. 가능할까?”

이에 박기동은 비장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선언했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스파냐가 증기기관 기술을 날로 먹을 것 같은데 그건 달갑지 않으니까요.”

“하하하. 그래. 부탁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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