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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43화 (343/850)

343화

웅크린 늑대는 며칠간의 협상으로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프랑스의 특사인 데니스 도다르를 보고 조금 더 압박해 무언가를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애당초 서인도제도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과의 접촉으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에 현 북미왕국의 사정상 무인도에 가까운 섬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쉬움을 떨쳐내며 입을 열었다.

“흐음...좋습니다. 귀국이 지급해야 할 전쟁 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으로 귀국이 보유하고 있던 북미 대륙에 관한 모든 권리, 그리고 생크루아 섬과 토르투가 섬을 받도록 하지요.”

생크루아 섬은 에스파냐는 산타크루스 섬, 잉글랜드는 세인트크로이 섬으로 부르는 버진아일랜드에서 가장 크고 가장 남쪽에 있는 섬으로 프랑스 소유의 섬 중에서 크기도 적당할뿐더러 훗날 파나마 지역에 운하가 건설되면 운하를 통과한 북미왕국의 선박이 유럽으로 향할 때 이 섬이 중간 거점이 될 수 있는 위치였기에 웅크린 늑대는 이 생크루아 섬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는 토르투가 섬 역시 마찬가지로 히스파니올라 섬 북쪽에 있었기에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북미왕국의 선박이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들를 중간 거점으로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고.

다만 토르투가 섬은 온전히 프랑스의 영토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긴 했다.

히스파니올라 섬과 무척 가까웠기에 에스파냐가 자신들의 섬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었고.

하지만 데니스는 프랑스가 토르투가 섬을 장악한 지는 시간이 꽤 흘러 엄연히 자신들의 소유라 주장했고 훗날 건설될 파나마 운하를 생각하면 항로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포기하기는 아쉬운 위치였기에 일단 데니스의 주장대로 프랑스의 영토로 인정하기로 했다.

훗날 에스파냐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협상을 통해 설득하면 그만이고 토르투가 섬에 분함대를 파견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주변 해역에 해적들이 얼씬도 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에스파냐는 환영할 거라고 보았다.

토르투가 섬 북쪽의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까워 프랑스가 전략적으로 해적들을 토르투가 섬으로 불러들이기 전에는 에스파냐의 선박을 노리는 해적들이 은신처로 사용하곤 했기에 토르투가 섬이 2함대에 의해 박살 난 후 해적 일부가 이쪽으로 이동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요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웅크린 늑대와 기나긴 협상을 하느라 잔뜩 지쳤던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반색하며 지금껏 서로 논의하며 작성했던 조약문 맨 밑에 재빨리 서명하고 웅크린 늑대에게 내밀었다.

웅크린 늑대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약문에 서명을 해버리는 데니스의 행동에 실소하면서 데니스가 건넨 조약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데니스의 서명 옆에 서명했다.

“휴우...”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가 마침내 조약문에 서명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도맹그나 온전히 점유하지 못하고 있던 섬들 대신 생크루아 섬과 토르투가 섬을 넘긴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보다 큰 섬들을 지킨 것으로 데니스는 만족하며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프랑스 병사들도 이젠 포로는 아닌 거지요?”

“예. 오늘 날짜로 더는 포로 신분은 아니지요. 다만 미리 이야기한 대로 귀국에서 병사들이 탈 배를 보내기까지는 일단 포로수용소에 격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쩔 수가 없었는데 이번 협상으로 2만 7천 명에 달하는 프랑스 병사들과 누벨 프랑스 소속 프랑스인 1천 명, 프랑스 출신 선원 500명까지 모두 프랑스로 돌려보내기로 했기에 거의 3만에 달하는 프랑스인이 포로 신분을 벗어나게 되었다.

문제라면 매사추세츠 지역의 인구가 3만이 넘는 수준이었기에 이 3만에 달하는 프랑스인들을 지금처럼 격리하지 않는다면 매사추세츠 지역은 엉망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웅크린 늑대도 협상하면서 확실히 언급했었고 대신 포로들의 몸값을 조금 줄여 주기도 했기에 데니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국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 프랑스 병사들은 더는 포로 신분이 아니니 강제 노역은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포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단순한 강제 노역이라고 보긴 조금 어렵긴 했다.

포로들도 더 풍족한 물자를 위해 일하는 편이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이 포로를 학대한다는 등의 딴지를 걸지는 않았지만 오늘 날짜로 포로 신분을 벗어난 이상 데니스는 프랑스인들이 돌아가기까지 격리된 상태라 몸이라도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를 요청했다.

하지만 데니스의 예상과는 달리 웅크린 늑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이 부분은 설득이 필요할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제 우리 프랑스 병사들은 더는 포로 신분이 아닌데 계속 강제 노역을 시키겠다는 겁니까?!”

데니스는 프랑스인들을 격리하는 문제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포로도 아닌데 강제 노역을 시킨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기에 목소리를 높이자 웅크린 늑대가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듯 흔들었다.

“자자.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부터 들어보시지요. 그래도 납득할 수 없다면 특사의 의견대로 노동을 금지하겠습니다.”

“크흠. 어디 말씀해보시지요. 왜 포로 신분도 아닌 우리 프랑스 병사들이 강제로 일을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데니스가 조금 진정하고 일단 웅크린 늑대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듯 팔짱을 끼자 웅크린 늑대가 입을 열었다.

“먼저 프랑스 병사들이 꽤 오랫동안 포로수용소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사께서 바로 프랑스에 돌아가서 프랑스 병사들을 수송할 선박을 구하고 다시 매사추세츠 지역으로 이동하기까지 못 해도 반년은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음...그건 그렇지요. 아무래도 병사들의 수가 많은 만큼...”

거의 3만에 달하는 프랑스인들을 수송하려면 못해도 7, 80척의 선박은 필요했고 이를 단숨에 구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웅크린 늑대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 그럼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반년은 넘게 좁은 포로수용소에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지내야 하는데...글쎄요. 제 생각엔 프랑스의 젊은 친구들이 좀이 쑤셔 오히려 버티기 힘들어할 것 같습니다만...”

“으음...”

웅크린 늑대의 말처럼 포로수용소에서 계속 격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하던 일마저 사라진다면 처음에야 몸이 편할지 몰라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웅크린 늑대의 이야기는 일리가 있어 데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데니스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프랑스 병사들에게 제공되는 식량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은 그들의 노동력과 교환되었고 그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포로들의 몸값이 무척 저렴했었지요. 허나 프랑스 병사들이 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귀국할 때까지 그들에게 제공되는 물자들은 귀국에서 내어주어야 합니다. 헌데 귀국은 네덜란드와의 전쟁과 해군 함대의 재건으로 인해 재정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웅크린 늑대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내자 데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데니스가 생각해보니 프랑스인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자유만 박탈되었을 뿐 잘 먹고 부족한 것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노동을 금지하면 프랑스가 이 물자들의 값을 치러야 했는데 3만에 달하는 인원이 풍족하게 사용하는 물자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빨라야 반년이지 잘못하면 더 늦어질 수도 있어. 그리고 북미왕국에서는 포로수용소의 프랑스인들에게 흰 밀가루와 맥주, 고기 등을 풍족하게 제공하니 훗날 북미왕국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테고. 그렇다고 이 금액이 부담되어 보급을 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데니스가 고심하고 있을 때 웅크린 늑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프랑스 병사들이 귀국하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광산에서 일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귀국의 입장에서도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제 프랑스 병사들은 포로 신분이 아닌 만큼 기존에 부과되었던 기본 할당량은 없애고 그들이 캐는 광물도 제대로 값을 쳐주도록 하지요.”

“예? 그럼 그동안은 제대로 값을 쳐주지 않은 겁니까?”

데니스가 포로수용소의 프랑스인들과 대화하면서 북미왕국에 대해 놀란 것은 의외로 북미왕국에선 포로들이 캔 석탄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후려치지 않고 비교적 좋은 가격에 사준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은 포로수용소에서도 비교적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프랑스인들도 북미왕국이 생각외로 관대하다고 이야기하곤 했었고.

헌데 웅크린 늑대의 말은 생각과 달랐기에 데니스가 당황해서 급히 질문하자 웅크린 늑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포로수용소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경비 때문에 조금 저렴하게 값을 매겼지요.”

“아...”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런데도 북미왕국이 프랑스인들에게 제공해준 물자를 떠올리고는 북미왕국의 물가가 생각보다 싸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영토도 크고 후장식 화포를 생산할 정도로 산업도 발전한 것 같으니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가격이 저렴한 거겠지. 지금이야 북미왕국에서 함부로 외국의 선박을 자국의 항구에 입항시키지 않으니 다행이지만...자유롭게 교역을 허가하면 어쩌면 국내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어. 이건 콜베르 경에게 보고해야겠군.’

데니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기자 웅크린 늑대는 데니스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특사께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하셨다니 잘 알겠지만 지금도 프랑스 병사들은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후로는 오히려 병사들이 광산에서 일하며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을 테고 우리 북미왕국에선 이를 다 계산해서 그들이 귀국할 때 한 번에 지급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병사들로서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웅크린 늑대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데니스는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귀국하기 전 포로수용소에 방문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에 데니스는 잠시 고민했다.

이번 조약에 관한 내용과 북미왕국이 노획한 전열함을 단 한 척도 구매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하루라도 빨리 본국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가 웅크린 늑대와 협상하는 동안 자신을 따라온 수행원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타국의 선박을 확인했었고 대부분은 잉글랜드와 에스파냐의 배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 이야기는 자신들의 전열함을 사들인 것도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뜻이었고 누가 사들이든 골치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보고해야 했지만, 이곳에 오기 전 포로수용소에 들렀기에 프랑스인들이 협상 결과만 목이 빠져라 기다릴 것이 분명했기에 입을 열었다.

“이번에 맺은 조약을 비롯해 본국에 하루라도 빨리 보고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만...이곳에 오기 전 포로수용소에 방문했기에 프랑스인들은 하루라도 빨리 협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런 만큼 포로수용소에 들러 이 사실을 전해주고 싶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데니스의 대답에 웅크린 늑대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프랑스인들에게 꼭 경고해주십시오. 프랑스에서 배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포로수용소를 벗어날 수 없으니 목책을 넘는 순간 북미왕국의 범죄자로 취급하겠다고요. 그리고 북미왕국의 범죄자가 되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요. 물론 우리 북미왕국에서도 이를 공고하겠습니다만...특사께서 말씀해주신다면 저들도 확실히 이해하겠지요.”

이에 데니스는 이제 프랑스인들이 포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북미왕국의 통제를 무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으음...알겠습니다. 격리에 동의했으니. 다만 정말 범죄자로 취급할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북미왕국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보낼 생각이고요. 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귀국에서 배를 준비하면 풀어주겠습니다. 일단 포로들의 몸값은 다 지급한 상태니까요.”

웅크린 늑대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데니스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다만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는 말아주시지요.”

이에 웅크린 늑대는 데니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 기본 할당량이 많을 뿐이라 포로수용소보다 생활 수준이 떨어지기야 하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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