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베라크루즈에 도착한 에스파냐 외교관은 곧바로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이 있는 멕시코시티로 이동했다.
안토니오 부왕은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이라며 알현을 신청한 에스파냐 외교관을 집무실로 불러들였고.
“뭐? 북미왕국의 국왕이 새진주를 방문해?”
“그렇습니다. 부왕 전하.”
에스파냐 외교관의 보고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왕을 극히 경외하며 함부로 언급하는 것을 극히 꺼렸기에 북미왕국 국왕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푸른 안개를 통해 현 국왕이 생각보다 젊다는 것과 동생이 있다는 것 정도를 파악한 것이 다였으니.
그렇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의 보고에 급히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북미왕국의 국왕을 만난 건가?!”
그런 안토니오 부왕의 물음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제가 소식을 듣고 급히 새진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새진주를 떠났다고 하더군요.”
이에 안토니오 부왕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으음...정말 아쉽군. 북미왕국의 국왕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볼 수 있을 기회였는데.”
“그렇지요.”
북미왕국의 관리들이 자신들의 왕을 무척 경외하며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북미왕국 국왕은 절대왕권을 구축한 것이 확실해 보였고 이는 결국 국왕의 결정에 따라 북미왕국이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북미왕국 국왕의 정보를 수집해 북미왕국 국왕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던 찰나에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안토니오 부왕은 혀를 차다가 문득 북미왕국 국왕이 수도를 떠나 새진주를 방문한 이유가 궁금해져 혹시 아는 것이 있나 물어보았다.
“헌데 북미왕국의 국왕이 무슨 일로 새진주를 방문한 거지? 프랑스와의 전쟁 중이라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방문한 건가?”
“아닙니다. 북미왕국의 국왕이 새진주를 방문한 것은 새한성에서 새진주까지 철도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철도? 아. 그 국경선 인근에 멕시코 원주민들을 동원해 공사한 그 강철로 만든 궤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안토니오 부왕도 철도를 모르지는 않았다.
북미왕국이 멕시코 원주민을 대거 고용해 도로를 정비하고 곳곳에 마을을 건설할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갑자기 고용한 멕시코 원주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며 잘 제련된 강철을 땅바닥에 깔고 있었으니 북미왕국의 의도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알아보았지만, 북미왕국에서 애지중지하는 거대한 철 괴물이 달리는 길이라거나 기다란 지네가 움직이는 경로라는 등의 믿을 수 없는 헛소문만이 가득했었고.
다만 안토니오 부왕과 누에바 에스파냐의 관리들은 북미왕국이 빠른 물자 수송을 위해 궤도 마차를 운용하기 위함이 아닌가 짐작했었다.
북미 대륙은 생각보다 넓고 북미왕국은 아직 북미 대륙 중앙을 모두 장악하지는 못한 탓인지 육로로 북미 동해안 지역에 물자를 보내기보다는 새진주를 통해 해로로 북미 동해안 지역에 물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서 각종 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들은 주로 북미 서해안에 있는 듯했기에 이 지역에서 새진주까지 대량의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도로를 정비하는 것을 넘어 강철로 만든 궤도까지 까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마차를 이용한 대량의 물품 수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도로와 마차 바퀴의 파손인데 강철로 만든 궤도와 바퀴라면 파손될 염려가 없으니.
워낙 부유하다고 알려진 북미왕국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달까.
해서 안토니오 부왕은 철도 공사가 끝나자 새한성에서 새진주까지 북미왕국의 국왕이 궤도 마차를 타고 방문한 것인가 싶어 에스파냐 외교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철도 공사가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북미왕국의 국왕이 직접 행차했다고? 역시 그건 궤도 마차를 운용하기 위함이었나?”
“그 철도는 기차가 다니는 길이라고 합니다.”
“기차?”
생소한 단어에 안토니오 부왕의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자신이 새진주에 방문해 목격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부왕은 이를 주의 깊게 듣다가 에스파냐 외교관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질문을 던졌다.
“증기기관을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일종의 커다란 궤도 마차라는 뜻인가?”
안토니오 부왕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혹시 부왕이 자신처럼 오해할까 봐 급히 덧붙였다.
“뭐 대략 설명하면 그렇습니다만 그 크기가 무척 큽니다. 객차 하나가 짐마차의 몇 배는 되는 크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에 안토니오 부왕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까 자네가 보고하기를 이 기차는 객차 여러 개가 달려있다고 하지 않았나? 객차 하나가 그렇게 크다면...”
“예. 기차는 객차 여러 개가 달려있어 무척 긴 편입니다.”
“그런데도 빠르고?”
“그렇습니다. 새진주에서 북미 서해안 근처의 새나주라는 도시까지 기차를 타고 6일이 걸린다더군요.”
안토니오 부왕은 그 말에 머릿속에서 멕시코 지역 북쪽의 지도와 대략적인 거리를 가늠해보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허. 북미왕국에서 거짓말을 하지야 않았겠지만...솔직히 믿기 어렵군. 그 엄청난 거리를 6일 만에 주파한다니...그것도 많은 화물이나 사람을 싣고.”
안토니오 부왕이 중얼거리자 에스파냐 외교관도 비슷한 심정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웅크린 늑대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긴 했지만, 그 정도 속도라면 급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는 전령과 비교해도 몇 배는 빠른 것 같았기에.
그때 안토니오 부왕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인다면...당연히 얼마를 준다 하더라도 기차를 팔진 않겠군.”
“그렇습니다. 절대 불가하다는 태도더군요.”
저들이 증기기관에 대한 보안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확답을 듣자 아쉬움에 혀를 찼다.
“쯧. 그것만 있다면 아카풀코에서 베라크루즈로 물품을 운송하는 것이 무척 편리할 텐데 참으로 아쉽군. 결국, 자력으로 기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건데 아직 증기기관에 관한 연구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아는데...”
“아. 그게 말입니다...”
운하가 없기에 기차가 필요할 뿐이지 운하가 생긴다면 굳이 기차에 목멜 필요는 없었기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안토니오 부왕에게 북미왕국에서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이를 듣고 안토니오 부왕은 조금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운하라.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이 운하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 기차가 있다 한들 육로로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고 해로로 북미 서해안에서 북미 동해안으로 이동하려면 남쪽으로 빙 돌아가야 하니. 유사시 군함의 이동을 고려하면 북미왕국도 운하가 필요하긴 할 거야. 하지만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건설하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데...”
파나마 지역의 지형은 중간에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운하를 파기엔 썩 적절하지 않았다.
역대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들이 운하 건설을 고민하다 결국 손을 대지 못한 것은 다 그 때문이었고.
물론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안토니오 부왕도 인정했지만, 그렇다 한들 북미왕국만 믿고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던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시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어 중얼거리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상관없지 않습니까.”
“상관이 없다고?”
안토니오 부왕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에스파냐 외교관이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북미왕국이 운하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 에스파냐의 선박들도 그 운하를 이용할 수 있으니 이득이고 실패하더라도 우리로선 크게 손해를 볼 일은 없으니까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잠깐. 그럼?”
“그렇습니다. 운하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과 기술 전부를 북미왕국에서 대는 조건입니다. 우리 에스파냐에서는 파나마 지역의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을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내어주면 되고요.”
안토니오 부왕은 북미왕국이 파나마 운하 건설에 관심을 둔다기에 에스파냐에서 운하를 건설하면 북미왕국이 뒤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건 반대로 에스파냐에서 약간의 지원만 해준다면 북미왕국에서 알아서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기에 안토니오 부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운하가 건설된 후 운하의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 건가?”
“웅크린 늑대의 말로는 운하의 소유권을 절반씩 갖자고 하더군요.”
에스파냐 외교관이 웃으며 대답하자 안토니오 부왕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급히 확인했다.
“그게 정말인가? 운하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과 기술을 북미왕국에서 전부 제공하는데도?”
“예. 대신 우리 에스파냐에서는 운하 주변의 땅과 공사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하는 조건입니다.”
안토니오 부왕은 그 이야기에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의 주민들 대다수는 굳이 국경 인근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지 않아 국경 인근 마을들과 철도까지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해 건설해야 했으니 파나마 운하의 공사 역시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을 고용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은 자신들이 고용한 원주민들의 안정을 위해 에스파냐에 요청해 결국 따로 대가를 받는 대신 국경 인근의 멕시코 원주민 마을에 대한 부역은 중지되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이 파나마 지역 원주민들을 고용한다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을 부역에 동원할 수 없을 테니 에스파냐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음...하긴. 다른 건 몰라도 북미왕국이 멕시코 원주민들을 고용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원주민들의 부역은 아무래도 어렵겠군.”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도 그 부분은 언급했고요. 하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의 말에 안토니오 부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지. 정말 파나마 지역에 운하가 생기면 우리도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 그럼 우리가 운하 건설에 동의하면 북미왕국은 곧바로 운하 건설에 들어간다고 하던가?”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북미왕국이라도 큰 공사를 연달아서 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고 하더군요. 더불어 파나마 지역을 자세히 측량하고 운하를 어떻게 건설해야 효율적일지 연구도 해야 한다고 하고요.”
파나마 운하는 역대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들의 숙원이었지만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대공사였는데 자신이 부왕일 때 북미왕국의 도움으로 운하를 건설한다면 에스파냐 역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 운하 건설 공사를 시작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았기에 안토니오 부왕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마드리드에서 현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자신을 계속 부왕으로 유임하고 있다 한들 과연 자신이 죽기 전에 운하 건설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싶었다.
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으음...그럼 우리가 운하 건설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실제 공사에 들어가고 또 운하가 완공되기까지는 굉장히 오래 걸리겠군.”
이는 에스파냐 외교관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파나마의 폭이 좁다 한들 지형을 생각해보면 단기간에 끝내기는 어려운 대공사였으니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의 대답에 안토니오 부왕은 잠시 고민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흠...우리가 제공할 것이 단순히 파나마 지역의 땅과 원주민들뿐이라면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겠군.”
“그럼?”
에스파냐 외교관이 살짝 긴장하자 안토니오 부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북미왕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지. 자네 말마따나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로선 크게 상관없으니까.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본국에는 천천히 알리면 그만이고 이런 내용을 알린다면 본국에서도 굳이 반대할 것 같지는 않군.”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새진주로 돌아가 이를 알리겠습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은 엄청난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급한 표정이었지만 안토니오 부왕은 그런 에스파냐 외교관을 진정시켰다.
“아. 그 전에 자네는 기차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게. 본국으로 보내야 하니.”
물론 북미왕국의 배에 탑재한 증기기관을 통해 증기기관의 효용성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기차에 관한 보고를 확인하니 증기기관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안토니오 부왕이었다.
그런 만큼 본국에서 증기기관 연구와 개량을 위해 노력하는 기술자와 장인들을 위해서라도 기차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빠르게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안토니오 부왕이 명령하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보고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겠습니다. 부왕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