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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41화 (341/850)

341화

새진주를 방문한 에스파냐 외교관과 운하에 관련된 대략적인 논의를 끝내자 에스파냐 외교관은 곧바로 이를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에게 보고하겠다며 떠났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정성국의 방문과 에스파냐 외교관과의 대화를 나누느라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지만, 방금 새진주에 도착한 북미왕국의 배에 프랑스의 외교 사절이 타고 있다는 외무청 관리의 보고에 다시 의자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웅크린 늑대는 일단 프랑스의 외교 사절을 숙소로 안내하라고 명령한 후 프랑스 외교 사절과 동행한 매사추세츠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외무청 관리에게 자세한 보고를 듣고 다음 날 아침 프랑스의 특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새진주의 외국인 거주 구역에 있는 외무청 건물에서 이번 협상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웅크린 늑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프랑스인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북미왕국 외무청 소속인 웅크린 늑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특사 데니스 도다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통성명을 하고 커피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던 웅크린 늑대와 데니스였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리자 웅크린 늑대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보다 매사추세츠 지역에 들러 포로들을 이미 만나고 오셨다면서요?”

웅크린 늑대가 포로를 거론하자 슬슬 무의미한 대화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겠냐는 웅크린 늑대의 뜻을 파악한 데니스가 내심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포로가 된 프랑스인들은 잘 지내고 있더군요.”

“물론입니다. 우리 북미왕국은 문명국이라 포로들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데니스가 보기에 북미왕국은 포로를 세심하게 관리한다기보단 방치한다고 생각했지만, 물자를 풍족히 제공하는 터라 포로들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기에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 부분은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귀국이 포로를 관대하게 대해준다고 한들 포로수용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프랑스인들은 조국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들의 귀환 여부는 결국 이번 협상에서 결정될 테고요.”

웅크린 늑대가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눈치를 보내자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렇지요. 그러니 슬슬 협상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포로가 된 프랑스인들을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거든요.”

“좋습니다. 우선 이번 전쟁의 원인이 귀국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지요? 귀하께선 매사추세츠 지역의 곳곳에 건설된 포로수용소를 돌아다니며 여러 포로와 만났고 그중에는 누벨 프랑스의 총독과 관리들도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만?”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는 웅크린 늑대의 반응에 데니스는 내심 움찔했다.

웅크린 늑대의 말처럼 데니스는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여러 포로를 만났고 그들 중에는 누벨 프랑스의 관리와 총독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미왕국을 먼저 적대한 것은 누벨 프랑스 같긴 했다.

다만 총독의 말은 조금 달랐기에, 그리고 이를 그냥 인정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프랑스의 손해를 줄이려는 생각으로 데니스가 입을 열었다.

“으음...하지만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귀국의 행동이 누벨 프랑스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고...”

이에 웅크린 늑대는 인상을 굳히며 손을 들어 데니스의 말을 막았다.

“잠시만요. 예의에 어긋나지만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지금 우리가 먼저 누벨 프랑스를 위협했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이에 데니스는 내심 긴장하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귀국은 그동안 아카풀코 조약을 빌미로 북미 대륙 전체가 북미왕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가 건설한 식민지를 넘겨받고 주변의 원주민들을 회유하며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뉴펀들랜드 섬에도 진출했지요. 그러니 인근의 누벨 프랑스로서는 이러한 귀국의 움직임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데니스의 말에 웅크린 늑대는 그게 말이 되느냐는 표정으로 데니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요. 일단 누벨 프랑스가 불법적으로 점유한 땅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도록 하고. 만약 우리가 누벨 프랑스의 영역에 있는 원주민들과 접촉했다면 어떻게 이해라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에게 듣기로는 우리가 잉글랜드에 북미 동해안 지역을 사들인 이후 곧바로 누벨 프랑스의 총독은 이로쿼이 연맹과 종전 협상을 맺고 무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은근슬쩍 우리 북미왕국의 정보를 왜곡해 알리며 이로쿼이 연맹과 우리 북미왕국의 충돌을 유도했지요. 헌데 그 무슨 황당한 소리입니까.”

“하지만 누벨 프랑스의 총독에게 듣기로는 귀국이 누벨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 모두가 동맹을 파기하고 귀국과 손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누벨 프랑스 총독의 우려대로 귀국이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웅크린 늑대 역시 누벨 프랑스의 총독은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기 위해서인지 다른 관리들과는 조금 다른 주장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에 데니스가 프랑스의 잘못을 줄이기 위해 찔러보는 거라 확신하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당장 우리 북미왕국은 잉글랜드에 구매한 북미 동해안 지역을 신경 쓰는 것으로도 관리들의 인력이 부족해 다른 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헌데 이로쿼이 연맹과 접촉하면서 누벨 프랑스가 우리 북미왕국을 적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움직였을 뿐입니다.”

“으음...”

웅크린 늑대는 데니스가 별다른 반박을 못 하자 덧붙였다.

“또한, 귀국이 우리 북미왕국의 움직임에 위협을 받았다면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법이었습니다. 헌데 다짜고짜 이로쿼이 연맹을 부추긴 건 명백히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며 이를 믿지 못하겠다면 누벨 프랑스에서 보낸 사절을 만난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을 증인으로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웅크린 늑대가 증인까지 거론하자 데니스는 더 우기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이번 전쟁의 원인이 누벨 프랑스의 총독에게 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웅크린 늑대는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요.”

“그러니 이번 전쟁에 원인이 된 누벨 프랑스 지역에 대한 권리를 귀국에 넘기는 것으로 종전 협상을 맺었으면 합니다만...”

웅크린 늑대는 데니스가 북미왕국의 입장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도 다시 찔러보기 시작하자 속으로 귀찮은 양반이라고 생각해 혀를 차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애당초 귀국이 누벨 프랑스라고 부르는 지역은 원주민들의 땅이고 뭐 백번 양보해서 귀국이 그 지역에 세운 몇몇 마을에 관한 권리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고작 그걸로는 군대를 움직인 비용에 크게 못 미칩니다. 더불어 귀국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북미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추가로 대규모 함대를 조직해 보냈고 덕분에 우리도 함대를 움직여 해전까지 벌어졌고 이때 사용한 포탄의 가격만 해도 어마어마해서요.”

프랑스가 우세한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어차피 패배한 뒤에 이루어진 협상이다 보니 어차피 북미왕국이 누벨 프랑스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었기에 데니스는 곧바로 다른 제안을 덧붙였다.

“으음...허면 누벨 프랑스를 포기하는 것 외에도 서인도제도의 생도맹그를 추가로 넘기도록 하지요. 생도맹그는 꽤 큰 지역이고 해안가 인근은 작물도 재배할 수 있으니 무척 가치가 높은 섬입니다. 그러니 생도맹그라면...”

데니스가 생도맹그를 거론하자 웅크린 늑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데니스의 말을 막았다.

“생도맹그는 귀국이 불법적으로 점유한 에스파냐의 영토 아닙니까. 헌데 무슨 권리가 있다고 귀국이 넘긴다는 뜻입니까.”

“으음...”

최대한 프랑스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생도맹그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예상대로 북미왕국은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가 에스파냐의 소유라는 이유로 생도맹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서 데니스가 결국 다른 서인도제도의 섬을 넘겨야 한다는 것과 대체 어떤 섬을 넘겨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신음을 흘리며 잠시 침묵하자 웅크린 늑대가 입을 열었다.

“우리 북미왕국은 서인도제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만, 보아하니 귀국은 귀금속보다는 서인도제도의 섬을 넘겨주는 것으로 전쟁배상금을 지급하려는 것 같은데...그렇다면 훗날 영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온전한 귀국 소유의 섬을 넘겨주시지요.”

프랑스 소유한 서인도제도의 섬 중에는 네덜란드, 혹은 잉글랜드와 영토 분쟁이 발생한 섬들도 몇 개 있었다.

서로 자신들의 섬이라 주장하며 정착지를 세운 경우랄까.

데니스는 콜베르와 논의한 끝에 이러한 섬들 위주로 넘길 생각이었지만 웅크린 늑대는 이미 서인도제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괜히 수작 부리지 말라는 듯 이야기하자 데니스는 상황이 좋지 않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이번 협상이 답답한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방금 이야기한 대로 우리 프랑스는 다른 전쟁을 수행 중이라 당장 귀금속으로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이는 포로의 몸값도 마찬가지고요. 허니 포로들의 몸값도 포함해서 적당한 가치의 섬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웅크린 늑대도 정성국이 서인도제도의 섬을 받아내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가 마지못해 이를 승낙하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듀케인 제독이 지휘했던 함대가 귀국에 항복하면서 귀국은 우리 프랑스의 선박 대다수를 노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데니스가 북미왕국이 노획한 선박을 거론하자 웅크린 늑대는 다시 한번 데니스가 찔러보는 거라 생각해 귀찮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지요. 그리고 이를 돌려달라고 이야기하실 생각이라면...”

데니스는 그런 웅크린 늑대의 반응에 쓰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귀국이 노획한 선박은 이제 귀국의 것이지요. 그게 관례니까요. 다만 제가 알기로 귀국은 유럽의 범선보단 제가 북미왕국에 도착한 후 타고 다녔던 돛이 없는 특유의 선박을 이용하는 만큼 이번에 노획한 선박들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특히 전열함은 말이지요.”

“뭐 전열함을 사용할 생각은 없지요.”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데니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며 급히 입을 열었다.

“예. 그러니 선착장에 자리만 차지하는 전열함을 우리 프랑스가 적당한 가격에 되샀으면 합니다만?”

“아쉽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어째서 말입니까! 사용하지 않아 선착장 한구석에 처박아두는 것보다야...”

고개를 젓는 웅크린 늑대를 보고 데니스가 조금 흥분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웅크린 늑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팔아버렸거든요.”

“그게 무슨?!”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데니스가 놀란 표정을 짓자 웅크린 늑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가 알려지고 우리가 프랑스 전열함을 노획했다는 사실을 알자 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귀하의 말씀대로 우리는 전열함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괜찮은 가격을 부르길래 모두 팔았습니다.”

만약 북미왕국이 노획한 전열함을 되사지 못한다면 해군을 복구하느라 무척 고생할 것이 뻔했고 당장 해외 무역에도 지장이 생기는 터라 콜베르는 데니스에게 얼마를 주더라도 최대한 전열함을 되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기에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의 대답을 믿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매사추세츠 지역에 들렀을 때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 있는 전열함을 분명 제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팔렸다고요?”

하지만 웅크린 늑대는 그런 흥분한 데니스를 보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팔았지요. 계약 자체는 끝났습니다. 다만 전열함의 가격이 가격인지라 그 대금을 턱 하니 내어줄 수야 없으니 그들이 대금을 가져올 때까지 물건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지요.”

“맙소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 데니스는 멍하게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어느 나라입니까? 우리 프랑스의 전열함을 구매한 나라가?”

웅크린 늑대는 마치 개인이 산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북미왕국에서 싸게 판다 하더라도 전열함의 가격은 만만치 않았기에 전열함 수십 척을 사들였다면 결국 국가가 움직였다는 뜻이라는 생각에 데니스가 질문을 던졌지만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굳이 그걸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으음...”

데니스는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신음을 흘렸지만 웅크린 늑대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기에, 그리고 종전 협상과 포로들의 문제도 중요한 만큼 일단은 협상을 끝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포로들의 정확한 몸값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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