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웅크린 늑대와 함께 목책 위로 올라가 멀리서 흰색 증기와 함께 철도를 따라 접근하며 점점 커지는 기차를 목격한 에스파냐 외교관은 놀람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맙소사...저게...저게 기차입니까?”
“그렇습니다.”
에스파냐 외교관은 기차를 직접 목격한 선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웅크린 늑대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 기차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여겼었지만, 실제 움직이는 기차를 보자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지 못하며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 기차에 사람이나 화물이 실려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맙소사...”
선장의 보고를 듣고 조그만 마차 열 몇 개가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철도 인근에서 구경하는 인파와 비교해보니 객차는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큰 편이었고 그런 객차가 줄줄이 달린 모습에 질린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던 에스파냐 외교관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 기차가 귀국의 수도인 새한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허면 저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새한성까진 얼마나 걸립니까?”
아직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의 수도가 새한성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기회에 슬쩍 질문을 던졌고 웅크린 늑대는 그의 속셈을 짐작하면서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략 8일 정도입니다.”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생각보다 새한성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왜 그동안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가 생각하다가 혹시나 해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으음...혹시 저 기차가 태평양 인근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새나주라는 곳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까지는 6일 정도 걸린다더군요.”
“6일?!”
그제야 에스파냐 외교관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한성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저 기차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멕시코 지역과는 달리 북미 지역의 경우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거리가 어마어마했다.
헌데 그러한 거리를 고작 6일 만에 주파한다는 이야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엄청나게 빠르군요.”
이에 웅크린 늑대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편이지요.”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대략적인 북미 대륙의 지도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새진주에서 태평양까지 수평으로 선을 긋는다 할지라도 그 거리는 생각보다 길어. 대략 갈리시아 지방에서 카탈루냐 지방까지의 거리에 두 배는 될 것 같은데...그런 거리를 고작 6일 만에 주파한다고? 정말 터무니없군. 괜히 부왕 전하께서 북미왕국을 그렇게 신경 쓰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가? 증기기관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에스파냐 외교관이 속으로 생각하면서 천천히 새진주역이라고 적힌 건물로 기차가 들어가 더는 기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웅크린 늑대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 기차를 수입할 수는 없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웅크린 늑대는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고 어차피 에스파냐 외교관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보아도 저 기차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듯 보였는데 지금껏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북미왕국의 배를 구매하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절대 불가라는 뜻을 고수하는 북미왕국이었으니.
다만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방금 본 기차를 떠올리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습니까. 아카풀코와 베라크루즈를 철도로 연결해 기차가 오간다면 태평양과 대서양이 연결되어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은 데 정말 아쉽군요.”
그 말에 웅크린 늑대는 기회라고 생각해 눈을 빛내면서 슬쩍 입을 열었다.
“아카풀코와 베라크루즈가 기차로 연결된다라...그러면 귀국의 입장에선 편하긴 하겠군요. 어쩌면 아시아 무역이 다시 번창할 수도 있겠고.”
그 말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북미왕국의 물품이 워낙 좋은 터라 과연 그럴까 싶기는 합니다만...뭐 북미왕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차나 보석, 향신료 등의 수요도 있긴 하고 교통이 편리해 지면 중개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을 수도 있으니 나쁠 것은 없지요. 해서 요청해본 것인데 참으로 아쉽군요.”
에스파냐 외교관이 은근슬쩍 다시 기차를 노리자 웅크린 늑대는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것이 꼭 기차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예?”
“운하를 파면 그만이잖습니까.”
원래는 누에바 에스파냐가 병력을 움직여 생도맹그를 완전히 점령해 히스파니올라 섬을 되찾고 나면 북미왕국도 지분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에스파냐를 압박해 권리를 얻어낼 생각이었지만 잘만 하면 굳이 에스파냐를 압박하지 않고도 권리를 따낼 수 있어 보였기에 웅크린 늑대가 어리둥절한 에스파냐의 외교관을 보고 슬쩍 말했다.
“으음. 운하라...”
운하를 거론하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에스파냐의 외교관이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 웅크린 늑대가 내심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파나마 지역은 무척 좁은 지역이라 태평양과 대서양까지 거리가 짧다고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귀국 입장에선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파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웅크린 늑대의 말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에스파냐라고 왜 운하를 생각하지 못했겠는가.
100년 전부터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운하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는 지식인들이 많았고 에스파냐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긴 했었다.
당시에는 북미왕국의 존재를 몰랐기에 아시아 무역으로 얻을 수 있는 부는 대단했으니 운하를 판다면 그 이득은 막대할 수밖에 없었으니.
하지만 운하의 건설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고 평지에서의 운하 건설도 쉽지 않은데 파나마 지역은 중간에 산이 있어 건설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으며 에스파냐는 그 막대한 공사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해서 에스파냐 외교관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기야 합니다만...거리가 짧아도 산을 넘어야 하는지라 엄청날 정도의 대공사가 예상되는 만큼 섣불리 운하를 파겠다고 달려들기는 어렵지요.”
이에 웅크린 늑대는 묘한 표정으로 에스파냐 외교관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흐음. 그렇습니까? 허면 귀국은 운하의 필요성은 알지만, 운하를 파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운하를 팔 생각이 없다는 거군요?”
“그렇기야 합니다만...갑자기 운하를 거론하는 이유가 뭡니까?”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웅크린 늑대가 계속 운하를 거론하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았고 웅크린 늑대는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우리 북미왕국에서 운하 공사를 맡겠다고 한다면 귀국은 이를 허락하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어?! 설마 진담입니까?”
처음 에스파냐 외교관은 농담으로 생각했지만 웅크린 늑대는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물론입니다.”
“으음...”
에스파냐 외교관은 뜬금없이 북미왕국에서 운하 건설을 거론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에스파냐 외교관이 보기에 북미왕국에서 굳이 운하 건설에 막대한 돈을 투자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해서 당황을 가라앉히고 웅크린 늑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선 한 가지만 묻지요. 이미 귀국은 철도를 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한 셈 아닙니까? 헌데 귀국에서 왜 운하 건설에 관심을 보이는 겁니까?”
“아. 물론 그렇지요. 허나 훗날을 생각해보면 운하가 있어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기차의 경우 나를 수 있는 물자의 규격이 정해져 있습니다. 방금 보셨던 객차 수준이지요. 허나 배는 다르지 않습니까.”
“으음...”
웅크린 늑대의 설명에도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석연치 않다는 기색이라 웅크린 늑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누비는 북미왕국의 배를 손쉽게 대서양으로 보낼 수도 있고요. 귀국도 대충 상황을 아시겠지만, 작년부터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지면서 선박이 부족해 물자 수송 문제로 꽤 골치를 썩였거든요. 만약 운하가 있었다면 손쉽게 태평양에 배치된 선박들을 대서양 방면으로 배치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물자를 보내는 것도 그렇지요. 지금은 기차에 싣고 새진주까지 이동한 후 다시 배에 실어 옮겨야 하지만 운하가 생기게 되면 배로 실어 바로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한 설명에 에스파냐 외교관은 그제야 북미왕국이 왜 운하의 건설에 관심을 두는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요.”
“해서 새한성에서는 최근 운하에 관심을 두었고 운하를 파기 딱 좋은 지형이 바로 파나마 지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던 찰나였습니다.”
웅크린 늑대의 설명이 끝나자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이건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부왕 전하께 이야기를 전하지요.”
어차피 웅크린 늑대도 눈앞의 에스파냐 외교관이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북미왕국 역시 당장 운하의 건설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다만 부왕 전하께 이를 보고해야 하는 만큼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만...”
이에 웅크린 늑대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입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시지요.”
* * *
정성국은 왕실 전용 기차의 응접실에 앉아 호위대장과 커피를 마시다가 창밖에 보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널따란 벌판을 확인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와. 새진주로 이동할 때는 자느라 못 봤었는데...이거 정말 장관이로군. 저게 다 목화밭이지?”
“그렇다고 합니다.”
호위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정말 어마어마하네. 최근 연구청에서 생산하는 경운차 절반은 이곳에 투입한다더니...이건 뭐 끝이 안 보일 정돈데?”
이에 호위대장이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넓긴 하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이 정도 목화밭에서 목화를 수확해 면직물은 만드는데도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그렇지. 의외로 누에바 에스파냐 쪽으로 빠져나가는 면직물이 많아서...”
정성국의 명령으로 누에바 에스파냐와의 국경선과 근처의 철도 노선이 들어선 남부 지역에 대규모 목화밭이 개간되고 있었다.
그리고 행정청에서는 처음에는 못해도 1675년 정도는 되어야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면직물을 생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철도가 부설되고 기차를 통해 경운차를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급격히 목화밭을 늘려나갔다.
덕분에 올해는 저 드넓은 목화밭에서 수확하는 목화를 이용해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면직물 전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다만 이건 장부상의 결과일 뿐이고 실제로는 무척 부족해 올해에도 대량으로 조선에서 면직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상당수의 면직물이 북미왕국 외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북미왕국산 면직물이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북미왕국에서 일하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최근에는 자신들의 보수로 부피가 큰 식량보다는 그나마 부피가 적고 가벼운 면직물을 선호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면직물이 멕시코 북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중이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도 정식으로 면직물을 은을 주고 대량으로 수입하는 터라 생각보다 많은 물량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서 행정청에서는 최근 정성국의 허락을 받고 연구청에서 생산하는 경운차 절반을 이 지역에 투입해 미친 듯이 목화밭을 개간하고 있었고.
덕분에 정성국이 호위대장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창문을 통해 보이는 드넓은 벌판이 모두 목화밭인 상황이었다.
정성국은 아직 초겨울이라 휑한 들판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벌판이라 대단한데 목화꽃이 필 때쯤에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구경할 만하겠는데?”
이에 호위대장은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새한강 유역의 황금 들판도 무척 볼만하지 않았습니까. 이곳은...목화꽃이 가득할 테니 마치 눈이 내린 것 같겠군요.”
호위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렇겠네. 흠...다음에는 수확 시기에 맞춰서 한번 방문해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