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정성국이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새진주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새진주에 알려졌다.
왕실의 상징인 흰머리수리 깃발을 단 마차를 처음 보는 복식의 병사들이 호위하다 보니 이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성국이 오랜만에 만난 웅크린 늑대와 대화를 마치고 김봉길과 호위대장의 안내로 행정청 뒤편 관사로 이동해 짐을 풀었을 때쯤 원주민 부족의 추장들이 정성국을 만나기 위해 하나둘 관사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고 정성국 역시 각 부족의 추장들을 수없이 만나보았기에 익숙하게 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문제라면 정성국이 새진주에 왔다는 소식이 새진주를 넘어 인근까지 알려졌기에 계속 추장들이 몰려들었다는 점이었고 덕분에 정성국은 거의 3일 내내 관사에서 추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수십 잔의 술을 마셔야 했다.
그렇게 3일을 고생하고 하루를 관사에서 쉰 후에야 정성국은 비로소 새진주를 돌아볼 수 있었다.
“허. 생각보다 크네?”
김봉길의 안내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바로 새진주의 조선소였는데 이 조선소는 정성국의 예상보다도 큰 편이었기에 정성국이 조선소를 둘러보며 놀란 표정이자 김봉길이 입을 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멕시코만과 대서양을 누비는 북미왕국의 배는 모두 이곳 새진주의 조선소에서 건조되는지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으니까요.”
그제야 정성국은 이전에 올라왔던 보고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 대규모 확장 공사가 끝났다는 보고를 듣긴 했는데...”
“그렇습니다. 작년 11월에 확장 공사가 끝났기에 현재는 기존 대비 거의 2배에 가까운 선박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부족한 감이 있기에 추가로 확장하거나 혹은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운 조선소를 하나 더 건설할 계획이긴 합니다.”
김봉길의 설명을 듣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조선소를 확장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 일꾼이 부족하지는 않아?”
“젊은 원주민들은 고향보단 새진주에서 살길 원해 몰려들고 있는지라 오히려 넘치는 편입니다.”
“그래? 어디든 젊은이들은 다들 비슷하구만?”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김봉길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뭐 그럴 수밖에 없지요. 물론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원주민들의 사정도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벌이도 좋고 생활 환경도 좋으니까요.”
“그렇기야 하지. 그나마 새한성 인근의 부족은 개발이 진행되면서 사정이 나은데 이곳은...”
정성국이 말을 흐리자 김봉길이 이를 받았다.
“예. 아직 새진주의 건설만으로 벅차니까요. 당장 주변 지역의 개발까지 함께 진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죠.”
김봉길의 말에 정성국은 새진주에 도착해 만났던 추장들을 떠올렸다.
처음 정성국이 만났던 아코키사 족 추장들은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뒤늦게 정성국이 새진주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달려온 외곽 지역에 사는 추장들의 경우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더는 굶지 않고 손쉽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점차 부족원들이 마을을 떠나 새진주로 향하는지라 마을이 사라질까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추장들도 있었다.
물론 이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성국이 만났던 추장 대다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만큼 정성국은 원래 젊을 때는 여러 이유로 마을을 떠나더라도 나이가 들면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면서 능숙하게 그들을 달래면서 비록 북미왕국의 상황상 새진주의 개발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지만, 새진주의 개발이 끝나는 대로 원주민들의 마을도 개발해 최소한 고향에서 살기 불편해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미리 생각해둔 대책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철도도 개통되었으니 각종 건설 장비들이 기차에 실려 이동할 테니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
정성국의 대답에 김봉길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아. 그거 의외로 쓸만한 모양이군요?”
그런 김봉길의 반응에 정성국은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자네가 새한성에 있을 때 보았던 경운차도 지속적인 개량으로 무척 쓸만해 졌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건설 장비들 덕분에 철도 부설 공사가 꽤 단축된 것도 없지 않지.”
“허. 그렇습니까? 전에 봤을 땐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하긴 했습니다만 그게 다였는데 말이죠.”
그런 김봉길의 반응에 정성국이 씩 웃으며 말했다.
“힘도 좋고 기능도 많아서 새한강 인근 농부들은 이제 소보다는 경운차를 더 선호하는 상황일세. 새한성 인근 농부들은 꽤 부유해서 경운차를 살 돈도 있고. 최근엔 초등학교에서 농부들을 대상으로 경운차의 운용과 정비를 가르치는 야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네.”
농부들도 처음에는 경운차를 신기하다고만 여길 뿐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았지만, 점차 개량되며 쓸만해 지는 경운차를 보고 생각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운차의 가격이 비싸기는 한데 부유한 새한성의 농부들이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넣으면 못살 정도는 아니었고 경운차를 이용하면 자신들에게 배정받은 5헥타르의 땅 전부를 경작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수입이 2배는 늘어나는 터라 투자해볼 만했다.
또한, 행정청에서 운용하는 경운차가 아직은 많지 않기에 경운차를 이용하려면 신청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적당한 삯을 받고 이웃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기에 경운차를 직접 사려고 행정청에 이를 물어보는 농부들이 많아지자 행정청에서는 연구청, 교육청과 협의해 급히 경운차를 운용하는 방법과 간단한 정비를 가르치는 야간 수업을 개설했고 이 수업을 듣고 간단한 시험을 통해 경운차 자격증을 따야만 경운차를 구입할 수 있다고 알리자 수많은 농부가 야간 수업을 듣기 위해 초등학교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자 김봉길은 북미왕국의 발전이 빠르다는 사실은 김봉길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예상외였기에 멍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다 탄식했다.
“...맙소사. 고작 5년 만에 무척 바뀐 모양이군요.”
“뭐 그렇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김봉길을 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발걸음을 옮기며 조선소 안에서 건조되고 있는 선박들을 바라보다 문득 한 방향에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건...인급 전선인가?”
이에 정신을 차린 김봉길이 급히 정성국이 바라보던 방향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아. 저건 탐사선입니다.”
“허. 그래? 저 4척이 전부?”
정성국이 해군 탐사대에 명령해 미시시피 탐사대와 북대서양 탐사대의 창설하고 이들이 사용할 탐사선을 건조하라고는 이야기했지만, 당장 수송선을 건조하기도 바쁜 터라 탐사대마다 1척씩 2척만 건조할 줄 알았기에 놀란 표정을 짓자 김봉길이 씩 웃으며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창설되어 새진주에 도착한 탐사대 소속 함장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헌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탐사대의 활동에 따라 북미왕국의 발전이 결정될 것 같더군요. 특히 미시시피 탐사대가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그들의 활동에 따라 북미 내륙으로의 확장이 가속화될 테니.”
“예. 해서 제가 행정청과 조선소에 이야기해서 탐사선을 2척 더 늘린 겁니다. 뭐 그때만 하더라도 4함대의 전과가 알려진 상황이었기에 행정청에서도 노획한 프랑스의 선박이 투입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겼는지 동의해주었고요.”
김봉길의 설명에 정성국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4척인 거군. 완성도가 다른 것도 그 때문이고.”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거의 건조가 완료된 2척의 선박과 한창 건조 중인 2척의 선박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2척은 미시시피 탐사대에, 2척은 북대서양 탐사대에 배정하면 되겠군.”
“어? 1척을 제외한 3척을 미시시피 탐사대에 배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봉길은 북미왕국의 내륙 진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싶었기에 그렇게 묻자 정성국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북대서양 탐사대도 중요하니까. 당장은 그린란드의 탐사를, 그 이후엔 북미 대륙 북쪽 해안가를 탐사해야 하거든.”
“음? 그린란드면 뉴펀들랜드 섬 북쪽에 있는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이에 김봉길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거주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쓸모없는 동토 아닙니까? 그곳을 탐사해서 어쩌시려고요?”
“뭐 대부분은 그렇지만 남쪽의 일부 해안가에는 충분히 사람이 살 수 있을걸세. 그 이야기는 유럽의 국가가 이 그린란드에 정착지를 세우고 그린란드 전체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그러면 우리 입장에선 조금 골치 아파지지.”
그제야 김봉길은 정성국의 뜻을 알아채고 중얼거렸다.
“아...전략적인 관점에서 빠르게 그린란드를 탐사해 그린란드의 영유권을 주장하실 생각이신 거군요.”
“그렇지. 그리고 그린란드 남쪽에 해군 기지를 세운다면 북미 대륙 북쪽의 바다는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테고.”
정성국의 말처럼 뉴펀들랜드 섬과 그린란드 남쪽에 분함대를 배치하면 북대서양에서 북미 대륙 북쪽의 바다는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 보였기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흐음...위치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4함대에서 담당하게 될 테니 4함대의 규모도 조금 늘리는 것도 고려해봐야겠군요.”
“뭐 당장이야 수송선이 급해서 그렇지 상황이 나아지면 조금씩 늘려야지. 2, 4함대 모두.”
정성국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자 김봉길은 슬쩍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허면 이 기회에 천급 전선을 건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1천 마력의 증기기관이 개발되고 새로 건조되는 천급 함선들은 기선으로 제작된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발걸음을 멈추고 김봉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큰 배를 좋아하는 건 여전하군.”
“하하하. 원래 배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정성국의 타박에 김봉길이 멋쩍게 웃자 정성국이 말했다.
“헌데 이전에 올라온 보고서들을 보면 굳이 천급 전선을 건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던데?”
이에 김봉길은 손사래를 쳤다.
“어휴. 그게 또 상황이 다릅니다.”
“음?”
“제가 상대한 전열함들은 상대하기 수월했습니다만 이정운이 지휘한 4함대가 상대한 프랑스 함대의 전열함들은 크기도 지급 전선 정도는 되고 꽤 튼튼하다더군요. 유폭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대여섯 발의 명중탄을 맞고도 침몰하지 않고 버텼답니다.”
김봉길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정운의 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있긴 했지.”
“그것을 보면 제가 상대한 전열함들은 2선급의 전열함이고 이정운이 상대한 전열함들은 최신 전열함이라는 건데...”
거기까지 말하자 정성국은 김봉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먼저 입을 열었다.
“최신 전열함을 상대하기 위해 지급 전선보다 더 많은 화포를 탑재한 천급 전선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특히나 이번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가 유럽에 널리 알려진다면 유럽 각국은 북미왕국의 전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게 될 테고 자연스럽게 더 크고 튼튼한 전열함을 건조하기 위해 애를 쓸 것으로 예상합니다.”
“흐음...”
정성국은 미처 이를 고려하지 못했지만 현 상황에선 당연히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동안은 북미왕국이 북미 대륙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잉글랜드나 에스파냐는 안심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서인도제도로 진출하고, 또 그린란드를 북미왕국의 영역이라고 선언하면 저들도 해군력의 강화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미왕국 전선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지 않나 싶긴 했지만 말이다.
이에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귓가에 김봉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이정운이 이야기하기를 지급 전선에 달린 80mm 화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거야 포탄이 큰 만큼 더 많은 작약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위력도 조금 더 크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80mm 화포로 무장한 천급 전선을 건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서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는 김봉길을 보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 천급 전선도 슬슬 건조할 생각이기는 했는데...”
“어? 그게 정말입니까?”
정성국의 대답에 김봉길이 화색이 돌자 정성국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자넨 아직 모르겠지만 최근 박기동이 2천 마력의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했거든.”
“헉! 2천 마력이요?!”
정성국의 말에 김봉길은 처음엔 무척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2천 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한 배를 떠올린 것인지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정성국은 그런 김봉길의 반응에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해서 전선과 신규 건조되는 선박의 증기기관 출력을 올려 속도를 키울 생각이고. 그런 김에 천급 전선도 1, 2척 건조해볼까 했었지.”
이에 천급 함선 이상의 배가 건조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김봉길은 조금 풀이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아직도 천급 함선 이상의 선박을 대량 건조하긴 어려운가 보군요.”
“그렇지. 아무튼, 그런 상황이라 천급 전선의 건조는 좀 늦어질 거야. 새로 만든 2천 마력의 증기기관 2개를 장착해야 하는지라 새로 설계해야 한다더군. 그러니 자네가 천급 전선을 타고 대서양을 누비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헉!”
정성국이 이 말을 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김봉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성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성국이 뒤를 돌아보며 왜 안 오냐는 눈치를 주자 그제야 후다닥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