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새진주의 주민들도 기차의 존재는 모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새진주 외곽에 커다란 건물을 짓고 잘 정련된 강철을 바닥에 길게 깔아 철로를 만들었으니 기차를 모르는 새진주의 주민들은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한성에서 새진주에 도착하는 병사들이나 마차로 물자를 수송하는 사람들은 기차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기에 알음알음 그 존재가 알려졌고.
하지만 기차의 존재를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했었기에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철로를 달려 점차 가까워지는 기차의 모습에 새진주의 주민들은 무척 놀란 듯 입을 벌리고 마치 거대한 쇳덩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은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허. 저게 바로 그 기차라는 건가?”
철로 근처에서 새진주의 한 주민이 점차 가까워지는 기차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듯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와 비슷하다더니 저건 마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잖아?!”
이에 주변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직접 보니 정말 엄청나군! 왜 기차를 본 사람들이 그렇게 흥분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저 기차가 그렇게 빠르다면서?”
“그렇지. 그리고 새한성에서 생산한 수많은 물품이 저 기차를 타고 새진주로 보급될 테니 물자가 풍족해져 새진주는 더욱 발전할 거라고 하던데?”
“여기서 더? 허허. 그거 기대되는군.”
“난 그것보다 저 기차를 타고 새한성을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네. 새한성이 그리 멋지다던데.”
“아. 나도.”
그렇게 새한성의 주민들이 기차를 보고 흥분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눌 때 한 사내가 기차의 앞부분에 달린 황금 조각상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어! 저기 맨 앞을 봐!”
“와...멋진데?”
“저건...황금으로 만든 흰머리수리인가? 어? 잠깐만? 흰머리수리는 왕실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 주민이 중얼거리자 이를 듣고 주변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들을 지나치는 기차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헉?!”
“설마?”
* * *
천천히 승차장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김봉길은 오랜만에 보는 기차를 감개가 무량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가 기차 맨 앞부분에 황금 조각상을 확인하고 실소했다.
“아무리 왕실 전용 기차라고 해도 용케 전하께서 저런 화려한 조각상을 허락하셨군.”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린 김봉길의 혼잣말은 기차가 멈추기 위해 내는 시끄러운 쇳소리에 묻혔고 마침내 기차가 멈추고 객차에서 호위대원들이 소총을 들고 절도있는 자세로 내려 주변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고 김봉길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렇게 기차가 정차한 지 5분 정도가 지나 모든 호위대원이 기차에서 내려 일부는 새진주역으로, 일부는 기차의 한 가운데에 있는 색이 조금 다른 객차 주변을 에워싸는 것을 보고 김봉길은 저 객차에 정성국이 타고 있구나 싶었다.
그때 객차의 문이 열리며 호위대원들과 호위대장이 먼저 내리자 김봉길은 씩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에서 내린 정성국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봉길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과 함께 반가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 이게 누구야. 심심하다며 2함대로 가버린 전 1함대 사령관 아닌가!”
이에 김봉길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오랜만에 보는 정성국에게 인사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불충한 전 1함대 사령관이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김봉길의 대꾸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고 그의 허리를 펴며 말했다.
“이거 정말 오랜만인데?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제가 2함대를 창설하기 위해 새진주로 내려온 이후 새한성을 방문한 적이 없으니...아마 5년쯤 되었을 겁니다.”
정성국은 김봉길의 대답에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하면서도 5년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김봉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헌데 오히려 자넨 더 정정해 보이는군? 2함대를 창설하고 또 4함대의 창설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2함대를 재건하느라 서류에 파묻혀 살 줄 알았는데...?”
이에 김봉길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그런 업무는 유능한 부하들을 키워 넘겨주는 것이 상사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 헌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나온 건가?”
정성국은 호위대장에게 자신이 직접 방문한다는 것을 미리 새진주에 알려 새진주의 관리들이 괜히 자신의 방문을 환영하겠답시고 일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방문한다는 것을 새진주에 알리지 않는 것이 보안에 더 유리하다고 호위대장을 설득했기에 김봉길이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뒤에 서 있던 호위대장이 입을 열었다.
“물론 전하께서는 새진주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극비로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소신이 2함대 사령관에게 따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호위대장의 말이 끝나자 김봉길이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원래도 처음으로 기차를 보고 모여들 사람들이 걱정되어 안전을 위해 경비대를 일부 동원할 생각이긴 했습니다만...호위대장의 편지를 받고 경비대뿐만 아니라 2함대 소속 병사들도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솔직히 경호 인력은 호위대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그보다 2함대 소속 병사들? 2함대는 아직 수송 업무에 투입된 것 아니었나?”
물론 4함대가 노획한 프랑스 선박 일부를 수송 업무에 투입하면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당분간은 비축된 물품이 텅 비어버린 창고를 채워야 하는지라 2, 4함대는 수송 업무에 투입되어 있었다.
그래서 의아한 듯 정성국이 묻자 김봉길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음...수송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지요.”
“맙소사. 휴식 중인 병사들을 끌고 나왔다고? 어휴. 그럼 여기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군. 빨리 이동하도록 하지. 그래야 병사들도 돌아가 쉴 수 있을 테니.”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이 혀를 차며 바로 이동할 뜻을 내비치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바로 오르시지요.”
“그러지.”
* * *
목책에 올라 거대한 쇳덩이가 스스로 움직이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던 에스파냐인 선장은 그 철마차가 기다란 2층 건물로 들어가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병사들이 철통같이 경비하는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건물 안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며 건물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에워싸는 모습에 시선을 집중하며 옆에 있던 부선장에게 말했다.
“저기 보게.”
“음? 무슨 마차길래 병사들이...어라?”
건물 안에서 누군가 마차에 올라타자 마차는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고 마차를 에워쌌던 병사들은 마차를 호위하며 움직이는 모습에 부선장이 입을 열었다.
“병사들이 저 마차를 호위하며 움직이고 있군요? 중요 인물이라도 방문한 걸까요?”
“그런 것 같군. 그리고 저 병사들의 복식을 자세히 보게.”
선장의 말에 부선장은 마차를 호위하는 병사들의 복식을 확인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처음 보는 복식이군요?”
“그렇지. 결국, 저 마차에 탄 사람을 따라 이곳까지 온 병사라는 소린데...음? 마차 위에 저건...”
선장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찌푸리다 망원경을 꺼내 확인하는 모습에 부선장이 마차 위에 펄럭이는 처음 보는 깃발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음...처음 보는 깃발이긴 한데 북미 원주민들이 신성시한다는 흰머리수리가 그려진 깃발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아까 보았던 철마차 맨 앞부분에도 황금색 독수리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흰머리수리였나 보군요?”
부선장이 중얼거리자 선장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눈에서 망원경을 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부선장은 그런 선장의 반응에 의아하단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 왜 그러십니까? 선장님?”
“내가 알기로 흰머리수리는 북미왕국 왕실의 상징이라고 알고있는데...”
선장의 말에 부선장은 기겁하며 선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헉! 그럼 저 마차에 탄 사람이 북미왕국 왕실의 사람이란 뜻입니까?”
이에 선장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철마차 앞쪽에도 황금으로 만든 흰머리수리 조각이 달려 있었고 지금 마차에도 왕실기로 짐작되는 처음 보는 깃발이 달려 있었으니까.
“아마도...혹시 저 마차에 탄 사람을 확인했나? 난 보지 못했는데?”
“음...얼핏 본 거라 확실하진 않습니다만...아마 키가 꽤 크고 건장한 청년과 김봉길 2함대 사령관이 함께 탄 것 같습니다만...”
부선장의 대답에 선장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다가 탄식했다.
“...허어.”
“왜 그러십니까? 선장님?”
의아해하는 부선장을 보고 선장은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알기로 북미왕국 왕실 사람 중 건장한 청년은 단 둘뿐일세. 북미왕국의 국왕과 그의 동생.”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길래 이러나 싶었던 부선장은 선장의 말에 기겁하며 무어라 소리치려다 급히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헉! 그럼 설마 저 마차에 탄 사람이...?”
선장은 새진주의 행정청 쪽으로 이동하는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못해도 1백은 넘어 보이는 개인 호위와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북미왕국의 국왕이 직접 새진주를 방문한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아무튼, 빨리 돌아가서 이 정보들을 알려야겠군. 부선장. 최대한 빠르게 출항 준비를 하게.”
“아...알겠습니다.”
* * *
정성국은 마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새진주의 풍경을 확인하다가 감탄했다.
“와. 이거 내 예상보다 더 크고 발전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새김포하고 비슷하려나?”
이에 김봉길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아직 새김포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새김포 다음으로 큰 도시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철도가 완공된 이상 새진주는 북미왕국의 동쪽 관문으로 더욱 발전할 테니 어쩌면 새진주가 새김포보다 더 커질 수도 있겠지요.”
김봉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정성국은 저 멀리 보이는 목책을 보고 이채를 띠며 말했다.
“그보다 저 목책을 둘러둔 곳이...”
“예. 외국인 거주 구역입니다.”
정성국은 멀리서 목책을 바라보다 목책 위의 사람들을 확인하고 물었다.
“생각보다 자유로운 모양이네? 저 목책 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 거주 구역을 경비하는 병사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습니다. 아마 저 목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 선원이 대부분일 겁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외국인 거주 구역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으니 답답해하기도 하고 불만도 좀 있는 눈치라 목책 위 일부를 개방한 겁니다.”
정성국은 김봉길의 대답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저곳만 저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거였군.”
“그렇습니다.”
“그보다 새진주에 방문하는 외국 선박들은 많나?”
정성국의 물음에 김봉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물론 대다수는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선박이긴 합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상황을 짐작하고 중얼거렸다.
“에스파냐의 선박들은 물자 수송을 위해, 잉글랜드의 선박들은 교역품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의 선박들은? 네덜란드라던가 덴마크라던가?”
정성국의 질문에 김봉길이 고개를 저었다.
“거의 없습니다. 일단 해적선과 사략선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서인도제도를 지나야만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데 새진주의 교역품은 대부분 잉글랜드가 싹 쓸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도착해도 돈이 되는 북미왕국의 물품들을 구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러한 사실을 서인도제도의 뱃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으니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새진주로 오려 하지 않습니다.”
“역시 그런가? 그럼 새진주를 더욱 발전시키려면 결국 서인도제도로 진출해야 한다는 건데...”
새진주까지 철도가 깔린 만큼 이전과는 달리 새한성에서 만든 수많은 교역품을 새진주로 수송하는 것은 무척 수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정성국은 이미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물품들을 생산하는 공방들을 더 확장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물품을 생산할 준비를 해둔 상태였고.
이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김봉길은 웃으며 말했다.
“뭐 조만간 프랑스의 사절이 종전 협상을 위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서인도제도의 섬을 한두 개 받아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여력은 되고? 서인도제도에 진출한다 해도 당장 새로운 함대를 만들기보다는 아무래도 2함대에서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노획한 프랑스 선박들이 물자 수송 업무에 투입된 덕분에 숨통이 트였고 조만간 해군은 물자 수송 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가능할 겁니다.”
이미 플로리다 지역 인근 해역에는 2함대를 두려워한 해적선들이 얼씬도 하지 않아 물자 수송 업무에 벗어나면 딱히 순찰 외엔 할 일이 없기에 분함대를 구성해 일부 전선을 서인도제도에 배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설명하는 김봉길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근데 분함대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는 규모일 텐데 그걸로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을까?”
이에 김봉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은 북미왕국의 배만 보이면 도망치기 급급합니다. 그러니 서인도제도에 2함대가 진출하면 해적들이 확실히 줄어들긴 할 겁니다. 거기에 이번에 해적들의 본거지 중 한 곳인 토르투가 섬도 박살 내버려 해적들의 세력이 꽤 줄어든 모양이고요.”
김봉길의 호언장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웅크린 늑대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군.”
“하하하. 그러시지요.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웅크린 늑대가 일하는 건물이니까요.”
정성국은 김봉길의 반응을 확인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째 웅크린 늑대에겐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
이에 김봉길은 웅크린 늑대의 반응이 무척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전 그저 전하의 행선지는 극비로 하라는 호위대장의 말을 따랐을 뿐입니다.”
“퍽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