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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34화 (334/850)

334화

마침내 새나주-새진주 구간이 완공되었다고 개발청장이 보고하자 정성국은 궁궐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준비된 마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호위대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새한성역에 도착한 정성국은 곧바로 승차장으로 이동했다.

승차장에는 이미 기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아. 이게 왕실 전용 기차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굳이 나올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었지만, 청장들의 처지에선 그럴 수는 없었기에 대표로 연구청장이 정성국을 새한성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오며 대답했다.

“괜찮...어? 잠깐만. 저건 대체 뭐야?”

정성국은 기관차 앞에 걸려있는 조각을 보고 기겁했다.

일반적으로 기차의 번호가 조각된 동판이 붙어야 하는 기관차 맨 앞쪽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흰머리수리의 조각이 보였던 것이다.

이에 연구청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왕실 전용 기차인 만큼 왕실의 상징인 흰머리수리를 조각해 부착한 겁니다.”

“맙소사...저거...설마 도금이지? 그렇지?”

정성국의 반응에 연구청장은 급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장인들은 도금보다는 통짜 황금상으로 제작하길 원했습니다만 전하께서 이를 알면 바로 녹여버리지 않겠냐고 하니 결국 도금을 선택하더군요.”

“휴우. 잘 했네.”

굳이 왕실 전용 기차라는 것을 알리고 싶으면 왕실기를 하나 달면 그만이지 굳이 저런 황금조각상까지 달아야 하나 싶었던 정성국이었지만 조각상 자체는 역동적으로 잘 만들어졌고 어차피 도금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겨 객차를 확인하고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객차는 일반 객차인가 보네?”

이에 연구청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객차인데요. 저 객차들은 호위대원들이 사용하는 객차입니다. 저기 저 가운데 3칸의 객차가 바로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객차이지요.”

그제야 확인해보니 다른 객차들은 검은색이었지만 유독 가운데 3칸의 객차는 검은색 바탕에 흰 선이 그어져 있었고 창문틀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저 색 모두 왕실기에 들어가는 색이라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은 혀를 차며 물었다.

“나 혼자인데 저 3칸을 사용하라고?”

“그렇습니다.”

정성국이 무어라 이야기하려는데 호위대장이 정성국에게 다가와 말했다.

“전하. 이미 출발 준비가 끝났으니 바로 기차에 오르시지요. 전하께서 기차에 오르셔야 호위대원들도 탑승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일단 타자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구청장이 이야기한 객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정성국은 객차 내부를 확인하고 화려함에 혀를 찼다.

“허...식당이네?”

“그렇습니다. 이곳은 전하께선 식사하시는 공간입니다. 이 앞의 객차가 식당차이고 그곳에 조리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응접실입니다.”

한 객차를 둘로 나누어 식당과 응접실을 만들어 두었다는 연구청장의 설명을 들으며 커다란 식탁이 놓여있는 방을 지나자 정성국이 궁 안에 만들어놓은 응접실과 무척이나 흡사한, 하지만 조금 더 화려해 보이는 응접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보고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궁 안을 장식한 장인들이 이곳도 만들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장식했지요.”

무척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응접실을 보고 고개를 저은 정성국은 연구청장을 따라 다음 객차로 이동했다.

“음? 복도인 것을 보니...침실인 건가?”

객차에 들어서자 정면이 막혀있고 오른쪽으로 복도가 나 있는 것을 확인한 정성국이 묻자 연구청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연구청장이 복도로 이동해 문을 열자 정성국은 안쪽을 확인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작지만 궁과 거의 비슷하군.”

“그렇지요. 그리고 저곳은 욕실과 화장실입니다.”

침실 안쪽의 문을 가리키며 연구청장이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응?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욕실?”

정성국은 기차에 웬 욕실인가 싶었지만 연구청장이나 장인들은 정성국이 누구보다 청결을 신경 쓴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리고 북미 대륙은 넓은 만큼 아무리 빠른 기차로 이동하더라도 며칠을 이동해야 하니 당연히 욕실을 설계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야기하며 연구청장이 덧붙였다.

“물탱크가 채워져 있기에 목욕을 하시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으실 겁니다. 다만 그 전에 승무원에게 미리 말씀해 주셔야 온수를 데울 수 있습니다.”

정성국은 욕조에서 창밖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온수라고? 설마 목욕물을 데우는 보일러라도 장착한 건가?”

“그렇습니다.”

“어이구...”

정성국은 너무 호화스럽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 듯 침대에 걸터앉아 연구청장에게 물었다.

“그럼 저 뒤쪽의 객차는 뭔가?”

“전하께서 업무를 보실 집무실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게 기본 구성이고 동행자에 따라 전용 객차를 추가로 장착하면 됩니다.”

“전용 객차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다 만들어 두었지요.”

이에 정성국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끙...이건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은데...”

일단 정성국이 왕이고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는 만큼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초호화 객차를 보고 떨떠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불어 자신을 비롯해 왕실 가족들이 이런 사치에 완전히 물들어버릴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연구청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객차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저야 전하께서 이러한 것을 썩 탐탁지 않아 하신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외무청장이 왕실 전용 기차는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정성국은 갑자기 연구청장이 조용한 곰을 거론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용한 곰이? 대체 왜?”

“훗날 전하를 알현하기 위해 유럽에서 사절이 방문할 테고 이들 중에는 분명 왕족도 있을 거라고 예상하더군요.”

그제야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의도를 알아챘다.

“아. 그들을 마중할 때 이 왕실 전용 기차를 사용하겠다?”

“그렇습니다. 물론 그때는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이 침실 객차 대신 귀빈들이 사용할 객차가 연결되고 뒤 칸에 있는 전하의 집무실은 굳게 잠깁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방금 본 객차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식당과 응접실이 그렇게 화려한 거였나? 그곳에서 귀빈들을 대접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집무실이야 전하께서 업무를 보시는 집무실의 축소판입니다만...그 옆의 회의실은 무척이나 화려한 편입니다. 그게 다 그 때문이지요.”

“흠...”

이번에 새진주까지 철도가 깔리고 기차가 새진주를 드나들기 시작하면 유럽인들은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을 궁금해할 것은 분명했다.

특히 우방국이라 할 수 있는 에스파냐나 잉글랜드는 은근슬쩍 새한성의 방문을 타진하기도 했었고.

그런 만큼 언젠가는 새한성을 개방해야 했고 그렇게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지면 이에 흥미를 갖고 새한성을 방문하려는 왕족이나 고위 귀족들이 있으리라고 판단한 조용한 곰은 그때를 대비해 이렇게 화려한 객차를 주문한 것이다.

이를 깨달은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긴 했다.

기차는 북미왕국에만 있는 만큼 일반 객차에 태워도 유럽의 귀빈들은 놀랄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고 지금 유럽은 화려함의 극치라는 바로크 시대였다.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교회는 종교적 경외심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절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귀족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극한의 화려함을 추구했던 시대인 만큼 오히려 깔끔한 장식을 하는 것이 북미왕국은 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한 방편이라고 보았고.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귀빈들이 사용할 객차까지 다 만들어 두었다니 어쩌겠는가.

바로 불쏘시개로 만드는 것보다야 써먹는 게 낫겠다 싶어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알겠네. 조용한 곰의 의도도 알겠고 이렇게 화려한 기차를 만든 이유가 공적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인 만큼 이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이 안도하자 정성국은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외국의 귀빈뿐 아니라 청장들이 급히 움직일 때도 이 왕실 전용 기차를 사용하라고 하게.”

“하지만...”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이 놀라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지만, 정성국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고 말했다.

“왕실 가족이라 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 않나. 그리고 나나 왕실 가족들은 대부분 새한성에만 머무르고. 이렇게 잘 만든 기차를 창고에 처박아두는 건 낭비일세. 그리고 원래 기계들은 가끔 움직여 줘야 하고 기차는 철도를 달리기 위해 태어난 기물이 아닌가.”

정성국의 단호한 음성에 설득하긴 무리라고 판단한 연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청장들도 왕실 전용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리겠습니다.”

연구청장이 수긍하자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호위대장이 침실 밖에서 말했다.

“전하. 호위대원들이 거의 탑승했습니다.”

그 말에 연구청장은 정성국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내려야겠군요. 전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래. 배웅해줘서 고마웠네.”

* * *

“음? 어째 오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새진주에 도착한 에스파냐인 선장은 어느덧 익숙하게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선착장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함께 이동하던 부선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병사들의 분위기가 다를 때와는 달리 조금 긴장한 것 같습니다.”

이에 선장이 부선장에게 명령했다.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부선장은 근처의 한 북미왕국인과 대화를 나눈 후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선장에게 돌아와 대답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정오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 걱정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행사? 무슨 행사?”

선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부선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귀한 볼거리가 있을 테니 구경하고 싶으면 정오에 저 목책으로 올라가 보라고 하더군요.”

“정오면...곧 정오잖아?”

“그렇지요.”

“그럼 식당은 좀 나중에 가지.”

“알겠습니다.”

선장과 부선장은 곧바로 목책으로 이동했다.

목책에 올라 외국인 거주 구역 바깥 풍경을 확인하던 부선장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저기 저 건물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습니다.”

이에 부선장이 가리킨 방향을 확인한 선장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 병사들이 저 건물 주위를 에워싸고 있군. 음? 저건...”

선장이 눈을 찌푸리다 망원경까지 꺼내자 부선장은 선장이 바라보던 곳에 시선을 집중하다 기겁했다.

“헉! 김봉길 2함대 사령관 같은데요?”

김봉길이 새진주로 와서 2함대를 조직하고 수많은 해적을 격침했었기에 에스파냐의 뱃사람들은 김봉길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봉길은 이곳에서 가장 신분이 높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그런 김봉길이 정복을 입고 인파를 헤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선장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데 김봉길 2함대 사령관까지 나온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시끌벅적하던 인파가 잠시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서 하얀 연기와 함께 어떤 물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죠?”

선장은 망원경으로 다가오는 물체를 확인하고 기겁했다.

“헉! 저...저게 뭐야!”

부선장은 그런 선장의 반응에 갸우뚱했지만, 점차 가까워지는 기다란 물체를 확인하고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니...저건 도대체? 마차를 대량으로 연결해둔 것 같은데...저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겁니까?”

이에 선장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해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북미왕국의 배는 스스로 움직이는데 마차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것은 또 뭔가.”

이에 부선장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선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또 그렇네요?”

“다만 당황스러운 것은 저거 아무리 봐도 철로 만든 것 같은데...”

선장의 말에 부선장은 다시 한번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육중한 철마차가 스스로 움직인다고요?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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